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화용참(氷花龍斬)의 일격
검은 가시 장막이 거인의 몸통 전체를 감싸며 서진과 하린의 공명을 원천 차단하려 들었다.
허공에 일렁이는 검은 연기 속에서 사령술사 제로드의 잔류 사념이 기괴한 광소를 터트렸다. 음산한 죽음의 마력이 서리거인의 뼈마디를 타고 흐르며, 방금 전까지 은밀하게 연결되려던 백서진과 설하린의 마력 회로를 거칠게 찢어발겼다.
“크하하하! 용의 피를 이은 애송이 놈들! 고대 수호 마수의 영혼은 성황청과 우리 사령의 손길이 지배한다! 감히 그 더러운 피로 결계를 정화하려 들지 마라!”
사방에서 불길한 검은 가시들이 소사하며 두 사람을 향해 쏘아져 왔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눈보라 속에서, 제로드의 사령 장막은 마치 살아 숨 쉬는 괴물처럼 꿈틀거리며 서진과 하린의 숨통을 조여왔다.
백서진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용골 심장 제어기가 거칠게 째깍거리며 붉은 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사령 마력의 반동 충격으로 전신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고스란히 뇌리를 강타했다. 입안 가득 비릿한 혈향이 고였다. 창백한 그의 뺨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대로는…… 모두 죽는다.’
서진은 푸르게 빛나는 세로 동공, 용안(龍眼)을 번뜩였다. 흑백으로 반전된 그의 시야 속에서 서리거인의 척추를 타고 흐르는 보랏빛 사령의 실타래가 선명하게 투사되었다. 저 사령의 낙인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거인은 지하 안치소의 상급 빙정석을 흡수하며 무한히 재생할 터였다.
“하린 소저.”
서진은 떨리는 숨을 내쉬며 단전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고대의 결정을 자극했다.
‘청룡의 혈정(靑龍의 血晶).’
그것은 양부가 남겨준 유산이자, 자신의 심장 결함을 극복하고 일시적으로 신성을 해금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다. 서진이 혈정을 강제로 개방하자, 그의 목덜미에 새겨진 푸른 용의 낙인이 화인처럼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뜨거운 용혈의 마력이 사방으로 폭발하듯 방출되었다.
쿠우우우웅!
서진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빛 청룡의 기운이 사방의 검은 사령 안개를 무참히 밀어냈다.
하린은 한설검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버티고 서 있었다. 단전의 마력이 바닥나 전신이 시려오는 한독의 오한 속에서, 그녀는 서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를 느꼈다. 그 열기는 그녀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유일한 불꽃이었다.
“서진 씨…….”
“검을 잡으십시오, 하린 소저. 제 피와 열기를 전부 소저의 검에 주입하겠습니다.”
하린의 청청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서진의 눈빛에 담긴 단호한 결의를 읽었다. 가문의 규칙도, 친부의 냉혹한 시선도 이제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 남자의 불꽃을 받아들여, 자신을 억누르던 모든 굴레를 베어버리겠노라 다짐했다.
하린은 한설검을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다. 검날에 새겨진 미세한 균열 사이로 은백색 서리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빙화검결(氷花劍訣)의 극의가 그녀의 단전에서 꿈틀거렸다.
서진은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용화 보법을 전개해 순식간에 하린의 등 뒤로 다가간 그는, 그녀를 품에 안듯 뒤에서 감싸 안았다. 서진의 뜨거운 가슴이 하린의 차가운 등에 맞닿는 순간, 두 사람의 몸 주변으로 푸른 얼음 안개와 붉은 용혈의 아지랑이가 소용돌이치며 찬란한 기류를 만들어냈다.
딸랑! 딸랑!
서진의 귀걸이가 요란하게 비명을 질렀다. 하린의 깊은 집착과 애정 파동이 혈맹 반지를 통해 극치로 흘러들었다. 두 사람의 왼손 약지, 신룡의 혈맹 반지(神龍의 血盟 半指)가 정면으로 맞닿으며 붉고 푸른 광채를 내뿜었다.
“반지를 맞대고, 호흡을 일치시키십시오.”
서진은 청심결(淸心道法)과 무위명상으로 다스린 정신력으로 용의 살기에 휘말리지 않고, 하린의 한기와 자신의 용혈을 정확히 5대 5의 비율로 조화시켰다. 두 사람의 마맥이 완벽하게 동기화되며, 하린의 한설검 만년빙철 속으로 서진의 뜨거운 용혈 마력이 직접 주입되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익!
