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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시간의 과호흡, 깨진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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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 째깍, 째깍.


본관 2학년 3반 교실의 공기는 질식할 것처럼 무겁고 건조했다. 기말고사 수학 시험장의 정적을 깨우는 것은 오직 사정없이 서걱거리는 샤프펜슬 소리와 백색소음처럼 고막을 긁어내리는 벽시계의 초침 소리뿐이었다. 창밖에서 내리쬐는 눅눅한 초여름의 열기가 유리를 타고 넘어와 교실 내부의 산소를 전부 말려버리는 것만 같았다.


전교 1등 박준영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 한 방울이 수학 시험지 21번 고난도 기하 문제 위로 툭 떨어졌다. 잉크가 번지며 정교하게 그려진 도형의 경계선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준영은 안경을 치켜올리려 했으나, 그의 손가락은 이미 제어력을 잃고 덜덜 떨리고 있었다.


‘풀어야 해. 이것만 풀면 만점이야. 아빠가 말했잖아. 전교 1등을 놓치는 순간, 내 인생도 끝이라고.’


머릿속에서 파란 불꽃이 튀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그때, 준영의 시선이 시험지 우측 하단 여백으로 향했다. 시험지를 배부받을 때 책상 서랍 틈새에 교묘하게 끼워져 있던, 손바닥만 한 크기의 백색 전단지 조각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최유리 패거리가 조미정의 대포폰을 통해 대나무숲에 퍼뜨렸던 바로 그 저주 어린 낙인이 인쇄되어 있었다.


[대필 셔틀 박준영, 이번 수학 시험도 대필 안 하니까 머리가 안 돌아가지? 훔친 전교 1등 타이틀은 여기까지다.]


숨이 막혔다. 허파가 쪼그라들며 산소가 폐포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기표에서 맴돌았다. 준영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산소를 들이마시려 했으나, 들이쉬는 숨만 있고 내쉬는 숨이 없는 지독한 과호흡의 늪이 그의 목구멍을 콘크리트처럼 메워버렸다. 혈액 속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저탄산혈증(Hypocapnia)이 시작되자, 그의 열 손가락 끝이 무의식적으로 안쪽으로 강하게 말려 들어가는 유재 증상이 나타났다.


“읍…… 흐읍……!”


준영의 입에서 젖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불투명한 물병을 잡으려 손을 뻗었으나, 경련이 일어난 손가락은 물병 대신 자신의 두꺼운 뿔테 안경을 후려쳤다.


깡!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안경이 책상 모서리를 맞고 교실 시멘트 바닥으로 추락했다. 둔탁한 파열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안경의 오른쪽 유리 렌즈가 거미줄처럼 산산조각이 나며 철제 책상 다리 밑으로 흩어졌다.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준영의 시야가 뿌연 회색빛 혼돈으로 뒤덮였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연필 긁는 소리가 거대한 해일처럼 그의 고막을 찢어발겼다. 준영은 결국 의자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처참하게 쓰러졌다.


쿵!


“어? 준영아!”

“선생님! 박준영 쓰러졌어요!”


교실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시험을 치르던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감독 교사가 당황하여 준영의 상태를 확인하려 교탁 앞으로 뛰어 내려왔다. 준영은 부러진 안경 파편이 흩어진 바닥 위에서 가슴을 쥐어짜며 헐떡이고 있었다. 그의 입술은 이미 산소 결핍으로 인해 푸르게 변해 있었다.


그때, 교실 앞문이 거칠게 열리며 위압적인 양복 핏의 사내가 난입했다. 학생부장 장동식이었다. 그는 복도를 순찰하던 중 소란을 듣고 즉각 이 전장으로 들어선 것이었다. 그의 날카로운 안광이 쓰러진 준영과 깨진 안경 조각들을 훑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제자를 향한 안타까움 대신, 학교의 시험 신뢰도와 대외 평판을 망쳐놓은 문제아를 향한 차가운 경멸만이 서려 있었다.


“무슨 소란이야! 시험 시간에 감히 소란을 피워?”


장동식이 바닥에 쓰러진 준영의 어깨를 거칠게 움켜잡았다. 그의 손아귀 힘에 준영의 여린 어깨뼈가 삐걱거렸다.


“박준영, 엄살 부리지 말고 당장 일어나! 시험장을 이 지경으로 훼손하고 다른 학생들의 시험을 방해하다니, 이건 엄연한 학칙 위반이자 선도위 징계 대상이다! 꾀병 부릴 생각 말고 학생부실로 따라와!”


장동식은 준영의 상태를 과호흡이 아닌 ‘성적 압박으로 인한 고의적 시험 방해 및 소란’ 프레임으로 가두려 폭주하고 있었다. 그에게 전교 1등의 공황 발작은 학교의 완벽한 입시 실적에 오점을 남기는 눈엣가시에 불과했다. 장동식이 준영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 팔을 잡아당기자, 준영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부장님, 그 손 놓으세요!”


교실 뒷문에서 얼음장처럼 차갑고 권위 있는 음성이 들려왔다. 전문상담교사 한소희였다. 그녀는 단정한 정장 베스트 차림으로 장동식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녀의 눈빛에는 평소의 부드러움 대신, 아이를 지키겠다는 참된 스승의 강인한 카리스마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상담교사 고시 규정 제14조 및 Wee클래스 긴급 격리 지침에 의거, 현재 발작을 일으킨 박준영 학생에 대한 ‘합법적 긴급 격리권’을 행사하겠습니다. 학생부장님의 강압적인 선도부 연행은 학생의 생명을 위협하는 명백한 직권남용입니다. 당장 비키세요!”


