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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표(雪豹)의 가세와 정령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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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거대한 주먹이 하린의 머리 위로 낙하하려는 찰나, 연무장 외곽의 전나무 숲 너머로 야성적인 포효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대자연의 맹수가 울부짖는 듯한 거칠고 웅장한 포효였다. 연무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절대 영도의 침묵이 그 소리 한 번에 유리창처럼 깨어졌다. 단상 위의 가주 설진천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고, 무릎을 꿇은 채 죽음을 직면했던 설하린의 청청색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내 형제에게 그 더러운 손대지 마라!”


콰아아아앙!


눈 덮인 전나무 숲을 찢고 솟구쳐 오른 것은 은빛 설표 무늬의 거대한 그림자였다. 2미터에 달하는 거구, 터질 듯한 근육 위에 돋아난 야성적인 은빛 털가죽. 바로 백서진의 둘도 없는 의형제이자 설표 수인족의 전사, 바투였다.


바투는 전신에 붉은 살기를 두른 채 ‘야수 광화(野獸 狂化)’의 기운을 폭발적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브론의 철퇴에 맞아 흉부가 처참하게 함몰되었던 부상이 채 아물지도 않았음에도, 그는 오직 서진을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사선을 넘어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바투는 허공에서 거대한 참마도를 휘두르며 낙하했다. 그의 목표는 하린의 머리 위로 떨어지던 서리거인의 거대한 바위 손목이었다.


쿠우우우웅!


참마도의 흑철 검날이 거인의 손목 청빙 비늘을 정면으로 타격했다. 귀를 찢는 듯한 금속 마찰음과 함께 사방으로 푸른 얼음 파편이 폭풍처럼 휘날렸다. 화경의 마수답게 거인의 팔을 잘라내지는 못했으나, 바투의 압도적인 완력과 야성적인 충격은 거인의 궤적을 강제로 비틀어놓기에 충분했다.


쾅!


거인의 주먹이 하린의 머리통 대신 그녀의 바로 옆 청석 바닥을 내리쳤다. 비무대 전체가 반으로 갈라지며 거대한 먼지 폭풍과 얼음 가루가 사방을 가득 메웠다.


“바투 형님……!”


서진이 가슴을 움켜쥔 채 창백한 입술을 열었다. 가슴뼈 아래 이식된 용골 심장 제어기가 거칠게 째깍거리며 붉은 용혈 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서진은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마맥의 과열로 인해 손끝 하나 움직이기 힘든 절체절명의 상태였다.


“말하지 마라, 서진아! 이 몸뚱이가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내 동생은 내가 지킨다!”


바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포효했다. 그의 가슴팍 붕대 사이로 붉은 선혈이 베어 나왔지만, 그의 눈빛은 굶주린 설표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무너진 연무장 장벽 너머로 수십 마리의 거대한 설산 늑대들과 가죽 옷을 입은 전사들이 난입했다. 바투가 이끄는 ‘설표 수인족 부족’의 정예 사냥꾼들이었다. 부족의 영물인 흑풍(黑風)이 은빛 눈동자를 번뜩이며 가장 먼저 서리거인의 발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우우우ㅡ!”


흑풍의 사나운 하울링과 함께 수인족 전사들이 거인의 다리 사이를 교란하며 흑철로 제련된 사슬 덫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쉭! 쉭! 사방에서 날아든 사슬들이 서리거인의 거대한 청청색 종아리와 발목을 칭칭 감아쥐었다.


“당장 당겨라! 괴물의 기동력을 묶어라!”


부족 전사들이 온 힘을 다해 사슬을 잡아당겼다. 서리거인은 갑작스러운 이종족들의 습격에 분노하며 발을 구르려 했다. 거인이 발을 구르며 대지를 짓밟아 광역 파동인 ‘대지 지진격’을 시전하려던 바로 그 순간, 바투가 대지를 강하게 딛으며 소리쳤다.


‘대지 진각(大地 震脚)!’


쿠구구구궁!


바투의 발끝에서 시작된 강력한 야성 기공이 지중을 타고 흘러들어, 서리거인이 일으키려던 대지 지진격의 광역 마력 파동을 정면에서 상쇄시켰다. 충격파가 허공에서 부딪히며 연무장 바닥의 청석들이 잘게 바스러져 날아갔다.


