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숲의 대치
서리 검날 끝에서 떨어진 한 방울의 물방울이 목덜미의 용의 낙인 위로 떨어지는 순간, 기이한 전격이 오두막 내부를 뒤흔들었다.
파지지직!
뜨거운 청룡의 열기와 차가운 설가의 한기가 충돌하며 자욱한 수증기가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두 사람의 단전 속에 잠재되어 있던 극과 극의 혈통적 마력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공명하며 사방으로 기이한 스파크를 튀겼다. 설하린의 청청색 눈동자가 경악으로 크게 흔들렸다. 자신의 애검인 한설검이 이토록 뜨겁게 반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승님!”
“서진아!”
하린이 충격으로 주춤하며 검끝을 미세하게 거둔 찰나, 구석에 있던 바투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포효했다. 그는 얼어붙은 양팔의 서리를 기합으로 털어내며 서진의 침상으로 몸을 던졌다. 단단한 근육질의 두 팔로 열병에 신음하는 서진을 단숨에 들쳐멘 바투가 오두막의 허술한 뒷벽을 향해 돌진했다.
쿠구궁!
낙엽송으로 대충 덧대어 있던 뒷벽이 바투의 거구에 부딪혀 사정없이 부서져 나갔다. 매서운 칼바람과 함께 은빛 전나무 숲의 어둠이 그들을 반겼다. 바투는 서진을 짊어진 채, 눈더미를 헤치며 숲속 깊은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잡아라! 이단 용혈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오두막 외부를 포위하고 있던 설가 무인들의 거친 외침이 폭설 속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이내 매서운 눈보라 소리에 묻혀 멀어졌다.
사방이 하얀 눈으로 가득 찬 은빛 전나무 숲.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침엽수림은 거대한 전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시야를 가로막았다. 혹한 대비 장비가 없는 자라면 단 몇 분 만에 동사할 만큼 가혹한 추위가 몰아치고 있었다. 바투는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필사적으로 달렸지만, 서진을 업은 상태에서는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서진은 바투의 등에 업힌 채 가슴을 쥐어짜며 신음했다. 가슴뼈에 이식된 용골 심장 제어기가 거칠게 째깍거리며 붉은 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설산의 한기가 제어기의 외골격을 차갑게 식히려 했지만, 폭주하는 용혈의 뜨거운 열기가 내부에서 부딪히며 전신의 혈관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을 유발했다.
“바투…… 나를 내려놓아라. 이대로는 둘 다 잡힌다.”
“헛소리 마라, 서진아! 아버지가 너를 어떻게 키우셨는데 내가 너를 버리겠느냐!”
바투는 이를 악물고 눈밭을 밟았다. 그러나 그들의 뒤편,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스산한 한기의 기류가 소리도 없이 좁혀오고 있었다. 눈 위에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는 고결한 보법. 일류 무인의 경지에 도달한 설하린이 은빛 실루엣이 되어 그들의 뒤를 쫓고 있었다.
스스스스ㅡ.
바람을 가르는 예리한 소리와 함께 하린의 신형이 허공을 날아올라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은백색 머리칼이 밤하늘의 눈송이와 뒤섞여 신비로운 광채를 발했다. 한설검의 검날에 깃든 차가운 푸른 검기가 은빛 전나무 숲의 어둠을 갈랐다.
“더 이상의 도주는 무의미하다. 이단의 괴수여, 가문으로 순순히 동행해라.”
“이 기집애가 기어코……!”
바투가 분노하며 서진을 전나무 밑 눈더미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는 거대한 대도를 움켜쥐며 야수 광화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전신에 은빛 털이 돋아나며 그의 야성적인 근력이 배가되었다.
“서진이는 내가 지킨다! 야수 격타!”
바투가 대지를 딛고 도약하며 대도를 휘둘렀다. 폭풍 같은 기세로 쏟아지는 참격이 하린의 머리 위를 직격했다. 그러나 하린은 차가운 안색을 유지한 채 한설검을 가볍게 회전시켰다.
