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끝자락, 깊어지는 상처
남방의 붉은 모래바람이 썰매 배의 선체를 때릴 때, 서진의 심장은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북해의 만년설이 지배하던 혹독한 국경 지대와는 전혀 다른, 숨이 턱턱 막히는 후끈한 열기가 부서진 선실 틈새로 사정없이 밀려들었다. 뜨거운 공기가 허파로 들어올 때마다 가슴뼈 중앙에 이식된 용골 심장 제어기가 지직거리며 거친 불꽃을 튀겼다. 북해 설가의 상급 빙정석과 융합되어 간신히 보수해 두었던 제어 장치가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에 격렬한 거부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컥……!"
서진은 신음하며 썰매 배 바닥을 짚었다. 입술 사이로 뜨겁고 붉은 용혈이 한 움큼 쏟아져 내렸다. 사방신 천벌의 영혼 반동으로 인해 단전의 마맥은 완전히 비어 있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마력을 전혀 쓸 수 없는 완전한 필멸자의 상태. 그 무방비한 육체에 남방의 열기가 닿자, 심장 제어기가 비명을 지르며 전신의 혈관을 타들어 가게 만드는 혈관 작열통을 유발하고 있었다.
"서진 씨! 무리하지 마세요!"
옆에 누워 있던 설하린이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서진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 역시 천벌 시전의 대가로 마맥이 백 퍼센트 고갈되어 극심한 한독의 오한과 사지 마비성 탈진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하린은 이가 갈리는 오한 속에서 서진의 창백한 뺨을 보며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그녀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신룡의 혈맹 반지가 서진의 고통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붉게 점멸하고 있었다.
하린은 떨리는 손으로 서진의 손을 꼭 맞잡았다. 비록 마력은 흐르지 않았지만,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차가운 한독과 뜨거운 용혈의 열기가 미세하게 중화되며 맥박이 안정을 찾아갔다. 하린은 서진의 품에 몸을 밀착시키며, 다른 여자에게는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그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제 한기가…… 당신의 심장을 식혀줄 거예요. 그러니까 제 곁에서 멀어지지 마세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서진을 향한 애절함과 함께,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집착이 서려 있었다. 서진은 그녀의 은백색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평화를 만끽할 시간은 길지 않았다. 선실 뒤편 마차 안에서 들려오는 거친 신음소리가 일행의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아아윽…… 컥, 서진아……."
의형제 바투의 목소리였다.
서진은 하린의 부축을 받아 비틀거리며 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마차 안의 침상에 누워 있는 바투의 상태는 처참했다. 철참 기사단장 브론의 거대한 가시 철퇴에 정면으로 강타당했던 그의 넓은 가슴팍은 뼈가 처참하게 함몰되어 있었고, 그 틈새로 조걸의 비수에 당했던 사독(邪毒)이 국경의 혹독한 한기와 결합하여 검푸른 성에처럼 얼어붙어 가고 있었다.
"바투 형님……!"
서진은 서둘러 바투의 손목을 짚었다. 맥박을 짚는 서진의 손끝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심각하다. 브론의 강기가 흉부를 으깨놓은 상태에서, 조걸의 사독이 국경의 혹독한 한기를 동력 삼아 마맥 전체를 얼려버리고 있어. 수인족 특유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이대로 한독이 심장 근처까지 침투하면 단전이 폭주해 자멸할 것이다.'
서진은 다급히 품속에서 백초의 은침을 꺼내 들었다. 마맥이 비어 있어 침에 마력을 실을 수는 없었지만, 평생을 쌓아온 '지방 명의'로서의 침구술 지식만큼은 온전했다. 서진은 바투의 가슴팍 주변에 위치한 천돌혈(天突穴)과 신궐혈(神闕穴)을 향해 은침을 정확하게 찔러 넣었다. 한독의 흐름을 강제로 지연시켜 심장을 보호하려는 침술이었다.
팅! 팅!
그러나 침끝이 바투의 피부에 닿는 순간, 기이한 금속음과 함께 은침들이 무참하게 부러져 나갔다.
"이럴 수가……!"
바투의 무의식적인 자가방어 기전 때문이었다. 사독과 한독이 결합하여 폭주하기 시작한 바투의 수인족 마맥은 극도로 야성화되어 외부의 자극을 거부하고 있었다. 마력을 실어 침을 제어하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는 그의 단단한 수인 피부와 뒤틀린 기류를 뚫을 수 없었다.
"비켜봐요, 서진 씨. 제 한설검으로 바투 님의 체온을 일시적으로 고정하겠어요."
하린이 균열이 가득한 한설검을 다잡아 쥐었다. 비록 단전의 마력은 완전히 고갈되었으나, 만년빙철로 제련된 검 자체에 깃든 태초의 냉기는 살아 있었다. 하린은 검날을 바투의 함몰된 가슴팍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치이이익!
