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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자의 사각지대, 굴종의 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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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점 앞 복도에서 시작된 균열은 오태식의 세계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수백 명의 눈동자 앞, 먹잇감에 불과했던 강민지의 단호한 거절과 차가운 저음에 짓눌려 시선을 피하고 말았던 그 찰나의 굴욕. 그 대가는 오태식의 내면을 미친 듯한 폭력성으로 잠식해 들어갔다.


쾅! 쾅! 콰앙!


어두컴컴한 오태식의 방 안, 거친 타격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땀 범벅이 된 오태식이 붉은색 샌드백을 향해 무자비하게 주먹을 내질렀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가죽이 찢어질 듯한 소리가 사방으로 튀었다. 발길질 한 번에 육중한 샌드백이 천장에 매달린 쇠사슬을 비틀며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샌드백이 흔들릴 때마다 매점 앞에서 자신을 경멸하듯 바라보던 반장 김진수의 눈빛, 그리고 자신을 비웃던 구경꾼들의 수군거림이 환청처럼 귓가를 때렸다.


"씨발... 씨발...! 감히 내 앞에서 눈을 똑바로 떠? 그년이?"


오태식은 숨을 몰아쉬며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거울 속에는 눈발이 선 자국과 분노로 일그러진 멧돼지 같은 형상의 남학생이 서 있었다. 오태식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그 순간,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오른쪽 입술 끝이 아주 미세하게, 약 0.1초 동안 파르르 떨렸다.


"아윽...!"


오태식은 황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한 번 터진 경련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입술이 실룩거릴 때마다 그의 뇌리에는 지옥 같은 기억이 강제로 재생되었다. 사채업을 하며 지역 음지의 권력을 쥐고 흔들던 아버지 오만석. 아버지는 오태식의 시험 성적이 떨어지거나 자신의 기분이 나쁠 때마다 안방 문을 잠그고 야구 배트를 휘둘렀다.


'맞기 싫으면 강해져라. 남을 밟아 뭉개서 네가 위에 서란 말이다!'


가죽 벨트가 살을 찢는 소리,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태식의 몸에 각인된 공포의 기제. 그것이 바로 이 구강 틱 장애의 근원이었다. 태식은 거울 속 자신을 향해 억지로 침을 뱉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안 무서워. 난 안 무섭다고...! 내가 왜 그년한테 주눅이 들어!"


그는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고가의 명품 패딩을 발로 걷어차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일진 연합 '블랙 링' 내부에서 자신의 입지는 철저하게 '물리적 통제력'에 기반해 있었다. 오태식이 약자들을 확실하게 밟아 누르지 못한다는 소문이 돌면, 블랙 링의 절대적 지배자인 김철수는 자신을 가차 없이 버릴 것이 뻔했다. 이미 2학년 일진 서열 3위인 안재현이 호시탐탐 자신의 자리를 노리며 비열한 썩소를 짓고 있지 않은가.


"강민지...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음침한 새끼..."


오태식은 구관 물리실 주변을 기웃거리던 송현우의 창백한 얼굴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민지의 갑작스러운 변화 배후에는 그 새끼가 있는 게 분명했다.


"삼촌한테 말해서 확 묻어버릴까?"


오태식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삼촌은 지역 폭력조직 삼거리파의 행동대장인 강성호였다. 삼촌의 칼날 같은 그림자를 빌려서라도 자신을 모욕한 자들을 피투성이로 만들고 싶다는 가학적인 충동이 치밀었다. 하지만 아직은 학교 내부의 일이었다. 먼저 그 음침한 구관 새끼와 강민지의 자금줄, 그리고 정체를 확실하게 파헤쳐 고립시켜야 했다.


* * *


같은 시각, 구관 3층의 폐쇄된 물리실험실.