빙화검결의 방어 초식이었다. 하린의 주변으로 투명한 만년한설 장벽이 형성되며 바투의 대도를 정면으로 막아섰다.
쾅ㅡ!
귀를 찢는 듯한 쇠소리와 함께 엄청난 빙결 충격파가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바투는 거대한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한기막의 강력한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수십 보를 밀려났다. 그의 단단한 팔뚝 위로 순식간에 하얀 서리가 덮였고, 가벼운 동상 내상이 그의 맥로를 얼려버렸다.
“큭……!”
바투가 고통으로 신음하며 대도를 바닥에 짚었다. 일류 무인과 절정 초입의 격차는 메우기 힘든 장벽이었다. 하린은 바투를 흘겨본 뒤, 시선을 돌려 나무 밑에 쓰러져 있는 서진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의 걸음걸이마다 전나무 밑동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이제 끝이다.”
하린이 한설검을 대지에 강하게 꽂아 넣었다.
쿠구구구구!
서진의 발밑 대지에서 푸르스름하고 단단한 얼음 사슬들이 뱀처럼 솟구쳐 올랐다. 설가의 비기인 ‘얼음 사슬 구속’ 기술이었다. 사슬들은 서진의 양 발목을 순식간에 칭칭 감아쥐며 대지에 고정시켰다. 절대 영도의 한기가 사슬을 타고 서진의 다리로 흘러들어와 그의 혈맥을 얼려버리려 했다.
“아아악……!”
서진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가슴속 제어기가 한기의 침투에 격렬하게 반응하며 톱니바퀴가 삐걱거리는 비명을 질렀다. 심장 과부하 1단계 경고 상태였다. 이대로 사슬의 한기가 심장까지 도달하면, 그의 불완전한 용의 심장은 얼어붙어 영원히 멈출 터였다.
절체절명의 순간, 서진의 뇌리 속에서 생존에 대한 갈망이 번개처럼 불타올랐다.
‘이대로 허무하게 죽을 순 없다. 아버지가 남겨주신 삶을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서진은 이를 악물고 단전에 잠재되어 있던 청룡의 용혈 마력을 억지로 쥐어짜 올렸다. 뜨겁고 사나운 마력이 그의 시신경을 향해 급속도로 집중되었다.
‘용안 개안 (龍眼 開眼)!’
서진이 눈을 번쩍 떴다.
순간, 그의 검은 눈동자가 찬란한 푸른빛의 세로 동공으로 찢어지며 기이하게 빛났다. 세상의 모든 색채가 사라지고 흑백의 무채색으로 변했다. 오직 공기 중에 흐르는 미세한 마력의 흐름과 궤적만이 푸르고 붉은 실선이 되어 선명하게 시야에 투영되었다. ‘마력 흐름 간파’ 능력이 활성화된 것이었다.
서진의 용안은 자신의 발목을 묶고 있는 얼음 사슬의 내부를 꿰뚫어 보았다. 사슬의 단단한 얼음벽 표면 아래, 마력이 교차하며 결계를 유지하는 핵심 맥로(脈路) 세 군데가 붉은 점이 되어 깜빡이고 있었다. 저곳을 파괴하면 사슬은 스스로 무너진다.
서진은 떨리는 손으로 가슴팍 품속의 침통을 열어 ‘백초의 은침’ 세 대를 꺼내 들었다. 안구에 극심한 피로와 통증이 몰려오며, 그의 눈가에서 붉은 피눈물이 창백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대가였다.
“하아아앗!”
서진이 손가락 끝에 미세한 용혈의 마력을 실어 은침 세 대를 동시에 날렸다.
팅! 팅! 팅!
