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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예배당 침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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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비가 대지를 녹여 내리는 깊은 밤, 제18 구역의 오염된 대기는 유독 차가웠다. 하지만 지상의 가혹한 추위보다 세현을 더 옥죄는 것은 가슴팍에서 들려오는 기계적 비명이었다.


두두둑. 덜컥.


왼쪽 가슴에 깊이 박힌 심장 보조기 '아포칼립스'의 내부 피스톤이 불규칙한 속도로 요동치고 있었다. 하운드에게서 빼앗은 수명 결정의 잔여 에너지가 희미하게 남아 연명하고는 있었으나, 동력원 고갈로 인한 파열 직전의 내상은 세현의 전신 혈관을 매서운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유발했다. 세현은 억지로 각혈을 삼키며, 녹슨 하수관의 습한 벽면에 몸을 밀착했다.


“주군,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정수탑 하부 배관망의 끝이 머지않았습니다.”


검은색 교단 암살 슈트를 걸친 강태윤이 소리 없이 세현의 곁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그의 오른손에는 날 끝이 미세하게 손상된 초진동 대형 합금 단검이 역날로 쥐여 있었다. 전직 교단 암살자다운 태윤의 움직임은 어두운 하수구의 물소리조차 깨우지 않을 만큼 정밀했다.


세현은 왼쪽 귀에 착용한 소형 귀걸이 형태의 장치, ‘그림자 쥐들의 무선 수신기’를 톡톡 두드렸다. 치익 하는 미세한 노이즈와 함께, 지상의 정보 조직 ‘그림자 쥐들’의 도청가인 이은혜(거미)의 가냘프지만 냉철한 목소리가 흘러나왔.


[—들리시나요, 세현 오빠? 성당 지하 1층의 순찰 주기가 방금 변경되었어요. 초병 두 명이 3분 뒤 수직 환기구 통로를 지나갈 예정이에요. 그리고 주의하세요. 그 구역 바닥에는 밟는 즉시 고압 전류와 함께 생체 가스를 살포하는 압력 센서 트랩이 매설되어 있어요. 주파수는 이미 제가 해킹해서 우회 통로를 열어두었지만, 물리적인 센서는 직접 피해 가셔야 해요.]


“알았다, 거미. 계속해서 내부 신호를 도청해 다오.”


세현은 수신기를 끄고 태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두 사람은 성당 지하 정제실로 이어지는 마지막 환풍구 철창 앞에 당도했다. 철창 틈새로 성당 내부의 차가운 은빛 조명과 함께, 정제 기계들이 웅웅거리며 내뿜는 불길한 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는 수천 명의 슬럼가 주민들이 가짜 배급수를 얻기 위해 줄을 서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에 연결된 보이지 않는 수명선들이 이 지하로 모여들고 있었다.


세현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가슴의 아포칼립스 보조기를 의식했다. 이능력을 사용하는 순간, 심장에 가해질 부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하지만 물러설 곳은 없었다. 세현은 손가락 끝의 미세한 마력을 가슴의 코어와 동조시켰다.


‘인과적 존재 은폐(Causal Presence Concealment).’


순간, 세현의 신체 실루엣이 공기 중의 습기와 빛 속에서 미세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방출되던 열기와 심장 보조기의 기계 음, 심지어 빗물에 젖은 가죽 코트의 냄새마저 주변 환경과의 인과 관계를 강제로 차단당하며 완벽히 소멸했다. 완벽한 투명 인간의 상태.


다만, 이 기술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폐로 들어오는 산소의 인과마저 억제되기에 호흡이 극도로 제한되었다. 가슴이 타들어 가는 듯한 압박감이 세현을 덮쳤지만, 그는 묵묵히 환풍구 철창을 소리 없이 들어 올렸다. 태윤 역시 세현의 은신 장막 뒤를 따르며,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성당 지하 통로는 백은색 대리석과 기계식 배관들이 그로테스크하게 얽힌 기묘한 공간이었다.


세현은 모노클을 켠 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은혜가 경고했던 대로, 바닥의 특정 대리석 타일 주변에 미세한 전자기 흐름과 독가스 가스관의 인과 궤적이 붉은 격자선으로 겹쳐 보였다. 세현은 가볍게 발걸음을 옮겨 센서의 사각지대만을 밟으며 전진했다. 태윤 역시 세현의 발자국을 정확히 밟으며 뒤를 따랐.


통로의 모퉁이를 돌자, 철제 전자 제어 도어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세현은 품속에서 붉은색 마이크로 칩인 ‘신혜진의 우회 해킹 칩’을 꺼내 도어의 제어 단말기 슬롯에 부드럽게 삽입했다. 단말기 화면이 빠르게 깜빡이며 교단의 보안 프로토콜을 해킹하려 시도했다.


[보안 등급: 하이페리온 동조화 진행 중... 70%... 80%...]


하지만 그 순간, 단말기 내부에서 경고음과 함께 붉은 전류가 치솟았다. 성당 내부의 고주파 보안 시스템이 외부 해킹을 감지하고 차단벽을 가동한 것이다. 해킹 칩이 과열되며 검은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면 성당 전체에 비상 경보가 울릴 판이었다.


