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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올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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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의 통증이 가라앉은 자리에, 더 거대하고 차가운 탐욕의 덫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세현은 붉은 칩을 쥔 채, 슬럼가 가장 깊은 어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산성비가 쏟아지는 제18 구역의 밤은 깊고도 무거웠다. 검은 매연과 오염된 안개가 뒤섞인 거리를 지나, 세현과 강태윤은 버려진 하수관의 미로를 따라 내려갔다. 발을 디딜 때마다 녹슨 사슬과 고철 더미가 기괴한 마찰음을 냈고, 공기 중에는 썩은 기름 냄새와 매캐한 유황 연기가 가득했다. 지상의 소음이 완전히 차단될 즈음, 붉고 푸른 네온사인이 어둠침침한 지하 지하도 벽면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지하 강철 시장.


교단의 감시 센서조차 닿지 않는 슬럼가의 가장 깊은 심장부이자, 온갖 불법 무기와 수명 칩, 그리고 금지된 기계 부품들이 거래되는 무법의 낙원이었다. 가죽 재킷을 입은 해결사들과 방독면을 쓴 밀수꾼들이 무리 지어 다니는 광경을 지나, 태윤은 세현을 이끌고 시장 가장 구석에 위치한 두꺼운 강철 문 앞으로 향했다. 문 표면에는 기하학적인 톱니바퀴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태윤이 문을 세 번 두드리자, 좁은 감시창이 열렸다가 닫히며 육중한 빗장이 풀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상의 척박함과는 대조되는 호화로운 밀실이 나타났다. 낡은 가죽 소파 위에 모조 모피 코트를 걸친 뚱뚱한 사내가 금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제18 구역 암시장의 거물, 박만식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단정한 정장을 입은 젊은 청년이 차가운 눈빛으로 세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박만식의 조카이자 암시장의 실질적인 지략가, 임태호였다.


"소문으로만 듣던 '회색의 유령'이 제 발로 찾아오다니 영광이군."


박만식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세현의 시선은 그들의 손가락 사이에 놓인 작은 강철 상자로 향했다. 왼쪽 눈에 착용한 황동빛 단안경 '모노클'의 태엽이 미세하게 회전하며 상자 내부의 마력 파동을 읽어냈다. 그 안에는 세현의 심장을 유지해 줄 군용 '심장 보조기용 고밀도 배터리'와 교단의 추적을 교란할 주파수 우회 장치가 들어 있었다.


"본론만 하지."


세현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포칼립스 보조기가 붉은 칩의 동조 에너지를 빨아들이며 가슴속에서 낮게 웅웅거리고 있었다. 통증은 가라앉았지만, 기계의 하드웨어 마모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연명 주기가 다하기 전에 저 배터리를 반드시 이식해야 했다.


임태호가 피식 웃으며 테이블 위의 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금반지가 세현의 불규칙한 심장 박동에 반응하듯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심박수와 거짓말을 간파하는 태호의 이능력이 가동된 것이다.


"급한 모양이군요, 민세현 씨. 심장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여기까지 느껴집니다."


태호의 목소리는 뱀처럼 부드럽고 잔인했다.


"배터리와 주파수 우회 장치. 슬럼가에서는 오직 우리만이 조달할 수 있는 군용 규격품이죠. 가격은…… 수명 칩 따위가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정보입니다."


"무슨 정보지?"


"제18구역 자방대를 이끄는 퇴역 군인, 한도식 대장의 비밀 거처와 그들의 무장 전술 교본. 그리고 자방대가 숨겨둔 사설 무기 창고의 위치를 넘겨주십시오. 교단 상층부에서 그 정보의 대가로 우리에게 중층 도시 '백은의 아크' 이주 시민권을 약속했거든요."


옆에 서 있던 강태윤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졌다. 자방대장 한도식의 정보를 넘긴다는 것은, 교단의 수탈에 맞서 싸우는 슬럼가 주민들의 마지막 방패를 짓밟고 그들을 몰살시키겠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임태호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슬럼가 전체를 팔아넘기려 하고 있었다.


세현은 모노클을 통해 임태호의 영혼 주파수를 관측했다. 그의 머리 위에는 탐욕과 계산으로 가득 찬 붉은색 사슬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거절한다."


세현의 대답은 단호했다.


임태호의 눈매가 날카롭게 찢어졌다.


"거절이라니,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군요. 당신의 심장은 당장 몇 시간 뒤면 멈출 텐데, 고작 길거리 벌레들의 목숨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겁니까?"


태호가 손가락을 튕기려 하자, 밀실 사방의 그림자 속에서 사설 해결사들이 무기를 쥐며 서서히 걸어 나왔다. 긴장감이 극도로 팽팽해진 그 순간, 갑자기 지상에서부터 땅을 뒤흔드는 거대한 진동이 밀실 내부를 강타했다.


*쿵—! 콰구구궁!*


천장에서 고철 가루와 콘크리트 잔해가 비 오듯 쏟아졌고, 화려했던 네온사인들이 깜빡이며 일제히 꺼졌다. 경보음이 지하 강철 시장 전체를 찢어발기듯 울려 퍼졌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박만식이 소파에서 나자빠지며 비명을 질렀다.


