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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고치 속의 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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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탈출구의 쇠창살 틈새로 내리쬐는 교단 순찰조의 백색 서치라이트는 숨이 막힐 정도로 차가웠다. 장마철의 폭우가 콘크리트 바닥을 때리며 내는 소음이 아니었다면, 벌써 가슴속 기계 심장이 덜컥거리는 소리가 지상까지 울려 퍼졌을 터였다.


“주군, 제 그림자에 발을 맞추십시오.”


강태윤이 낮게 속삭였다. 그의 한쪽 어깨 장갑판은 하운드의 고압 전류 사슬에 쓸려나가 처참하게 그을려 있었고, 빗물에 젖은 초진동 대형 합금 단검의 날 끝은 미세하게 이가 빠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신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세현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전직 교단 암살자다운 극도의 기척 차단술이었다.


세현은 모노클을 켠 채 지상의 살의 궤적을 읽었다. 빗줄기를 뚫고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서치라이트의 빛줄기들 사이로, 교단 하급 초병들의 붉은 살의선들이 얽혀 있는 사각지대가 보였다. 세현은 태윤의 어깨에 기대어 그 틈새를 가리켰.


“동쪽 배수관 그늘로 뛴다. 3초 뒤에 서치라이트가 반대편으로 꺾인다.”


“존명.”


태윤이 세현을 가볍게 업어 올림과 동시에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듯 도약했다. 서치라이트가 그들이 있던 자리를 쓸고 지나갔지만, 이미 두 사람의 형체는 빗소리 속에 녹아 사라진 뒤였다.


순찰조의 감시망을 아슬아슬하게 따돌리며 당도한 시계탑 은신처의 초입. 그러나 세현의 심장은 다시 한번 무겁게 가라앉았다. 은신처 주변 골목바닥에 찍힌 선명한 군화 자국과 교단 특유의 전자기 잔류 에너지가 모노클 렌즈에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이곳도 교단 순찰조의 수색 반경에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서윤이를 낡은 인큐베이터에 둔 채 머무르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태윤아, 서윤이를 옮겨야 한다. 제4 폐기물 창고로 간다.”


“그곳은 아직 완전히 정비되지 않았습니다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교단의 사냥개들이 이곳 냄새를 맡는 건 시간문제야.”


태윤은 군말 없이 지하실로 뛰어들어가 낡은 기계식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는 서윤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세현의 양아버지가 남겨둔 비상용 이동식 호흡기를 서윤의 얼굴에 씌우는 태윤의 손길은 투박하지만 지극히 조심스러웠다.


제4 폐기물 창고. 세현이 어린 시절 양아버지 민진우의 도움을 받아 제18 구역 외곽의 버려진 지하 물류창고를 개조해 만든 이중 비밀 아지트였다. 사방이 폐기된 기계 상자들로 가득 차 있어 무너질 위험이 있었지만, 교단의 전자기 감시망을 차단하는 구리 차폐벽이 가장 완벽하게 시공된 곳이기도 했다.


어두운 창고 내부, 가죽 침대 위에 서윤을 눕힌 순간이었다.


*삐이이이—!*


이동식 호흡기에서 찢어지는 듯한 적색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서윤의 가슴이 기괴할 정도로 가쁘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창백하다 못해 투명하던 피부가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해갔고, 가느다란 목덜미의 핏줄들이 검붉게 솟구쳤다.


“서윤아……!”


세현이 다급히 서윤의 손을 잡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냉기가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선천적 수명 결핍증 발작이었다. 하수구에서 하운드를 처단하며 빼앗은 수명 결정이 있었지만, 그것은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에너지라 서윤의 연약한 혈관에 직접 주입할 수 없었다.


“주군, 약초를……!”


태윤이 다급히 외쳤다. 세현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창고 구석에 보관해 두었던 보랏빛 ‘돌연변이 면역 안정 약초’를 집어 들었다. 산성비 속에서 억척스럽게 키워낸 유일한 구원의 약이었다. 세현은 다급히 약초를 짓이겨 그 즙을 서윤의 입술 사이에 흘려 넣으려 했다.


그러나 서윤의 기도가 완전히 잠겨 있었다. 극심한 호흡 경련으로 인해 목구멍이 단단히 막혀, 약즙은 입가로 흘러내릴 뿐 단 한 방울도 목구멍 너머로 넘어가지 못했다.


“안 돼…… 삼켜야 해, 서윤아! 제발 삼켜라!”


세현의 목소리가 처절하게 갈라졌다. 서윤의 손목 측정기가 깜빡이며 남은 수명이 분 단위로 깎여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이대로 사태를 방치하면 3분 이내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할 것이 분명했다. 일반적인 약물 치료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세현은 가슴을 쥐어짜며 무릎을 꿇었다. 가슴속 아포칼립스 보조기가 마찰열을 내며 불길한 적색 증기를 뿜어냈다. 하운드와의 전투로 인해 내부 기어들이 이미 마모될 대로 마모된 상태였다. 여기서 자신의 생명력을 추가로 방출한다면 심장 보조기가 완전히 파열되어 자신이 먼저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현의 눈에는 오직 숨을 쉬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동생의 얼굴만이 보였다.


