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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멸의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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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가득 메운 산성비는 낡은 양철 지붕을 사정없이 짓밟으며 쉭쉭 소리를 냈다. 녹슨 사슬 거리의 썩은 공기 속에 섞인 유독한 빗물이 콘크리트 벽을 타고 붉은 녹물로 흘러내렸다.


지하실 정문을 지키던 세 명의 폭력배들의 시선이 일제히 골목 입구로 쏠렸다. 그들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창백하다 못해 유령처럼 투명한 안색을 한 청년, 민세현이었다. 그의 왼쪽 눈 위에 걸쳐진 황동빛 단안경, ‘모노클’이 어둠 속에서 핏빛으로 번뜩였다.


“어? 저 새끼는…… 그 집 지하실에 살던 약쟁이 고아 새끼잖아?”


가죽 재킷을 입은 사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낄낄거렸다. 그의 손에 들린 쇠파이프가 빗물에 젖어 번들거렸다.


“심장이 망가져서 오늘내일한다더니, 제 발로 무덤을 찾아왔네. 형님들이 안에서 계집년을 끌어내기도 전에 기어 나오다니.”


세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가슴에 주입된 ‘백현우의 마취 비약’은 여전히 그의 전신 감각을 납빛으로 무겁게 마비시키고 있었다. 뺨을 때리는 산성비의 차가움도, 뼈마디를 파고드는 한기도 그저 먼 차원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입안에서는 쓴 모래를 씹는 듯한 버석거림만이 맴돌았다.


하지만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몸의 붕괴가 멈춘 것은 아니었다. 가슴속 기계 심장, ‘아포칼립스’ 보조기가 가쁜 호흡을 따라 불규칙하게 덜커덕거렸다. 기어들이 비정상적으로 마찰하며 내뿜는 미세한 열기가 가슴뼈 안쪽에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세현은 억지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백 노인에게 전수받은 ‘심장 보조기 마모 억제술’을 펼쳐 들숨과 날숨의 박자를 아포칼립스의 피스톤 운동 주기와 일치시켰다.


*스우우, 하아…….*


숨결이 고르게 정돈되자 과열되던 보조기가 간신히 진정되며 차가운 증기를 희미하게 내뿜었다.


[잔여 수명: 01:42:05]


시간이 없었다. 단 1초가 아쉬운 생사의 경계선이었다.


“야, 저 새끼 눈깔 봐라. 단안경인지 뭔지 기괴한 걸 끼고 꼬라보는데?”


식칼을 든 폭력배가 침을 뱉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 순간, 세현의 모노클 렌즈 너머로 기이한 변화가 일어났다. 사내들의 손끝과 무기에서 시작된 붉은 기류들이 팽팽한 실선이 되어 세현의 가슴을 향해 록온(Lock-on)되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세현을 찢어발기겠다는 탐욕스러운 ‘살의의 궤적’이었다.


세현은 오른손 손가락을 미세하게 까딱였다. 이미 골목길 사각지대와 적들의 사지 사이에 촘촘하게 전개해 둔 투명한 인과의 실선들이 그의 손가락 움직임에 동조하여 미세하게 진동했다.


‘인과적 자멸 유도 공식, 전개.’


세현의 머릿속에서 정교한 수학 공식처럼 인과의 연결고리들이 재배치되기 시작했다. 적들이 공격을 가하는 ‘원인’과 그 공격이 도달할 ‘결과’의 좌표를 비트는 조율이었다.


“뒈져라, 약쟁이 새끼!”


쇠파이프를 든 사내가 기합을 지르며 세현을 향해 돌격했다. 그의 주먹과 어깨에 실린 묵직한 물리적 힘이 세현의 머리를 겨냥했다.


그와 동시에 세현은 손가락 끝을 가볍게 튕겼다.


‘무기 작동 인과 왜곡(Weapon Malfunction Causal Distortion).’


사내가 쇠파이프를 내리치는 순간, 허공에 쳐진 보이지 않는 실선 격자가 그 물리력의 벡터를 강제로 비틀어버렸다. 사내의 발목에 묶여 있던 실선이 반대편 파이프라인의 고정 닻과 팽팽하게 맞물렸다.


“어……?!”


달려들던 사내의 발목이 허공에서 기이하게 걸려 꺾였다. 그가 내리치려던 쇠파이프의 회전 관성이 갈 곳을 잃고 비틀거리며 바로 옆에 서 있던 식칼을 든 동료의 목덜미를 향해 무섭게 휘어졌다.


*깡—! 콰드득!*


“끄아아악!”


식칼을 들고 서 있던 폭력배는 방어할 틈도 없이 동료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목뼈가 정통으로 강타당했다. 뼈가 바스러지는 끔찍한 파쇄음과 함께 식칼을 든 사내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이, 이게 무슨……! 야! 너 미쳤어? 왜 나를 쳐!”


