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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톱니바퀴들을 모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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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비가 피부를 찌르는 감각은 지독할 정도로 선명했다. 대기 중에 가득한 아황산가스와 녹슨 철가루가 빗물에 섞여 내리며 온 세상을 붉게 부식시키고 있었다. 제18 구역의 밤은 언제나처럼 차갑고 습했다.


강태윤은 신음 한 마디 흘리지 않고 민세현을 등에 업은 채 질주했다. 그의 발걸음이 진흙탕을 박찰 때마다 붉은 빗물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세현의 가슴에 박힌 기계 심장, ‘아포칼립스’ 보조기는 이미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쿨럭거리는 피스톤이 불규칙한 박동을 뿜어낼 때마다 세현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려 태윤의 어깨를 적셨다.


“조금만 버텨라, 세현. 거의 다 왔다.”


태윤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세현의 상처 동화 능력으로 가슴의 신성 독소와 치명상을 치유받은 덕분에 태윤의 신체는 최상의 컨디션을 회복하고 있었다. 전직 교단 암살자다운 기민한 움직임으로 그는 순찰조의 사각지대만을 골라 질주했다. 세현은 태윤의 어깨에 기댄 채, 왼손바닥 안의 은방울꽃 펜던트를 꽉 움켜쥐었다. 차가운 은제 금속의 감각과 희미한 은방울꽃 향기만이 그가 의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유일한 닻이었다.


그들이 도달한 곳은 제18 구역 외곽의 거대한 쓰레기 더미였다. 버려진 자동차와 고철 비행선들의 잔해가 산을 이루고 있는 황량한 대지. 바로 폐기물 처리장 관리인 황 씨, 황만길이 운영하는 사설 고물상이었다.


“누구냐!”


어둠 속에서 붉은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거구의 사내가 거대한 강철 파이프를 든 채 나타났다. 기름때와 고철 가루로 뒤덮인 가죽 조끼를 입은 사내, 황만길이었다. 그의 예리한 안광이 빗속을 꿰뚫었다.


“나다, 황 씨.”


태윤이 후드를 벗으며 기척을 드러냈다. 황만길은 태윤의 얼굴과 그가 업고 있는 세현을 확인하자마자 들고 있던 파이프를 내렸다. 그의 눈동자가 세현의 왼쪽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불규칙한 붉은 광채를 포착하는 순간, 거친 주름이 가득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런 제기랄, 진우 녀석의 꼬맹이가 왜 이 지경이 된 거야? 보조기가 완전히 망가지기 직전이잖아!”


황만길은 주저하지 않고 고물상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고철 분쇄기 장치로 달려갔다. 그가 분쇄기 측면의 녹슨 레버를 세 번 꺾자, 쿠구구궁하는 중저음의 진동과 함께 분쇄기의 바닥이 열리며 아래로 내려가는 비밀 엘리베이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빨리 타라! 지상의 열 감지 드론들이 냄새를 맡기 전에 내려가야 해!”


태윤은 세현을 부축해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육중한 철문이 닫히고 하강하기 시작하자, 지상의 산성비 소리는 차단되고 대신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와 유황 냄새가 코를 찔렀. 사방의 콘크리트 벽면에는 교단의 감시 전파를 차단하기 위한 조잡한 구리 코일들이 뱀처럼 얽혀 있었다.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정지하고 문이 열리자, 거대한 용광로가 붉은 쇳물을 토해내고 있는 지하 제련소가 나타났다. 그 열기 속에서 한쪽 눈에 커다란 상처가 있는 완고한 인상의 거구 노인이 석탄을 화덕에 밀어 넣고 있었다. 민진우의 먼 친척이자 고철 제련의 장인, 최영감이었다.


“최영감님, 세현이가 다쳤습니다.”


태윤이 세현을 낡은 철제 작업대 위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최영감은 들고 있던 삽을 던져두고 묵직한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그의 하나뿐인 눈동자가 세현의 가슴에 박힌 아포칼립스를 응시했다. 기어들이 완전히 어긋나 피스톤이 비정상적인 각도로 덜커덕거리고 있었고, 그 주변의 혈관들은 까맣게 괴사해 있었다.


“바보 같은 녀석…….”


최영감의 거친 목소리에 안타까움과 분노가 동시에 묻어났다.


“상처 동화를 또 쓴 게냐? 남의 목숨을 구하겠다고 네 심장을 제물로 바치는 짓은 그만두라고 진우가 그렇게 일렀거늘! 이 보조기는 기계가 아니라 네 생명선이란 말이다!”


“죄송합니다, 영감님……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세현이 갈라진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압박감이 전신을 짓눌렀다. 최영감은 혀를 차며 작업대 옆의 고철 상자를 뒤적였다.


“당장 외벽을 보강하지 않으면 다음 박동 때 코어가 터져 나갈 게다. 황 씨! 지난번에 교단 수송선 잔해에서 회수한 특수 장갑판 가져와!”


황만길이 구석의 이중 잠금 상자를 열고 은백색으로 희미하게 빛나는 금속 원석을 꺼내왔다. 교단의 군용 장갑판에서나 볼 수 있는 특수 금속, ‘신성 저항 나노 합금’이었다. 일반적인 강철은 세현의 체내에서 방출되는 불규칙한 인과율 에너지의 간섭을 버티지 못하고 순식간에 찢어지거나 녹아내리기 때문에, 오직 교단의 신성 무기 파동을 물리적으로 꺾어버리는 이 특수 합금만이 아포칼립스의 외벽을 지탱할 수 있었다.