노란 황색 양초 하나만이 책상 위를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깨진 유리 기구들과 먼지 쌓인 선반들 사이, 송현우는 차가운 대리석 책상 앞에 앉아 낡은 가죽 다이어리를 펼쳐 들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다이어리의 날카로운 가죽 모서리를 지그시 눌렀다. 미세한 통증이 뇌 신경을 자극하며, 낮에 있었던 매점 앞의 대치 상황을 차분하게 복기해 나갔다.


"첫 단계의 균열은 성공적이야."


현우의 목소리는 정막한 물리실의 공기를 가르며 차갑게 울렸다. 무선 이어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코칭을 받았던 강민지는 현우의 지침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오태식의 포식자 프레임을 대중의 시선이라는 사각지대로 끌고 가 비언어적으로 붕괴시킨 것.


하지만 현우는 방심하지 않았다. 오태식 같은 단순하고 다혈질적인 괴물은 막다른 골목에 몰릴수록 더 잔혹하고 원초적인 물리적 폭력을 모의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폭력이 실행되기 전, 그의 손발을 묶고 일진 연합 내부에서 철저하게 고립시키는 '하부 조직 이간질 전략'을 선제적으로 가동해야 했다.


현우는 화이트보드에 적힌 오태식의 이름 밑에 빨간색 선을 긋고, 그와 연결된 자금줄의 흐름을 도식화했다.


"오태식의 권력은 두 가지 축으로 유지된다. 첫째는 피지컬이 주는 공포, 둘째는 피해 학생들에게 갈취한 돈으로 김철수에게 바치는 상납금."


첫 번째 축인 공포에 균열이 갔으니, 이제 두 번째 축인 '자금줄'을 완전히 끊어버릴 차례였다.


현우는 책상 서랍에서 USB 하나를 꺼내 노트북에 연결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2학년 3반의 돈 셔틀이자 소심하고 부유한 집안의 남학생, 임성규의 계좌 송금 내역서였다. 임성규는 오태식 패거리에게 매달 수십만 원의 용돈과 모바일 문화상품권 핀번호를 강탈당하고 있었다.


현우는 임성규를 비밀리에 만나 확보한 금융 갈취 내역을 엑셀 파일로 정밀하게 시각화했다. 날짜, 시간, 송금 계좌 명의, 그리고 문화상품권의 핀번호 사용 내역까지. 오태식의 범죄가 단순한 일탈을 넘어 사법 처리가 가능한 '상습 공갈 협박죄'임을 입증하는 명확한 금융 물증이었다.


여기에 오태식의 오프라인 비행을 증명할 추가적인 증거가 필요했다.


현우는 패딩 주머니에서 낡은 지갑을 꺼내 몇 장의 만 원짜리 지폐를 꺼냈다. 자신의 아르바이트 자금과 아날로그 정보 비용으로 축적해 둔 돈이었다. 현우는 이 돈을 들고 야간의 으슥한 골목길로 향했다.


그가 만난 사람은 명성고 인근의 배달 알바생이자 학교 밖 정보원인 배철민이었다. 철민은 오토바이에 올라탄 채 껌을 씹으며 현우를 흘겨보았다.


"야, 송현우. 네가 달라고 한 오태식 패거리 골목길 영상은 구했는데 말이지... 이게 생각보다 위험한 작업이라 돈을 좀 더 줘야겠는데? 안 그러면 이 사실을 오태식한테 바로 불어버릴 수도 있고."


배철민이 영악한 미소를 지으며 돈을 더 요구했다. 정보를 미끼로 현우를 역으로 협박하려는 얄팍한 속셈이었다.


하지만 현우의 포커페이스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다. 현우는 조용히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배철민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화면 속에는 배철민이 헬멧도 쓰지 않은 채 번호판 없는 오토바이를 몰고 인도 위를 질주하는 고화질 블랙박스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무면허 운전에 인도 침범, 그리고 번호판 미부착. 이 영상이 배달 대행업체 사장과 관할 경찰서 교통민원실에 접수되면 네 오토바이는 압수되고 배달 일도 영구 정지될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


현우의 낮고 차가운 저음이 배철민의 귀를 파고들었다. 철민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영악한 미소가 사라지고 안색이 하얗게 질려갔다.


