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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자의 목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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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최고급 펜트하우스에 입주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넓고 황량한 대리석 거실에는 여전히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겉보기에는 세련된 인테리어와 수입 가구들로 가득 찬 천상의 공간이었지만, 한채원에게 이곳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올가미가 발목을 죄어오는 차가운 감옥과 같았다.


이유는 단 하나, 이 집의 모든 살림을 총괄하는 가사 집사 최영숙 때문이었다. 최 집사는 태신그룹의 실세이자 이준의 친모인 강서현 이사장이 심어놓은 완벽한 감시자였다. 그녀는 매일 아침 침대 시트의 주름을 집요하게 검사했고, 세탁물에 묻은 미세한 흔적을 살폈으며, 쓰레기통에 버려진 종이 한 조각마저 분석하려 들었다. 서재 책상 밑에 숨겨진 도청기는 이준의 기지 넘치는 백허그 연기로 겨우 위기를 넘겼지만, 언제 또 다른 덫이 작동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채원은 드레스룸의 전신거울 앞에 서서 차가운 그레이 톤의 오피스 수트 깃을 단정하게 정리했다. 손목에 찬 스마트 워치 ‘아우라-V’의 화면이 매끄럽게 빛나고 있었다. 주머니 속에서 손가락 끝으로 부친의 유품인 클래식 포켓 워치를 매만지던 채원은 문득 사흘 전 첫날밤의 감각을 떠올렸다.


최 집사의 눈을 속이기 위해 이준이 자신을 책상 위로 밀착시키며 안았을 때,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서 느껴지던 폭등한 심박수. 그것은 단순한 비즈니스 연기였을까, 아니면 가문의 죄악을 숨기기 위한 기만자의 초조함이었을까.


대표이사실 서랍 깊은 곳에서 발견했던 부친 한진우 회장의 타살 정황 처방전 사본이 머릿속을 스쳤다. 포타슘 클로라이드. 심장마비를 위장한 독살. 그리고 그 배후에 서 있는 강서현 이사장. 채원은 이준 역시 그 진실을 알고 방조했거나 묵인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단 한 순간도 지울 수 없었다.


‘당신이 원수든, 동맹이든 상관없어. 내 앞길을 가로막는 감시자의 눈부터 멀게 만들겠어.’


채원의 눈빛이 유리 가시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스마트 워치 ‘아우라-V’를 가볍게 터치해 보안 폴더를 열었다. 사설 보안업체 대표 남궁혁이 보내온 극비 암호 파일이 화면에 떠올랐. 최 집사의 인생을 송두리째 쥐고 흔들 수 있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 바로 그녀의 외아들에 대한 조사 보고서였다.


최영숙의 유일한 아들인 20대 후반의 청년은 불법 사설 도박 사이트에 빠져 수십억 원의 사채 빚을 지고 있었다. 사채업자들에게 신변 위협을 당하며 하루하루 목숨을 구걸하는 처지. 강서현 이사장에게 평생 기계처럼 충성하며 모은 돈은 이미 아들의 도박 빚으로 전부 탕진한 상태였다.


채원은 입꼬리를 서늘하게 올렸다. 사냥개의 목줄을 쥘 완벽한 쇠사슬이 준비된 셈이었다.


그날 밤, 이준이 태신그룹의 야간 기조실 회의로 자리를 비운 사이, 채원은 서재실의 마호가니 책상 뒤에 위엄 있게 앉았다. 그리고 최 집사를 조용히 서재로 호출했다.


달컥.


최 집사가 평소처럼 차가운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서재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채원의 앞에 서서 고개를 가볍게 조아렸다.


“부르셨습니까, 마님. 야식이라도 준비해 드릴까요.”


“야식은 필요 없어요, 최 집사.”


채원은 은은한 향이 풍기는 차를 한 모금 들이켜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최 집사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미세한 호흡의 변화, 눈동자의 흔들림을 포착하는 채원의 ‘인간 거짓말 탐지’ 능력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최 집사님이 이 펜트하우스에 오신 이후로 집안 구석구석이 아주... 샅샅이 관리되고 있는 것 같아서 고마워서 불렀어요. 어머님께 매일 밤 올리는 보고서 작성하기도 고되실 텐데 말이죠.”


최 집사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수축했다가 이내 굳어졌다.


“도련님과 마님을 모시는 것은 제 의무입니다. 이사장님께 드리는 보고 역시 가문의 안녕을 위한 일상적인 격식일 뿐입니다.”


“격식이라...”