차가운 얼음 검날이 붉은 용혈을 받아들이며 은백색과 푸른빛이 융합된 신비로운 서리 검기를 뿜어냈다. 균열이 갔던 검날이 두 사람의 공명 마력으로 채워지며, 전성기를 초월한 파괴적인 기세를 풍겼다.
“이, 이단 놈들이 기어코……! 죽여라! 당장 짓밟아버려라!”
단상 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설무진이 패배감과 열등감에 눈이 뒤집혀 비명을 질렀다. 그는 소매 속에서 비수를 꺼내 서진의 심장을 향해 던졌다. 비열한 기습이었다.
챙!
그러나 비수가 두 사람에게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묵직한 강철 검날이 날아와 비수를 튕겨냈다.
“어딜 감히 내 형제를 방해하느냐!”
바투가 가슴의 상처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거대한 참마도를 휘두르며 포효했다. 수인족 전사들과 영물 흑풍이 설무진의 사설 무사들을 가로막으며 철벽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하린 소저, 갑니다.”
서진은 하린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 쥐었다. 두 사람이 함께 검자루를 움켜쥔 순간, 전장의 모든 눈보라가 일순간 멈추고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 서리거인의 거대한 존재감마저 완벽하게 압도하는, 초월적인 신룡의 위압이 연무장을 지배했다.
두 사람은 허공을 향해 검을 크게 내리뵜다.
“빙화용참(氷花龍斬)!”
콰아아아아아앙!
한설검의 끝에서 거대하고 눈부신 은백색 청룡의 형상을 한 빙결 참격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참격은 푸른 번개와 만년설의 한기가 기하학적으로 융합된 형상으로, 전방 100미터의 모든 공간을 일직선으로 얼리고 태우며 뻗어나갔다.
제로드의 음한 사령 장막은 청룡의 신성한 기운이 깃든 참격에 닿는 순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단 한 자락의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완벽하게 증발했다.
“말도 안 돼……! 끄아아아악!”
제로드의 사념이 비명을 지르며 소멸함과 동시에, 서리거인의 거대한 몸뚱이가 일직선으로 완벽하게 동강 났다. 쩍쩍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10미터에 달하는 거대 마수의 청빙 비늘과 암석들이 산산조각 나며 무너져 내렸다.
콰과과과광!
거인의 몸체가 완전히 무너지며 연무장 전체를 뒤흔드는 대폭발이 일어났다. 지하 안치소에서 흘러나오던 푸른 마맥 공급선이 완전히 파괴되며, 대지는 붉은 용혈의 안개와 은백색 눈꽃 가루로 가득 찼다.
“컥…… 우욱!”
단상 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가주 설진천은 심장을 관통당한 듯한 충격과 함께 선혈을 토하며 뒤로 쓰러졌다. 서리거인과 링크되어 있던 그의 화경(化境) 빙황 강기가 일격에 산산조각 나며 치명적인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가문의 절대적인 지배자였던 그의 권위와 무력이 한순간에 완전히 붕괴하는 순간이었다.
연무장 사방이 무너져 내리는 혼란 속에서, 설무진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바닥을 기었다.
“이, 이럴 수는 없다…… 내 후계자 자리가…… 가문이……!”
설무진은 눈앞의 처참한 파멸을 직면하고 비명을 질렀다. 서진과 하린의 압도적인 신성 앞에 가문 내부의 온건파 무인들은 이미 무릎을 꿇고 경외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의 음모가 완전히 실패했음을 깨달은 설무진은 미친 듯이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은 가문의 마지막 퇴로이자,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진 비밀 선착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참격이 휩쓸고 간 연무장 잔해 속에는 오직 차가운 정적만이 감돌았다.
“하아…… 하아…….”
서진과 하린은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모든 마력을 완벽하게 소모한 탓에, 두 사람의 단전은 텅 비어 버렸고 전신에 극심한 탈진 상태가 찾아왔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 고단함 속에서, 서진은 조용히 하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고, 하린 역시 지친 숨을 내쉬며 그의 창백한 뺨에 자신의 얼굴을 비벼왔다.
대폭발의 연기 너머로, 파멸해가는 가문의 잔해와 도망치는 설무진의 비명 소리가 멀리 퍼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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