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하는 신경, 교실 안의 덫
어둠이 내려앉은 교정, 현우가 붉은 펜을 들어 오태식의 이름에 마지막 빗금을 긋는 순간, 교실 안의 진짜 덫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명성고등학교 본관 2학년 3반 교실의 공기는 평소보다 훨씬 더 눅눅하고 무거웠다. 매점 앞에서의 그 기묘한 대치 이후, 교실 내의 보이지 않는 권력 전선에는 미세한 균열이 가 있었다. 평소라면 교실의 절대적인 포식자로 군림하며 약자들의 책상을 걷어차던 오태식은 오늘따라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그의 우람한 체구는 책상 앞에 웅크려 있었고, 굵은 손가락은 무언가에 쫓기듯 끊임없이 볼펜을 돌려대고 있었다.
딸깍. 딸깍. 딸깍.
신경질적인 볼펜 노크 소리가 교실의 백색 소음 사이를 날카롭게 찢었다. 오태식의 미간은 깊게 패어 있었고, 이마에는 얇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의 자금줄이 막힌 탓이었다. 매달 소심한 임성규에게서 갈취하던 수십만 원의 용돈과 모바일 상품권 핀번호가 어제부로 완전히 끊겼다. 아침에 성규를 불러내 윽박지르려 했으나, 성규는 겁에 질린 얼굴로 교무실 근처를 맴돌며 오태식과의 접촉을 교묘하게 피했다. 상위 서열인 김철수에게 바쳐야 할 이번 주 상납금 기한은 오늘 점심시간까지였다. 돈이 없다는 사실을 김철수가 알게 되는 순간, 자신이 쌓아 올린 행동대장의 지위는 한순간에 박탈당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교실 뒤편에서는 서열 3위인 안재현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관찰하고 있었다. 오태식의 내면은 이미 붕괴 직전의 임계점에 도달해 있었다.
같은 시각, 구관 3층의 폐쇄된 물리실험실.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먼지 쌓인 실험대 위를 스쳤다. 송현우는 낡은 가죽 다이어리를 펼쳐 둔 채, 노트북 모니터의 파란 불빛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귀에는 무전 송신용 헤드셋이 걸려 있었고, 화면에는 교내 방송망의 주파수 제어 패널이 실시간으로 동기화되어 있었다.
"성민아, 준비됐어?"
현우가 마이크에 대고 나직하게 물었다. 수화기 너머로 방송부장 최성민의 긴장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어, 현우야. 방송실 제어 권한은 완전히 내 노트북으로 바이패스시켰어. 장동식 학생부장이나 다른 선생들은 눈치채지 못할 거야. 진짜... 그 주파수 음원을 틀면 오태식이 반응할까?
"인간의 뇌 신경은 특정 고주파 자극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되어 있어. 특히 과거에 물리적인 타격과 공포로 뇌의 기저핵에 깊은 상처를 입은 인물일수록, 그 특정 공명 주파수는 억제할 수 없는 신경학적 발작을 유도하지. 오태식의 구강 틱 장애는 그의 아버지가 가한 폭력의 각인이야. 그 이명 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의 몸은 본능적으로 그때의 공포를 복기하게 될 거야."
현우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오태식의 미세 행동 분석 보고서를 손가락 끝으로 짚었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는 즉시, 17,000Hz 영역의 미세 고주파 음원을 2학년 3반 교실 스피커로만 은밀히 재생해. 일반 학생들은 거의 듣지 못하는 영역대지만, 오태식의 신경은 긁어내릴 거다. 그리고 민지야, 들려?"
- 네, 선배. 들려요.
교실 자리에 앉아 있던 강민지의 목소리가 무전망을 타고 흘러왔다. 민지의 오른쪽 귀 안쪽에는 머리카락으로 철저히 감춘 초소형 살색 골전도 이어폰이 장착되어 있었다. 민지는 책상 밑으로 주먹을 꼭 쥔 채, 심호흡을 하며 척추를 곧게 세웠다. 어젯밤 물리실 거울 앞에서 현우와 가졌던 지옥 같은 시선 제어 훈련의 감각이 그녀의 온몸 세포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오태식의 오른쪽 입술 끝이 씰룩거리기 시작하는 순간이 타이밍이야. 그 미세 틱 발작이 시작되면 즉각 다가가서 대화의 주도권을 잡아. 내가 실시간으로 멘트를 지시할 테니까, 내 호흡에 네 템포를 맞춰."