채원은 나직하게 읊조리며 마호가니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남궁혁이 보내온 두꺼운 서류 뭉치와 사채업자들에게 감금당해 피투성이가 된 채 울부짖고 있는 젊은 남자의 사진 몇 장을 테이블 위에 툭 던져놓았다.


서류 봉투 겉면에는 붉은색 글씨로 ‘대왕저축은행 사채 채무 변제 독촉장’과 ‘불법 도박 사이트 판결문’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최 집사의 시선이 사진과 서류에 닿는 순간, 그녀의 단단했던 포커페이스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차갑게 굳어 있던 얼굴이 순식간에 흑빛으로 변했고, 서류를 집어 드는 손끝이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것이 어찌 마님의 손에...”


최 집사의 목소리가 거칠게 갈라졌다. 채원은 그 모습을 아주 냉혹하고 주체적인 경영자의 눈빛으로 응시했다.


“최 집사님의 하나뿐인 아들이더군요. 불법 도박 사이트에 손을 댔다가 대왕저축은행의 어둠의 라인에 걸려 수십억의 사채 빚을 졌죠. 지금 영등포 사채업자들의 아지트에 감금되어 손가락이 잘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나요?”


“마님... 제발...”


최 집사는 본능적으로 협박을 감지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랜 세월 재벌가에서 살아남은 노련한 하수인이었다. 그녀는 이내 눈빛을 독하게 빛내며 채원을 쏘아보았다.


“이 사실을 이사장님께 알리신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전 이사장님의 사람입니다. 이사장님께서 제 아들의 목숨을...”


“강서현 이사장님이 구해줄 거라고 믿나요?”


채원은 피식 웃으며 비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스마트 워치 ‘아우라-V’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화면을 터치해 남궁혁이 태신그룹 기조실 서버에서 백업해 둔 과거의 극비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강서현 이사장의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고요한 서재실을 가득 채웠다.


[“쓸모를 다한 개는 더 이상 사료를 줄 필요가 없어. 최 집사 아들 건은 적당히 꼬리 자르고 내사 종결시켜. 가문에 흠집이 나선 안 되니까.”]


최 집사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자신의 평생 바친 충성의 대가가 어둠 속에서 어떻게 버려질 예정이었는지, 그 잔혹한 실체가 아들의 비명 섞인 현실과 겹쳐지며 그녀의 영혼을 난도질했다.


“강서현 이사장님은 돈과 지분만을 사랑하는 괴물이에요.”


채원은 차가운 차를 한 모금 더 마신 뒤,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맑은 파열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당신 아들의 사채 빚 30억 원. 은성섬유의 비상 자금 일부를 융통해 내가 오늘 밤 안으로 전액 대위변제해 주죠. 아들의 신변 역시 남궁혁 대표의 경호팀을 보내 안전하게 서울 외곽의 안전가옥으로 빼돌려 주겠어요.”


최 집사는 호흡을 멈췄다. 눈앞에 있는 20대의 젊은 마님이 단순히 자신을 협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파멸과 구원책을 동시에 쥐고 자신을 사냥하려 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건이 무엇입니까...”


최 집사의 목소리에서 오만함은 완전히 사라지고, 비굴한 굴복만이 남았다.


“아주 간단해요.”


채원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최 집사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지금 이 시간부로 당신의 진짜 주인은 나예요. 강서현 이사장에게 보내는 보고서에는, 나와 이준 씨가 매일 밤 뜨거운 밤을 보내며 완벽한 부부로 지내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보고하세요. 펜트하우스 내부의 도청 장치들은 우리가 역정보를 흘리는 교란 무기로 쓸 테니까, 당신은 그저 내 지시대로 움직이면 돼요.”


최 집사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아들의 목숨줄과 평생의 충성이 짓밟힌 잔인한 현실 앞에서,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무릎이 닿는 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지시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제 아들만... 제 아들만 살려주십시오, 마님.”


최 집사가 눈물을 흘리며 채원의 구두 앞바닥에 고개를 조아리는 순간이었다.


스르륵.


서재실의 육중한 이중 목재 문이 조용히 열렸다.


언제 돌아왔는지, 완벽한 핏의 남색 수트 차림을 한 강이준이 문가에 서 있었다. 그의 다친 팔 상처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무결한 상태였고, 한 손에는 서류 가방이 들려 있었다.


이준은 무릎을 꿇고 오열하는 최 집사와, 그 앞에서 확성기를 쥔 여왕처럼 오만하고 차가운 아우라를 풍기며 앉아 있는 채원을 묵묵히 응시했다. 서재실 안에는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고, 이준의 깊고 서늘한 눈빛이 채원의 냉혹하고 주체적인 해결 방식을 뚫어지게 조준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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