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류하는 불꽃
적안의 거대한 두 주먹이 백색의 화염을 뿜어내며, 세현의 왼쪽 가슴에 이식된 아포칼립스를 향해 정면으로 쇄도했다.
빗방울이 그의 주먹에 닿기도 전에 하얗게 증발하며 비명을 질렀다. 대기를 찢고 덮쳐오는 열기는 제18 구역의 얼어붙은 밤을 단숨에 녹여버릴 듯 포악했다. 붉은 화염의 오라를 두른 적안의 얼굴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양 눈에 박힌 기계 의안이 광기 어린 붉은빛을 뿜어내며, 기괴한 기계음을 냈다.
“뒈져라, 유령 놈! 네놈의 그 건방진 심장째로 녹여주마!”
폭사할 듯 다가오는 화염의 주먹 앞에서 세현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수 없었다. 그의 깡마른 체구는 폭우와 진흙탕 속에서 흔들림 없이 서 있었다. 왼손은 바지 주머니 속의 은방울꽃 펜던트를 터질 듯이 움켜쥐고 있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그의 뇌 신경을 타고 흐르는 극심한 연산 과부하의 통증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웅웅웅—!
세현의 왼쪽 가슴에서 아포칼립스 보조기가 비명을 지르며 고압의 붉은 증기를 뿜어냈다. 최영감이 제련해 준 신성 저항 나노 합금 코팅막이 적안의 열기에 반응하여 청청한 청색 빛을 미세하게 발산했다. 하지만 이대로 초고열의 주먹을 정면으로 허용한다면, 코팅막이 아무리 단단하다 한들 내부의 미세 기어들이 마찰열로 녹아내려 심장이 파열될 것이 뻔했다.
‘불꽃은 실선을 태운다.’
세현은 냉철하게 머리를 굴렸다. 적안의 화염 오라는 너무나도 강력하여, 그 화염 자체를 인과의 실선으로 묶으려 들었다간 실선이 닿기도 전에 불타 끊어질 터였다. 실선이 끊어질 때마다 세현의 영혼에 가해지는 역류 내상은 치명적이었다. 이미 방화 대원들을 묶느라 12줄의 실선 한계를 거의 다 소모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화염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적안이 내지르는 ‘타격의 결과’를 다른 좌표로 재배치하는 것.
세현의 왼쪽 눈에 착용된 황동빛 단안경 ‘모노클’이 쉴 새 없이 회전하며 주변 공간의 기결(氣結)을 붉은 격자망으로 가시화했다. 빗물과 연기가 뒤섞인 천막촌 폐허 뒤편, 적안 일당이 이 구역을 초토화하기 위해 타고 온 대형 연료 수송 트럭의 거대한 실루엣이 포착되었다. 트럭의 거대한 연료 탱크 내부에는 산성 연료가 가득 차 있었고, 그 주변의 기류는 아주 미세한 불꽃 하나만으로도 대폭발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원인은 저 주먹의 충격. 결과는 저 트럭의 약실.’
세현은 입가에 고인 핏방울을 삼키며 손가락 끝을 미세하게 까딱였다. 그의 영혼에서 흘러나온 마지막 투명한 실선 한 줄이 빗속을 뚫고 날아가 적안의 주먹 끝과 뒤편 연료 트럭의 탱크 주입구를 일직선으로 연결했다.
적안은 그것도 모른 채 승리를 확신하며 세현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내리꽂았다.
“하하하! 끝이다!”
*콰아아아앙—!*
적안의 화염 주먹이 세현의 왼쪽 가슴, 아포칼립스 보조기의 외벽막에 격돌했다.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백색의 화염이 사방으로 폭발하며 대지를 그을렸다. 옆에서 검을 쥐고 대기하던 강태윤이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눈을 가릴 정도의 눈부신 광휘였다.
하지만 세현의 몸은 단 한 발자국도 뒤로 밀려나지 않았다.
나노 합금 코팅막이 적안의 화염 열기를 물리적으로 굴절시키며 일시적으로 버텨내는 그 찰나의 순간, 세현은 손가락 끝을 강하게 튕겼다.
“타격 재배치(Strike Relocation).”
적안의 주먹이 내뿜은 무지막지한 운동 에너지와 초고열의 폭발력이 세현의 가슴을 관통하는 대신, 연결된 실선을 타고 공간의 왜곡을 거쳐 뒤편의 대형 연료 수송 트럭으로 고스란히 전이되었다.
