야간 습격, 어둠 속의 발소리
밤 10시. 명성고등학교의 구관 건물은 거대한 무덤처럼 고요했다. 낮 동안의 소란스러움이 완전히 휘발된 교정은 짙은 안개와 밤비에 젖어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조차 제대로 닿지 않는 구관 3층 복도는 어둠의 심연 그 자체였다. 잡초가 우거진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만이 웅웅거리는 울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 적막한 어둠을 깨뜨리고, 구관 3층 폐쇄된 물리실험실 안쪽에서 미세한 타이핑 소리가 흘러나왔다. 탁, 타닥, 탁.
노란 황색 양초 하나가 대리석 책상 위를 위태롭게 밝히고 있었다. 불꽃이 흔들릴 때마다 깨진 유리 기구들과 먼지 쌓인 시약병들이 벽면에 기괴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책상 앞에는 송현우와 박준영이 마주 앉아 있었다. 준영의 얼굴은 노트북 모니터의 푸른 빛에 노출되어 유난히 초췌해 보였다. 그의 두꺼운 뿔테 안경 너머로 비치는 눈동자는 쉴 새 없이 모니터의 로그 기록들을 쫓고 있었다.
“선배, 오태식의 메신저 갈취 내역이랑 임성규의 계좌 송금 기록 대조 분석은 거의 끝났어요. 오태식이 학기 초부터 애들한테 뜯어낸 돈만 해도 수백만 원이 넘어요. 이건 단순 학폭이 아니라 명백한 상습 공갈 협박이에요.”
준영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긴장감과 함께 묘한 흥분이 서려 있었다. 자신이 가진 천재적인 데이터 분석 능력이 일진들의 공고한 지배망을 무너뜨릴 물증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오는 짜릿함이었다.
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턱을 괴고 낡은 가죽 다이어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이어리의 검은 표지는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했고, 모서리는 닳아 헤져 있었다. 현우의 손가락 끝이 그 날카로운 모서리를 조용히 쓸어내렸다.
“잘했다. 그 데이터는 오태식의 숨통을 끊어놓을 결정적 카드가 될 거다. 하지만 아직 방심하긴 일러.”
현우의 음성은 차가운 얼음 송곳 같았다. 준영은 현우의 포커페이스를 볼 때마다 경외감을 느꼈다. 오태식이 교실에서 스스로 발작을 일으키며 자멸한 지 불과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온 학교가 그 사건으로 뒤집혔는데도, 이 판을 설계한 장본인은 호수처럼 고요했다.
그때였다.
스으으으윽— 쾅.
먼지 쌓인 복도 저편에서 불길하고 둔탁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무거운 금속이 시멘트 바닥을 거칠게 긁으며 지나가는 소리였다.
끼이이이익— 스으으윽.
준영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딱 멈췄다. 그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공포로 크게 확장되었다.
“선배…… 이 소리, 뭐예요?”
준영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현우는 말없이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던졌다. 화면 한구석에는 청소부 김 씨의 도움으로 확보한 ‘교내 CCTV 사각지대 동선 지도’가 켜져 있었다. 구관 건물 내부에 사적으로 설치해 둔 소형 모션 센서 가상 맵 위에 붉은색 경고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침입자였다. 그것도 여러 명.
- 경고: 3층 동쪽 계단 진입 감지.
“쇠파이프야.”
현우가 차분하게 말했다.
“쇠파이프를 바닥에 끌며 걸어오는 소리다. 발소리의 무게와 간격으로 보아 최소 세 명 이상. 체중이 많이 나가는 녀석들이군.”
“그, 그럼 일진들이……?”
“김철수의 묵인이 있었겠지. 오태식이 무너지면서 일진 연합의 권위에 금이 갔으니까. 그 체면을 복구하기 위해 가장 확실하고 단순한 방법을 선택한 거다. 배강두야.”
배강두. 오태식 패거리의 핵심 타격대원이자, 주먹을 쓰는 데 주저함이 없는 잔인한 녀석. 현우의 심리 분석 보고서에 적힌 배강두의 프로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 녀석은 지능이 낮지만 물리적 파괴력만큼은 오태식 이상이었다.
쿵! 쿵! 쿵!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텅 빈 구관 복도의 음향 효과 때문에 그 소리는 마치 심장 박동처럼 웅장하고 살벌하게 공명했다. 철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녀석들이 물리실의 위치를 찾기 위해 교실 문들을 하나씩 확인하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현우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붉은 경고등이 켜졌다.
폐가 급격히 수축했다. 들이쉬는 숨만 있고 내쉬는 숨이 없는 지옥 같은 감각. 2년 전 겨울 밤 10시 45분, 동생 민우가 투신하기 직전 보냈던 마지막 문자 메시지의 잔상이 뇌리를 스쳤다. 어둠 속에서 들이닥치는 폭력의 발소리가 동생의 비명과 겹쳐 들렸다.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공황 발작의 전조였다.
‘안 돼. 여기서 무너지면 끝장이다.’
