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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해 속의 붉은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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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장 로건의 직접적인 토벌 표적이 되었음을 알리는 붉은 낙인이, 슬럼가의 하늘에 거대하게 새겨지고 있었다.


철교 밑 천막촌의 밤하늘을 뒤덮은 붉은색 홀로그램 장막은 가느다란 산성비 줄기를 머금고 기괴하게 일렁였다. 적안 일당이 완전히 소멸한 폭발의 잔해 위로 매캐한 검은 연기가 안개처럼 깔렸다. 연료 트럭이 터지며 뿜어낸 열기는 아직 가시지 않아, 축축한 진흙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수증기로 피어올랐다.


“주군, 서둘러야 합니다. 로건의 수색대가 이 근방의 에너지 반응을 감지하고 사방을 조여올 겁니다.”


강태윤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단검은 이미 슈트의 비밀 칼집에 수납되어 있었으나, 전직 암살자 특유의 기척 차단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민세현은 가슴을 깊게 움켜쥐었다. 왼쪽 가슴에 박힌 심장 보조기 ‘아포칼립스’는 적안의 수명을 흡수해 [72시간 추가 확보]라는 푸른 메시지를 띄우고 있었지만, 내부 기어는 방금 전의 타격 재배치 여파로 미세하게 삐걱거리고 있었다. 신성 저항 나노 합금 코팅막이 열기를 흡수해 준 덕에 파열은 면했으나, 가슴뼈 깊은 곳에서부터 찌르는 듯한 둔탁한 통증이 간헐적으로 밀려왔다.


“가자. 한 대장과 자방대원들이 서윤이를 데리고 하수구 통로로 빠져나갔으니, 우리도 그들의 동선과 겹치지 않는 사각지대로 움직여야 해.”


세현은 주머니 속의 은방울꽃 펜던트를 꽉 쥐며 차가운 이성을 붙잡았다.


두 사람은 천막촌의 불타는 잔해를 뒤로하고 제18 구역 녹슨 사슬 거리의 가장 어둡고 낙후된 골목길로 몸을 숨겼다. 산성비에 부식된 철판 가옥들이 촘촘하게 늘어선 골목은 붉은 계엄령 홀로그램 빛을 받아 마치 피에 젖은 미로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콰아아아—!


골목길 입구 저편에서 묵직한 엔진 굉음이 들려왔다. 교단 제18지부의 최첨단 장갑 차량들이 빗길을 뚫고 천막촌 폭발 현장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한 것이다. 서치라이트의 날카로운 백색 광선들이 비 오는 밤공기를 칼날처럼 가르며 폐허를 샅샅이 훑었다.


세현과 태윤은 무너진 철골 창고의 어두운 사각지대 뒤로 몸을 바짝 밀착시켰다. 세현은 가슴의 아포칼립스 작동 주파수를 최소한으로 낮추기 위해 호흡을 극도로 가다듬었다. 피스톤의 마찰을 줄이는 정밀 호흡법, 백 노인에게 배운 ‘심장 보조기 마모 억제술’이 본능적으로 시전되었다.


장갑차의 문이 열리고, 무장한 하급 집행관들이 일사불란하게 내려 전선을 구축했다. 그리고 그들의 삼엄한 대형 사이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회색 코트의 깃을 바짝 올린 채, 한쪽 눈에 기계 돋보기 형태의 특수 수사용 단안경을 착용한 30대 후반의 남성. 깃털 펜과 낡은 가죽 기록첩을 들고 현장을 차갑게 응시하는 그의 정체는 교단 치안부 소속의 베테랑 현장 분석가, 강 수사관이었다.


“강 수사관…….”


태윤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가늘어졌다.


“교단 치안부에서 가장 집요한 자입니다. 현장의 미세한 에너지 잔영을 역공학적으로 분석해 범인의 위치를 역추적하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저자가 폭발 현장을 분석하기 시작하면 주군의 흔적이 노출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태윤의 손이 자연스럽게 허리춤의 초진동 단검 손잡이로 향했다. 그의 전신에서 차가운 살의가 피어오르려 했다.


