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의 위압과 폭풍검의 파쇄
설태풍이 광소하며 검을 치켜들자, 연무장 청석 바닥의 얇은 눈들이 일제히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서진의 심장을 얼려버릴 듯한 참격의 기류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휘몰아치는 눈꽃의 소용돌이는 단순한 자연의 바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설가 방계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설태풍이 자신의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 전개한 폭풍빙설검(暴風氷雪劍)의 서막이었다. 칼날 같은 눈송이들이 허공을 가르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고, 연무장을 가득 메운 무인들은 그 압도적인 한기의 위압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죽어라, 이단 비호자 놈!”
설태풍의 외침과 함께 거대한 얼음 참격이 백서진의 가슴을 향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정면으로 맞선다면 단전은 물론이고 반파된 심장마저 완전히 얼어붙어 바스러질 터였다.
하지만 백서진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창백한 얼굴 위로 깊고 고요한 어둠이 가라앉았다. 서진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시신경으로 마력을 집중시켰다.
‘용안 개안(龍眼 開眼).’
순식간에 서진의 세계가 흑백의 무채색으로 반전되었다. 사방을 뒤덮은 백색 눈보라 속에서, 오직 설태풍의 검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빙결 마력의 궤적만이 선명한 푸른색 실타래가 되어 시야에 들어왔다. 화려하고 웅장해 보였던 폭풍의 소용돌이였지만, 용안을 통해 들여다본 그 내부는 오만함으로 가득 찬 거친 마맥의 균열투성이였다. 초식이 너무 거대했기에, 오히려 그 이면에 숨겨진 빈틈 또한 태산처럼 넓었다.
‘보인다.’
서진은 단전의 뜨거운 용혈을 양다리의 미세 혈맥으로 정밀하게 집중시켰다. 순간적으로 허벅지와 종아리의 근육이 용의 형태로 단단하게 팽창하며 피부 위로 희미한 푸른 비늘이 돋아났다.
‘용화 보법(龍화 步法).’
파스스스!
서진의 신형이 눈밭 위를 마찰도 없이 미끄러지듯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가 지나간 자리의 하얀 눈 위로 푸른 용의 발자국 형상이 붉게 타오르는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쏟아져 내리던 설태풍의 거대한 얼음 참격은 서진이 서 있던 허공만을 무참히 찢어발겼을 뿐, 그의 옷자락 하나 스치지 못했다.
“이, 이 쥐새끼 같은 놈이 어딜 피하느냐!”
자신의 필살 일격이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자 설태풍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그는 당황하면서도 대지를 강하게 딛으며 한기 진각(寒氣 震脚)을 시전했다. 청석 바닥을 타고 푸른 서리 파도가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서진의 발목을 옭아매기 위해 들이닥쳤다.
그 순간, 비무대 아래에서 서진을 초조하게 바라보던 설하린의 눈동자가 깊은 분노와 집착으로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감히 가문의 방계 놈이 자신의 주군이자 유일한 반려인 서진의 다리를 얼려 상처를 내려 하다니. 그녀의 심장 깊은 곳에서 솟구친 맹목적인 소유욕과 살벌한 분노가 왼손 약지의 신룡의 혈맹 반지를 통해 폭발적인 파동으로 변환되었다.
동시에 서진의 오른쪽 귀에 걸린 질투 감지 귀걸이가 요란하게 비명을 질렀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귓가를 때리는 맑고도 격렬한 방울소리와 함께, 반지를 타고 흘러든 하린의 맹목적인 애정 에너지가 서진의 단전으로 수급되었다. 차갑게 식어가던 그의 용혈 단전이 폭발적인 온도로 끓어올랐다. 서진은 그 넘치는 기운을 전신 외부로 방출했다.
‘투기 방출(投氣 放出).’
쿠우우우웅!
