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의 비명
산성비가 내리는 제18 구역 ‘녹슨 사슬 거리’의 밤은 언제나 비린 철분 냄새로 가득했다. 하늘을 뒤덮은 시커먼 매연 사이로 간간이 번뜩이는 백은빛 홀로그램만이 이곳이 신성 제국의 가장 밑바닥이자 버려진 하층민들의 수용소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치이이익.
낡은 시계탑 지하실의 한구석, 조잡하게 기워진 전선들 사이로 붉은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민세현은 가슴을 움켜쥔 채 거친 숨을 내쉬었다. 왼쪽 가슴에 깊숙이 박힌 검고 투박한 기계 장치, 심장 보조기 ‘아포칼립스’가 불규칙한 박동을 토해내며 붉은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기어 장치가 제 살을 짓이기며 돌아갈 때마다 척추를 타고 극심한 통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세현은 고통에 신음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의 시선은 방 한가운데에 놓인 낡은 기계식 인큐베이터로 향해 있었다.
“……서윤아.”
유리관 너머에는 선천적 수명 결핍증을 앓고 있는 여동생, 민서윤이 누워 있었다. 밤하늘을 닮은 흑발을 늘어뜨린 채,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14세의 소녀. 서윤의 가냘픈 손목에 채워진 수명 측정기는 이미 붉은색으로 점멸하며 한 자릿수의 숫자만을 띄우고 있었다.
남은 수명, 앞으로 단 30분.
삐이이이이—!
갑작스레 인큐베이터의 경고음이 지하실의 정적을 찢었다. 서윤의 가슴이 격렬하게 들썩이며 호흡 발작이 시작되었다. 창백한 입술 사이로 거친 가래 끓는 소리가 새어 나왔고, 수명 측정기의 숫자가 미친 듯이 깎여 내려갔다.
“안 돼……!”
세현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인큐베이터 앞으로 기어갔다. 서윤을 살릴 수 있는 고밀도 배터리나 수명 칩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다. 수명 고갈자들의 종착지인 이 슬럼가에서, 수명은 곧 목숨이자 유일한 화폐였다. 돈이 없는 하층민들은 하루 16시간의 노역을 바쳐 겨우 몇 시간의 생명을 구걸하는 연명 상태에 불과했다. 그리고 세현에게는 지금 단 한 장의 수명 칩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세현은 아포칼립스 보조기의 강제 제어 레버를 움켜쥐었다. 가슴 속 기계 회로가 웅웅거리며 그의 체내에 얼마 남지 않은 순수 생명력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세현이 서윤의 창백한 손을 꽉 쥐자, 그의 가슴에서부터 투명하고 붉은빛을 띤 반투명한 실선이 뻗어 나갔.
그것은 세현의 생명선이자, 두 사람의 운명을 하나로 묶는 ‘수명 공유의 실선’이었다.
웅웅웅—!
붉은 실선이 서윤의 가슴으로 연결되는 순간, 세현의 손목 측정기에 찍혀 있던 수명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12시간]…… [8시간]…… [5시간]…….
자신의 생명력이 실선을 타고 서윤에게 전이될 때마다, 세현의 영혼이 통째로 뜯겨 나가는 듯한 극심한 파열 통증이 전신을 지배했다. 눈앞이 하얗게 번뜩였고, 뼛속까지 타들어 가는 열화상이 혈관을 타고 번졌다. 남의 상처와 고통을 이어받을 때마다 심장이 파열되는 이 저주받은 몸뚱이는, 동생을 구하기 위한 자가 희생 앞에서 가차 없이 비명을 질렀다.
“으윽……! 하아, 흑……”
세현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비명을 참아냈다. 가슴의 아포칼립스가 과열되어 붉은 증기를 폭발적으로 내뿜었다. 피스톤이 제 궤도를 벗어나 금속 마찰음을 내며 가슴뼈를 때렸다. 내부 기어가 마모되며 발생하는 쇳가루가 혈관으로 스며드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서윤의 호흡은 서서히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거칠던 들숨과 날숨이 차분해졌고, 그녀의 손목 측정기 숫자가 다시 녹색으로 돌아오며 안정권으로 진입했다.
[24:00:00]
정확히 하루 분량의 수명. 서윤의 생명을 24시간 동안 유지해 줄 최소한의 시간이 확보된 것이다.
실선이 끊어짐과 동시에 세현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컥……! 쿨럭!”
입안 가득 비린 맛이 차오르더니, 검붉은 피가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왼쪽 가슴 주변의 혈관들이 까맣게 괴사해 가는 것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아포칼립스 보조기는 붉은 경고등을 깜빡이며 겨우 멈추지 않을 만큼만 불규칙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세현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손목 측정기를 확인했다.
[02:14:32]
남은 수명, 겨우 2시간 남짓.
당장 몇 시간 내에 고순도의 수명 에너지를 주입하지 않는다면, 서윤이 눈을 뜨기도 전에 세현 자신의 심장이 먼저 멈출 터였다. 세현은 낡은 서랍장을 뒤져 바닥을 드러낸 양철 통을 확인했다. 그 안에는 먼지 쌓인 수명 칩 [1시간 권]짜리 몇 개만이 쓸쓸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 싸구려 칩들로는 아포칼립스의 가혹한 마모를 막을 수도, 전력을 유지할 수도 없었다.
서윤의 인큐베이터를 하루 더 가동하고 자신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소한 수명 칩 [24시간 권] 이상의 고액권이나 집행관들이 소지한 고순도 수명 결정 조각이 필요했다.
“……시간이 없어.”
세현은 낡은 회색 후드 코트를 걸치며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가슴의 통증을 억누르기 위해 백 노인이 조제해 준 마취 비약을 한 모금 들이켰지만, 혀끝이 마비되는 느낌만 들 뿐 가슴의 균열은 메워지지 않았다. 수명 결정을 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만 했다. 집행관들의 사냥을 피하며 슬럼가의 암시장을 뒤지든,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하든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때였다.
철컥, 콰아앙—!
지하실 위층, 낡은 가옥의 정문이 거칠게 부서지는 소리가 고요한 지하실을 뒤흔들었다.
“이 더러운 쥐새끼들! 당장 기어 나오지 못해!”
비열하고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산성비 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세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 목소리를 잊을 리가 없었다. 엘리시온 교단 제18지부의 악랄한 세금 징수원, 배두식 계장이었다.
뒤이어 지상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슬럼가 주민들의 처절한 비명과 울음소리가 지하실 벽을 타고 스며들었다. 배두식이 이끄는 하급 경비병들이 주민들의 수명을 무자비하게 강탈하며, 마침내 세현의 가옥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세현은 가슴의 아포칼립스를 꽉 움켜쥐었다. 기계 심장이 다시 한번 불길한 예감과 함께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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