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짜인 실선
배두식의 손가락이 플러그를 완전히 당기려던 찰나, 지하실의 모든 공기가 일시에 얼어붙었다.
“죽어라, 이 쓸모없는 병신 년.”
배두식의 입가에 걸린 비열한 미소와 탐욕스러운 안광이 서윤의 창백한 얼굴 위로 비겁하게 일렁였다. 굵은 전력선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인큐베이터의 녹색 전원 등이 위태롭게 깜빡였다. 저 플러그가 완전히 빠지는 순간, 호흡기는 멈출 것이고 내 동생은 단 1초도 버티지 못하고 즉사할 터였다.
세현의 등 뒤를 짓누르고 있던 경비병들의 무거운 군화 굽이 그의 어깨뼈를 사정없이 짓뭉갰다. 옆구리를 강타당한 통증에 숨이 턱 막혔고, 가슴 속 기계 심장 보조기 ‘아포칼립스’는 내부 기어가 완전히 맞물려 부서지는 듯한 굉음을 내며 뜨거운 붉은 증기를 폭발적으로 뿜어냈다.
‘안 돼…….’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이성이 파괴되는 소리이자, 1,0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태초의 섭리가 깨어나는 신호였다. 하층민의 생명을 오직 세금의 담보이자 기득권의 소모품으로만 여기는 교단의 저 악랄한 지배 체제에 대한 맹목적인 적개심이 세현의 영혼 밑바닥에서부터 불꽃이 되어 치솟았다.
그 순간, 세현의 두 눈동자가 기이한 핏빛으로 붉게 충혈되며 우주 만물의 보이지 않는 기결을 관측하기 시작했다.
세현의 양손 손가락 끝에서 뿜어져 나온 투명한 핏빛 실선들이 허공을 가르며 전개되었다. 머리카락보다 얇고 미세하게 고동치는 핏빛 선들이 지하실 내부의 어둠을 촘촘한 격자 모양으로 엮어갔다. 경비병들은 갑자기 자신들의 몸뚱이가 무형의 그물망에 걸려 굳어버린 것을 느끼고 당황하여 비명을 질렀다.
“어, 어어? 몸이 왜 안 움직여?!”
하지만 세현의 시선은 오직 배두식만을 향하고 있었다.
모노클도 없는 맨눈이었지만, 지금 세현의 눈에는 배두식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파괴 의지, 즉 ‘살의(殺意)’가 선명한 붉은색 쇠사슬이 되어 세현 자신의 가슴과 서윤의 인큐베이터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살의의 보존 법칙.’
적이 가하는 모든 살의와 파괴적인 타격은 우주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결과를 낳아야만 한다. 세현은 그 절대적인 인과의 법칙을 본능적으로 직관했다. 그는 바닥을 기던 손가락 끝을 가볍게 튕겼다.
스스슥—!
허공을 맴돌던 투명한 핏빛 실선들이 순식간에 날아가 배두식의 벨트에 장착된 수명 강탈기 ‘드레인 버클’과 그의 가슴팍에 위치한 심장 좌표를 촘촘하게 연결했다. 배두식이 세현과 서윤을 죽이려 품은 절대적인 살의와 물리적 힘이 실선이라는 도화선을 타고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이 쓰레기 자식이……!”
배두식이 기괴한 진동을 느끼고 비명을 지르며 억지로 전력 플러그를 당기려 했다. 하지만 그가 플러그를 뽑으려 가한 물리적 압력과 파괴 의지의 인과가 실선 격자를 지나는 순간, 기묘하게 왜곡되어 방향을 급전환했다.
위잉—! 콰과광!
배두식의 벨트에 채워져 있던 수명 강탈기 ‘드레인 버클’이 비정상적인 전자기 굉음을 내며 시동을 걸었다. 장치 끝에 달린 나노 흡수 바늘이 서윤을 향하는 대신, 인과의 왜곡에 의해 배두식 자신의 가슴팍을 향해 꺾여 들어갔다.
“어……? 어어어?! 왜 이 기계가 나한테……!”
배두식의 눈동자가 공포로 찢어질 듯 커졌다.