최영감은 도가니에 나노 합금을 집어넣고 화력을 극대화했다. 용광로의 불꽃이 푸른빛을 띠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세현아, 잘 듣거늘.”


최영감은 달구어진 집게를 쥐며 세현을 엄하게 바라보았다.


“제련이란 단순히 철을 녹이는 것이 아니다. 만물에는 기결(氣結)이 있고, 인과의 흐름이 있지. 특히 이 신성 저항 합금은 미세한 결이 어긋나면 그 즉시 성질을 잃고 부서진다. 네 손끝의 감각을 이용해 쇳물 속에 섞인 불순물의 인과를 골라내야 해. 이것이 바로 내가 진우에게 가르쳤던 ‘고철 정밀 제련 규칙’이다.”


세현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모노클을 착용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무의식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직조공의 감각이 용광로 속에서 붉게 끓어오르는 쇳물의 미세한 에너지 실선들을 포착하기 시작했다.


쇳물 속에는 찌꺼기와 같은 검은색 인과의 실선들이 무질서하게 얽혀 있었고, 그것들이 합금 고유의 은빛 기결을 방해하고 있었다. 세현은 떨리는 오른손을 뻗어 손가락 끝을 미세하게 까딱였다.


*스스스슥—.*


세현의 손가락 끝에서 보이지 않는 투명한 인과의 실선들이 뿜어져 나와 도가니 속으로 스며들었다. 세현은 쇳물 속의 불순물들이 가진 물리적 궤적을 비틀어, 그것들이 스스로 도가니 표면으로 떠올라 타버리도록 유도했다. 최영감은 그 기적적인 광경을 보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불순물이 완벽하게 제거된 쇳물은 청아하고 은은한 백은빛 광채를 뿜어내며 완벽한 나노 합금 용액으로 거듭났다.


“지금이다!”


최영감은 제련된 고온의 나노 합금 액체를 세현의 가슴에 이식된 아포칼립스 보조기 외벽의 균열 부위에 정밀하게 도포하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극심한 열기와 함께 세현의 가슴에서 하얀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전신 세포가 타들어 가는 듯한 열화상 통증이 덮쳐왔지만, 세현은 은방울꽃 펜던트를 쥔 채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은백색의 나노 합금이 아포칼립스의 균열된 틈새로 부드럽게 스며들어 굳어지며, 기계의 마찰 진동을 완벽하게 흡수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세현은 최영감의 눈을 피해 도가니 구석에 남은 미세한 합금 용액의 인과를 손가락 끝으로 엮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이 특수 합금의 성질을 이용해 훗날 적들의 인과율을 원거리에서 고정할 수 있는 극미세한 ‘은빛 조율침’의 프로토타입 몇 개를 은밀하게 제련하여 코트 소매 속에 숨겨두었다.


마침내 아포칼립스의 불규칙한 박동음이 가라앉았다. 보조기는 안정적인 청색 증기를 내뿜으며 청아한 기계음을 내기 시작했다. 가슴 주변의 괴사 부위 통증도 기적처럼 진정되었다. 신성 공격에 대한 방어력이 3배 이상 증폭된 완벽한 보강이었다.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였다.


*위이이이잉—!*


제련소 천장에 설치된 구형 경보기가 격렬하게 회전하며 적색 경고등을 내뿜기 시작했다. 황만길이 황급히 모니터를 확인했다.


“제기랄! 특수 합금을 제련할 때 발생한 거대한 열 감지 반응 때문에 교단의 순찰 드론들이 이 주변 영역을 록온했어! 제련소의 대략적인 위치가 노출된 것 같다!”


태윤이 즉각 초진동 단검을 쥐며 세현의 앞을 막아섰다.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제련소를 가득 채웠다.


그 순간, 비밀 엘리베이터의 철문이 덜커덕거리며 거칠게 열렸다.


“헉…… 헉……! 세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


온통 검댕과 잿가루를 뒤집어쓴 소년이 숨을 헐떡이며 제련소 바닥으로 엎어졌다. 정보 조직 ‘그림자 쥐들’의 전령이자 세현의 충직한 심부름꾼, 김수길이었다. 그의 낡은 가죽 점퍼는 곳곳이 불에 타 구멍이 뚫려 있었고, 눈동자는 극도의 공포와 분노로 뒤흔들리고 있었다.


세현은 급히 수길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수길아, 무슨 일이야? 서윤이는? 주민들은 어떻게 되었어?”


김수길은 세현의 옷깃을 움켜쥔 채,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집행관 로건의 직속 부하…… 슬럼가 폭력배 보스인 ‘적안’의 방화 부대가 움직였습니다! 형님이 숨겨둔 천막촌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어요! 서윤 누님과 주민들이 있는 철교 밑 천막촌이…… 지금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순간, 세현의 왼쪽 눈에 착용된 모노클 너머로 저 멀리 천막촌 방향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빛 살의의 궤적들이 거대한 화염의 그물이 되어 하늘을 뒤덮는 것이 선명하게 관측되었다. 세현의 심장 보조기가 그의 끓어오르는 분노에 공명하며 무섭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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