태윤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단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정면 돌파를 준비하려는 찰나, 세현이 차분하게 그의 손을 제지했다.


세현은 오른손 손가락 끝을 허공에 대고 미세하게 튕겼다. 그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실선이 도어 내부의 기계적 잠금장치 스프링과 전원 코드로 조용히 연결되었다.


‘해킹 칩이 타버리는 원인과 문이 잠기는 결과를 비튼다.’


스스슥.


세현이 손가락을 가볍게 뒤로 당기자, 과열되던 칩의 전자기 에너지가 도어 내부의 유압식 스프링 인과를 강제로 튕겨버리는 동력으로 재배치되었다.


*철컥.*


경보음이 울리기 직전, 묵직한 강철 도어가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열렸다. 타버린 해킹 칩은 바닥으로 떨어져 재가 되었으나, 경보는 작동하지 않았다. 세현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짧게 각혈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감각 마비 상태였음에도, 심장 보조기의 피스톤이 비정상적으로 삐걱거리는 진동이 갈비뼈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호흡이 점차 가빠져 왔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태윤이 다급히 세현을 부축하려 했으나, 세현은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때, 통로 반대편에서 규칙적인 군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방금 지하 3구역 제어 도어의 신호가 일시적으로 불안정했다. 확인해라.”


교단의 표준 규격 신성 권총과 드레인 버클로 무장한 하급 초병 두 명이 랜턴을 비추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코너를 도는 순간, 세현 일행의 존재를 포착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세현은 뒤로 물러서는 대신, 양손을 가볍게 허공으로 뻗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투명하고 핏빛으로 빛나는 미세한 실선들이 아른거리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


‘인과의 실선 격자 배치법(Causality Thread Lattice Placement).’


순식간에 통로의 사각지대와 초병들의 총구, 그리고 그들의 사지 좌표 사이에 보이지 않는 촘촘한 실선 그물망이 배치되었다.


초병들이 코너를 돌며 손전등 불빛을 비췄다. 그들의 눈동자가 허공의 미세한 기류 변화를 감지하고 찢어질 듯 커졌다.


“침입자—!”


초병이 소리치며 허리춤의 신성 권총을 뽑아 들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다. 세현을 향한 명백하고 강력한 파괴 의지, 즉 ‘살의’가 형성되는 찰나였다.


세현은 모노클 너머로 그들의 손가락과 총구가 핏빛 실선으로 묶여 있음을 확인하고, 차갑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무기 작동 인과 왜곡(Weapon Malfunction Causal Distortion).’


초병이 방아쇠를 당기는 물리적 원인의 힘이, 실선 격자를 통과하는 순간 기괴하게 비틀려 역류했다.


*콰드득! 콰가강!*


“윽……!”


총알이 총구를 떠나기도 전에, 약실 내부의 신성 가스 압력이 반대로 폭발하며 권총의 슬라이드가 뒤로 터져 나갔다. 폭발한 금속 파편들이 초병들의 손목과 어깨를 관통했다. 그러나 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세현이 그들의 목구멍과 서로의 어깨를 인과의 실선으로 단단히 묶어두었기 때문이었다.


동료가 쓰러지는 충격의 인과가 옆에 있던 초병의 무릎 관절을 강제로 꺾어버렸다. 두 초병은 단 한 마디의 경보음도 지르지 못한 채, 기괴하게 서로의 몸을 붙잡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태윤이 전광석화처럼 움직여 쓰러지는 그들의 신체를 받아채고, 무기를 회수하여 구석의 배관 틈새로 신속히 숨겼다. 현장에는 단 한 방울의 피 흔적도, 소음도 남지 않았다. 완벽한 침묵 속의 무력화였다.


세현은 가슴을 움켜쥐며 벽을 짚었다. 존재 은폐 기술을 무리하게 유지한 대가로 전신의 산소가 부족해져 눈앞이 아른거렸다. 아포칼립스 보조기가 가슴속에서 뜨거운 청색 증기를 뿜어내며 겨우 박동을 유지하고 있었다. 남은 수명은 이제 겨우 2시간 남짓.


두 사람은 마침내 지하 정제실의 거대한 유압식 해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해치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황금빛 광채와 기괴한 맥동 소리가 문틀의 미세한 틈새를 타고 흘러나와 지하 통로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수천 명의 슬럼민들에게서 강탈한 수명 정수가 정제되고 있는 교단의 추악한 심장부였다.


세현이 해치의 제어 콘솔에 손을 얹으려던 찰나.


쿠구구구궁—!


갑자기 거대한 굉음과 함께 유압식 해치가 스스로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이 열리며 드러난 것은 정제실의 풍경만이 아니었다.


해치 내부의 틈새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인간의 폐를 단숨에 녹여버릴 듯한 보랏빛의 유해한 생체 해체 가스가 자욱한 안개가 되어 세현과 태윤의 발밑을 향해 무섭게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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