쇠파이프를 휘두른 사내가 당황하여 소리쳤지만, 그의 발목은 이미 실선에 옭아매여 중심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그가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찰나, 세현은 다시 한번 손가락을 가볍게 내리눌렀다.


남아 있던 세 번째 부하가 권총을 꺼내 들고 세현을 조준하려던 순간이었다.


철컥—!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물리적 원인이 발동했다. 하지만 총알이 앞으로 날아가는 결과는 도출되지 않았다. 세현이 자아낸 실선이 권총의 약실 내부 기어와 격발 장치의 인과를 비틀어놓았기 때문이었다.


*퍼어엉!*


“아아아악! 내 손! 내 손이!”


약실 내부에서 화약이 역폭발했다. 권총의 슬라이드가 뒤로 튀어나오며 사내의 오른쪽 손목을 완전히 찢어발겼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고,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중심을 잃고 쓰러지던 쇠파이프의 사내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동료의 식칼 위로 정확히 가슴을 처박았다.


푸학!


“꺼흑…… 윽……”


자신의 무게에 짓눌려 가슴에 식칼이 깊숙이 박힌 사내가 피 거품을 물며 경련했다.


단 5초.


세현은 손가락 몇 번을 가볍게 흔들었을 뿐이었다. 직접적인 타격은 단 한 번도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하실 정문을 지키던 세 명의 무장 폭력배들은 이미 자신들이 휘두른 무기와 서로의 오작동에 의해 피바다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쾅—!*


그때, 지하실 정문이 거칠게 부서지며 한 거구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한쪽 이마에 깊은 도끼 자국 흉터가 새겨진 거구의 사내, 도끼 오철두였다. 그의 양손에는 이능 에너지를 받아 붉게 달아오르는 대형 쌍도끼가 들려 있었다.


“어떤 쥐새끼가 감히 내 구역에서 깽판을 치는……!”


오철두는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부하들을 바라보더니, 이내 골목 입구에 서 있는 세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붉게 충혈된 눈동자에 살기가 폭발하듯 번뜩였다.


“민세현…… 너였냐? 기계 심장이 망가져서 죽어가는 약쟁이 새끼인 줄 알았더니, 쥐새끼치고는 제법 쓸만한 잔재주를 부렸군.”


오철두는 거대한 쌍도끼를 서로 맞부딪쳤다. *깡!* 하는 쇳소리와 함께 붉은 불꽃이 산성비 속에서 튀었다.


“배두식 그 사제 놈이 갑자기 사라져서 골치 아픈데, 이딴 약쟁이 고아 새끼까지 설쳐? 도대체 이 구역 치권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교단 집행관들에게 바치는 수명 상납금이 얼마인데, 이런 쓰레기들이 자꾸 기어 나오는 거지?”


오철두의 거친 대사 속에서 세현은 중요한 단서를 포착했다. 이 사채업자 보스가 교단의 하급 집행관들과 뇌물 및 수명 상납으로 단단히 얽혀 있다는 사실을. 결국 이 자를 처단하는 것은 교단 제18지부의 수장인 로건의 신경을 건드리는 필연적인 도화선이 될 터였다.


하지만 세현에게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지하실 안쪽에는 서윤이가 누워 있었다.


“내 동생에게서 손 떼.”


세현의 목소리는 산성비 소리보다 더 차갑고 가라앉아 있었다.


“하하하! 손을 떼라고? 그 계집년의 수명은 이미 상층부 수명 공장에 선금으로 팔아넘겼다! 너 같은 약쟁이의 기계 심장도 적출해서 암시장에 팔면 제법 돈이 되겠지!”


오철두가 포효하며 이능력을 활성화했다. 그의 거구의 신체가 순식간에 두 배로 팽창하며 근육이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D등급 신체 거대화 및 금속 강화 이능.


그가 발을 내딛자 낡은 아스팔트 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오철두는 대형 쌍도끼를 치켜들고 세현을 향해 폭풍처럼 돌격했다.


모노클을 통해 바라본 오철두의 살의는 이전의 부하들과는 궤가 달랐다. 거대하고 팽팽한 붉은 쇠사슬 같은 살의의 궤적이 세현의 머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꽂히고 있었다.


‘살의 전이(Killing Intent Transfer), 조율 시작.’


세현은 심장의 아포칼립스 보조기를 억누르며 온 신경을 손가락 끝으로 집중했다. 마취 비약의 부작용으로 감각이 무뎌진 손가락 끝을 제어하는 것은 뇌 신경에 극심한 통증을 유발했다.


*콰과광!*


오철두가 휘두른 첫 번째 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세현은 인과의 실선 격자를 이용해 도끼날의 타격 경로를 아주 미세하게 옆으로 비틀어 흘려보냈다.


도끼날이 시계탑 입구의 콘크리트 벽면을 강타하며 엄청난 돌가루가 튀었다.


“이 쥐새끼가 어디서 잔재주를!”


