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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강철 시장의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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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수사관의 집요한 추적망을 피해 무너진 창고 뒤편의 어둠 속으로 몸을 던진 순간부터, 민세현의 가슴은 이미 죽음의 박동을 울리고 있었다.


"스읍…… 하아……!"


허름한 폐기 배수관 내부, 산성비가 콘크리트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축축한 어둠 속에서 세현은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입술을 비집고 나온 숨결은 차갑다 못해 비린 피 냄새를 짙게 머금고 있었다. 왼쪽 가슴에 이식된 기계 심장 보조기 ‘아포칼립스’가 불규칙하게 덜커덕거리며 거친 금속 마찰음을 냈다. 붉은색 증기가 희미한 연기처럼 가슴팍 틈새로 피어올라 그의 시야를 흐려놓았다.


눈앞이 번지고 있었다. 모노클의 렌즈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온통 노이즈가 낀 회색빛이었고, 심장의 피스톤이 제 궤도를 벗어나 가슴뼈를 때릴 때마다 전신이 마비되는 듯한 냉기가 혈관을 타고 번졌다. 강 수사관의 추적을 방해하기 위해 무리하게 인과율을 뒤틀었던 대가였다.


"주군, 아포칼립스의 내구도가 한계입니다. 피스톤 축이 어긋나서 기어 마찰열이 심장 조직을 직접 태우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강태윤이 소리 없이 다가와 세현의 어깨를 지탱했다. 그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세현의 가슴팍에서 새어 나오는 불안정한 붉은 광채를 응시하며 무겁게 가라앉았다. 태윤은 품에서 황 씨의 고물상에서 구해온 일반 규격의 배터리를 꺼냈다. 어떻게든 보조기의 동력을 보강해 보려는 시도였다.


"비켜봐라. 이걸로 임시 우회 전력을 주입해 보겠다."


태윤이 조심스럽게 아포칼립스의 보조 전원 슬롯에 일반 배터리를 밀어 넣으려 했다. 하지만 배터리의 접촉 단자가 아포칼립스의 외벽에 닿는 순간, 파란 스파크가 기괴하게 튀어 오르며 날카로운 파열음이 일어났다.


*파직! 퍼엉—!*


“으윽!”


태윤이 급히 손을 뒤로 뺐지만, 일반 배터리는 아포칼립스 코어의 초고압 전류와 이질적인 인과율 에너지를 견디지 못하고 순식간에 시커멓게 타들어 가며 폭발해 버렸다. 쓸모없는 고철 조각이 바닥의 더러운 빗물 고인 곳으로 떨어져 차갑게 식어갔다.


"일반 고철 부품으로는 안 되는군……. 아포칼립스의 코어 출력을 받아줄 특수 나노 합금 규격이 아니면 전원 동조 자체가 불가능해."


최영감의 제련소에서 외벽 코팅은 마쳤지만, 내부의 기계적 동력원 자체가 고갈되어 가고 있었다. 수명은 적안에게서 빼앗은 결정 덕분에 충분했지만, 정작 그 에너지를 육체로 전달해 줄 기계 심장이 마모되어 멈추려 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이대로 아포칼립스가 정지한다면 세현의 실제 심장 역시 영원히 박동을 멈추게 될 터였다.


세현은 가슴을 쥐어짜며 거칠게 각혈했다. 검붉은 핏방울이 차가운 빗물 위로 흩어졌다. 모노클의 경고창에는 남은 연명 수명 대신, 기계의 하드웨어 붕괴 경고등이 붉은색으로 격렬하게 점멸하고 있었다.


"방법이…… 있나?"


세현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쇠 긁는 소리처럼 갈라져 있었다.


태윤이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무겁게 대답했다.


"교단의 삼엄한 추적 네트워크를 교란할 주파수 우회 장치와, 아포칼립스의 압력을 버텨낼 군용 '심장 보조기용 고밀도 배터리'가 필요합니다. 지상의 일반 고물상이나 암시장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물건이지요.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말해봐라."


"슬럼가 가장 깊은 어둠 속, 교단의 감시 센서조차 닿지 않는 금지 구역이 있습니다. '지하 강철 시장'이라 불리는 무법 지대지요. 그곳을 지배하는 암시장 밀수꾼, 박만식이라면 교단 군용 통제 구역에서 흘러나온 배터리와 우회 칩을 소지하고 있을 겁니다. 전직 암살자로 일할 때 그자의 밀수 루트를 몇 번 봐둔 적이 있습니다."