하지만 화경급 괴수의 완력은 수인족들의 사슬 정도로 묶어둘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리거인이 거대한 상체를 뒤틀며 울부짖자, 전사들이 쥐고 있던 흑철 사슬들이 팽팽하게 당겨지다 비명을 지르며 하나씩 끊어지기 시작했다.


“크으으으으아아아아!”


거인의 포효와 함께 엄청난 풍압이 휘몰아쳤다. 사슬을 잡고 있던 부족 전사들이 피를 토하며 뒤로 나뒹굴었다. 거인의 발목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던 영물 흑풍 역시 거인의 한기 콧김에 밀려 눈밭 위를 뒹굴며 신음했다.


“수인족 전사들의 무기 따위로는 저 가죽을 뚫을 수 없다!”


서진은 창백해진 얼굴로 용안(龍眼)을 가동했다. 흑백으로 반전된 그의 시야 속에서, 서리거인의 내부 마맥이 선명하게 투사되었다. 지하 정령 안치소의 상급 빙정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마력선들이 거인의 발바닥을 통해 실시간으로 주입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푸른 마력선들 사이로, 불길하고 끈적끈적한 보랏빛 사령 마력의 실타래가 거인의 척추를 따라 얽혀 있는 것이 보였다.


‘이 기운은…… 사령술사 제로드의 잔재다. 설무진이 제로드와 야합했을 때 남겨진 사령의 낙인이 거인의 통제권을 왜곡하고 있어. 가주의 빙황 강기뿐만 아니라, 제로드의 사령 마력이 거인을 완전히 광폭화시키고 있는 거다!’


서진은 이 사실을 하린에게 알려야 함을 직감했다. 그는 떨리는 손을 움직여 허리춤에 찬 ‘얼음 정령의 전음석(傳音石)’을 쥐었다. 전음석의 푸른 표면이 서진의 미세한 용혈 마력을 흡수하며 희미하게 빛을 발했다.


“하린 소저…… 내 목소리가 들립니까?”


서진의 나직한 전음이 눈보라와 거인의 포효 소리를 뚫고 하린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하린은 무릎을 꿇은 채, 균열이 간 한설검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녀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차가운 검날 위로 떨어져 얼어붙었다. 단전의 마력이 80% 이상 고갈되어 전신이 시려오는 한독의 고통 속에서, 서진의 목소리는 그녀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유일한 구원의 온기였다.


“서진 씨…… 죄송해요. 제가…… 당신을 지키겠다고 맹세해놓고, 가주의 위압조차 막아내지 못했어요.”


하린의 목소리가 전음석을 타고 서진의 뇌리에 애절하게 울렸다. 자책감과 슬픔, 그리고 서진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가 그녀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닙니다, 하린 소저. 당신은 충분히 강합니다. 저를 보십시오. 우리 약지에 끼워진 반지가 아직 빛나고 있지 않습니까.”


서진은 자신의 왼손 약지에 새겨진 ‘신룡의 혈맹 반지’를 바라보았다. 반지는 두 사람의 생명력과 고통을 실시간으로 나누며 은은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저 서리거인의 무한한 재생력은 지하 안치소의 상급 빙정석, 그리고 그 뼈마디에 얽힌 제로드의 사령 마력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정면 대결로는 저 괴수를 죽일 수 없어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생명력과 마력을 완전히 하나로 융합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로…… 융합한다고요?”


“그렇습니다. 상극의 마력인 제 용혈과 소저의 빙결 마력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비율로 공명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반지를 통해 완전히 일체화시키는 겁니다. 그것만이 저 사령의 실을 끊어내고 거인을 단숨에 소멸시킬 유일한 열쇠입니다.”


서진의 단호한 설명에 하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멀리 떨어진 눈밭 너머, 창백한 얼굴로 자신을 믿음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자가 있었다. 가문의 냉혹한 규칙 속에서 평생을 정략결혼의 도구로 살아가야 했던 자신에게, 처음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 준 유일한 구원자.


하린은 자신의 약지에서 빛나는 반지를 꽉 쥐었다.


“알겠어요, 주군. 제 단전과 생명, 영혼까지 전부 당신에게 바치겠어요. 그러니…… 제 한기를 가져가 저 불꽃을 다스려 주세요.”


그녀의 결연한 맹세와 함께, 혈맹 반지가 폭발적인 푸른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서리거인이 사슬을 모두 끊어내고 바투를 향해 거대한 바위 주먹을 내리쳤다.