오철두는 곧바로 두 번째 쌍도끼를 가로로 크게 휘둘렀다. 이번에는 피할 공간이 없었다. 골목길의 좁은 벽면이 세현의 퇴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흘려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철두의 완력과 살의가 너무 강해 아포칼립스 보조기가 버티지 못한다.’


실제로 가슴속 아포칼립스 코어의 피스톤이 과열되며 붉은 증기가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기계적인 과부하가 걸리고 있었다.


세현은 결단을 내렸다. 피하는 대신, 적의 공격력 자체를 적 본인에게로 되돌려 꽂아 넣는 ‘인과적 자멸 유도 공식’의 최종 단계를 실행하기로 했다.


세현은 손가락 끝을 튕겨, 오철두가 휘두르는 쌍도끼의 날과 오철두 자신의 거대한 흉부 좌표를 투명한 실선으로 묶어버렸다.


“뒈져라!”


오철두가 세현의 머리를 향해 필살의 일격으로 쌍도끼를 내리찍었다. 강철을 두부처럼 자를 수 있는 무지막지한 파괴력이 세현의 두상 바로 위까지 육박했다.


그 찰나의 순간, 세현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마음속으로 공식을 완성했다.


‘살의 전이, 결과의 좌표 재배치.’


도끼날이 세현의 이마 바로 앞 1센티미터 허공에 닿는 순간, 팽팽하게 당겨진 은빛 실선들이 기괴한 고음을 내며 진동했다.


*스우우웅—!*


물리 법칙을 비웃는 기이한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오철두가 아래로 내리치던 도끼날의 엄청난 운동 에너지와 파괴 의지가 실선 격자에 부딪혀 완전히 반사되었다.


“어……? 으어억?!”


오철두의 거구의 팔이 강제적인 인과의 힘에 이끌려 기괴한 방향으로 꺾였다. 그가 내리치려던 쌍도끼의 궤적이 공중에서 180도 뒤틀리며, 오철두 자신의 흉부를 향해 무섭게 역류했다.


‘살의의 보존 법칙’에 따라, 그가 가한 파괴적인 힘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전달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조율사 세현이 지정한 타겟은 오철두 자신이었다.


*콰드득—! 쩍!*


“꺼어어억!”


오철두가 휘두른 대형 쌍도끼가 그의 거대화된 강철 가슴팍을 정통으로 내리찍었다. 뼈와 근육이 찢어발겨지는 소리와 함께, 오철두의 가슴뼈가 좌우로 완벽하게 쪼개졌다.


붉게 달아오르던 쌍도끼날이 그의 심장 부근에 깊숙이 박히며 엄청난 양의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하…… 하윽…… 어떻게…… 내가…… 내 무기에……”


오철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가슴에 박힌 도끼자루를 쥐려 했지만, 이미 사지의 신경이 끊어진 상태였다. 그의 거구의 신체가 서서히 원래 크기로 쪼그라들며 빗물이 고인 흙바닥 위로 무겁게 쓰러졌다.


*쿵.*


사채업자 보스 도끼 오철두의 숨통이 완전히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세현은 가슴을 움켜쥐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치이이익—!*


아포칼립스 보조기가 과열을 이기지 못하고 붉은 증기를 폭발적으로 토해냈다. 왼쪽 가슴에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열화상 통증이 마취 비약을 뚫고 미세하게 새어 나왔다. 세현은 억지로 기침을 토해냈다. 입가로 흘러내린 검은 피가 산성비에 씻겨 내려갔다.


그럼에도 세현의 눈동자는 차갑게 빛났다.


그는 쓰러진 오철두의 시체로 다가갔다. 사내의 품을 뒤적이자, 가죽 안주머니에서 영롱한 붉은빛을 내뿜는 소형 플라스틱 칩들이 만져졌다.


[수명 칩 24시간 권] 세 장이었다.


“세 장…… 사흘 분량인가.”


세현은 칩들을 움켜쥐었다. 이것이 있으면 서윤이의 인큐베이터 전력을 사흘 동안 더 가동할 수 있었고, 자신의 심장 보조기도 임시로 충전할 수 있었다. 지독한 착취의 사슬 속에서 획득한, 피 묻은 전리품이자 생존의 자원이었다.


세현이 수명 칩들을 주머니에 넣고 서윤이가 있는 지하실 문을 향해 발을 내딛으려던 찰나였다.


빗소리가 갑자기 멀어지는 듯한 기묘한 침묵이 골목길을 지배했다.


골목길 끝자락, 부서진 콘크리트 장벽의 짙은 그림자 속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짧은 흑발에 날카로운 턱선을 지닌 20대 중반의 청년. 온몸에 검은색 교단 암살 슈트 자국과 수많은 전투 흉터가 가득한 사내, 강태윤이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세현의 모노클 렌즈가 비정상적으로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사내의 손끝에 쥐어진 초진동 대형 합금 단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의는, 방금 전 소멸시킨 오철두 일당과는 격이 달랐다.


그것은 소리 없이 다가오는 거대한 심연의 폭풍과도 같은, 절대적인 묵직함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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