태윤의 제안은 지극히 현실적이었지만, 동시에 극도로 위험한 도박이었다. 지하 강철 시장은 사기꾼과 노예 상인, 그리고 돈만 주면 교단에도 정보를 파는 해결사들이 가득한 무법천지였다. 현재 세현의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그곳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사자의 아가리 속으로 머리를 밀어 넣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세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슴 속 기계의 피스톤이 회전을 멈추기 위해 서서히 속도를 줄여가는 느낌이 실시간으로 피부에 와닿고 있었다.


"박만식에게 연락해라. 어떤 대가를 원하든…… 일단 대면해야 한다."


태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에서 낡은 무전 송신기를 꺼내 특정 주파수를 맞추기 시작했다. 전직 교단 암살자의 은밀한 연락망이 가동되는 순간이었다. 태윤은 박만식의 하부 연락책에게 접촉을 시도했고, 거래의 신뢰를 증명하기 위해 세현이 소지하고 있던 마지막 수명 칩 1시간 권 여러 개를 정보료 명목으로 연락책의 손에 쥐여주어야 했다. 가난한 슬럼가에서 수명 칩은 그 어떤 황금보다 확실한 통행증이었다.


몇 시간의 피 말리는 기다림 끝에, 배수관 입구의 어둠을 뚫고 쥐새끼 같은 왜소한 체구의 전령이 나타났다. 전령은 세현과 태윤의 삼엄한 경계를 살피더니, 말없이 붉은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소형 기계 칩 하나를 바닥에 던져두고 전광석화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태윤이 경계하며 단검 끝으로 칩을 살핀 뒤, 세현에게 건넸다.


"박만식의 초대장입니다. 슬럼가 일반 구역에서의 거래는 거부하는군요. 자신들의 본거지인 지하 강철 시장 깊숙한 곳으로 오라는 뜻입니다."


세현이 떨리는 손으로 그 붉은 초대장 칩을 받아 쥐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웅웅웅—*


칩이 세현의 손바닥에 닿는 순간, 칩 내부에서 방출되는 미세한 고주파 에너지가 세현의 왼쪽 가슴에 박힌 아포칼립스 보조기의 수신 회로와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플라스틱 조각이 아니었다. 칩 내부에는 아주 미세하지만 극도로 순도가 높은 [24시간 권] 수명 정수의 주파수가 담겨 있었다.


차가운 냉기가 가득하던 세현의 혈관 속으로 청아하고 따뜻한 온기가 순식간에 흘러들었다. 가슴뼈를 찌르던 피스톤의 불규칙한 마찰음이 서서히 잦아들었고, 흐려졌던 시야의 회색 노이즈가 걷히며 모노클의 초점이 선명하게 맞춰졌다. 가슴 주변의 검게 괴사해가던 혈관들이 일시적으로 진정되는 감각이 온몸을 타고 번졌다.


"후우……!"


세현은 길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비린 피 냄새 대신, 아주 오랜만에 폐부 깊숙이 맑은 공기가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단지 초대장 칩을 손에 쥔 것만으로도 이 정도의 진정 효과가 있다면, 박만식이 소지하고 있다는 고밀도 배터리와 우회 장치의 성능은 상상 이상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태윤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주군, 아포칼립스가 임시로 안정된 것은 다행이지만 경계를 늦추어선 안 됩니다. 박만식이 주군의 소문을 듣고 흥미를 느껴 보낸 칩이지만, 그자의 뒤에는 상인 연합의 젊은 후계자이자 지독하게 계산적인 지략가인 임태호가 버티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군의 심장 상태를 간파하고 거래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덫을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세현은 손바닥 안에서 붉은빛을 발산하는 초대장 칩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가슴의 통증이 가라앉은 자리에, 더 거대하고 차가운 탐욕의 덫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밀수꾼들의 속물적인 생리와 자신을 시험하려는 임태호의 계산적인 시선이 보이지 않는 실선이 되어 이 붉은 칩 너머로 연결되어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현의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살기 위해, 그리고 동생 서윤을 이 지옥에서 구해내기 위해 그는 기꺼이 그 덫 속으로 걸어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세현은 붉은 칩을 주머니 깊숙이 집어넣으며, 슬럼가 가장 깊은 어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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