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진료소
지독한 어둠이었다. 감각이 마비된 심연 속에서 세현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오직 왼쪽 가슴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파열 통증뿐이었다. 타오르는 철을 혈관에 주입한 것처럼 뜨거운 열화상이 전신을 덮쳤고, 가슴팍에 이식된 심장 보조기 ‘아포칼립스’는 제어력을 잃고 폭주하는 피스톤처럼 불규칙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라, 세현아. 거의 다 왔다……!”
귀를 먹먹하게 채우는 산성비 소리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옆집 이웃이자 침술사인 임정희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빗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의식을 잃은 세현을 등에 업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에서는 늘 그렇듯 낡은 약초 냄새와 미세한 침통의 구리 향이 났다.
철컥, 쿠구구궁—.
무겁고 녹슨 강철 문이 열리는 기괴한 마찰음이 들렸다. 제18 구역의 버려진 지하 배수로 깊은 곳, 오염된 안개와 산성비의 독소를 피해 숨겨진 그곳에 슬럼가의 유일한 불법 진료소이자 안식처인 ‘백 노인의 지하 진료소’가 있었다. 진료소 내부는 낡은 소독약 냄새와 부식된 철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이 미친 녀석이 결국 대형 사고를 쳤군!”
백발을 헝클어뜨린 채 한쪽 다리를 약간 저는 노인, 백현우가 진료소 입구로 급히 걸어 나오며 혀를 찼다. 그의 주름진 얼굴에는 평소의 괴팍함 대신 숨길 수 없는 당혹감과 경악이 서려 있었다.
“정희야, 어서 수술대에 눕혀라! 그리고 당장 지하 진료소의 납 차단 벽을 가동해! 이 녀석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가 벌써 슬럼가 상부의 교단 스캐너에 잡혔을지도 모른다!”
임정희가 다급히 벽면의 레버를 당기자, 쿵 하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진료소 외벽을 감싸고 있던 특수 차폐막이 내려앉았다. 외부의 그 어떤 열화상이나 전자기 신호도 투과할 수 없는 철저한 방어벽이었다.
세현은 녹슨 철제 수술대 위에 눕혀졌다. 백 노인은 세현의 낡은 회색 후드 코트를 거칠게 찢어발겼다. 세현의 왼쪽 가슴에 박힌 검고 투박한 기계 장치, ‘아포칼립스’ 보조기가 붉은 증기를 폭발적으로 내뿜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장치의 강철 외벽에는 미세한 균열들이 거미줄처럼 갈라져 있었고, 그 틈새로 불규칙한 붉은빛이 새어 나왔다.
“기어들이 완전히 어긋났어. 피스톤 마찰열 때문에 심장 주변 세포들이 까맣게 괴사하기 시작했군.”
백 노인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정밀 수술용 메스와 봉합 침을 집어 들었다. 그는 먼저 세현의 찢어진 가슴 가죽을 봉합하려 했다. 하지만 메스가 세현의 피부에 닿는 순간, 파열된 아포칼립스에서 방출된 잔여 인과 에너지가 파란 스파크를 일으키며 폭발했다.
치이익—!
“으악!”
백 노인이 비명을 지르며 메스를 떨어뜨렸다. 단단한 의료용 강철 메스는 이능 에너지의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촛농처럼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반적인 의료 도구로는 세현의 몸에 손을 댈 수조차 없었다.
“제기랄, 이놈의 이질적인 에너지가 기어코 쇠붙이까지 녹여 먹는구나! 정희야, 내 개인 보관함에서 ‘백현우의 마취 비약’을 가져와라! 어서!”
임정희가 구석의 철제 보관함을 열고 암갈색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꺼내 백 노인에게 건넸다. 그것은 백 노인이 슬럼가 외곽 무법지대에서 자라는 변종 독초들을 정밀 배합해 만든 초강력 신경 마취제였다. 중독성이 극도로 강해 일반인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지금의 세현에게는 심장의 파열 통증을 억누를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백 노인은 주저하지 않고 마취 비약을 특수 주사기에 옮겨 담아 세현의 심장 보조기 바로 옆, 가장 검게 괴사한 혈관 부위에 직접 주입했다.
