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배의 역류와 심판
해치 내부의 틈새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인간의 폐를 단숨에 녹여버릴 듯한 보랏빛의 유해한 생체 해체 가스가 자욱한 안개가 되어 세현과 태윤의 발밑을 향해 무섭게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태윤아, 뒤로 물러서라. 숨을 멈추고 기척을 죽여.”
세현의 나직한 명령에 강태윤은 반사적으로 뒤로 도약하며 소매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전직 암살자다운 신속한 대처였으나, 보랏빛 안개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배관의 틈새를 타고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었다. 가스가 닿는 바닥의 대리석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검게 부식되어 녹아내리는 모습이 세현의 왼쪽 눈에 착용된 황동빛 단안경, ‘모노클’의 렌즈 너머로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세현은 왼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심장 보조기 ‘아포칼립스’가 산소 부족과 미세한 가스 침투를 감지하고 웅웅거리며 붉은 경고등을 깜빡였다. 피스톤이 비정상적으로 과열되어 갈비뼈를 두드리는 충격이 전해졌다. 백 노인의 마취 비약 덕분에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몸이 한계에 달해 삐걱거리는 기계적 진동만큼은 그의 뇌리를 날카롭게 자극했다. 남은 수명은 이제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여기서 가스를 마시고 쓰러진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었다.
‘가스가 살포되는 원인은 해치 내부의 유압식 분사 밸브 압축이다.’
세현은 냉철하게 원인과 결과의 실선을 분석했다. 보랏빛 안개의 팽창이라는 ‘결과’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가스를 밀어내는 ‘원인’, 즉 유압 밸브의 압력 자체를 뒤틀어야 했다.
세현은 오른손 손가락 끝을 가볍게 내저었다. 그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미세하고 투명한 핏빛 실선들이 허공을 갈라 열린 해치 틈새의 유압 피스톤 밸브로 연결되었다.
‘타격 재배치(Strike Relocation).’
세현이 손가락을 안쪽으로 강하게 움켜쥐는 순간, 가스를 밀어내던 유압식 밸브의 압축 동력 벡터가 순식간에 반대로 뒤틀렸다.
*쿠구구궁! 쾅!*
가스를 뿜어내던 압력이 역방향으로 작용하며, 열려 있던 강철 해치가 강제로 닫히며 쾅 소리를 냈다. 동시에 내부의 환풍 장치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통로를 가득 채우려던 보랏빛 가스들이 닫힌 문틈 사이의 강력한 흡입력에 이끌려 정제실 내부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지금이다. 들어가자.”
세현이 닫힌 해치의 유압 잠금장치 인과를 가볍게 튕겨 문을 열었다. 가스가 완벽히 청소된 통로를 지나 두 사람은 정제실 내부로 몸을 날렸다.
정제실 내부는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한 기생의 현장이었다.
방 안 가득 얽혀 있는 황금빛 파이프라인들. 그 파이프들은 지상 광장의 주민들에게서 빼앗은 생명력을 실시간으로 수송하고 있었다. 정제실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유리 가마가 있었고, 그 위에 둥둥 떠 있는 금빛 성배가 눈부신 오라를 내뿜으며 주민들의 수명을 황금빛 액체로 정제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성배 앞에, 탐욕으로 비대해진 몸집의 사내, 토마스 신부가 서 있었다.
“이, 이 쥐새끼들이 기어코 여기까지……!”
토마스 신부는 침입자들을 발견하자 기름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광신적인 분노를 터뜨렸다. 그의 손에는 황금빛으로 고동치는 ‘수명 수탈 성배’가 들려 있었다.
“주군, 저자가 성배의 에너지를 송출하기 전에 처리하겠습니다!”
태윤이 대지를 박차고 도약했다. 그의 손에 쥔 초진동 대형 합금 단검이 어둠 속에서 은빛 궤적을 그리며 토마스 신부의 목덜미를 향해 쇄도했다. 전직 암살자의 필살의 일격이었다.
그러나 토마스 신부는 비열하게 웃으며 성배를 높이 들어 올렸다.
“어리석은 반역자 놈들! 감히 신성한 교단의 성물 앞에 무기를 들이대다니!”
웅—!
성배에서 뿜어져 나온 눈부신 황금빛 에너지가 순식간에 토마스 신부의 전신을 감싸며 거대한 ‘신성 보호막’을 형성했다. 태윤의 초진동 단검이 보호막에 닿는 순간, 쇠가 으스러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단검의 날 끝에서 파란 스파크가 튕겨 나갔다.
*콰아앙!*
“윽!”
태윤의 몸이 장벽의 반발력에 밀려 뒤로 크게 튕겨 나갔다. 빗물에 젖은 바닥을 쓸며 간신히 균형을 잡은 태윤이 단검을 내려다보았다. 날 끝이 미세하게 파손되어 있었고, 보호막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세현은 모노클을 통해 보호막의 구조를 꿰뚫어 보았다.
‘보호막의 동력원이 정제실 지하 파이프라인과 연결되어 있군. 슬럼가 주민 수천 명의 수명 에너지가 실시간으로 저 보호막을 채우고 있어. 물리적인 타격으로는 저 장벽을 절대 깰 수 없다.’
