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의 은둔자와 절망의 노크
비가 유리창을 찢을 듯이 두들기는 밤이었다.
명성고등학교 구관 3층. 오래전 신관이 완공된 이후 이곳은 버려진 유령선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깨진 비커와 정체 모를 화학 약품 냄새, 그리고 눅눅한 먼지 냄새가 뒤섞인 폐쇄된 물리실험실 안쪽. 송현우는 어둠 속에 파묻힌 채 홀로 앉아 있었다.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운 낡은 명성고 교복, 창백하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낯빛, 그리고 눈을 가릴 정도로 길게 자란 앞머리. 현우는 세상과 자신 사이에 두꺼운 콘크리트 벽을 쳐둔 은둔자였다. 그의 손에는 때가 탄 가죽 다이어리가 들려 있었다. 손톱 끝으로 다이어리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꾹 짓누르는 것만이, 그의 심장 밑바닥에서 요동치는 기괴한 박동을 억누르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박동은 죄책감의 주파수였다.
2년 전 겨울 밤 10시 45분. 수신음과 함께 도착했던 동생 민우의 마지막 문자 메시지.
[형, 살려줘.]
당시 입시 공부에 미쳐 있던 현우는 그 짧은 단발성 비명을 가벼운 투정으로 치부하고 무시했다. 그리고 10분 뒤, 민우는 구관 옥상 철문 너머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으로 투신했다. 동생을 죽인 것은 괴물들이었지만, 그 방관의 방조제 역할을 한 것은 자신이었다. 그 지옥 같은 자책감이 현우를 이 음침한 구석방으로 밀어 넣어 봉인해 버렸다.
쿵! 쿵! 쿵!
갑작스러운 굉음이 철문을 흔들었다.
단순한 노크가 아니었다. 그것은 벼랑 끝에 몰린 짐승이 손톱으로 문을 긁어내리는 듯한, 처절하고 절박한 긁힘이었다. 현우의 손가락이 다이어리 모서리를 더 깊게 파고들었다. 숨이 턱 막히는 공황의 전조가 목구멍을 옥죄어 왔다.
"문... 문 좀 열어줘. 제발... 살려줘..."
갈라진 여학생의 목소리였다. 폭우 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그 기쁜 주파수는 현우의 뇌리에 박힌 동생의 마지막 목소리와 기괴할 정도로 똑같이 공명했다. 현우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철문 앞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고 어둠 속으로 몸을 더 숨겼다.
"돌아가. 여기는 아무도 없어."
현우의 목소리는 기계음처럼 차가웠고, 미동조차 없었다. 타인과의 관계를 거절하는 철벽의 방어 프레임이었다.
"제발... 제발 부탁이야... 오태식이... 오태식이가 내 사진을... 단톡방에 올리겠대. 내일 아침까지 안 오면... 전교생한테 다 뿌리겠대. 나보고 그냥 죽으래..."
문 너머의 여학생, 강민지는 거친 과호흡을 몰아쉬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녀의 숨소리는 들이쉬는 숨만 있고 내쉬는 숨이 없는, 전형적인 심리적 패닉 상태였다. 가해자가 쳐놓은 촘촘한 가스라이팅 그물망에 걸려 뇌가 마비된 '심리적 노예'의 비명.
현우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붉은 경고등이 켜졌다.
'또다시 시작되는 건가.'
민우가 죽기 직전 가졌던 그 생기 잃은 눈빛, 가해자의 손아귀에서 영혼까지 탈탈 털려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던 그 잔인한 심리적 지배망이 지금 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재현되고 있었다. 현우는 떨리는 손으로 품속의 모형 스프레이 경보기를 만지작거렸다. 이것을 터뜨려 그녀를 쫓아내야 한다고 이성은 속삭였다. 하지만 그의 본능은 이미 철문의 작은 틈새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나무 틈새로 보이는 강민지의 눈동자.
빛이 완전히 꺼진, 회색빛의 텅 빈 눈망울이었다. 스스로 죽음을 결심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완벽한 절망의 깊이. 그것을 본 순간, 현우의 심장 속에서 2년 동안 굳게 잠겨 있던 자물쇠가 툭 하고 깨져 나갔다.
철컥. 철컥.
녹슨 이중 자물쇠가 거친 마찰음을 내며 풀렸다. 현우는 문을 활짝 여는 대신, 틈새로 민지의 얇은 손목을 낚아채듯 잡아당겼다. 가녀린 몸이 빗물과 함께 물리실 내부의 어두운 진공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왔.
쾅!
현우는 문을 닫고 다시 자물쇠를 단단히 걸어 잠갔다. 물리실 내부에는 빗소리만이 둔탁하게 울려 퍼졌다. 민지는 바닥에 주저앉아 어깨를 덜덜 떨며 숨을 헐떡였다. 빗물에 젖은 교복 깃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목덜미는 극도의 긴장으로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현우는 책상 위의 양초에 불을 붙였다. 희미한 황색 불빛이 어둠을 가르고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다. 현우는 바닥에 주저앉은 민지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포커페이스였고, 차가운 벽과 같았다.
"살려달라고 했나?"
현우가 다이어리를 펼치며 펜을 쥐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정막을 깨뜨렸다.
"내가 너를 구해줄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 마. 난 경찰도 아니고, 네 담임도 아니야. 주먹을 써서 오태식을 패줄 수 있는 싸움꾼도 아니지."
민지가 고개를 들었다. 젖은 앞머리 사이로 절망 어린 눈동자가 현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소문 들었어. 여기서... 가해자들을 미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고..."
"그건 치료가 아니라 교정이야."
현우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우리는 주먹을 쓰지 않는다. 대신 상대의 언어 습관, 신체 틱, 행동 패턴의 빈틈을 찾아내서 지배 프레임을 완전히 해체할 뿐이야. 그러기 위해선 먼저 네가 내 규칙을 따라야 해."
현우는 다이어리 첫 장에 붉은 인주로 찍힌 경고 문구를 가리켰다.
"보안 유지의 절대 규칙.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담과 훈련 내용을 단 한 사람에게라도 발설하는 순간, 계약은 영구히 파기된다. 오태식의 보복이 두려워 비밀을 누설하는 순간, 너는 더 이상 내 보호를 받지 못해. 서명할 수 있나?"
민지는 마른침을 삼켰다. 현우의 창백한 얼굴과 흔들림 없는 차가운 눈빛은 학교의 그 어떤 교사보다도 무서웠지만, 동시에 그 어떤 어른보다도 단단한 방패막이처럼 느껴졌다. 민지는 떨리는 손으로 현우가 건넨 볼펜을 쥐고 다이어리 모퉁이에 자신의 이름을 꾹꾹 눌러 적었다.
사각, 사각.
서약이 완료되자 현우는 볼펜을 거두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거울 앞으로 민지를 천천히 인도했다. 희미한 촛불 불빛 아래, 거울 속에는 위축되어 어깨가 구부정하게 휘어지고 고개를 숙인 나약한 여고생의 실루엣이 비쳤.
현우는 민지의 뒤에 서서, 거울 속에 비친 그녀의 눈동자를 차갑게 응시했다. 그의 첫 번째 진단이자 질문이 민지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첫 번째 질문이지. 너를 괴롭히는 그 애의 목소리가 들릴 때, 너는 왜 고개를 숙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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