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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의 칼날, 올가미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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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명성고등학교 본관의 유리창에 부딪쳐 날카롭게 반사되었다. 늘 그렇듯 화려하고 정돈된 겉모습이었지만, 그 안을 감싼 공기는 유독 무겁고 축축했다.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의 수군거림이 평소보다 배는 커져 있었다. 어젯밤 구관 물리실험실에서 벌어진 야간 습격 사건과 배강두 패거리의 연행 소식은 이미 은밀한 단톡방들을 타고 교내에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


현우는 평소와 다름없이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운 교복 차림으로 복도를 걸었다. 그의 오른손 엄지손가락 끝에는 하얀 반창고가 감겨 있었다. 어젯밤 공황 발작을 억누르기 위해 가죽 다이어리 모서리를 손톱이 빠지도록 짓눌렀던 앵커링의 흔적이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밀려왔지만, 현우의 창백한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의 동요도 드러나지 않았다. 철저한 포커페이스였다.


“송현우, 지금 즉시 학생부실로 와라.”


복도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차갑고 고압적인 목소리. 2학년 3반 담임이자 학생부 소속인 이정훈 교사의 목소리였다. 주위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현우에게 쏠렸다. 경멸과 호기심, 그리고 약간의 동정이 섞인 시선들. 현우는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 본관 2층 구석에 위치한 학생부실로 향했다.


학생부실의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래된 서류 뭉치 냄새와 눅눅한 커피 향이 섞인 음습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방 안쪽, 날카롭게 날이 선 양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거대한 가죽 의자에 앉아 현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명성고의 실질적인 공권력이자, 온갖 학폭 사건을 재단 입맛대로 은폐해 온 학생부장 장동식이었다.


탁, 탁, 탁.


장동식은 두꺼운 손가락으로 책상을 규칙적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그의 굳어 있는 차가운 얼굴과 금테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뱀 같은 안광이 묘한 위압감을 풍겼다. 그 옆에는 이정훈 담임 교사가 팔짱을 낀 채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서 있었다.


“송현우.”


장동식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위압적이었다.


“어젯밤 구관 물리실험실에서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설명해 봐라. 야간에 학교 건물을 무단으로 점유하고 소란을 피운 것도 모자라, 동급생인 배강두 학생을 정체불명의 위험 물질로 공격해 상해를 입혔다더군. 경비원까지 매수해서 무고한 학생들을 선도부에 넘기려 해?”


현우는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장동식은 배강두 일당의 야간 무단 침입과 특수 폭행 미수 사실을 철저히 은폐하고, 오히려 현우를 ‘야간 소란 및 무단 침입, 동급생 폭행’의 주범으로 몰아가려 하고 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프레임을 완전히 뒤바꾸려는 비열한 행정적 가스라이팅이었다.


“사실과 다릅니다, 선생님.”


현우는 목소리 톤을 낮추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150Hz 대역의 낮고 단단한 저음. 상대의 페이스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비언어적 선언이었다.


“배강두 일당은 어젯밤 10시 경, 쇠지렛대와 쇠파이프를 소지한 채 구관 물리실의 자물쇠를 부수고 무단 침입했습니다. 저를 신체적으로 위해 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김철수의 지시를 받았음을 스스로 자백했습니다. 저는 정당방위 차원에서 호신용 경보기를 작동시켰을 뿐이며, 야간 경비원 강철민 아저씨가 순찰 중 이를 목격하고 현행범으로 제압한 것입니다.”


“자백? 정당방위?”


장동식이 콧방귀를 뀌며 안경을 고쳐 썼다. 그의 눈빛에는 하찮은 학생 따위가 자신에게 논리적으로 대든다는 것에 대한 극도의 불쾌감이 서려 있었다.


“송현우, 네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학교 내부의 질서를 규정하는 건 학생부다. 배강두 학생은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 위해 구관에 들어갔다가 네가 설치한 불법 덫에 걸려 눈을 다쳤다고 진술했다. 게다가 경비원은 학생을 선도할 권한은 있어도 사적으로 체포할 권한은 없어. 오히려 네가 불법 사설 동아리 아지트를 만들고 동급생들을 유인해 위해를 가한 정황이 아주 뚜렷해.”