- 알겠어요. 할 수 있어요.
민지는 눈을 감고 아랫배로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던 스스로의 다짐이 차가운 이성이 되어 그녀의 심장을 채웠다.
딩- 동- 댕- 동-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교정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학생들이 교실 문을 열고 급식실로 향하거나 무리 지어 떠들기 시작하며 교실 안은 혼잡해졌다. 오태식은 자리를 지킨 채, 초조하게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김철수로부터 상납금을 독촉하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그 순간, 교실 천장의 백색 스피커 그릴 틈새로 보이지 않는 파동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이이-
일반적인 귀에는 그저 미세한 먼지 바람 소리나 복도의 웅성거림에 묻히는 아주 약한 소음이었지만, 오태식의 고막에는 달랐다. 17,000Hz의 날카로운 고주파 이명 음원이 오태식의 달팽이관을 직격했다.
"으윽...?"
오태식이 돌리던 볼펜을 멈추고 제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귓속 깊은 곳에서부터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미세한 두통이 일기 시작했다. 그의 뇌 신경은 이 소리를 단순한 소음으로 인지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야구 배트를 허공에 휘두를 때 나던 그 날카로운 바람 소리, 폭력 직전의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들리던 미세한 기계음. 그 끔찍한 공포의 기억이 공명 주파수를 타고 그의 무의식을 잠식해 들어갔다.
딸깍. 딸깍. 딸깍.
오태식은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더 빠른 속도로 볼펜 노크를 눌러댔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 끝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힘 조절이 되지 않아 볼펜 팁이 종이 위를 거칠게 긁었다.
- 지금이야, 민지야. 오태식의 오른쪽 입술을 봐.
현우의 차가운 지시가 민지의 귓속을 때렸다.
민지는 오태식을 바라보았다. 오태식은 머리를 거칠게 털며 귀 주변을 긁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 근육이 일그러지는 순간, 현우가 예언했던 그 현상이 일어났다. 오태식의 오른쪽 입술 끝이 0.1초 단위로 파르르 떨리며 위아래로 씰룩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제어 능력을 상실한 신경의 비명이었다.
민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척추를 곧게 세우고, 어깨를 넓게 편 채 오태식의 책상 앞으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 주변에 남아 있던 몇몇 학생들이 민지의 당당한 동선에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스윽.
민지가 오태식의 책상 모퉁이를 조용히 짚으며 멈춰 섰다. 오태식은 귀에서 들리는 이명 소리와 내면의 공포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으나,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민지를 보자 본능적으로 눈을 부릅떴다.
"뭐야, 씨발... 꺼져..."
오태식이 윽박지르려 목소리를 높였지만, 평소의 위압적인 중음이 아니었다. 이명 소리에 짓눌린 그의 성대는 미세하게 갈라져 가벼운 쇳소리를 냈다. 목소리 톤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있었다.
민지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녀는 턱을 가볍게 당긴 채, 오태식의 왼쪽 눈동자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어젯밤 거울 앞에서 눈물이 흐르도록 연습했던 아이 컨택 홀딩 기술이었다. 1초, 2초, 3초... 침묵의 3초가 흐르는 동안 민지의 눈동자는 단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다.
오태식의 입술 끝이 더 격렬하게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눈앞의 약자가 자신을 사 Hunters처럼 조용히 내려다보는 인지적 부조화 상황 속에서, 그의 뇌 신경은 완벽한 공황 상태로 치닫고 있었다.
- 민지야, 톤을 낮춰. 그의 떨림을 언어로 규정해 버려. 프레임을 완전히 빼앗는 거다.
현우의 목소리가 민지의 영혼을 타고 흐르는 단단한 닻이 되었다. 민지는 복식 호흡으로 아랫배를 누르며, 평소보다 훨씬 더 낮고 차가운 저음으로 단어를 하나씩 끊어서 내뱉었다. 교실의 소음이 그 차분한 공명에 순간적으로 잦아들었다.
민지가 오태식의 귀에 바짝 상체를 밀착시켰다. 극단적인 비언어적 공간 침범이었다. 오태식은 콧등에 닿는 민지의 차가운 숨결과 숨 막히는 침묵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어깨를 움츠렸다.
민지가 아주 나직하게, 그러나 뼈를 찌르는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금 목소리가 떨리는데, 뭐가 그렇게 불안해?"
그 순간, 오태식의 눈동자가 좌우로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 체스판이 완벽하게 박살 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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