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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선착장, 남방으로 향하는 썰매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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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무진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 지하 통로는 차갑고 습한 얼음 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완전히 무너진 연무장 비무대 위에서 백서진은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추스렀다. 청룡의 혈정을 개방하고 하린과 함께 ‘빙화용참’을 쏘아 보낸 대가는 가혹했다. 단전은 한 방울의 마력도 남지 않은 채 황량하게 비어 있었고, 온몸의 뼈마디가 삐걱거리며 극심한 탈진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서진 씨…….”


설하린 역시 창백해진 안색으로 서진의 품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오른손에 쥐어진 한설검은 검날 전체에 거미줄 같은 미세한 균열이 심화되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위태로운 빛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너지지 않겠다는 듯 서진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왼손 약지에 끼워진 신룡의 혈맹 반지를 꼭 쥐었다. 반지를 통해 흘러드는 서진의 미약한 심장 박동만이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서진아! 정신 차려라!”


가슴팍이 함몰되는 중상을 입은 바투가 피가 묻은 참마도를 지팡이 삼아 짚으며 다가왔다. 그의 어깨는 사독에 당해 검푸르게 죽어가고 있었지만, 의형제를 지키겠다는 투지만큼은 맹수처럼 형형했다. 독고 상회의 정예 무사들을 이끄는 호위 대장 마철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삼엄하게 사방을 경계했다.


“설무진 그 쥐새끼가 지하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가주 설진천의 화경 강기가 깨졌으니 본가의 추격은 일시적으로 멈추겠지만, 선착장에 대기 중인 탈출용 썰매 배가 파괴된다면 우리에게 퇴로는 없습니다. 어서 움직여야 합니다!”


마철의 외침에 서진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가슴뼈에 이식된 용골 심장 제어기는 정제된 상급 빙정석의 온기를 머금은 채 조용히 째깍거리고 있었다. 비록 마력은 고갈되었으나, 제어 장치 자체가 기적적으로 일시 보수된 덕분에 전신을 불태우던 작열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이 기회였다.


“가세…… 요. 선착장으로.”


서진은 바투와 마철의 부축을 받으며 어두운 지하 통로를 따라 빠르게 달렸다. 통로 끝자락에 다다르자, 사방을 가로막은 거대한 얼음벽 너머로 두꺼운 얼음판이 깔린 ‘얼어붙은 선착장’의 장엄한 자태가 드러났다. 강바닥 전체가 거대한 유리판처럼 얼어붙어 찬 바람에 웅웅거리는 울음소리를 내는 쓸쓸한 강가였다.


그곳에는 독고 상회가 극비리에 준비해 둔 ‘설산용 특수 썰매 배’가 붉은 열염석 동력원을 빛내며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썰매 배의 바로 앞, 마지막 퇴로를 가로막은 존재들을 본 순간 일행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기어코 여기까지 도망쳐 왔군, 이단의 무리들이여.”


금색 실로 장식된 백색 예복을 입은 사내, 성황청 고위 밀사 비에른이 위선적이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제단 위에 서 있었다. 그의 뒤편에는 흑철 중갑을 입은 철참 기사단의 잔당들과 활시위를 당긴 저격수 카일의 저격조가 썰매 배를 포위하고 있었다. 도망치던 설무진은 이미 비에른의 발밑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토사구팽당한 것이 분명했다.


“비에른…… 성황청의 사냥개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하린이 균열이 간 한설검을 겨누며 차갑게 물었다. 비에른은 가슴에 걸린 성령의 십자가 펜던트를 들어 올리며 자비로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 땅에 깃든 고대 청룡의 더러운 피를 정화하고, 성황청의 신성한 지배를 확립하기 위함이다. 용혈을 품은 자와 그를 비호하는 반역자들은 이 자리에서 영원히 소멸하리라. 신성 정화 결계(神聖 淨化 結界), 전개!”


웅웅웅!


비에른이 성력을 방출하자, 선착장 빙판 전체를 뒤덮는 은빛 마법진이 솟구쳐 올랐다. 눈이 시릴 정도로 찬란한 성광의 장막이 사방을 가로막으며 서진 일행의 숨통을 조여왔다. 성광의 기운이 서진의 피부에 닿자마자, 그의 목덜미에 새겨진 푸른 용의 낙인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거부 반응의 통증이 몰려왔다.