“크아아아아!”


“끄으윽! 대지 장막!”


바투가 참마도를 가로막으며 기공 방어막을 펼쳤으나, 거인의 압도적인 완력에 방패가 박살 나며 뒤로 멀리 날아가 쓰러졌다. 바투의 가슴 상처가 다시 터져 붉은 피가 은빛 털가죽을 적셨다. 수인족 전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투의 주변을 호위하려 달려들었지만, 거인은 이미 이성을 잃고 연무장 전체를 짓밟으려 발을 치켜들었다.


“하린 소저, 지금입니다! 거인의 발을 묶으십시오!”


서진의 지령에 하린은 마지막 남은 마력을 쥐어짜 한설검을 대지에 강하게 꽂아 넣었다.


‘얼음 사슬 구속(氷鎖 拘束)!’


콰구구구궁!


서리거인의 양발 밑 대지에서 수십 개의 거대하고 단단한 푸른 얼음 사슬들이 뱀처럼 솟구쳐 올랐다. 사슬들은 거인의 굵은 종아리와 발목을 순식간에 칭칭 감아쥐며 대지에 고정시켰다. 거인의 발목 피부가 얼어붙으며 기동력이 완벽하게 봉쇄되었다.


“크르르릉!”


거인이 발을 빼려 몸부림쳤으나, 하린이 목숨을 걸고 전개한 구속 결계는 일시적으로 거인의 움직임을 완벽히 붙잡아두었다. 하린의 입술 사이로 다시 한 번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검날의 균열이 더욱 깊어지며 불길한 파열음이 울렸다.


서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가슴의 제어 장치를 억지로 가동했다. 전신에 돋아난 푸른 용비늘이 전격의 빛을 발했다. 그는 손을 뻗어 자신의 어깨 위에 머물던 하급 얼음 정령 프로스트를 불렀다.


‘프로스트 스톰(Frost Storm)!’


웅웅웅!


프로스트가 격렬하게 날갯짓을 하며 서리거인의 머리 위로 거대한 눈보라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시야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백색의 폭풍이 거인의 눈을 가렸고, 거인은 방향 감각을 잃고 허공을 향해 거친 주먹질을 해댔다.


“하린 소저, 내게 오십시오!”


서진은 비틀거리며 하린을 향해 달렸다. 하린 역시 부러져가는 검을 쥐고 서진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연무장 중앙,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졌다.


두 사람은 서로의 왼손을 마주 잡았다. 창백하고 차가운 하린의 손과 뜨겁게 끓어오르는 서진의 손이 맞닿는 순간, 약지에 끼워진 신룡의 혈맹 반지가 붉고 푸른 안개를 폭발적으로 뿜어내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마맥이 하나로 일체화되며, 서진의 심장 제어기가 기적처럼 평온한 고동을 되찾았다.


“반지를 맞대십시오. 우리의 영혼을 하나로 묶는 겁니다.”


서진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하린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반지를 정면으로 맞대고, 영혼의 완전한 공명을 시도하려 손가락을 겹쳤다.


바로 그 순간.


서리거인의 오른쪽 어깨뼈 틈새에서, 숨겨져 있던 보랏빛 사령 마력이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제로드의 잔류 사령 사념이 만들어낸 기괴한 연기가 허공에서 거대한 검은 가시 방패의 형상을 취하며, 두 사람의 반지 사이를 강제로 가로막았다.


끼이이이이잉!


귀를 찢는 듯한 음한 저주의 비명이 울려 퍼지며, 은밀하게 연결되려던 두 사람의 마력 회로가 강제로 차단당했다. 검은 가시 방패에서 뿜어져 나온 충격파가 서진과 하린의 신형을 뒤로 강하게 밀쳐냈다.


“크하하하! 용의 피를 이은 애송이 놈들! 고대 수호 마수의 영혼은 성황청과 우리 사령의 손길이 지배한다! 감히 그 더러운 피로 결계를 정화하려 들지 마라!”


허공에 흩날리는 검은 연기 속에서 사령술사 제로드의 잔류 사념이 기괴한 광소를 터트리며 두 사람의 연결을 원천 차단하려 들었다. 검은 가시 장막이 거인의 몸통 전체를 감싸며 서진과 하린의 공명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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