밀실 외부에서 피비린내 나는 비명 소리와 함께, 기계 엔진의 기괴한 소음과 쇠사슬이 바닥을 긁는 쇳소리가 들려왔다. 세현은 반사적으로 모노클의 태엽을 끝까지 감았다. 그의 왼쪽 시야가 핏빛으로 물들며, 밀실 문 너머의 인과 궤적들이 가시화되었다.


포악하고 굶주린 야수들의 살의.


"사냥개…… 하운드다."


태윤이 단검을 역으로 쥐며 세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강 수사관의 장비에 기록되었던 주군의 아포칼립스 주파수를 역추적해 온 겁니다! 기계 사냥개 무리가 시장 입구를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이런 미친! 교단 놈들이 여기까지 들어왔다고?!"


박만식은 이성을 잃고 테이블 위의 강철 상자를 챙기려 했지만, 태호가 그의 손을 제지했다. 태호는 벽면의 비밀 스위치를 눌렀다.


"삼촌, 도망쳐야 해요! 저 유령 놈들이 주파수를 흘리는 한 여기도 안전하지 않아요!"


책장 뒤로 비밀 탈출 통로가 열리자, 박만식과 임태호는 상자를 챙긴 채 세현 일행을 내버려 두고 비열하게 안으로 뛰어들었다. 강철 문이 닫히며 밀실은 완벽한 밀실이자 덫으로 변해버렸다.


*쾅! 쾅! 쾅!*


두꺼운 강철 문이 외부의 강력한 충격에 의해 안쪽으로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문틈 사이로 붉은색 레이저 감지선들이 뱀처럼 밀실 내부를 훑었다. 하운드의 기계 사냥개들이 뿜어내는 기괴한 배기음과 쇠사슬을 긁는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주군, 제가 정면을 돌파해 길을 열겠습니다!"


태윤이 대검을 쥐고 문을 향해 돌격하려 했지만, 세현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안 돼, 태윤아. 저 사냥개들의 외피는 고압 전류 장벽으로 코팅되어 있어. 네 단검이 닿는 순간 전류가 역류해 네 심장마저 멈출 거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해."


그 순간, 세현의 왼쪽 가슴에 이식된 아포칼립스 보조기가 하운드의 스캐너 파동과 공명하며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주파수가 완벽히 동조되어 록온당하기 직전이었다. 이대로 주파수가 노출되면 지하 강철 시장뿐만 아니라 슬럼가 전역의 대피소 위치까지 교단에 전송될 터였다.


세현은 가슴을 쥐어짜며 벽에 몸을 기대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려 모노클의 렌즈를 적셨다. 머릿속이 깨질 듯이 아파왔지만, 그는 억지로 연산 회로를 가동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세현은 아포칼립스 보조기의 강제 우회 프로토콜을 활성화했다.


'교단 감시망 주파수 동조화 규칙(Church Surveillance Network Frequency Synch Rule).'


자신의 심장 보조기가 방출하는 특이 붉은 주파수를 역으로 교단 하급 경비병들의 무전 표준 주파수 대역과 100% 일치시켜, 사냥개들의 후각 센서에 혼선을 주는 금지된 공법이었다.


"으으윽……!"


세현의 가슴에서 청색 증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아포칼립스의 피스톤이 제어 장치를 무시하고 비정상적으로 초고속 박동하기 시작했다. 쇳가루가 혈관을 타고 뇌 신경으로 역류하는 듯한 극심한 이명과 편두통이 세현을 덮쳤다. 눈앞이 하얗게 번쩍였고, 그의 심박수는 한계치를 초과해 요동쳤다. 통증을 마비시켰던 마취 비약의 약효조차 뚫고 들어오는 치명적인 부하였다.


하지만 가슴에서 방출되던 특이 주파수가 순간적으로 교단의 표준 신호로 왜곡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문밖에서 날뛰던 기계 사냥개들의 배기음이 일시적으로 뚝 끊겼다. 그들의 추적 시스템이 표적의 주파수를 아군 경비병의 신호로 오인하여 일시적인 감각 교란에 빠진 것이다.


"지금이다, 태윤아……! 하수구 방향의 환기구를 뚫어라!"


세현이 피를 토하며 소리쳤. 태윤은 주군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초진동 단검을 휘둘러 밀실 구석의 철제 환기구 덮개를 단숨에 찢어발겼다.


태윤이 세현을 부축해 좁은 환기구 틈새로 몸을 밀어 넣는 그 찰나, 감각 교란에서 깨어난 기계 사냥개들이 강철 문을 완전히 부수고 밀실 내부로 들이닥쳤다.


*스으으윽— 콰직!*


기계 사냥개들이 밀실 문 앞까지 도달해 날카로운 쇠발톱으로 강철 문틀과 쇠사슬을 긁어대는 소리가 환기구 내부까지 고스란히 울려 퍼졌다.


막다른 지하 통로의 좁은 틈새에 몸을 숨긴 채, 세현은 가슴을 움켜쥐고 왼쪽 눈의 모노클을 켰다. 렌즈 너머로 벽을 투과해 들어오는 사냥개들의 이능력 추적 선들이 핏빛 올가미가 되어 그들의 턱밑까지 팽팽하게 옥죄어오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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