토마스 신부는 세현이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보자, 그가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보았느냐? 이것이 바로 신성한 영생의 힘이다! 너희 하찮은 하층민들의 생명을 모아 만든 성스러운 방패지! 이제 너의 가슴에 박힌 그 불경한 기계 덩어리의 생명력까지 내가 직접 거두어 신성 제국에 바치겠노라!”
토마스 신부가 성배를 세현을 향해 겨냥했다. 성배의 황금빛 구멍이 기괴하게 벌어지며 세현의 가슴을 조준했다.
그 순간, 세현의 가슴속 아포칼립스 보조기가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세현의 체내에 남아 있던 마지막 생명 에너지가 보이지 않는 인과의 실선에 묶여 성배를 향해 유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가슴의 보조기가 비명을 지르며 적색 점멸등을 미친 듯이 뿜어냈다.
[경고: 외부 강탈 프로토콜 감지. 남은 수명 급감 중... 01:15:00... 00:45:00...]
세현의 시야가 순간적으로 흐려졌다. 전신 세포가 급격히 마모되며 뼛속까지 시려오는 극심한 한기가 그를 덮쳤다. 마취 비약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생명력 자체를 빼앗기는 근원적인 공포가 혈관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세현의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고요했다.
‘적이 가하는 모든 파괴적 의도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살의의 보존 법칙.’
토마스 신부가 자신을 죽이고 수명을 강탈하려 품은 절대적인 ‘살의’가 선명한 핏빛 쇠사슬이 되어 세현의 아포칼립스와 성배 사이를 연결하고 있었다. 세현은 그 살의의 궤적을 자신의 도화선으로 삼았다.
세현은 떨리는 오른손 손가락 끝을 들어 올려 허공을 튕겼다.
“이능력 흐름 교란(Superpower Flow Disruption).”
*스스스슥—!*
세현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은빛 실선들이 성배의 흡수 밸브 내부 기어들과 토마스 신부의 가슴에 위치한 심장 좌표를 복잡하게 얽어맸다. 성배가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원인’과 그 에너지가 축적되는 ‘결과’의 경로를 완전히 반대로 뒤틀어버리는 조율이었다.
“어……? 어어? 기계가 왜 이래? 왜 역류하는 거지?!”
토마스 신부의 오만한 웃음이 순식간에 경악으로 뒤바뀌었다.
성배의 황금빛 광채가 기괴하게 일렁이더니, 세현의 수명을 빨아들이던 흡수 경로가 완벽히 반대로 꺾여 들어갔다. 정제실 내부의 거대한 파이프라인들과 유리 가마 속에 모여 있던, 수천 명의 주민들에게서 강탈했던 엄청난 양의 고농축 수명 정수가 성배를 매개로 하여 토마스 신부 자신의 몸을 향해 폭포수처럼 역류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
“아, 아악! 뜨거워! 몸이 타들어 간다! 멈춰라! 이 불경한 악마 놈아, 당장 멈추지 못할까!”
토마스 신부가 비명을 지르며 성배를 떨어뜨리려 했다. 하지만 세현이 자아낸 인과의 실선들은 그의 손바닥과 성배를 접착제처럼 단단히 고정해 두고 있었다.
엄청난 양의 수명 정수가 역류하여 신부의 혈관으로 강제 주입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인간의 육체는 감당할 수 없는, 수천 명 분량의 가혹하고 정제되지 않은 생명 에너지였다.
신부의 전신 피부 밑으로 푸르고 황금빛의 핏줄들이 기괴하게 솟구치며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의 안구가 충혈되다 못해 핏빛으로 물들었고, 비대했던 몸집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세포 하나하나가 과도한 에너지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정제실 내부에 그로테스크하게 울려 퍼졌다.
“끄아아아악! 살려다오! 제발…… 신이시여! 교황 폐하……!”
토마스 신부는 허공을 향해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가 평생을 기만해 온 거짓 신성은 그를 구원하러 오지 않았다. 오직 그가 착취했던 하층민들의 원한 서린 생명력만이 그의 육신을 안쪽에서부터 사정없이 파괴할 뿐이었다.
*콰과과과광—!*
마침내 한계에 도달한 토마스 신부의 신체가 거대한 세포 폭발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비명과 함께 그의 비대한 육신은 뼈와 살이 분리되어 하얗게 기화되었고, 그가 쥐고 있던 금빛 성배 역시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파편을 튕겼다. 완벽한 인과응보의 심판이었다.
정제실 내부를 가득 채웠던 압도적인 황금빛 광채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사방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세현은 가슴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었다. 에너지 역류를 시전하는 동안 심장 보조기의 피스톤이 비정상적으로 과열된 탓에 가슴 주변에 미세한 내상 괴사가 발생했다. 입안 가득 고이는 뜨거운 피를 바닥에 뱉어내며, 세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태윤이 다급히 다가와 세현의 어깨를 부축했다. 세현은 고개를 저으며 쓰러진 토마스 신부의 흔적을 바라보았다.
신부가 터져 소멸한 자리에, 주민들의 생명력이 고농축으로 담긴 ‘정제되지 않은 수명 정수’ 용액이 담긴 투명한 앰플들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