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적룡의 계시와 심장의 비명
하늘을 가득 메운 검붉은 사슬망이 제단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사마운의 광소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서진의 가슴속 제어기는 차가운 성에와 함께 째깍거림을 멈추기 시작했다. 사슬에 새겨진 고대의 불길한 룬 각인들이 핏빛으로 이글거리며 서진의 용혈 단전을 상시 압박하고 마맥 순환을 마비시키려는 찰나였다.
“서진아!”
바투가 대지를 딛으며 포효했다. 신수나무의 수액과 서진의 용혈 치유가 결합하여 전성기의 무력을 완벽하게 되찾은 그의 야성적인 기공이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거대한 참마도가 허공을 가르며 제단 주변의 거대한 바위 기둥들을 후려쳤다.
콰아아앙!
부서진 바위 파편들이 쏟아져 내리며 일행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사슬망의 궤적을 미세하게 비틀었다. 동시에 당예리가 까칠한 비명을 지르며 소매 속에서 보랏빛 독나비 주머니들을 허공으로 내던졌다.
“이 비열한 사냥개 놈들이 감히 내 연구 대상을 건드려? 만천화우, 암흑 부식포!”
펑! 펑! 펑!
허공에서 터진 주머니들이 자욱한 보랏빛 독안개를 형성하며 사마운의 정예 사수들의 시야를 완벽하게 가로막았다. 사냥개들이 안개 속에서 방향을 잃고 짖어대는 사이, 서진은 흐려지는 의식을 청심결로 간신히 붙잡으며 눈동자를 푸른 세로 동공으로 변화시켰다.
‘용안 개안(龍眼 開眼).’
서진의 시야가 순식간에 흑백으로 반전되었다. 낙뢰지 대지에 흐르는 푸른 전류의 궤적들과 하늘에서 떨어질 벼락의 전조 마력이 선명하게 보였다. 서진은 사슬망의 흑철 재질이 전기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성질임을 간파했다.
“바투 형님! 저기 솟아오른 뇌전 석상의 중심부를 참마도로 내리치십시오! 번개를 유도해야 합니다!”
“알았다, 서진아!”
바투가 거구의 신형을 날려 뇌전 석상을 향해 참마도를 강타했다.
쿠르릉! 콰콰콰광!
지중의 뇌전 기류가 자극받아 하늘에서 거대한 푸른 낙뢰가 사마운이 던진 검붉은 사슬망 위로 직접 내리꽂혔다. 고압의 전류가 쇠사슬을 타고 역류하며 사슬에 각인된 붉은 룬들을 순식간에 과부하로 터트려버렸다. 눈을 멀게 할 정도의 눈부신 폭발이 제단을 휩쓸었다.
“끄아아악! 내 사슬망이!”
사마운이 전격의 충격에 뒤로 밀려나며 비명을 질렀다. 벼락의 여파로 제단 주변의 암벽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입니다! 동굴로 피하십시오!”
서진은 하린의 손을 잡고 바투, 예리, 동이와 함께 무너지는 돌더미를 피해 낙뢰지 지하 동굴 내부로 몸을 던졌다. 그들이 동굴 안으로 진입하자마자 거대한 바위들이 낙하하여 입구를 완벽하게 봉쇄했다. 추격자들의 고함 소리가 돌벽 너머로 완전히 차단되었다.
***
어둡고 고요한 동굴 내부. 바깥의 매서운 벼락 소리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동굴 내부에는 기이할 정도의 정적과 함께 미세한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러나 서진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신목에 생명력을 대량 공양한 반동으로 전신이 창백하게 식어 있었고, 가슴뼈 중앙의 용골 심장 제어기는 불규칙하게 덜컹거리며 뜨거운 용혈 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하아…… 하아……”
“서진 씨! 정신 차려보세요!”
하린이 울먹이며 서진을 품에 안았다. 그녀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신룡의 혈맹 반지가 서진의 불규칙한 심박에 반응하여 푸르고 붉은 안개를 내뿜었다. 하린은 단전의 마력이 고갈된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서진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체온을 나누려 애썼다. 그녀의 목덜미에 새겨진 미세한 서리가 서진의 뜨거운 가슴에 닿아 증기가 되어 피어올랐다.
“여긴 대체 어디지? 벼락의 기운이 땅밑으로 흐르는 것 같아.”
당예리가 보랏빛 독나비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동굴 내부를 경계했다. 바투는 참마도를 쥔 채 서진의 앞을 든든하게 가로막았다.
그때, 동굴 깊은 곳의 어둠 속에서 둔탁한 지팡이 소리가 들려왔다.
탁. 탁. 탁.
일행의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하린은 균열이 심화된 한설검을 억지로 쥐며 검을 겨누려 했다.
어둠을 헤치고 나타난 것은 붉은빛이 감도는 가죽 옷을 입고 낡은 수염 지팡이를 짚은 한 노인이었다. 깊은 주름과 대조적으로 그의 눈동자는 살아있는 불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누구냐!”
바투가 웅장한 기세로 외쳤으나, 노인은 그저 껄껄 웃을 뿐이었다. 노인이 지팡이를 가볍게 대지에 두드렸다.
“용언(龍言) - 무(無).”
웅!