장동식은 책상 위의 두꺼운 가죽 개인 캐비닛을 슬쩍 쳐다보았다. 현우의 예리한 눈은 그 미세한 시선 이동을 놓치지 않았다. 저 캐비닛 안에는 과거 자신의 동생 송민우의 자살 사건을 ‘단순 학업 스트레스’로 종결지었던 조작된 보고서 원본과 가해자 부모들에게 받은 뇌물 장부가 들어있을 터였다. 2년 전, 내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괴물들을 방조했던 그 손으로, 이제는 자신을 향해 올가미를 씌우려 하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상습적인 학교 폭력 가해자들의 무단 침입과 특수 폭행 미수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하시는 겁니까?”


현우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순간, 학생부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이정훈 담임 교사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


“송현우! 너 지금 학생부장 선생님께 무슨 말버릇이야!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하지 못해?”


장동식은 손을 들어 이정훈을 제지했다. 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었다. 권위적인 교사의 지위를 남용해 학생의 미래를 목줄 쥐듯 흔드는 포식자의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렸다.


“송현우, 네가 공부를 좀 한다고 세상이 만만해 보이는 모양인데…… 네 미래를 쥐고 흔드는 건 그 잘난 말장난이 아니라 내 손끝 하나다. 학생부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에 ‘교내 불법 서클 조직 및 동급생 상습 폭행, 교사 협박’이라고 단 한 줄만 기재되면 네 인생이 어떻게 될 것 같나? 대학? 학생부 종합 전형? 꿈도 꾸지 마라. 당장 오늘부로 선도위원회를 소환해 너를 강제 퇴학 처분할 수도 있어.”


완벽한 행정적 사형 선고였다. 장동식은 학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생기부’와 ‘퇴학’이라는 절대적인 무기를 인질로 삼아 현우의 입을 막으려 했다. 일반적인 학생이라면 이 단계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주머니 속 만년필 모양 초소형 녹음기는 이미 장동식의 이 모든 협박 발언을 고음질로 기록하고 있었다. 현우는 조용히 입을 열어 ‘교무실 행정 지연 전술’을 가동했다.


“퇴학 처분을 내리시려면 정식 선도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며, 학칙 제45조에 의거해 학생과 학부모에게 최소 3일 전 서면 통보가 도달해야 합니다. 또한 저는 도교육청 소속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의 입회 하에 진술할 권리가 있습니다. 임의적인 생기부 허위 기재는 교육공무원법상 직권남용 및 허위공문서작성죄에 해당함을 알려드립니다.”


“이, 이 건방진 새끼가……!”


장동식이 벌떡 일어섰다. 그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상기되었다. 책상 위의 결재판을 집어던질 듯한 기세였다.


“최준태 교사! 지금 당장 선도부원들 소집해라. 구관 3층 물리실험실로 가서 불법 아지트를 즉각 철거하고 내부의 모든 집기를 폐기해! 저 새끼의 범죄 도구들을 싹 다 압수하란 말이다!”


장동식이 내지른 고함 소리가 학생부실 벽면에 부딪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물리실 내부의 프로파일링 화이트보드와 준영의 데이터 서버가 철거당하면 클리닉의 심장부가 파괴되는 꼴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바로 그 순간.


철컥.


학생부실의 무거운 철문이 활짝 열렸다. 굳게 닫혀 있던 공간을 깨뜨리고 들어선 인물은, 단정한 정장 베스트를 입은 전문상담교사 한소희였다. 그녀의 손에는 파란색 결재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한소희 교사는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카리스마를 풍기며 장동식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철거 지시, 당장 멈추시죠. 장동식 부장님.”


장동식이 눈살을 찌푸렸다.


“한소희 선생? 위클래스 상담교사가 학생부 행정 업무에 왜 끼어드는 겁니까? 지금 이 녀석은 야간 무단 침입 범죄자입니다.”


“범죄자라니요. 송현우 학생은 정식 승인을 받은 자율 동아리의 부장입니다.”


한소희 교사가 들고 있던 서류철을 장동식의 책상 위에 탁 내려놓았다. 서류철의 첫 장에는 명성고등학교 교장 신용남의 공식 직인이 붉고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것은 지난달 교장 선생님의 최종 결재가 완료된 ‘심리 탐구 동아리 인가증’입니다. 그리고 구관 3층 물리실험실은 이 동아리의 공식 부실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학칙 제21조 자율 동아리 활동 보장 조항에 의거하여, 동아리 부실 내부의 집기와 자료는 학생부의 임의 철거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무단 철거 시 사유재산 침해 및 직권남용으로 교육청 감사 대상이 됩니다.”