서진의 전신 주변으로 푸른 한기와 붉은 용혈 아지랑이가 융합된 반투명한 이중 위압 장막이 형성되었다. 청석 바닥을 타고 몰려오던 설태풍의 서리 파도는 서진의 투기 장막에 닿는 순간, 쩍쩍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흔적도 없이 파쇄되어 대기 중으로 증발해 버렸다.
“말도 안 돼……! 일개 약사 놈의 위압이 어떻게 내 한기를 지워버린단 말이냐!”
설태풍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방계 무사들이 경악하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연무장을 가득 메웠다. 당황한 태풍은 최후의 발악으로 가문의 비전 보검에 모든 마력을 폭주시켜 서진의 심장을 꿰뚫으려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하지만 서진은 이미 그의 움직임을 완전히 간파하고 있었다. 용안을 통해 투사된 설태풍의 단전 오른쪽 기맥이 폭주하는 마력으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라 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이 바로 폭풍빙설검의 치명적인 약점이자 마맥의 교차점이었다.
서진은 창백한 손가락 끝을 움직여 가죽 약사복 소매 속에 숨겨두었던 낡은 침통을 열었다. 전설적인 의선 백초의 유산이자, 마맥을 직접 자극해 강제로 마비시키는 신비로운 도구였다.
‘백초의 은침(白草의 銀針).’
서진은 자신의 미세한 용혈 마력을 은침 끝부분에 주입했다. 은침이 가느다란 붉은 광채를 내뿜으며 파르르 진동했다. 전신 사지가 미세하게 떨리는 쇠약 상태였지만, 용안이 가리키는 궤적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단 한 번의 정밀한 기습 기회였다.
쉬이이익!
서진의 손끝을 떠난 은침이 허공을 가르는 눈보라를 뚫고 음속으로 날아갔다.
툭.
극도로 미세한 마찰음과 함께, 은침은 설태풍의 오른쪽 어깨 아래에 위치한 핵심 마맥 혈자리에 정확하게 박혀 들었다.
“끄윽……?!”
순간, 설태풍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가득 찼다. 보검의 끝에서 뿜어져 나오려던 폭풍 같은 빙설 기류가 거짓말처럼 뚝 끊기며 허무하게 흩어졌다. 어깨에서부터 시작된 기이한 마비 기운이 그의 전신 혈맥을 타고 흘러들어 단전의 마력 순환을 완전히 멈춰버린 것이다. 검을 쥔 태풍의 오른팔이 돌처럼 굳어 부르르 떨렸다.
“무슨 짓을…… 내 마력이 왜 흐르지 않는 거지?!”
“오만함에 취해 자신의 혈맥이 비명을 지르는 것조차 듣지 못한 대가다.”
차가운 음성과 함께 백서진의 신형이 이미 설태풍의 코앞까지 접근해 있었다. 서진의 오른손 주먹 위로 단단하고 푸르스름한 용비늘들이 돋아나며 파괴적인 힘의 기류가 휘감겼다.
쾅ㅡ!
서진의 용화된 주먹이 설태풍의 안면을 정확하게 강타했다. 뼈가 으스러지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설태풍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가, 연무장의 차가운 청석 바닥 위로 처참하게 처박혔다.
쩍! 쩍쩍!
청석 바닥이 사방으로 갈라지며 하얀 눈더미가 붉은 피로 물들었다. 설태풍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부러진 검자루를 쥔 상태로 연무장 바닥에 처박혀 온몸을 경련하며 혼절했다. 방계 최고의 천재라 불리던 사내가, 무공도 모른다던 창백한 약사의 단 한 방의 주먹에 뼈가 바스러지며 패배한 것이다.
연무장 전체가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듯 지독한 침묵 속에 잠겼다. 단상 위의 설무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얼굴을 험악하게 구겼다.
“이, 이 괴물 같은 놈이 기어코 가문의 천재를 폐인으로 만들었구나! 기사단은 무엇을 하느냐! 저 대역죄인 놈들을 당장 사로잡아 가죽을 벗겨라!”