“컥……!”


서진이 가슴을 부여잡고 각혈했다. 마맥이 완전히 비어 있는 상태에서 성황청의 정화 결계는 치명적인 독이나 다름없었다.


“죽여라! 썰매 배의 동력 장치를 파괴하고 저들의 사지를 묶어라!”


기사단장 브론의 명령과 함께 저격수 카일의 사수들이 일제히 마력 화살을 쏘아 보냈다. 쉭! 쉭! 쉭! 쏟아지는 화살 폭우가 썰매 배의 열염석 동력로를 향해 쇄도했다.


“방패 장벽을 구축하라! 목숨을 걸고 사수하라!”


호위 대장 마철이 흑철 방패도를 대지에 꽂으며 외쳤다. 독고 상회의 무사들이 썰매 배의 전방을 가로막으며 철벽의 방패막이를 형성했다. 깡! 깡! 화살들이 무겁게 방패에 부딪히며 불꽃을 튕겼지만, 적들의 수적 우세와 화력 앞에서는 서서히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흑철 전신 갑옷을 입은 브론이 거대한 가시 철퇴를 휘두르며 썰매 배의 선체를 직접 부수기 위해 돌격해 왔다.


“이 배가 부서지면 끝장이다! 비켜라, 철대가리 놈아!”


바투가 중상을 입은 몸을 이끌고 도약했다. 전신에 은빛 설표의 기운을 두른 그는 ‘야생 설표 격투술’의 관절 타격법을 시전했다. 콰앙! 바투의 단단한 주먹이 브론의 흑철 갑옷 겨드랑이 틈새를 정확히 격타했다. 브론은 철퇴의 궤적이 꺾이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지만, 바투 역시 상처가 터져 선혈을 흘리며 빙판 위로 쓰러졌다.


“바투 형님!”


서진은 이가 갈리는 분노 속에서 용안(龍眼)을 가동했다. 흑백의 시야 너머로 비에른이 전개한 신성 결계의 마력 흐름이 투사되었다. 결계는 철참 기사단이 착용한 금속 갑옷들의 마맥을 매개체로 삼아 유지되고 있었다.


‘금속…… 전도율이다. 저 결계는 금속 장비에 흐르는 전격 마력에 극도로 취약해!’


서진은 자신의 단전에 남아있는 마지막 청룡의 뇌전 마력을 쥐어짜야 함을 직감했다. 비록 단전은 비어 있었지만, 하린과의 영혼 동기화를 극한으로 끌어올린다면 반지에 깃든 고대 신룡의 신성을 일시적으로 발현할 수 있을 터였다.


서진은 하린의 손을 꽉 잡았다. 두 사람의 약지에 끼워진 신룡의 혈맹 반지가 서로 맞닿으며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하린 소저…… 제게 남은 모든 생명력을 가져가십시오. 그리고 하늘을 향해 검을 치켜드십시오.”


하린은 서진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담긴 단호함과 자신을 향한 맹목적인 신뢰를 읽은 그녀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청청색 눈동자가 깊은 집착의 서리빛으로 타올랐다.


“당신의 뜻대로…… 우리의 생명을 하나로 묶겠어요.”


두 사람의 반지가 공명하며 붉고 푸른 마력의 아지랑이가 하늘을 향해 소용돌이쳤다. 두 사람의 영혼 동기화율이 100%를 돌파하는 순간, 선착장 상공의 검은 구름이 거대한 푸른 소용돌이로 변하며 대지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미완성의 광역 천벌, ‘사방신 천벌(미완성)’의 발현이었다.


“무, 무슨 이단의 주술이 이 정도의 위압을……! 막아라! 당장 저들의 공명을 끊어라!”


비에른이 경악하며 정신 유도 술법을 시전하려 했으나, 이미 늦어 있었다. 서진과 하린이 서로의 반지를 쥔 손을 허공을 향해 동시에 뻗었다.


“사방신 천벌(四方神 天罰)!”


콰르르릉! 콰과과광!


하늘의 푸른 소용돌이 구름 속에서 수백 개의 푸른 뇌전 번개와 거대한 만년설의 폭풍 칼날들이 비에른의 진형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내리쳤다. 번개들은 철참 기사단의 중갑을 피뢰침 삼아 정확하게 내리꽂히며 고압의 전격을 전파시켰다.


“끄아아아악!”