은침들은 정확하게 얼음 사슬의 붉은 맥로 노드를 관통했다. 맑은 타격음과 함께, 단단해 보였던 푸른 얼음 사슬들이 순간적으로 흐름을 잃고 유리 조각처럼 허무하게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자유를 찾은 서진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무릎을 꿇었다.
“……!”
하린의 얼굴에 처음으로 완벽한 경악의 빛이 서렸다. 무공도 제대로 모르는 시한부 약사가, 침 몇 개만으로 설가의 비전 결계 사슬을 완벽하게 해제한 것은 그녀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네놈…… 대체 정체가 뭐냐?”
하린은 본능적인 위협을 느끼며 한설검을 고쳐 잡았다. 그녀의 검날 끝에 다시 한번 파괴적인 빙결 참격의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면에서 서진을 단숨에 베어버릴 기세였다.
서진은 피눈물이 흐르는 푸른 용안으로 하린의 전신을 똑바로 응시했다. 용안의 시야 속에서, 하린의 아름다운 신체 내부를 흐르는 마력의 궤적이 입체적으로 투영되었다. 그리고 서진은 그녀의 단전과 심장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왜곡을 포착했다.
하린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극순수의 한기 마력 뒤편으로, 시커멓게 얼어붙은 한독(寒毒)의 기류가 뱀처럼 뼛속 깊이 뺘져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무리하게 수련한 한빙진경의 부작용이자, 그녀의 생모 설미혜가 남긴 특수한 정령의 체질(하린의 생모가 남긴 체질)로 인해 체내에 축적된 치명적인 독소였다. 한독은 이미 그녀의 심장 초입 맥로를 칭칭 감아쥐고 있었다.
“검을 거두어라, 설하린.”
서진의 창백한 입술 사이로 피눈물과 함께 냉철한 경고가 흘러나왔다.
“너는 지금 나를 죽이기 위해 그 한설검의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고 있겠지. 하지만 네 단전을 봐라. 한독이 이미 심장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네가 내게 최후의 참격을 날리는 순간, 역류한 한독이 네 심장을 먼저 얼려버릴 거다.”
“……!”
하린의 신형이 굳어졌다. 한설검의 검날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가주의 맹목적인 명령을 따르기 위해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갈 셈인가? 네 생모가 물려준 그 체질은 한기를 정제하는 축복이지만, 동시에 조화가 깨지면 스스로를 얼려 죽이는 저주다. 나를 베기 전에, 네가 먼저 얼어 죽는다는 뜻이다.”
서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설산의 칼바람을 뚫고 하린의 귓가에 벼락처럼 내리쳤다. 가문 내부에서도 오직 자신만이 숨죽여 참아왔던 치명적인 고통과 비밀을, 이 이단 용혈의 청년이 단 한 번의 관찰로 완벽하게 꿰뚫어 본 것이다.
하린의 마음속에 거대한 심리적 동요와 함께 묘한 경외감이 피어올랐다. 검을 쥔 그녀의 하얀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참격을 날려야 할지, 아니면 그의 말을 믿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서진의 가슴속 용골 심장 제어기가 쾅! 하는 기계적 충격음과 함께 완전히 멈춰 섰다. 무리하게 용안을 개안하고 마력을 소모한 대가로, 제어기의 핵심 톱니바퀴가 완전히 파손되어 부서진 것이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멈춘 순간, 서진의 심장 속에 봉인되어 있던 고대 청룡의 폭주하는 용혈 열기가 아무런 제어 장치 없이 전신으로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악!”
서진은 가슴을 움켜쥐며 눈밭 위로 쓰러졌다. 그의 목덜미에 새겨진 용의 낙인이 태양처럼 붉게 타올랐고, 피부 위로 돋아난 용비늘들이 붉은 화염의 빛깔로 물들기 시작했다. 오두막 주변의 모든 눈밭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상상을 초월하는 열기에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자욱한 수증기 장막을 형성했다.
대지를 집어삼킬 듯한 뜨거운 용혈의 열기가 은빛 전나무 숲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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