드레인 버클의 흡수 경로가 완벽히 역류하기 시작했다. 장치는 배두식이 세현을 죽이려 가했던 살의의 총량만큼, 배두식 자신의 생명 에너지를 역으로 사정없이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붉은 실선을 타고 배두식의 체내에서 청아하고 푸른 수명 정수가 강제로 뜯겨 나와 드레인 버클의 코어로 흡수되었다.
“아악! 아아아악! 내 수명! 내 수명이 빠져나간다! 놔라! 이거 놓으란 말이다!”
배두식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었지만, 한번 짜인 인과의 사슬은 인간의 힘으로 끊을 수 없었다.
그의 창백하던 피부가 실시간으로 쭈글쭈글하게 주름지기 시작했다. 검던 머리칼이 순식간에 눈처럼 하얗게 세어버렸고, 튼튼하던 이빨이 잇몸에서 후두둑 떨어져 지하실 바닥을 굴렀. 척추가 꼽추처럼 굽어지며 뼈 마디마디가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바스러지는 불쾌한 파열음이 지하실을 가득 채웠다.
단 5초.
그 짧은 시간 동안 배두식은 수십 년의 세월을 강제로 건너뛰어 늙어갔다. 그의 목소리는 이내 바람 빠진 해골의 신음으로 변해갔다.
“살려…… 줘…… 살려……”
하지만 인과는 자비가 없었다.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생명력까지 드레인 버클로 빨려 들어간 순간, 배두식의 육체는 완전히 건조한 회색 먼지로 변해버렸다.
바스스스—.
그가 서 있던 자리에는 그가 입고 있던 교단 제복만이 껍데기처럼 바닥으로 툭 떨어졌고, 그 안에서 흘러나온 회색 먼지들이 지하실의 축축한 산성비 바람에 쓸려 허무하게 흩어졌다. 완벽한 소멸이었다.
세현을 누르고 있던 두 명의 경비병은 눈앞에서 벌어진 이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초자연적 학살극에 넋을 잃었다. 자신들의 상관이 단 몇 초 만에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본 그들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괴, 괴물이다! 이 자식 악마야!”
경비병들은 총마저 바닥에 내팽개친 채, 부서진 문짝 너머로 허겁지겁 도망쳐 달아났다. 계단을 올라가는 그들의 다급한 군화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세현은 그들을 쫓지 않았다. 아니, 쫓을 힘이 없었다.
“쿨럭! 컥……!”
세현의 입에서 뜨겁고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인과 조율의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가슴 속 심장 보조기 ‘아포칼립스’ 내부에서 콰직, 하는 불길한 기계 파손음이 들리더니 고압 피스톤이 제어력을 잃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내부 기어들이 서로를 갉아먹으며 튀기는 푸른색 불꽃이 가슴 가죽 너머로 비쳤고, 뼛속을 송곳으로 쑤셔 파내는 듯한 극심한 파열 통증이 전신을 마비시켰.
“아…… 으윽……”
세현은 바닥을 구르며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가슴 주변의 혈관들이 검게 죽어가며 타들어 가는 열화상이 온몸을 덮쳤다.
시야가 급격히 흐려지는 와중에도, 세현은 바닥에 떨어진 배두식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배두식이 사용하던 수명 강탈기 ‘드레인 버클’과 함께, 방금 전 강탈당한 수명이 고농축으로 정제되어 푸른빛을 발산하는 아주 영롱한 보석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하급 수명 결정 조각…….’
저것만 있으면 아포칼립스를 안정시키고 자신과 서윤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현의 손가락은 저 보석에 닿지 못했다. 전신 세포가 한계를 맞이하며 강제 셧다운 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지하실의 표시등이 깜빡이며 꺼져갔다. 서윤의 인큐베이터는 다행히 전력이 끊기지 않아 희미하게 녹색 빛을 내며 고동치고 있었다. 동생이 살아있음을 확인한 마지막 안도감과 함께, 세현은 차가운 빗물이 고인 바닥 위로 쓰러지며 깊은 의문과 혼수 상태의 심연 속으로 침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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