그 순간, 하린의 검에 서려 있던 미세한 한기 마력과 바투의 야성 기공이 순식간에 물처럼 부드럽게 녹아내리며 무력화되었다. 화경(化境) 극성의 위압이 동굴 전체를 지배했다. 그 압도적인 경지에 하린과 바투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허허, 멸망한 줄 알았던 청룡의 후예가 기어코 싹을 틔웠구나.”
노인의 눈동자가 일시적으로 세로로 찢어지며 붉은 광채를 발했다. 늙은 적룡(赤龍)이었다.
적룡은 천천히 걸어와 무릎을 꿇고 쓰러져 있는 서진의 앞으로 다가왔다. 하린이 온몸을 떨며 서진의 앞을 막아서려 했으나, 적룡이 가볍게 손짓하자 그녀의 신형이 부드러운 기류에 밀려나 뒤로 물러섰다.
“걱정 마라, 어린 계집아. 내 동족의 마지막 불꽃을 꺼트릴 마음은 없으니.”
적룡은 서진의 목덜미에 새겨진 푸른 용의 낙인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그리고 서진의 가슴뼈 중앙에서 삐걱거리는 용골 심장 제어기를 손가락으로 톡 두드렸다. 쇠붙이와 톱니바퀴가 기이한 공명음을 내며 일시적으로 고요해졌다.
“이것은 단순한 심장 결함이나 질병이 아니다.”
적룡의 깊고 장엄한 목소리가 동굴 벽을 타고 무겁게 메아리쳤다.
“……무슨 뜻입니까?”
서진이 간신히 각혈을 참아내며 물었다.
“네놈의 그 불완전한 심장은, 태초에 스스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청룡의 거대한 신성을 찢어 봉인해 둔 흔적(봉인된 신성의 흔적)이다. 필멸자의 육체가 그 거대한 신성을 감당하지 못해 심장이 반파된 것처럼 삐걱거리는 것이지.”
그 진실은 서진의 뇌리를 강하게 때렸다. 자신이 평생 시한부의 고통을 겪으며 살아온 이유가, 전생에 스스로 신성을 봉인했던 흔적이었다니.
“하지만 지금 네 심장은 한계에 달했다. 특히 네놈들이 가려는 남방의 뜨거운 화염 기운은, 네 단전의 용혈을 과열시켜 심장을 안에서부터 폭사하게 만들 것이다.”
적룡의 냉혹한 경고에 하린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럼 서진 씨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제가…… 제 한기로 계속 식혀주면 되잖아요!”
하린이 서진의 손을 꽉 잡으며 집착 어린 눈빛으로 적룡을 바라보았다. 적룡은 그녀의 반지를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어린 계집의 한기만으로는 남방의 대열염을 감당할 수 없다. 조화가 필요하지. 내면의 마력을 다스릴 사원소 조화술(기초)을 익히고, 이 낙뢰지 너머에 숨겨진 ‘영혼의 얼음 호수’로 향하거라.”
적룡은 지팡이 끝으로 서진의 이마를 가볍게 찔렀다. 순간, 서진의 뇌리 속으로 복잡한 마력 순환 경로와 함께 사원소 조화술의 기초 구결이 흘러들었다. 동시에 노인은 품속에서 낡은 양가죽 지도를 꺼내 서진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곳 투명한 거울 얼음 위에서 서로의 마맥을 완벽하게 동기화하여 첫 번째 얼음의 원소를 완전히 정제하거라. 그래야만 남방의 주작 혈통이 품은 불꽃을 마주했을 때 네 심장이 터지지 않을 것이다.”
적룡은 남방의 차예원과 그녀의 가문이 지닌 주작 혈통에 대한 미세한 힌트를 건네며 은밀하게 경고했다.
“시간이 없다. 성황청의 감시망이 붉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으니.”
말을 마친 늙은 적룡의 신형이 서서히 붉은 아지랑이와 불꽃 송이가 되어 허공으로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그의 초탈하고 신비로운 위엄이 사라진 동굴 안에는 맑은 적염의 열기만이 은은하게 남았다.
서진은 양가죽 지도를 꽉 움켜쥐었다. 심장 제어기의 과열 통증이 적룡의 일시적인 제어로 인해 다소 완화되어 있었다.
“가야 합니다. 영혼의 얼음 호수로.”
서진은 하린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투가 참마도를 다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적룡이 가리킨 지도의 경로를 따라 동굴의 반대편 출구를 향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갱도를 지나 마침내 외부의 빛이 비쳐드는 출구에 당도한 바로 그 순간.
스스스스ㅡ.
갑자기 출구 주변의 대기가 기이하게 일렁이더니, 눈앞에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기문둔갑의 백색 장막이 거대한 장벽처럼 펼쳐지며 일행의 진로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어라? 이건 단순한 안개가 아닌데?”
당예리가 독나비를 날려보려 했으나, 백색 장막에 닿자마자 기류가 흐트러지며 땅으로 떨어졌다.
백색 장막 너머로, 하얀 학창의를 단정하게 입고 깃털 부채를 든 수려하고 지적인 외모의 청년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빛은 깊고 날카로웠으며,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제갈세가의 후계자이자 천재 책사인 제갈혁이었다.
제갈혁이 깃털 부채를 가볍게 흔들며 서진 일행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북해의 이상 마력 반응을 조사하러 왔더니, 기이한 손님들이 갇혀 있었군. 제갈세가의 제갈혁이라 하네. 이 진법을 깨뜨리지 못한다면, 그대들의 여정은 여기서 끝이 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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