푸쉭—!
비약이 체내로 스며드는 순간, 세현의 몸이 활처럼 팽팽하게 꺾였다가 이내 힘없이 수술대 위로 가라앉았다. 머릿속을 찢어발기던 불타는 통증이 순간적으로 차갑게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전신의 감각이 급격히 무뎌졌고, 혀끝에서부터 쓴 모래를 씹는 듯한 지독한 미각 상실의 감각이 퍼져나갔다. 하지만 그 덕분에 폭주하던 심장의 발작은 강제로 멈추었다.
백 노인은 서둘러 땜질용 도구를 집어 들었다. 그는 납땜 인두와 특수 전도성 금속 침을 사용해 아포칼립스의 깨진 톱니바퀴들을 임시로 맞물리게 고정하고, 균열이 간 외벽을 구리 합금으로 덧대어 땜질하기 시작했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백 노인은 쓰러진 세현의 귀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세현아, 내 목소리가 들리느냐? 숨을 깊게 들이쉬고 가슴의 기계 박동에 네 호흡을 맞춰라. 피스톤의 마찰을 네 의지로 억눌러야 해. ‘심장 보조기 마모 억제술’을 잊지 마라.”
세현은 희미한 의식 속에서 백 노인의 지시에 따라 호흡을 가다듬었다. 들숨과 날숨을 극도로 일정하게 쪼개어 가슴속 아포칼립스의 피스톤 운동과 동조시켰다. 웅웅거리던 기계의 마찰음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붉은 증기의 방출도 멈추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세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진료소 천장의 먼지 쌓인 주황색 전구가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가슴의 통증은 마취 비약의 약효 덕분에 둔탁한 묵직함으로 변해 있었지만, 몸을 움직이려 하자 뼛마디가 삐걱거렸다.
“정신이 드느냐?”
수술대 옆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백 노인이 텁텁한 연기를 내뿜으며 세현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안도감과 함께 깊은 우려가 가득 차 있었다.
“서, 서윤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세현이 갈라진 목소리로 가장 먼저 동생의 안부를 물었다. 목구멍에서 쇠 냄새가 섞인 핏물이 울컥 넘어왔지만, 세현은 억지로 삼켜냈다.
“걱정 마라. 정희가 네 녀석의 가옥으로 돌아가서 서윤이의 인큐베이터를 지키고 있다. 배두식이라는 그 더러운 징수원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으니, 당분간은 그쪽으로 교단 놈들이 들이닥치지는 않을 게다. 하지만……”
백 노인은 담배꽁초를 녹슨 재떨이에 비벼 끄며, 진료소 구석의 철제 서랍장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 서랍장 깊은 곳에는 백 노인이 18년 전 통곡의 벽 쓰레기 더미에서 가슴이 파열된 아기 세현을 발견했을 때 기록한 낡은 일지가 숨겨져 있었다. 노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그는 이내 표정을 굳히며 세현에게 바짝 다가앉았다.
“너, 자신이 방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는 있느냐? 배두식을 소멸시킬 때 네 가슴의 아포칼립스가 방출한 주파수 말이다.”
세현은 묵묵히 가슴의 기계를 내려다보았다. 땜질 자국이 흉측하게 남은 아포칼립스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 주파수는 교단이 관리하는 일반적인 하층민의 생체 신호가 아니다. 그건…… 아주 오래전, 존재해서는 안 될 고대의 형태를 띤 특이 주파수야. 교단의 상위 추적 네트워크가 이 슬럼가를 한 번만 제대로 훑어도 네 존재는 즉시 발각된다. 배두식의 소멸 현장에 남겨진 인과의 흔적도 시간문제일 뿐이야.”