“주군, 제가 저자의 목을 베고 오겠습니다. 저자가 분석을 마치기 전에 침묵시켜야 합니다.”


“안 돼.”


세현이 태윤의 손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주변을 봐라. 강 수사관 주위로 집행관들이 촘촘한 밀집 대형을 유지하고 있어. 게다가 장갑차 상부에 장착된 소멸 레이저 포탑의 자동 감지 센서가 상시 가동 중이다. 네가 움직이는 순간, 기척 차단이 풀리며 레이저의 표적이 될 거야. 그건 자살행위다.”


세현은 왼쪽 눈에 착용한 황동빛 단안경 ‘모노클’의 태엽을 미세하게 돌렸다. 웅웅거리는 미세한 진동과 함께 그의 시야에 강 수사관과 집행관들의 에너지 흐름이 시각화되었다.


강 수사관의 머리 위에는 D등급의 이능력 파동이 은은한 회색 오라 형태로 흐르고 있었다. 그의 이능력은 전투용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장의 잔여 에너지를 실시간으로 복원하는 ‘미세 살의 역추적 기법’은 세현과 같은 인과율 조율사에게는 그 어떤 광역 파괴 기술보다 위협적이었다.


강 수사관은 빗물이 고인 진흙탕을 밟으며, 방금 전 적안이 소멸했던 연료 트럭의 폭발 중심 좌표로 다가갔.


그가 가슴 주머니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특수 수사용 단안경을 꺼내 기계 돋보기 위에 덧장착했다. 단안경의 렌즈가 실시간으로 회전하며 현장의 공기 중에 잔존하는 열 파동과 마력 입자들을 색깔별로 분리해 내기 시작했다.


“열에너지의 중심점은 연료 트럭의 가솔린 탱크. 하지만 화염의 마력 파동의 시발점은…… 여기가 아니군.”


강 수사관의 건조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세현의 귀에 도달했다.


강 수사관은 기계 돋보기를 조정하며, 적안이 최후의 화염 주먹을 내지르기 위해 디뎠던 발자국 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맞은편, 민세현이 서서 인과를 조율했던 바로 그 좌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여기다. 누군가 방화 보스 적안의 정면에서 화염을 그대로 마주했어. 하지만 타격의 흔적이 없어. 화염의 파괴력이 이 좌표에 닿는 순간, 기묘한 공간 비틀림을 통해 뒤편의 트럭으로 꺾여 들어갔군.”


강 수사관이 손가락으로 공중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그의 특수 단안경에서 pale blue(창백한 푸른빛)의 스캔 광선이 방출되며, 허공에 남아 있던 마력의 잔영들을 3차원 입체 홀로그램으로 복원하기 시작했다.


세현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모노클을 통해 바라본 공중에는, 자신이 적안의 주먹과 트럭을 연결하기 위해 자아냈던 투명한 핏빛 실선의 잔여 진동이 희미하게 아른거리고 있었다. 보통의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인과의 흔적이었지만, 강 수사관의 정밀 분석 장비는 그 미세한 파동의 기결(氣結)을 강제로 끄집어내어 시각화하고 있었다.


‘내 심장 보조기의 고유 주파수가 노출될 위기다.’


아포칼립스 보조기가 방출하는 특이 붉은 주파수는 태초의 우주 조율사가 가졌던 신성의 고유 파동과 정확히 일치했다. 만약 강 수사관이 이 흔적을 분석해 그 고유 주파수 대역을 교단 중앙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는 순간, 세현은 제18 구역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교단 추적 네트워크에 실시간으로 위치가 노출되는 사형 선고를 받게 될 터였다.


강 수사관은 깃털 펜으로 가죽 기록첩에 미세한 파동의 수치를 기록하며, 한 걸음 더 세현이 서 있던 좌표로 다가갔다.


“아주 미세하지만……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이질적인 에너지 주파수가 섞여 있어. 원인과 결과를 강제로 이어붙인 흔적. 이것은 단순한 원소 이능력이 아니다. 인과율 자체를 건드린 흔적이야.”


