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자멸, 깨진 포식자
“지금 목소리가 떨리는데, 뭐가 그렇게 불안해?”
강민지의 낮고 차분한 음성이 교실의 정적을 뚫고 오태식의 귓전에 박혔다. 평소라면 모기만 한 소리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을 먹잇감이었다. 하지만 지금 오태식의 눈앞에 선 강민지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꼿꼿이 세운 척추, 활짝 편 어깨, 그리고 눈물 한 방울 고이지 않은 채 자신의 왼쪽 눈동자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그 차가운 시선. 비언어적 지배 관계의 완벽한 역전이었다.
오태식의 머릿속은 이미 폭발 직전이었다. 교실 천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17,000Hz의 미세한 고주파 음원이 그의 달팽이관을 사정없이 긁어대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저 가벼운 이명이나 바람 소리 정도로 들릴 미세한 주파수였지만, 오태식에게는 지옥의 문을 여는 열쇠였다. 아버지가 가죽 벨트와 야구 배트를 휘두르기 직전, 그 음습한 안방에서 흐르던 미세한 공기의 진동. 폭력의 공포가 각인된 그의 뇌 기저핵이 공명 주파수를 타고 과거의 트라우마를 강제로 복기하기 시작했다.
“이, 이 씨발년이 진짜……!”
오태식의 입술 오른쪽 끝이 0.1초 단위로 부르르 떨렸다. 씰룩거리는 구강 틱 장애 증상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그는 자신의 치부가 전교생 앞에서 발가벗겨지고 있다는 극도의 수치심과 공포를 가리기 위해, 날것의 폭력을 선택했다. 우람한 팔뚝이 허공을 가르며 민지의 얼굴을 향해 무자비하게 날아갔다.
그 찰나의 순간, 민지의 오른쪽 귀 안쪽에 숨겨진 초소형 살색 골전도 이어폰을 통해 송현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 물러서, 민지야. 왼쪽으로 두 걸음. 교탁 앞 CCTV 카메라 앵글 정중앙으로 유인해.
민지는 주저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복기했던 ‘가해자 도발 유도 프로토콜’이 그녀의 신체를 움직였다. 민지는 가볍게 왼쪽으로 스텝을 밟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휘익!
오태식의 묵직한 주먹이 민지의 머리카락 끝만을 스친 채 허공을 갈랐다. 제 풀에 겨워 중심을 잃은 오태식의 거구가 교탁 모서리를 들이받으며 비틀거렸다.
“어? 태식이 주먹질한다!”
“야, 야! 동영상 찍어!”
교실 뒤편에서 숨을 죽이고 관망하던 학생들이 일제히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매점 앞에서의 대치 이후 오태식의 권위에 의문을 품던 방관자들이 이제는 대놓고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기 시작한 것이다.
“찍지 마! 이 개새끼들아, 폰 치우라고!”
오태식이 소리를 질렀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미 이성을 잃고 찢어지는 비명에 가까웠다. 얼굴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뒤틀리며 침이 입술 새로 흘러내렸다. 입술 끝은 멈추지 않고 씰룩거렸고,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사방으로 흔들렸다. 완벽한 포식자의 가면 뒤에 숨겨져 있던, 가정 폭력에 신음하던 나약한 괴물의 민낯이 전교생 앞에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순간이었다.
“아빠…… 아빠, 잘못했어요. 그 소리 좀 꺼줘요…… 제발…….”
극도의 공황 상태에 빠진 오태식의 입에서 기괴한 헛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자신의 귀를 거칠게 쥐어뜯으며 교실 한가운데서 발악하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책상을 발로 차 엎어버렸고, 나무 의자를 들어 올려 칠판을 향해 사정없이 내던졌다.
쾅! 콰장창!
유리창이 깨지고 철제 프레임이 찌그러지는 굉음이 교실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오태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눈빛은 공포가 아닌, 경멸과 조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박, 쟤 진짜 미친 거 아냐?”
“집에서 아빠한테 맞고 산다더니 진짜였네.”
“침 흘리는 거 봐, 더러워.”
사방에서 쏟아지는 수군거림이 오태식의 고막을 찔렀다. 오태식은 피가 흐르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의 지배망이 완벽하게 가루가 되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는 교실 뒤편에 서 있던 부하 안재현을 발견하고 멱살을 잡듯 소리쳤다.
“안재현! 너 뭐 해? 저년 패버려! 빨리!”
하지만 평소 오태식의 눈치만 보던 안재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오태식의 손을 뿌리치며 교복 셔츠를 정리했다. 그의 입가에 비열한 썩소가 걸렸다.
“추하다, 태식아. 적당히 해라. 너 틱 장애 있는 거 숨기려고 그동안 우리 앞세워서 센 척한 거였냐?”
안재현의 차가운 배신 선언은 오태식의 가슴에 마지막 비수를 꽂았다.
그 순간, 2학년 3반 교실 뒷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시끌벅적하던 교실이 단 1초 만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단정한 모범생 가르마에 스마트한 안경을 쓴 소년, 명성고등학교의 실질적 절대 지배자이자 이사장 아들인 김철수였다. 그는 한 손에 아이패드를 든 채, 엉망진창이 된 교실 한가운데서 침을 흘리며 헐떡이는 오태식을 내려다보았다.
김철수의 눈빛에는 분노도, 당황도 없었다. 그저 고장 난 장난감을 바라보는 듯한 깊은 무관심과 싸늘함만이 서려 있었다.
김철수가 오태식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구두굽이 교실 바닥의 콘크리트를 밟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오태식은 본능적인 두려움에 몸을 떨며 김철수의 바지 자락을 올려다보았다.
“철수야…… 내가, 내가 저년이 일부러…….”
김철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오태식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쳤다. 그리고 아주 나직하게, 그러나 교실 전체에 공명할 만큼 차가운 목소리로 선언했다.
“그만해, 추하다.”
그 한마디는 오태식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였다. 김철수는 더 이상 오태식을 자신의 사냥개로 쓸 생각이 없었다. 가치가 다한 도구는 버려질 뿐이었다.
오태식은 절망감에 휩싸여 턱을 덜덜 떨며 교실 바닥에 완전히 주저앉았다. 과호흡으로 인해 가슴이 격렬하게 들썩였고, 깨진 유리 조각 위로 그의 눈물이 떨어졌다. 전교생의 카메라 플래시가 주저앉은 패배자의 얼굴을 가차 없이 비추었다.
김철수는 쓰러진 오태식을 뒤로한 채,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의 예리한 안광이 교실 창문 너머, 잡초가 우거진 구관 건물의 3층 창가를 향했다. 마치 그곳 어둠 속에 숨어 이 판을 설계한 진짜 사냥꾼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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