뜨거운 독기와 차가운 만년빙의 한기가 부딪히며 거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하린의 한설검이 뿜어내는 서늘한 기운이 바투의 상처 주위를 덮어 가며, 검푸르게 번져가던 사독의 확산 속도를 일시적으로 동결시켰다. 바투의 거친 호흡이 미세하게 진정되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한설검의 잔류 냉기만으로는 반나절도 버티지 못합니다. 바투 형님의 수인족 마맥 깊숙이 박힌 이 한독을 완전히 정화하고 으스러진 가슴뼈를 재건하려면, 일반적인 해독제로는 불가능합니다."
서진은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내며 용안(龍眼)을 가동하려 했다. 하지만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억지로 지각 능력을 끌어올리려 하자, 머릿속이 깨질 듯한 두통이 몰려왔다.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내 가슴에 이식된 용골 심장 제어기를 강제로 가동해, 내 청룡의 피가 지닌 초자연적인 재생 마력을 바투 형님의 맥로에 직접 주입하는 것.'
서진은 결단을 내렸다. 그는 자신의 가슴뼈 중앙에 손을 얹고, 멈춰 서 있던 제어 장치의 수동 태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제어 장치에 새겨진 상급 빙정석의 정수가 그의 용혈 세포를 자극하며 뜨거운 피를 짜내기 시작했다. 서진은 자신의 손가락 끝을 깨물어 신선한 용혈 한 방울을 바투의 입술 사이에 떨어뜨리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르르릉! 콰과광!
갑자기 사방의 대지가 비명을 지르며 흔들렸다. 일행이 타고 있던 부서진 썰매 배의 철판이 기이하게 공명하며 요란한 쇳소리를 냈다. 동시에 하늘을 가득 메운 먹구름 사이로 거대한 푸른 번개들이 빗줄기처럼 대지를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이곳은 북해 설산의 끝자락이자 남방으로 향하는 길목을 가로막는 자연의 거대한 관문, '뇌신룡의 낙뢰지(雷神龍의 落雷地)' 초입이었다.
지이이이직! 콰앙!
하늘에서 떨어진 고압의 푸른 낙뢰가 일행이 서 있는 폐가 주변의 바위산에 직격했다. 공기 중에 흐르는 엄청난 양의 전격 전조 정전기가 철과 용골로 이루어진 서진의 심장 제어기를 피뢰침 삼아 사정없이 흘러들었다.
"아아아악!"
서진은 가슴을 움켜쥐며 비명을 질렀다. 용혈을 정밀 주입하려던 그의 시도가 뇌전의 강력한 마력 간섭과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제어 장치 내부의 톱니바퀴들이 불꽃을 튀기며 역류했고, 정제되지 않은 전격의 기운이 그의 혈맥을 타고 역류했다.
우욱, 컥!
서진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용혈 피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전신에 뼈가 바스러지는 듯한 내상 통증이 덮쳐오며 그의 안색이 종이처럼 창백해졌다. 심장 제어기는 지직거리는 성에와 함께 완전히 오작동하며 붉은 증기를 내뿜었다. 자칫하면 바투를 살리기도 전에 서진의 심장 자체가 폭사할 위기였다.
"서진 씨! 안 돼요! 제발 무리하지 마세요!"
하린이 눈물을 흘리며 서진을 품에 안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얼어붙는 고통을 참아내며, 서진의 가슴팍에 남은 미약한 온기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그를 껴안았다. 반지를 통해 흘러드는 하린의 애절한 진심과 소유욕의 파동이 서진의 흐려지던 이성을 간신히 붙잡아 주었다.
서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부러진 은침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뇌전의 간섭이 너무 강해. 이 낙뢰지 내부에서는 내 용혈을 직접 주입하는 방식은 역류를 일으켜 둘 다 죽게 만들 뿐이다. 물리적인 약재가 필요해. 수인족의 혈맥에 침투한 한독을 정화하고 골절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영약…….'
서진의 뇌리에 양부 백태현의 일지와 약선 오경선에게 배웠던 고대의 기록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얼어붙은 신수나무 제단(얼어붙은 神樹나무 祭壇). 만년설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고대 생명의 신목이 이 고개 너머에 존재한다. 그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신성한 수액만이 바투 형님의 한독을 완벽히 정화하고 으스러진 가슴뼈를 즉시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
서진은 간신히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나아가야 할 길은 순탄치 않았다. 신수나무 제단으로 향하는 험난한 고개 너머로, 사방을 가로막은 검은 바위산들 사이로 푸른 벼락들이 마치 거대한 감옥의 창살처럼 쉴 새 없이 내리치며 대지를 뒤흔들고 있었다. 낙뢰지의 전류 장막이 일행의 방어막을 찢어발기겠다는 듯 거친 기세를 더해가고 있었다.
하늘을 찢을 듯한 푸른 번개들이 대지를 뒤흔들며 일행의 앞길을 완전히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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