“뭐, 뭐라고요?”


장동식이 서류를 낚아채듯 펼쳐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인가증에 찍힌 교장의 직인과 날짜를 확인하고 격렬하게 흔들렸다. 퇴임 전 아무런 잡음도 만들고 싶지 않아 하던 교장 신용남의 약점을 정확히 공략해 받아낸 한소희 교사의 완벽한 행정적 방패막이였다.


“이건…… 절차상 하자가 있는 동아리입니다! 자율 동아리는 담당 지도교사가 있어야……”


“제가 그 심리 탐구부의 공식 지도교사입니다, 부장님.”


한소희 교사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그녀의 따뜻하지만 깊은 눈빛이 장동식의 탐욕스러운 안광을 정면으로 받아쳐 무력화시켰다.


“어젯밤 사건은 배강두 일당이 공식 동아리 부실을 무단으로 파손하고 침입해 동아리 부장을 특수 폭행하려 한 사건입니다. 사건의 본질을 왜곡해 피해 학생을 징계하려 하신다면, 저는 상담교사의 직권을 걸고 도교육청 인권조사관에게 정식 경위 조사를 청구하겠습니다. 부장님께서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장동식은 이빨을 갈았다. 한소희 교사가 들이민 법률적·행정적 장벽 앞에 그의 오만하던 기세가 단숨에 무력화되었다. 95%의 절대적 우위에 서서 현우를 퇴학시키려던 그의 올가미가, 한 교사의 ‘심리 탐구 동아리 인가증’이라는 합법적 방패에 막혀 완전히 찢겨 나간 것이다.


“……좋습니다.”


장동식이 억지로 분노를 억누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목소리는 사시나무 떨리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동아리 활동 공간인 것은 인정하지. 하지만 어젯밤 소란과 폭행 미수 건에 대해서는 정식 선도위원회를 열어 철저히 조사할 거다. 송현우, 너도 징계 대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야. 당장 나가봐.”


현우는 말없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의 엄지손가락 끝에 감긴 반창고 위로 붉은 피가 살짝 배어 나왔지만, 그의 입가에는 보이지 않는 승리의 미소가 스쳐 지나갔. 어른들의 비열한 행정적 폭력을 주먹이 아닌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완벽하게 받아쳐 낸 첫 번째 방어전의 완성이었다.


현우와 한소희 교사가 학생부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복도의 차가운 공기가 그들의 얼굴을 스쳤다. 한 교사는 현우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현우야, 당분간은 조심해야 해. 장동식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야.”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거점을 지켰습니다.”


현우는 차분하게 대답한 뒤, 본관 2층 복도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 시각, 텅 빈 학생부실 안.


장동식은 책상 위에 놓인 인가증을 찢어발길 듯 움켜쥐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분노로 인해 그의 안경이 코끝으로 흘러내렸다.


징지징—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장동식의 스마트폰이 요란한 진동음을 내며 울렸다. 발신자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장동식은 그 번호를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허리를 곧게 세우며 전화를 받았다. 명성재단 이사장의 아들이자 교내의 절대적 지배자인 김철수였다.


- 부장님. 어젯밤 일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습니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김철수의 목소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하고 맑았다. 고등학생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완벽하게 통제된 지배자의 음성이었다.


“철수야…… 그게, 한소희 교사가 그 음침한 새끼를 자율 동아리 부장으로 등록해 두는 바람에 임의 철거가 어렵게 되었다. 선도위 개최도 절차상 제동이 걸렸고……”


장동식은 땀을 흘리며 비굴하게 변명했다.


- 그렇습니까. 예상보다 배후의 방어막이 꼼꼼하군요. 하지만 행정의 허점은 언제나 존재하는 법입니다.


전화 너머로 짧은 침묵이 흐른 뒤, 김철수가 나직하게 지시를 내렸다.


- 조작하세요. 송현우의 출결 기록을. 무단결석 일수를 한계치까지 올리면, 선도위 없이도 직권 강제 전학 처분이 가능할 텐데요.


장동식의 눈이 번쩍 뜨였다. 교실 구석 자리에 앉아 무표정하게 태블릿을 두드리던 김철수의 차가운 안광이 장동식의 뇌리를 스쳤다. 현우의 숨통을 영구히 끊어놓을 더 거대하고 잔혹한 올가미가, 이제 막 작동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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