강 수사관의 기계 돋보기가 붉은색 빛을 발하며 주파수 분석 강도를 높였다. 스캔 광선이 세현의 흔적을 더욱 깊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세현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가슴의 아포칼립스가 강 수사관의 스캔 파동에 공명하듯 미세하게 진동하며 웅웅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피스톤의 마찰열이 다시 오르며 혈관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가슴을 짓눌렀다.


‘직접 타격을 가할 수 없다면, 주변의 인과를 조율해 장비의 센서에 혼선을 주어야 한다.’


세현은 덜덜 떨리는 오른손 손가락을 후드 코트 소매 밖으로 아주 미세하게 내밀었다. 마취 비약의 부작용으로 감각이 무뎌진 손끝이었지만, 영혼의 감각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동시에 다룰 수 있는 12줄의 실선 한계 중, 단 세 줄의 실선을 허공으로 방출했다.


실선들은 빗줄기를 타고 조용히 날아가, 강 수사관의 단안경 센서 주변을 부유하는 미세한 매연 먼지 입자들과, 불타는 트럭 잔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파동의 인과 관계를 엮어내기 시작했다.


‘원인은 트럭의 고열. 결과는 강 수사관 단안경 렌즈 주변의 급격한 공기 팽창.’


세현은 손가락 끝을 미세하게 튕기며 인과의 방정식을 완성했다.


트럭 잔해에서 뿜어 나오는 미열이, 강 수사관의 단안경 바로 앞 공기를 강제로 뒤틀어버리는 결과로 100% 전이된 것이다.


치이이익—!


갑자기 강 수사관의 특수 단안경 렌즈 주변의 공기가 급격히 팽창하며 강한 정전기 스파크와 함께 미세한 열풍이 불어 닥쳤다.


“엇……?!”


강 수사관이 신음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특수 단안경 스크린에 심각한 왜곡 노이즈가 발생하며 복원 중이던 pale blue 스캔 광선이 일시에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장비 내부의 기어들이 비정상적인 전압 상승으로 인해 과열 경고음을 울렸다.


“서지(Surge) 현상인가? 폭발 잔해의 잔여 열기 밀도가 너무 높아 장비에 과부하가 걸리는군.”


강 수사관은 미간을 찌푸리며 단안경을 수동으로 오차 보정하기 시작했다. 그는 노련한 기술자답게 일시적인 노이즈에 당황하지 않고, 장비의 감도를 한 단계 낮추어 환경적 간섭을 필터링해 나갔다.


세현은 가슴을 부여잡고 마른 침을 삼켰다. 미세한 조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장 보조기의 피스톤이 격렬하게 흔들리며 입안 가득 비린 핏물이 고였다. 가슴 주변의 피부가 까맣게 괴사한 부위가 바늘로 찌르는 듯이 아려왔다.


그 사이, 강 수사관은 장비의 오차 보정을 완료했다.


“아니, 단순한 환경 노이즈가 아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인과를 비틀어 내 장비를 교란했어. 잔여 흔적이 가리키는 방향은…….”


강 수사관의 기계 돋보기가 수동 필터를 거치며 다시 차갑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필터가 완료되는 순간, 공기 중에 남아 있던 세현의 아포칼립스 고유 주파수 대역의 극히 일부가 강 수사관의 수집 장치에 선명하게 기록되었다.


띠리릭—.


강 수사관의 기록첩 측면에 장착된 교단 표준 신호 분석기 화면에, 붉은색 주파수 그래프가 기묘한 궤적을 그리며 박제되었다.


“찾았다. 이 이질적인 주파수의 시발점.”


강 수사관의 특수 수사용 단안경의 렌즈가 회전하며, 마침내 공중에 아른거리는 핏빛 실선의 마지막 잔여 궤적을 포착해 냈다.


그 궤적의 끝은 세현과 태윤이 숨어 있는 어두운 철골 창고의 사각지대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강 수사관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세현이 숨은 어둠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똑바로 고정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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