‘내 목숨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너만 살릴 수 있다면.’


세현은 코트 소매 안주머니에서 어머니가 남겨준 낡은 ‘은방울꽃 펜던트’를 꺼내 손바닥에 꽉 쥐었다. 차가운 구리 금속의 감각이 전신에 퍼지며, 극심한 통증 속에서 흐려지려던 이성이 단단한 닻을 내리듯 고정되었다.


“상처 동화(Injury Assimilation).”


세현이 서윤의 가슴 위에 양손을 얹었다. 등가교환의 제약은 가혹했다. 타인의 상처와 부족한 생명력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고통과 공백을 자신의 육체로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했다.


스스스슥—!


세현의 양손 끝에서 투명하고 핏빛으로 빛나는 미세한 실선들이 뿜어져 나왔다. 수천 줄의 실선들이 서윤의 가슴팍을 촘촘하게 감싸 안았고, 이내 두 사람의 몸 전체를 거미줄처럼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것은 세현의 생명선이자, 두 사람의 운명을 하나로 묶는 ‘수명 공유의 실선’이었다.


“자가 치유 인과의 고치(Self-healing Causality Cocoon).”


세현이 비장하게 주문을 읊조리자, 공간을 가득 메우던 먼지들이 허공에 그대로 멈춰 섰다. 창고 외벽을 때리던 산성비의 소음도, 태윤의 거친 숨소리도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고치 내부의 시공간이 미세하게 뒤틀리며 로컬 타임 딜레이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오직 두 사람만의 시간이 극도로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세현의 가슴속 아포칼립스 보조기가 비명을 지르며 요동쳤다.


“으아아아악!”


세현의 입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서윤의 기도를 막고 있던 경련과 수명 결핍의 고통이 실선을 타고 세현의 심장으로 100% 전이되기 시작했다. 뼛속까지 타들어 가는 열화상과 혈관이 통째로 뜯겨 나가는 듯한 고통에 전신이 활처럼 꺾였다. 왼쪽 가슴 주변의 피부가 순식간에 검게 괴사하며 타들어 가는 냄새가 진동했다.


[잔여 수명: 48시간…… 36시간…… 24시간…… 12시간……]


손목의 측정기 숫자가 미친 듯이 낙하했다. 자신의 생명 에너지가 붉은 실선을 타고 서윤에게 강제로 주입될 때마다, 세현의 영혼이 밑바닥부터 갉아 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아포칼립스의 피스톤이 제 궤도를 벗어나 쇠 긁는 소리를 내며 가슴뼈를 때렸다.


그러나 세현은 손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서윤의 손을 더 꽉 쥐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져가라, 서윤아.’


핏빛 고치 내부에서 은은한 은방울꽃 향기가 피어올랐다. 세현의 처절한 이타성에 반응하듯, 서윤의 안색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검붉게 솟구쳤던 목덜미의 핏줄들이 가라앉았고, 멈춰 있던 폐가 크게 부풀어 오르며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흡……! 하아…….*


서윤의 호흡이 완전히 정상 궤도를 찾았다. 그녀의 손목 측정기가 청아한 녹색 빛을 발산하며 안정권인 하루 분량의 시간을 회복했다.


그와 동시에 세현의 아포칼립스 보조기가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멈춰 섰다.


*퍽! 치이익—*


“콜록! 쿨럭……!”


세현은 가슴을 움켜쥐고 가죽 침대 밑으로 엎어지며 대량의 피를 토해냈다. 전신의 감각이 급격히 멀어지며 시야가 암전되기 시작했다. 남은 수명은 단 몇 시간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당장 고순도의 수명 정수를 주입하지 않으면 반나절도 버티지 못하고 가사 상태에 빠져 즉사할 터였다.


그때였다.


핏빛 고치의 벽면 너머에서 이 상황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유하은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세현 오빠! 안 돼……!”


하은이 진동하는 붉은 고치의 표면에 양손을 갖다 대었다. 세현의 고통을 어떻게든 나누어 가지고 싶다는 그녀의 간절한 염원이 공간의 인과율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웅웅웅웅—!*


순간, 하은의 양 눈동자가 기이할 정도로 붉은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시야 너머로 세현의 가슴에서 뻗어 나와 사방으로 얽혀 있는 투명한 인과의 실선들이 미세한 빛의 궤적으로 관측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하은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인과 관측자’의 권능이 최초로 고치와 공명하며 미세하게 각성하는 태동의 순간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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