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밀고와 인질극
독고성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은밀히 타오르던 아지트의 공기가 단숨에 얼어붙었다.
벽난로의 따스한 온기도, 독고린이 가져온 보양 탕약의 은은한 향기도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방 안을 채운 것은 오직 뼈를 시리게 만드는 침묵과 그 너머에서 피어오르는 불길한 예감뿐이었다.
“독고명…… 그자가 결국 선을 넘었군.”
백서진은 가슴팍의 용골 심장 제어기를 지그시 누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제어기의 톱니바퀴가 째깍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차갑게 울렸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설하린의 청청색 눈동자가 서슬 퍼런 검기를 뿜어내며 독고성을 향했다.
“독고 대방주,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독고명이 제 이복오빠인 설무진과 손을 잡았다고요?”
독고성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화려한 여우 모피 코트 자락에 묻은 눈가루가 바닥에 떨어져 녹아내렸다.
“그렇소, 설가 소저. 내 사촌 형인 독고명은 오래전부터 상단의 대방주 자리를 탐내고 있었소. 내가 백 의원님을 은밀히 돕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이를 빌미로 나를 실각시키려 설무진과 야합한 것이 틀림없소. 하지만 더 끔찍한 소식이 있소.”
독고성의 시선이 설하린의 얼굴에 머물렀다. 그 눈빛에 담긴 깊은 우려에 하린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무진은 독고명뿐만 아니라…… 소저의 가장 가까운 심복마저 매수했소.”
“내 심복이라니요? 그게 무슨…….”
“마평(馬平)이오. 소저를 어릴 때부터 보좌해 온 전속 집사 마평이 설무진의 금전에 눈이 멀어 당신들의 행적을 쫓고 있었소.”
쿠르릉!
하린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얼음 장벽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이 일었다. 그녀의 은백색 머리칼이 분노와 절망으로 가정하게 흔들렸다.
“마평이…… 그자가 배신을 했다고? 그럴 리 없어. 그는 내 어머니가 작고하시기 전부터 나를 돌봐준 사람이다. 가문의 냉혹함 속에서 유일하게 내 편을 들어주던 자였단 말이다!”
하린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녀의 왼손 약지에 새겨진 신룡의 혈맹 반지가 그녀의 극심한 정서적 혼란에 반응하여 푸른 한기를 폭발적으로 뿜어냈다. 방 바닥이 순식간에 하얀 성에로 뒤덮였다.
서진은 흔들리는 하린의 어깨를 조용히 감싸 안았다. 반지를 통해 전달되는 그녀의 찢어지는 듯한 배신감과 슬픔이 서진의 심장 제어기로 고스란히 흘러들었다. 서진은 그녀의 차가운 손을 꼭 쥐며 독고성을 바라보았다.
“마평이 설무진에게 무엇을 넘겼습니까, 독고 방주?”
독고성의 입술이 무겁게 열렸다.
“설가 소저의 개인적인 습관, 그리고 비밀 도주 경로…… 무엇보다, 백 의원님이 피난민들과 제자 동이(東一)를 대피시켰던 설산 뒤편의 비밀 약방 위치요.”
“……!”
서진의 안광이 일순간 날카롭게 좁혀졌다.
동이. 가난한 약초꾼 소년이자, 서진의 의술을 진심으로 동경하며 따르던 그의 유일한 제자였다. 의원이 불타 무너질 때도 목숨을 걸고 서진의 연구 일지와 양부의 유품을 챙겨 탈출했던 충직한 아이였다. 그런 동이가 숨어 있는 장소가 배신자에 의해 노출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때였다.
쾅! 쾅! 쾅!
아지트 침실의 묵직한 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독고 상회의 호위 무사 하나가 창백한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붉은 피가 말라붙은 검은 Parchment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대방주님! 외곽 경비조가 설산 샛길에서 습격당한 피난민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시신의 품에 이 협박장이 꽂혀 있었습니다!”
서진은 무사가 건넨 종이를 낚아채듯 뺏어 들었다. 거칠고 비열한 필체로 적힌 글귀가 서진의 시야에 들어왔다.
[백 의원, 네놈이 살고 싶어 거상의 품에 숨었느냐? 네 영리한 제자 동이와 약초꾼 년놈들은 지금 내 손아귀에 있다. 다리가 부러져 뼈가 드러나도 네놈의 위치를 끝까지 불지 않더군. 기특해서 다리뼈를 한 번 더 으스러뜨려 주었다. 이 꼬맹이와 피난민들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해가 뜨기 전까지 용골 계곡(龍骨 溪谷)으로 혼자 찾아와라. 만약 다른 놈들을 데려오거나 늦는다면, 이 아이의 사지를 잘라 설산의 늑대 먹이로 던져주마. - 혈랑파 두목 조걸(趙傑)]
“조걸…… 비열한 산적 놈이 기어코 사냥꾼들의 사주를 받았구나.”
침상 뒤편에서 전신에 붕대를 감은 채 누워 있던 바투가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의 단단한 근육이 뒤틀리며 상처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서진아…… 나도 간다. 내 대도로 그 산적 놈의 목을 단숨에 쪼개버리겠어. 동이는 내 동생이나 다름없는 녀석이다!”
“누워 있어라, 바투.”
서진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 하지만 그것은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기괴한 고요함이었다. 서진은 다가와 바투의 어깨를 지그시 눌러 침상에 다시 눕혔다. 그의 손끝에서 흐르는 미세한 용혈의 기운이 바투의 상처를 일시적으로 진정시켰다.
“너는 중상을 입었다. 지금 움직이면 마맥이 완전히 파괴될 거다. 내 제자의 피는…… 내가 직접 닦는다.”
서진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가슴속 용골 심장 제어기가 터질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째깍거리던 정교한 태엽 소리는 이내 사나운 용의 포효와 같은 이명으로 변해 그의 귓전을 때렸다. 양부가 목숨을 걸고 지켜준 삶이었다. 가난한 이들을 고치며 조용히 살아가고자 했던 소박한 꿈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가문의 배신자들과 비열한 사냥꾼들은 그 소박한 평화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설하린이 서진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그 너머에는 마평을 향한 가차 없는 살의가 서려 있었다.
“서진 씨…… 마평은 내가 직접 단죄하겠어요. 내 어리석음이 불러온 화근이니, 내 손으로 가문의 규칙에 따라 처단하겠어요. 그러니 제발…… 혼자 가지 말아요.”
독고린 역시 장난기 어린 미소를 거둔 채, 날카로운 상인의 눈빛으로 서진을 바라보았다.
“용골 계곡은 고대 청룡의 유해가 잠든 금지구역이에요. 조걸과 사냥꾼 연합이 분명 그곳의 지형과 결계를 이용해 의원님을 포획하려 덫을 놓았을 거예요. 제발 지략을 세우셔요.”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에 쥔 피 묻은 협박장을 바라보았다. 동이의 으스러진 다리와 주민들의 비명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웅웅웅ㅡ.
그의 목덜미에 새겨진 붉은 용의 낙인이 맥박 치듯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가슴의 제어기 장치 틈새로 푸른 번개와 붉은 용혈의 아지랑이가 뿜어져 나왔다.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던 청심결의 정신 장벽이 분노의 열기에 녹아내렸다.
그것은 약사 백서진이 아닌, 멸망한 청룡 황실의 마지막 후예로서 느끼는 황실의 역린(逆鱗)이었다.
찌이이익!
협박장을 찢어발긴 서진의 눈동자가 완전히 푸른 청룡의 세로 동공으로 변하며, 그의 전신에서 살의 어린 용의 기운이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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