설무진의 광기 어린 외침에 철참 기사단 무사들이 무기를 쥐고 비무대 위로 난입하려 했다. 하지만 백서진은 비무대 중앙에 굳건히 선 채, 품속에서 검게 그을린 가죽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피 묻은 양피지 한 장을 꺼내 허공을 향해 던졌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진짜 배신자가 누구인지, 이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라!”
서진의 외침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하린이 한설검을 가볍게 휘둘러 바람의 기류를 일으켰다. 바람을 탄 양피지가 연무장 허공을 날아다니며, 그 위에 선명하게 찍힌 설무진의 개인 직인과 용 사냥꾼 연합 북부지부의 붉은 해골 문양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것은 바로 설무진과 사냥꾼의 밀약(薛武珍과 獵師의 密約) 서신이었다. 하린을 제거하고 가문의 후계 자리를 찬탈하기 위해, 가문의 극비 도주 경로와 방어 결계 장치의 약점을 용 사냥꾼 연합에 팔아넘겼다는 추악한 매국의 증거였다.
양피지 조각들이 눈꽃처럼 흩날리며 연무장 아래 온건파 무인들과 방계 전사들의 손에 떨어졌다. 서신의 내용을 확인한 무인들의 얼굴이 배신감과 분노로 격렬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설무진 소가주가 용 사냥꾼 놈들과 손을 잡고 하린 소저를 죽이려 했다고?!”
“가문의 결계 약점까지 넘기다니! 우리를 사냥개들의 아가리에 밀어 넣은 진범이 바로 소가주였단 말인가!”
연무장은 순식간에 겉잡을 수 없는 분노의 폭풍 속으로 휩싸였다. 온건파의 수장인 설지평 장로가 대나무 지팡이로 청석 바닥을 쿵 하고 내리치며 단상 위의 설무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설무진! 가문의 핏줄을 팔아 사리사욕을 채우려 한 대역죄인이 바로 네놈이었구나! 선조들의 영혼 앞에서 어찌 고개를 들려 하느냐!”
“아, 아닙니다! 저건 위조된 서신입니다! 저 약사 놈이 나를 음해하기 위해 꾸민 짓입니다!”
설무진은 사색이 되어 소리쳤으나, 서신에 찍힌 가문 직인의 고유한 마력 파동은 결코 위조할 수 없는 진짜였다. 가문 무인들의 차가운 검날들이 일제히 설무진과 그의 심복들을 향해 겨누어졌다. 완벽한 실각이자 추락이었다. 사태가 완전히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가자, 하린은 안도하며 서진의 창백한 어깨를 조심스럽게 부축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연무장 가장 높은 곳,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며 얼음 옥좌에 앉아 있던 가문의 최고 지배자 가주 설진천(薛珍天)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으으으으ㅡ.
설진천이 단상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연무장을 가득 메우고 있던 무인들의 고함 소리가 일순간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대기를 채우고 있던 매서운 눈보라조차 강제로 박제된 듯 허공에 멈추어 섰다. 연무장 전체의 온도가 순식간에 영하 백 도 이하, 절대영도(絕對零度)의 영역으로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호흡을 들이쉴 때마다 폐포가 얼어붙어 유리가 깨지는 듯한 극심한 오한이 전신을 덮쳤다.
화경(化境) 초입에 도달한 초월적 강자의 위압이었다. 자식들의 비열한 배신이나 약사의 도발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설진천의 푸른 눈동자는 오직 실추된 가문의 위신과 이단의 존재에 대한 냉혹한 살의로만 가득 차 있었다.
설진천의 단단한 가죽 장화가 서리가 내린 단상을 디딜 때마다, 연무장 사방의 얼음 기둥들이 비명을 지르며 갈라졌다. 그는 허리춤에 찬 빙룡의 눈물 반지를 빛내며, 백서진과 설하린을 향해 절대 영도의 한기 서린 시선을 내리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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