“한 교사! 지금 감히 학생부의 선도 권한에 도전하는 거야? 이 녀석이 시험을 방해한 물증이 눈앞에 가득한데!”


장동식이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행정적 대치가 교실 내부의 공기를 정지시켰다.


그 순간, 교실 뒷문 어둠 속에서 바퀴가 시멘트 바닥을 구르는 나직한 마찰음이 울렸다.


창백한 낯빛에 긴 앞머리로 눈을 가린 음울한 인상의 남학생이 철제 휠체어를 밀며 교실 안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왔다. 송현우였다. 그의 얼굴은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는 철저한 포커페이스였다. 현우는 분노로 날뛰는 장동식이나 수군거리는 학생들을 단 0.1초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바닥에서 숨이 막혀 죽어가는 준영의 꺾인 손가락 끝에 고정되어 있었다.


현우는 휠체어를 준영의 바로 옆에 세운 뒤, 허리를 숙여 쓰러진 준영의 상체를 단단히 안아 올렸다. 그의 움직임은 기계처럼 정교하고 한 치의 오차가 없었다.


“송현우! 너까지 이게 무슨 무단행동이야! 당장 멈추지 못해!”


장동식이 현우의 어깨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한소희 교사가 자신의 몸으로 장동식의 시야를 완벽히 가로막으며 도교육청 감사 지침서 서류판을 그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움직이지 마세요, 부장님. 어젯밤 배강두 사건으로 도교육청에서 보낸 경위서 제출 공문을 잊으신 건 아니겠죠? 여기서 더 신체적 강압을 행사하시면 즉각 직위 해제 신청을 교육청 핫라인으로 접수하겠습니다.”


장동식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굳어버렸다. 도교육청이라는 단어가 그의 탐욕스러운 목줄을 강하게 죄어왔다. 장동식이 사색이 되어 씩씩거리는 사이, 현우는 준영을 휠체어에 안전하게 태우고 교실 뒷문을 빠져나갔다. 복도의 차가운 공기가 준영의 젖은 뺨을 스쳤다.


현우는 휠체어를 밀고 본관의 화려한 감시 카메라들을 비웃듯, 머릿속에 각인된 ‘교내 CCTV 사각지대 동선 지도’를 따라 구관 건물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본관의 소음이 멀어지고, 잡초가 우거진 낡은 구관 3층의 정막함이 그들을 맞이했다.


철컥, 철컥.


구관 물리실험실의 녹슨 자물쇠가 마스터 키에 의해 풀렸다. 현우는 문을 열고 들어가 안쪽에서 이중 빗장을 걸어 잠갔다. 깨진 유리 기구들과 먼지 쌓인 책상들 사이, 아늑한 소파 침대 위로 현우는 숨을 헐떡이는 준영을 조심스럽게 눕혔다.


준영의 상태는 한계에 달해 있었다. 안경이 깨져 초점을 잃은 그의 눈동자는 천장의 거미줄을 보며 공포로 확장되어 있었고, 들이쉬는 호흡의 주기는 지나치게 가팔랐다. 이대로 두면 뇌로 가는 산소 공급이 과잉되어 의식을 잃거나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였다.


현우는 주머니에서 정신과 주치의 정은주 박사가 전수해 준 아날로그 태엽식 메트로놈을 꺼내 대리석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태엽을 감자, *째깍, 째깍, 째깍* 하는 묵직하고 규칙적인 아날로그 소음이 물리실의 정적을 깨우기 시작했다. 주파수는 정확히 60 BPM. 인간의 가장 안정적인 휴식기 심장 박동 주기였다.


현우는 자신의 오른쪽 바지 주머니 속 낡은 가죽 다이어리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오른손 엄지손가락 끝으로 피가 배어 나올 때까지 강하게 짓눌렀다. 손끝을 찌르는 날카로운 통증이 현우의 뇌리를 스치며, 과거 동생 민우가 투신하던 밤의 지독한 죄책감과 공황 발작 전조를 강제로 얼려버렸다.


‘포커페이스 앵커링(Pokerface Anchoring).’


자신의 감정을 완벽히 차단한 현우는 차가운 대리석 같은 얼굴로 준영의 머리맡에 앉았다. 그는 준영의 덜덜 떨리는 어깨를 두 손으로 지긋이 누르며, 그의 초점 없는 눈동자를 정면에서 마주 보았다. 시선 제어 프로토콜의 작동이었다.


“박준영, 내 눈을 봐.”


현우의 목소리가 물리실 내부의 공명 주파수를 타고 낮게 울려 퍼졌다. 감정을 배제한 150Hz 대역의 차갑고 단단한 저음.


“너를 숨 막히게 하는 건 수학 시험지가 아니야. 네 머릿속에서 울리는 가짜 목소리들이지. 시계 소리도, 최유리의 쪽지도, 네 아버지의 다그침도 전부 흘러가는 바람일 뿐이다. 내 목소리와 이 메트로놈 소리에만 주파수를 맞춰.”


*째깍, 째깍, 째깍.*


현우는 준영의 눈동자를 끝까지 응시하며, 자신의 깊고 차분한 호흡 템포를 준영의 코앞에 동조시키기 시작했다. 지독한 공황의 심해 속에서, 준영은 자신을 옭아맨 사슬을 풀기 위한 첫 번째 이성적 호흡을 내쉬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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