*쿠구구구구—!*
적안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신이 내지른 주먹의 묵직한 타격감이 세현의 몸이 아닌, 엉뚱한 허공 너머로 사라지는 기묘한 감각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감각이 끝남과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앙—!!!*
천막촌 뒤편에서 하늘을 뒤흔드는 대폭발이 일어났다. 대형 연료 수송 트럭이 적안의 화염 주먹의 충격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연쇄 폭발을 일으킨 것이었다. 화염은 순식간에 거대한 버섯구름을 만들며 사방으로 휘몰아쳤고,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방화 부대원들은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한 채 거대한 화염 폭풍에 휩쓸려 일시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어…… 어째서 저기가……!”
적안이 고개를 돌려 폭발 현장을 바라보며 절규했다. 자신이 이끌고 온 부대와 장비가 단 한 순간에 완벽하게 소멸했다.
하지만 충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인과율의 법칙은 냉혹했다. 세현이 재배치한 타격의 결과로 일어난 연료 트럭의 대폭발, 그 폭발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적안 본인의 화염이었다. 폭발의 충격파와 함께 뿜어져 나온 파괴적인 열화상의 인과가, 실선의 궤적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적안 본인의 신체로 강제 귀환하기 시작했다.
“끄악……! 아, 아악! 뜨거워! 내 몸이……!”
적안이 자신의 가슴을 쥐어짜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신체 경화 오라가 아무리 단단하다 한들, 내부에서부터 역류하는 인과의 불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가 스스로 뿜어냈던 백색의 화염이 그의 혈관과 기계 의안 내부에서부터 역류하여 전신을 태워 들어가기 시작했다.
양 눈의 기계 의안이 과열로 인해 펑펑 터져 나가며 붉은 불꽃을 토해냈다. 적안은 온몸이 불타오르는 고통 속에서 비틀거리다, 결국 세현의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전신이 하얗게 타들어 가며 재가 되어 흩어지는 비참한 자멸의 풍경이었다.
세현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쓰러진 적안을 내려다보았다. 가슴의 아포칼립스가 과열되어 격렬하게 진동하고 있었고, 입안 가득 비린 핏물이 고였다. 하지만 지금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아포칼립스의 동력을 유지해야만 했다.
세현은 떨리는 오른손을 뻗어 적안의 타들어 가는 가슴팍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수명 정수 흡수(Life Essence Absorption).”
적안의 소멸하는 육체와 부서진 기계 의안의 잔해 속에서 영롱하고 푸른빛의 아지랑이들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적안이 하층민들에게서 강탈해 축적해 두었던 순수한 생명 에너지, 즉 수명 정수였다.
푸른 아지랑이들은 세현의 손가락 끝 실선을 타고 청아하게 빨려 들어가, 그의 왼쪽 가슴에 박힌 아포칼립스 코어로 스며들었다.
[수명 충전 완료: 72시간 추가 확보.]
웅웅웅— 소리를 내며 과열되었던 아포칼립스의 피스톤이 서서히 진정되고, 차가운 냉각 증기가 흘러나오며 세현의 가슴 주변 괴사 통증을 임시로 마비시켰다. 꺼져가던 생명의 불꽃이 다시금 푸르게 타오르는 감각에 세현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강태윤이 검을 거두며 세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완벽한 승리입니다, 주군. 저들의 화력이 우리를 향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현이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적안의 육체가 완전히 재가 되어 사라진 잿빛 하늘 위로, 갑자기 기괴한 전자기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이잉—!*
슬럼가의 빗소리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사이렌 소리가 제18 구역 전체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하늘 높은 곳에서 붉은색 홀로그램 광선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거대한 그물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경보가 아니었다. 교단 제18지부의 지배자, 수석 집행관 로건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하늘을 가득 메운 붉은 홀로그램 장막 위로, 로건의 차가운 안광을 형상화한 거대한 문양과 함께 피비린내 나는 글자들이 슬럼가 전체를 위압적으로 뒤덮기 시작했다.
[제18 구역 전원 필독: 수명 강제 징수령 선포.]
[반역자의 흔적이 감지됨에 따라, 이 시간부로 제18 구역의 모든 출입을 통제하며 주민 전원의 수명을 즉시 강제 압류한다.]
붉은 경보의 빛이 세현의 얼굴과 빗물 고인 지면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지부장 로건의 직접적인 토벌 표적이 되었음을 알리는 붉은 낙인이, 슬럼가의 하늘에 거대하게 새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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