“결계가…… 결계가 역류한다!”


비에른이 전개했던 신성 정화 결계는 서진의 청룡 뇌전 마력 파동에 의해 완벽하게 역류당하며 스스로 대폭발을 일으켰다. 찬란하던 성광의 장막이 은빛 파편이 되어 산산조각 났고, 철참 기사단의 무인들은 전신이 탄화되며 빙판 위로 쓰러졌다. 비에른 역시 성령의 십자가 펜던트가 깨지며 피를 토하고 뒤로 날아가 처참하게 뒹굴었다.


콰과광! 콰앙!


하지만 대재앙급 필살기를 시전한 대가는 뼈아팠다. 썰매 배에 장착되어 있던 최고급 열염석 동력원이 과부하로 인해 굉음과 함께 대폭발을 일으키며 소실되어 버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서진과 하린의 머릿속을 찢는 듯한 영혼의 반동 통증이 엄습했다.


두 사람의 영혼 동기화 회로가 일시적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어,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서로 스킨십을 하더라도 단전의 마력을 전혀 회복할 수 없는 임시 무력화 상태에 빠진 것이었다.


“서진 씨……!”


하린이 각혈하며 서진의 품으로 쓰러졌다. 서진 역시 눈앞이 캄캄해지는 혼절의 위기 속에서 이를 악물고 썰매 배의 키를 잡았다.


“마철 대장! 동력원이 터지기 직전 방출된 마지막 추진력으로 배를 띄우십시오! 바투 형님을 태우고 어서 도망쳐야 합니다!”


“출발한다! 모두 꽉 잡아라!”


마철이 썰매 배의 수동 제어 레버를 끝까지 당겼다. 열염석 동력원의 마지막 대폭발 추진력이 썰매 배의 후방 배기구를 통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슈우우우우웅ㅡ!


썰매 배는 거대한 로켓처럼 얼어붙은 국경 강바닥 위를 미끄러지듯 날아올랐다. 일반 군마보다 5배는 빠른 무서운 속도였다. 뒤편 절벽 위에서 저격수 카일이 최후의 저격 화살을 날렸으나, 이미 음속에 가깝게 미끄러져 나가는 썰매 배의 궤적을 쫓을 수는 없었다.


“이, 이단 놈들…… 기어코 국경을 넘는구나…….”


비에른은 쓰러진 채 멀어져 가는 썰매 배를 바라보며 분노 어린 전음을 하늘을 향해 날렸다. 그의 눈빛에는 서진을 반드시 멸살하겠다는 성황청의 잔혹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썰매 배는 바람의 통곡 고개를 지나, 국경의 삼엄한 결계망을 우회하며 맹렬한 속도로 빙판 위를 질주했다. 사방을 가득 채우던 북해의 매서운 눈보라와 혹독한 한기가 한순간에 씻겨 나가듯 옅어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두꺼운 얼음판이 끝나고 붉은 흙과 자갈이 깔린 강줄기가 나타났을 때, 썰매 배는 마침내 속도를 줄이며 부드럽게 멈춰 섰다.


서진은 비틀거리는 몸으로 썰매 배의 난간을 잡고 밖을 내다보았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경이로웠다. 만년설이 내리던 차가운 북해와 달리,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아지랑이가 이글거리는 황토색 붉은 대지가 웅장하게 펼쳐져 있었다. 후끈한 열기를 머금은 바람이 서진의 뺨을 스쳐 지나갔.


2단계의 무대이자, 새로운 수호녀가 기다리는 뜨겁고 위험한 ‘남방 적염령(南方 赤焰領)’의 초입에 마침내 도달한 것이었다.


그러나 남방의 따뜻한 공기를 들이마신 순간, 서진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째깍, 째깍, 째깍…… 지지직!


용골 심장 제어기 내부의 정제된 빙정석 기운이 남방의 뜨거운 화염 마력 파동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얼음과 불의 상극 반응이었다. 심장 제어 장치가 미친 듯이 진동하며 붉은 증기를 폭발적으로 뿜어냈고, 서진의 전신 혈관을 타고 바늘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혈관 작열통이 덮쳐왔.


“으윽…… 컥!”


서진은 가슴을 쥐어짜며 썰매 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목덜미에 새겨진 용의 낙인이 남방의 이글거리는 적염 기운에 반응하여 불타오르듯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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