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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보금자리와 첫 번째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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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캐한 연기가 허파를 가득 채웠다. 건조한 전나무로 지어진 의원은 무자비한 불길 속에서 빠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천장의 대들보가 타오르며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하지만 백서진의 귓가에 가장 선명하게 박힌 것은, 쇠사슬 톱날이 미세하게 회전하며 제자 동이의 목덜미를 파고드는 소름 끼치는 마찰음이었다.


“앗…… 스승님……!”


동이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붉은 핏방울과 섞여 눈밭 위로 떨어졌다. 열두 살 불과한 아이의 눈동자에는 날것 그대로의 공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이 자신을 구해주리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서려 있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용 사냥꾼 대장 크로거의 얼굴에 잔혹한 미소가 그려졌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칼날 흉터가 불길을 받아 일그러졌다.


“시간 낭비군. 손가락 하나부터 잘라내면 그 고결한 주둥이가 열리겠지? 어이, 마지막 청룡의 후예여. 네놈의 그 쓸모없는 심장을 순순히 내놓는다면 이 꼬맹이의 목숨만큼은 살려주마.”


크로거의 부하들이 가죽 주머니에서 용의 심장을 적출할 때 사용하는 차가운 은빛 메스와 마력 추출 병들을 꺼내 들었다. 그들의 눈에는 오직 현상금을 향한 탐욕만이 가득했다.


서진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갈비뼈 아래 깊숙한 곳에 박힌 용골 심장 제어기가 미친 듯이 진동하고 있었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톱니바퀴가 회전하는 속도는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피가 끓는 기름처럼 뜨거워졌다. 온몸의 모세혈관이 터질 듯 팽창하며 식도가 타들어 가는 극심한 작열통이 덮쳐왔다. 심장 과부하 1단계 경고 수준을 넘어, 당장이라도 온몸이 내부에서부터 불타 소멸할 것만 같은 생리적 재난이었다.


‘용의 피는 분노를 먹고 자란다. 하지만 서진아, 그 분노에 완벽히 지배당하는 순간 너는 이성을 잃은 괴수가 될 뿐이다.’


머릿속에서 양부 백태현의 엄격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울렸다. 평생을 약사로 살며 사람을 살리는 의술만을 펼쳐왔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서 가장 소중한 제자가 목숨을 잃기 직전이었다. 이성을 지키는 대가로 동이를 잃어야 한다면, 그딴 이성 따위는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동이를…… 놓아줘라.”


서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것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가슴속 제어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증기가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앙탈을 부리는군. 베어라!”


크로거가 냉혹하게 명령을 내렸다. 부하가 사슬검의 시위를 당기며 동이의 목을 완전히 끊어버리려던 바로 그 순간.


쿠우우우웅ㅡ!


서진의 심장에서 찬란하고도 파괴적인 푸른 광채가 폭발하듯 방출되었다. 불타오르던 의원 내부의 화염마저 일시적으로 밀어낼 만큼 압도적인 청룡의 신성한 마력이었다.


그것은 생애 첫 번째 ‘용혈 초각성 (龍血 初覺醒)’이었다.


“끄아아악!”


서진을 억누르고 있던 주변의 열기가 순식간에 정화되며, 서진의 목덜미와 양팔을 타고 푸르스름한 비늘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투명하면서도 강철보다 단단한 청룡의 비늘들이 피부 표면을 덮는 ‘용화 피부 (龍化 皮膚)’의 각성이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완벽한 푸른빛의 세로 동공으로 변해 차갑게 빛났다.


“이, 이게 무슨……! 무공도 모르는 약사 놈이 아니었단 말이냐!”


크로거가 경악하며 사슬검을 휘둘렀다. 톱날이 회전하는 거대한 사슬검이 폭풍 같은 궤적을 그리며 서진의 목을 감아쥐었다. 쇠사슬이 살을 찢고 뼈를 으스러뜨려야 할 타이밍이었다.


끼이이이이익!


그러나 사슬검의 톱날이 서진의 목덜미에 닿는 순간, 들려온 것은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단단한 흑철과 용린이 부딪히며 발생하는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과 함께 찬란한 푸른 불꽃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용화 피부의 압도적인 방어력 앞에서는 용 사냥꾼들의 특수 무기조차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괴물 같은 놈! 죽어라!”


크로거가 자신의 도룡살생공 내력을 사슬검에 주입하며 서진의 가슴팍 제어기를 향해 직접적인 파쇄격을 가해왔다.