"너... 너 이거 어디서..."


"선택해. 돈을 받고 영상을 넘길지, 아니면 내일 아침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을지. 시간은 3초 준다."


현우는 차분하게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3초 침묵 주도권 법칙은 학교 밖의 불량배에게도 완벽하게 작동했다. 배철민은 침을 꿀컥 삼키더니, 품속에서 USB를 꺼내 현우에게 건넸다.


"알았어, 알았다고! 여기 오태식 패거리가 편의점 뒤 골목길에서 1학년 애들한테 담배 셔틀 시키고 돈 뺏는 영상이야. 편의점 알바 서동희가 찍은 원본이니까 확실해. 그러니까 그 영상은 당장 지워줘."


현우는 USB를 받아 주머니에 넣고, 약속한 정보 비용을 배철민의 오토바이 시트 위에 올려두었다.


"신뢰가 깨지지 않는 한, 네 영상이 경찰서로 갈 일은 없어."


현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배철민은 소름이 돋는 듯 팔을 비비며 황급히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도망치듯 골목을 빠져나갔다.


* * *


다음 날 방과 후, 현우는 명성고등학교 매점 뒤편의 창고로 향했다.


그곳에는 매점 사장 한형석이 박스를 정리하고 있었다. 한형석은 평소 일진들이 매점에서 무단으로 외상을 달아놓고 갚지 않는 것에 극도의 불만을 품고 있었다. 현우가 다가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사장님, 지난번에 말씀드린 오태식 일당의 외상 장부 복사본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한형석은 주위를 힐끗 살핀 뒤, 카운터 밑에서 낡은 수첩 하나를 꺼내 현우에게 건넸다.


"여기 있네. 오태식 그 자식이 매달 삼십만 원 넘게 외상을 달아놓고 배째라 식으로 나오고 있어. 담배를 사 오라고 협박한 정황도 내가 날짜별로 다 적어놨지. 아주 학교의 골칫덩어리야. 이걸로 그 자식을 확실하게 혼내줄 수 있는 건가?"


"네, 사장님. 오태식이 더 이상 매점에서 행패를 부리지 못하도록 금융적 목줄을 채우겠습니다."


현우는 외상 장부 복사본을 받아 품속에 소중히 넣었다.


이로써 오태식을 사회적, 경제적으로 완전히 파멸시킬 모든 조각이 정렬되었다.


오태식이 임성규에게 갈취한 금융 거래 내역, 편의점 알바 서동희와 배철민을 통해 확보한 골목길 담배 갈취 영상, 그리고 매점 사장 한형석에게 입수한 무단 외상 장부 복사본까지.


이 모든 자료는 오태식의 부모인 졸부 박영란을 압박할 가장 완벽한 무기였다. 박영란은 강남 사모님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품격과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위선적인 인물이었다. 만약 자신의 아들이 학교폭력 공갈 협박죄와 무면허 담배 반입 현행범으로 소년원에 갈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커뮤니티에 폭로된다면, 그녀의 완벽한 세계는 한순간에 붕괴할 것이었다.


현우는 구관 물리실험실로 돌아와 책상 위에 수집한 증거들을 하나씩 정렬하기 시작했다.


노란 양초 불빛 아래, 오태식이 임성규에게 강탈한 모바일 문화상품권 핀번호 내역서와 매점 외상 장부 복사본이 칼날처럼 정렬되었다. 현우는 가죽 다이어리를 펼쳐 마지막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


'포식자의 사각지대는 그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경제적 자금줄과 가정의 위선 속에 존재한다. 사슬은 이미 채워졌다. 이제 당기기만 하면 된다.'


현우의 책상 위에 오태식이 임성규에게 강탈한 모바일 문화상품권 핀번호 내역과 매점 외상 장부 복사본이 정렬되며, 오태식의 완벽한 고립 시나리오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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