백 노인의 경고는 차갑고 무거웠다. 세현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동생을 살리기 위해 본능적으로 인과를 조율했지만, 그 대가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냥감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 내 땜질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다음번에 네가 그 해괴한 ‘조율’인지 뭔지를 한 번만 더 쓰면, 아포칼립스는 내부에서부터 완전히 폭발해 네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게다. 이걸 근본적으로 수리하려면 슬럼가 고철 따위론 안 돼.”
“그럼 무엇이 필요합니까?”
“암시장에서만 은밀히 거래되는 교단 규격의 고밀도 배터리와, 신성의 빛을 물리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특수 나노 합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들은 일반적인 수명 칩 몇 장으론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극희귀 자재들이지.”
세현은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힘을 얻었으나, 그 힘을 유지하기 위해 더 큰 제약과 결핍이 그를 옭아매고 있었다. 수명이 곧 권력이자 화폐인 이 디스토피아에서, 그는 더 강력한 자원을 쟁탈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백 노인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 쌓인 선반 위에서 낡은 가죽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는 가방 안에서 가죽 끈이 달린 묵직하고 정교한 황동빛 단안경을 꺼내 세현에게 내밀었다.
“이걸 가져가거라.”
“이것은……?”
“내가 과거 교단 연구원 시절에 수사관들의 분석 장비를 훔쳐 슬럼가의 폐부품들과 결합해 개조한 단안경, ‘모노클’이다. 네가 가진 그 기이한 이능력은 적들의 움직임을 미리 읽지 못하면 무용지물이지. 이 모노클을 왼쪽 눈에 착용하고 미세하게 마력을 주입해 봐라.”
세현은 백 노인에게서 모노클을 건네받았다. 차가운 황동의 감촉과 함께 가죽 끈의 낡은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세현이 모노클을 왼쪽 눈에 대고 가슴의 아포칼립스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에너지를 렌즈로 흘려보냈다.
웅—!
순간, 세현의 왼쪽 시야가 완벽하게 뒤틀렸다.
진료소의 어두운 풍경 위로 몽환적이고 정교한 격자무늬가 겹쳐졌다. 백 노인의 머리 위를 바라보자, 그가 가진 잔여 수명 수치가 선명한 녹색 숫자로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진료소 바닥과 벽면 구석구석을 향해 보이지 않는 얇은 핏빛 실선들이 궤적을 그리며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상 만물이 맺고 있는 인과의 실선들이었다.
“대단하군…….”
세현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모노클을 통하자, 적들이 품은 아주 미세한 악의나 살의조차 핏빛 실선으로 시각화되어 완벽한 회피 동선을 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단안경이야말로 직접적인 공격력이 전무한 세현이 인과의 덫을 놓기 위해 필요한 가장 완벽한 지적 무기였다.
“그 모노클을 유용하게 써라. 하지만 명심해라. 장시간 사용하면 네 뇌 신경에 과부하가 걸려 극심한 편두통이 올 것이고, 심하면 어제의 기억 일부를 잃는 단기 기억 상실증이 누적될 게다. 세상에 대가 없는 힘은 없으니까.”
백 노인이 경고하며 세현의 어깨를 툭툭 쳤다. 세현은 모노클을 고정하고 천천히 수술대에서 내려와 발을 지면에 디뎠다. 몸은 무거웠지만, 새로운 무기를 얻은 기대감이 가슴속 아포칼립스를 미세하게 박동시켰다.
바로 그때였다.
지하 진료소 구석에 놓여 있던 백 노인의 구형 사설 무전기가 치직거리는 거친 전파음과 함께 기괴한 소음을 내뿜기 시작했다.
- 치지직…… 백 노인님! 들리십니까?! 큰일 났습니다!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슬럼가의 소년 좀도둑이자 세현의 집 주변에서 망을 보던 진수였다. 그의 목소리는 극도의 공포와 절박함으로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 도끼……! 사채업자 보스 도끼 오철두 패거리가 무장한 부하들을 이끌고 세현이 형 집으로 가고 있어요! 배두식이 사라진 걸 틈타서 서윤이를 납치해 수명 추출 공장에 노예로 넘기려는 것 같습니다! 어서…… 어서 피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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