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천막촌
“세현 형님! 빨리요, 빨리!”
지하 제련소의 육중한 철문이 열리자마자 김수길이 비틀거리며 앞장섰다. 붉은 쇳물의 열기가 가득했던 지하와 달리, 지상으로 통하는 수직 통로는 얼음처럼 차가운 산성비와 매연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세현은 소매 안쪽에 숨겨둔 은빛 조율침의 서늘한 감촉을 느끼며 가파른 철제 계단을 뛰어올랐다. 가슴에 이식된 심장 보조기 ‘아포칼립스’는 최영감이 새로 입혀준 신성 저항 나노 합금 코팅 덕분에 이전과 달리 삐걱거리는 마찰음 없이 매끄럽게 박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련 과정에서 뿜어낸 열 감지 반응 때문에 교단의 순찰 드론들이 이 영역을 록온했다는 사실이 세현의 머릿속을 무겁게 짓눌렀. 시간이 없었다.
“태윤아, 적안의 무장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라.”
세현이 달리며 곁에서 호위하는 강태윤을 향해 나직하게 물었다. 태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빗속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로 신속하게 브리핑을 시작했다.
“적안, 본명은 알려지지 않은 D등급 이능력자입니다. 주 무기는 양손에 주입하는 초고열의 화염과 전신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신체 경화 오라입니다. 그의 부하들은 E등급 수준의 방화 대원들로, 교단의 하급 전술 규격에 맞춘 개조 화염 방사기와 중탄소 강철 파이프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군대식 분대 전술을 사용하므로 한 번에 포위당하면 까다롭습니다.”
“화염 방사기라…….”
세현의 왼쪽 눈에 장착된 황동빛 단안경 ‘모노클’이 산성 빗물 속에서 미세하게 주파수를 맞추며 웅웅거렸다.
지상으로 빠져나오자마자 그들을 맞이한 것은 밤하늘을 붉게 물들인 거대한 화염의 장막이었다. 제18 구역의 상징과도 같던 거대한 철교 아래, 가난한 피난민들이 억척스럽게 지어 올린 천막촌이 거대한 불길에 휩싸여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제발……!”
“이 더러운 하층민 쥐새끼들, 유령 놈이 어디 숨었는지 말하지 않으면 다음은 네놈들의 수명을 통째로 태워버리겠다!”
매캐한 연기 속에서 붉은색 가죽 코트를 걸친 사내가 쇠사슬에 묶인 노인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고 있었다. 양 눈에 기계 의안을 박아 핏빛 광채를 뿜어내는 사내, 로건의 충견이자 폭력배 보스인 ‘적안(붉은 눈)’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검은 방독면을 쓴 방화 부대원들이 화염 방사기의 밸브를 열며 무고한 천막들을 향해 불꽃을 폭사하고 있었다.
세현의 가슴 속에서 차가운 분노가 끓어올랐다. 다행히 모노클의 미세 파동 감지를 통해 여동생 서윤이가 자방대장 한상태와 대원들의 비호 아래 이미 지하 하수구 대피 통로로 안전하게 대피했음을 확인한 상태였다. 머릿속이 맑아졌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하나, 눈앞의 쓰레기들을 인과의 실선으로 옭아매는 것뿐이었다.
“태윤아, 인질부터 구한다. 그림자 보행으로 진입해라.”
“존명.”
태윤의 신형이 붉은 화염의 그림자 속으로 뱀처럼 스며들었다. 기척을 완전히 차단한 전직 암살자의 움직임은 빗소리와 불길의 소음 속에 완벽하게 묻혔다.
적안이 노인의 목에 주먹을 들이대며 불꽃을 일으키려던 찰나, 그의 등 뒤 그림자가 기괴하게 일렁였다.
*스윽—!*
태윤이 그림자 속에서 솟구쳐 오르며 초진동 대형 합금 단검을 휘둘렀다. 사슬을 고정하던 철제 고리가 단숨에 잘려 나가며 노인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태윤은 순식간에 노인의 덜덜 떨리는 몸을 낚아채 정면의 콘크리트 잔해 뒤로 신속하게 대피시켰다.
“어떤 쥐새끼가……! 감히 내 사냥감을 가로채!”
적안이 격분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양 눈 기계 의안이 무섭게 타오르며 전신에 붉은 화염 오라가 뿜어져 나왔.
태윤은 노인을 안전한 곳에 눕혀둔 뒤, 단검을 역으로 쥐고 적안의 목덜미를 향해 정면 돌격을 감행했다. 초진동 단검이 공기를 찢으며 적안의 가슴팍을 향해 쇄도했다.
*깡—! 콰아아앙!*
그러나 단검의 날이 적안의 피부에 닿는 순간, 쇠가 부딪히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적안의 신체 경화 오라가 태윤의 초진동 물리 타격을 완벽하게 튕겨낸 것이었다. 오히려 적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고열의 화염이 단검을 타고 태윤의 장갑을 태우려 들었다.