서진은 이성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냉철하게 적의 호흡 주기를 읽어냈다. 제어 장치가 과열되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단 몇 초뿐이었다. 장기전은 자멸이다.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끝내야 했다.


서진은 발끝에 청룡의 전격을 집중시켰다.


파지직!


눈밭과 불타는 대지 위를 마찰 없이 번개 같은 속도로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용화 보법’이 본능적으로 시전되었다. 서진이 서 있던 자리에는 푸른 용의 발자국 형상이 붉게 타오르며 잔상만을 남겼다.


스팟!


크로거의 눈앞에서 서진의 신형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어디로 가느냐!”


크로거가 급히 고개를 돌렸으나 이미 늦어 있었다. 서진은 이미 크로거가 사슬검을 회수하는 동작의 가장 취약한 사각지대, 그의 오른쪽 옆구리 뒤편에 도달해 있었다. 양부 백태현의 일기에서 읽었던 용 사냥꾼들의 고유한 호흡 맹점이었다.


서진은 전신에 흐르는 뜨거운 용혈의 파괴력을 오른 주먹에 하나로 모았다. 주먹 주변으로 푸른 번개의 아지랑이가 소용돌이쳤다.


“이것이 사람을 살리는 손으로 가하는 마지막 일격이다.”


콰아아아앙ㅡ!


서진의 주먹이 크로거의 안면을 정확하게 직격했다. 뼈가 처참하게 바스러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2미터에 달하는 크로거의 거구가 포탄처럼 날아가 통나무 의원의 두꺼운 벽을 뚫고 외부의 전나무 숲속으로 처박혔다. 무너진 벽 너머로 크로거의 신형이 눈더미 속에 파묻히며 단 한 마디의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즉사했다.


“대, 대장님이…… 일격에?”


남아 있던 용 사냥꾼 졸개들이 무기를 떨어뜨리며 사색이 되었다. 그들은 괴물처럼 서 있는 서진의 푸른 안광과 마주하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숲속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서진은 비틀거리며 동이에게 다가갔다. 사슬 결박을 찢어발기고 동이를 품에 안아 올렸다.


“스승님…… 정말 스승님 맞으셔요? 얼굴이……”


“괜찮다, 동이야. 이제 안전하단다.”


동이를 안전한 숲길 방향으로 밀어 보낸 순간, 참아왔던 역류가 시작되었다.


“컥……!”


서진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한 움큼의 끓어오르는 푸른 용혈 피를 각혈했다. 가슴속 용골 심장 제어기가 거칠게 비명을 지르며 내부 톱니바퀴가 굳어가기 시작했다. 너무 높은 온도의 용혈 마력을 개방한 대가로 가슴뼈 주변의 피부가 붉게 타들어 가며 끔찍한 화상 통증이 전신을 덮쳐왔다.


쿠르르릉!


불타던 의원이 완전히 한계를 맞이하고 서진의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무너지는 불길의 잔해 속에서, 서진이 평소 약초를 보관하던 오래된 서랍장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 틈새로 양부 백태현이 평생 숨겨두었던 낡은 철제 상자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열렸다.


서진의 흐려지는 시야 속으로 상자 내부의 물건이 들어왔다. 그것은 용 사냥꾼 연합의 고위 대장들만이 소지할 수 있는, 붉은 눈동자 문양이 새겨진 전설적인 낡은 흑철 표식이었다.


‘아버지가…… 정말로 용 사냥꾼의 대장이었다는 말인가…….’


양부의 충격적인 과거 신분 증표를 손에 쥔 서진은, 품속의 청룡의 라반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방출하는 푸른 안개 덕분에 간신히 즉사를 면하고 있음을 느꼈다. 라반이 용혈의 폭주 열기를 흡수해 주지 않았다면 그의 심장은 이미 터져 버렸을 터였다.


서진은 표식을 가슴에 품은 채, 불타는 의원 잔해를 빠져나와 차가운 눈밭 위로 쓰러졌다. 전신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주변의 눈이 그의 체온에 의해 빠르게 녹아내리며 김을 뿜어냈다. 스스로의 불꽃에 질식해 의식을 잃어가던 서진의 눈앞에, 하얀 눈보라를 뚫고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자박, 자박.


눈을 밟는 가볍고 규칙적인 발소리.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만년설처럼 하얗고 고결한 은발을 휘날리는 아름다운 여인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그녀의 손에는 서리가 서린 차가운 장검이 쥐어져 있었고, 투명한 청청색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가운 살의를 담은 채 서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북해 설가의 차녀이자, 자신을 사냥하러 온 첫 번째 수호녀 설하린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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