현우는 이빨을 악물었다. 그는 주머니 속으로 손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손가락 끝에 닿은 가죽 다이어리의 날카로운 모서리. 현우는 그 모서리를 향해 자신의 엄지손톱을 사정없이 짓눌렀. 날카로운 가죽 모서리가 살을 파고들며 극심한 통증을 유발했다.
통증이 신경을 타고 뇌로 치솟자, 짓눌려 있던 이성이 극적으로 깨어났다. ‘포커페이스 앵커링’ 기술이었다. 고통을 특정 신체 부위로 전이시킴으로써 공황의 파도를 억지로 가라앉힌 현우의 얼굴은 다시 차가운 대리석처럼 얼어붙었다. 호흡이 차분해졌다.
“준영아, 노트북 덮어.”
현우가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네? 하지만 아직……”
“시간이 없다. 녀석들이 복도 방화문까지 도달했다. ‘물리실 임시 폐쇄 프로토콜’을 가동한다. 지금 당장.”
준영은 겁에 질려 허둥지둥 노트북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현우는 책상 위의 황색 양초를 입으로 불어 껐다. 순간, 물리실 내부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잠겼다. 창밖의 미세한 달빛만이 먼지 쌓인 실험 기구들의 윤곽을 비추고 있었다.
“준영아, 내 말 잘 들어.”
현우가 어둠 속에서 준영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손길은 차가웠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노트북과 백업 하드디스크를 들고 칠판 뒤편 ‘준비실 암실’로 들어가라. 그곳은 이중 잠금장치가 되어 있고 안쪽에선 빛이 새어 나가지 않아. 내가 밖에서 문을 열기 전까지는 숨소리조차 내지 마.”
“선배는요? 같이 피해야죠!”
“나는 여기 남는다. 내가 같이 숨으면 녀석들은 이 방 전체를 때려 부술 거다. 그러면 암실의 존재도 들통나. 무엇보다, 녀석들이 나에게 직접 폭력을 행사하려 한 ‘물리적 정황’이 확실하게 남아야 해. 그래야 법적으로 옭아맬 수 있다.”
“하지만 배강두는 미친놈이에요! 진짜 맞으면 죽을지도 몰라요!”
“계획이 있다. 김 씨가 건네준 ‘야간 순찰 플래시 타임테이블’에 따르면, 정확히 3분 뒤 경비원 강철민 씨가 이 층 복도를 순찰하게 되어 있어. 3분만 버티면 된다. 어서 들어가.”
준영은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현우의 지시에 따라 칠판 옆의 비밀 슬라이딩 레일을 밀고 준비실 암실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스르륵, 소리 없이 암실 문이 닫히며 클리닉의 모든 데이터와 준영이 안전지대로 격리되었다.
현우는 홀로 남았다.
그는 천천히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낡은 교복 단추를 목 끝까지 단정하게 채우고, 낡은 가죽 다이어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어둠을 응시했다.
쿵! 콰아앙!
복도 끝에서 고막을 찢는 듯한 타격음이 들려왔. 현우가 쇠사슬로 걸어 잠갔던 복도 방화문이 배강두의 쇠망치질에 비명을 지르며 부서진 것이다. 녀석들은 현우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 계산에 오차가 발생했다.
스으으윽— 찰그랑.
이제 쇠파이프가 바닥을 긁는 소리는 물리실 바로 앞 복도에서 울리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와 비열한 웃음소리가 문틈으로 스며들었다.
“여기 맞지? 3층 구석방.”
배강두의 걸걸하고 탁한 목소리였다.
“자물쇠 채워져 있는 거 보니까 여기네. 음침한 새끼, 오태식 무너뜨리고 여기서 쥐새끼처럼 숨어 있었냐?”
철컥, 덜컹덜컹!
물리실 철제 문고리가 거칠게 흔들렸다. 굳게 잠긴 자물쇠가 버티자, 밖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
“아, 씨발. 열쇠 잠겨 있네. 야, 빠루 가져와. 부셔버려.”
현우는 어둠 속에서 눈을 감지 않았다. 그의 손끝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뇌는 초 단위로 돌아가고 있었다. 경비원 강철민 씨가 이 복도에 도달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1분 40초. 하지만 문이 부서지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무력의 싸움이 아니다. 1초 단위의 타이밍과 프레임의 싸움이었다. 현우는 주머니 속의 소형 위장 녹음기 버튼을 조용히 눌렀다. 미세한 작동 진동이 손가락 끝을 타고 전해졌다. 준비는 끝났다.
깡! 콰직!
쇠지렛대가 자물쇠 틈새를 사정없이 파고드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철판이 비틀리고 녹슨 나사못들이 튕겨 나가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구관 전체를 흔들었다.
철컥, 콰강!
마침내 물리실 자물쇠가 쇠지렛대에 의해 거칠게 부서지며 철문이 열렸다.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플래시 불빛 사이로 배강두의 험악한 얼굴이 드러났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