태윤은 급히 뒤로 공중회전을 하며 세현의 곁으로 착지했다. 그의 단검 날 끝이 미세하게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몸 전체가 강철처럼 굳어 있습니다. 제 물리적인 검격으로는 외벽을 뚫을 수 없습니다.”
“알고 있다. 저자의 살의가 내뿜는 물리적 충격은 애초에 직접 타격으로 깨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현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왼손은 바지 주머니 속에 넣어둔 은방울꽃 펜던트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머리를 맑게 유지해 주었지만, 아포칼립스가 방출하는 미세한 인과율 에너지의 흐름이 신경을 자극할 때마다 뇌리가 찌릿하게 아파왔다.
“유령 놈……! 기어코 기어 나왔구나!”
적안이 세현을 발견하고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손짓에 맞춰 방독면을 쓴 부하 6명이 화염 방사기를 치켜들며 세현과 태윤을 반원형으로 포위했다.
“전부 불태워라! 한 줌의 재도 남기지 마라!”
적안의 명령과 함께 부하들이 화염 방사기의 격발 트리거를 당기려 했다. 그들이 품은 잔인한 살의가 세현의 모노클 렌즈 너머로 선명한 핏빛 실선이 되어 관측되었다. 그들의 손가락 끝과 무기의 가스 밸브, 그리고 그들의 발목 좌표가 붉은 격자망 위에서 어지럽게 출렁였다.
세현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양손 끝에서 투명하고 핏빛으로 빛나는 미세한 실선들이 뿜어져 나가 공간을 엮기 시작했다.
‘인과의 실선 묶기(Causality Thread Binding).’
그가 1단계 각성 상태에서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실선의 한계는 정확히 12줄이었다. 단 한 줄의 오차도, 단 하나의 쓸데없는 낭비도 허용되지 않는 엄격한 수치적 제약. 세현의 머릿속에서 정교한 자멸의 연산 방정식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방화 대원 6명. 그들의 트리거를 당기는 물리적 원인(손가락의 압력)과, 그들의 발목이 지면을 지탱하는 무게 중심의 결과(물리적 지탱)를 서로 교차하여 엮는다.’
세현은 양손 가락을 바둑판을 조율하듯 정밀하게 움직였다.
*스스스슥—.*
보이지 않는 12줄의 투명한 실선들이 빗속을 뚫고 날아가 방화 대원들의 화염 방사기 격발 레버와 바로 옆 동료들의 발목을 삼중 격자로 옭아맸다.
“격발해라!”
방화 대원들이 일제히 손가락에 힘을 주어 트리거를 당겼다.
그 순간, 기괴한 기적이 일어났다.
그들이 트리거를 당기는 ‘원인’의 물리적 힘이 실선을 타고 옆 대원의 발목을 강하게 잡아당기는 ‘결과’로 즉각 전이되었다.
“어……? 어어?!”
“내 발목이 왜 이래!”
화염이 내뿜어지기도 전에, 대원들의 사지가 기괴하게 얽히며 서로의 다리를 잡아당겼다. 중심을 잃은 대원들이 사정없이 진흙탕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 과정에서 화염 방사기의 가스 호스가 서로 엉키고 밸브가 오작동하며 푸쉭거리는 가스 새는 소리만 허공에 흩어졌다. 단 한 발의 불꽃도 세현의 근처에 도달하지 못했다.
완벽한 영역적 방어이자 제압이었다. 단 12줄의 실선만으로 무장한 대부대의 전술적 움직임이 완벽하게 마비되었다.
하지만 대가를 치러야 했다. 과도한 공간 연산으로 인해 세현의 머릿속이 쪼개질 듯한 극심한 두통이 덮쳐왔다. 코끝에서 뜨거운 핏방울이 흘러내려 빗물과 함께 턱밑으로 떨어졌다. 아포칼립스 보조기가 가슴속에서 웅웅거리며 미세한 과열 증기를 내뿜었다. 세현은 이를 악물며 흐려지려는 정신을 붙잡았다.
“이 쓰레기 같은 놈들이…… 무슨 잔재주를 부린 거야!”
부하들이 기괴하게 얽혀 진흙탕을 구르는 모습을 본 적안의 두 눈 기계 의안이 광기 어린 붉은빛으로 폭발했다. 그는 더 이상 부하들의 화력 지원을 기다리지 않겠다는 듯, 자신의 양 주먹을 맞부딪쳤다.
*쾅—!*
그의 두 주먹에서 슬럼가의 빗물마저 순식간에 증발시켜 버릴 정도의 초고열 백색 화염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적안의 전신이 신체 경화 오라와 함께 붉은 불꽃으로 뒤덮였다.
“잔재주 따위, 내 무한한 화염으로 기계 심장째로 녹여주마!”
적안이 대지를 박차고 세현을 향해 정면으로 폭발적인 돌격을 감행했다. 그가 뿜어내는 엄청난 열기가 세현의 얼굴 가죽을 태울 듯이 뜨겁게 육박해 왔다. 세현의 가슴에 입혀진 신성 저항 합금 코팅막이 열기에 반응하며 치이익 소리와 함께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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