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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돌파와 배신자의 단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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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ㅡ! 댕ㅡ!


자시(子時)를 알리는 빙벽성의 거대한 종소리가 삼엄한 어둠을 뚫고 지하 감옥 깊은 곳까지 무겁게 울려 퍼졌다.


차가운 성벽을 울리는 종소리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알리는 경보가 아니었다. 그것은 차디찬 얼음 감옥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던 백서진에게는 반격의 신호탄이었고, 성벽 외곽에서 숨죽이고 있던 설하린에게는 주군이자 남편을 구하기 위한 돌격의 신호였다.


“째깍…… 지지직…… 째깍, 째깍.”


지하 감옥의 얼음 벽에 쇠사슬로 결박된 채 매달려 있던 백서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뼈 중앙에 이식된 용골 심장 제어기는 카일의 저격으로 반파되어 톱니바퀴가 어긋난 채 붉은 용혈 증기와 성에를 내뿜고 있었다. 단전은 설무진이 채워둔 용혈 무력화 사슬에 묶여 마비되었고, 어깨의 저격 관통상은 한독이 침투해 시커멓게 얼어붙어 가고 있었다. 전신을 엄습하는 오한과 심장이 터질 듯한 과열이 교차하는 심장 과부하 1단계 경고 상태.


서진은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지명에게 배운 청심결을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천지무영, 심경여수…… 기화정화, 도가자연…….’


그때였다. 가만히 눈을 감고 호흡을 조율하던 서진의 왼손 약지가 파르르 떨렸다. 약지에 새겨진 신룡의 혈맹 반지가 은은한 푸른빛을 깜빡이며 심장 깊은 곳으로 따뜻한 공명 파동을 흘려보냈다.


‘하린이…… 왔다.’


쿵! 쿠구구구궁!


순간, 지하 감옥을 지탱하던 거대한 얼음 벽들이 비명을 지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감옥 외곽을 촘촘하게 옭아매고 있던 설가 고유의 빙결 결계 장치들이 파괴되는 굉음이었다. 노덕 집사가 전해준 도면에 따라 자시 교대 시간의 3분 공백을 노린 하린의 정밀한 기습이 완벽하게 성공한 것이 분명했다.


“침입자다! 결계실이 습격당했다!”


“모두 무기를 들어라! 지하 환기구 쪽을 봉쇄해!”


어수선한 경비병들의 고함과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복도를 타고 밀려왔다. 그리고 그 혼란을 찢고, 차가운 서리 안개와 함께 은백색 머리칼을 휘날리는 여인이 감옥의 철문을 부수며 난입했다.


설하린이었다.


그녀의 청청색 눈동자는 이성을 잃은 듯 살벌한 집착과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한설검은 푸른 한기 참격을 뿜어내며 복도를 가로막던 경비병들의 강철 방패와 검을 순식간에 얼려 부수었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얼음 파편 속에서 하린의 시선이 얼음 벽에 처참하게 묶여 있는 서진에게 닿았다.


“서진 씨……!”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상반신을 드러낸 채 피와 성에로 얼룩진 서진의 몰골을 본 순간, 하린의 가슴 깊은 곳에 깃든 소유욕과 맹목적인 분노가 폭발했다. 감히 자신의 남편이자 주군의 몸에 상처를 내고 차가운 감옥에 가두다니. 가문 전체를 얼려 죽여버려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린 소저, 비키십시오! 대역죄인을 데려가게 둘 것 같으냐!”


차가운 폭소와 함께 감옥 안쪽의 어둠 속에서 푸른 가죽 무복을 입은 사내가 장검을 뽑아 들며 나타났다. 설무진의 개인 호위무사이자 잔인한 검술로 악명 높은 배검이었다. 그의 장검 ‘서리이빨’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 살빙검결의 기운이 사방의 공기를 얼려버릴 듯 거칠게 소용돌이쳤다.


“배검…… 비열한 설무진의 사냥개 놈이 기어코 길을 막아서는구나.”


하린의 목소리는 절대 영도의 빙판처럼 차가웠다. 배검은 가소롭다는 듯 빙결 가속 보법을 전개하며 신형을 날렸다. 서리이빨이 허공을 가르며 하린의 다리를 잘라버릴 듯한 잔인한 궤적을 그리며 쏟아졌다.


쉬이이익! 챙! 채채챙!


두 자루의 검이 부딪칠 때마다 감옥 내부의 서리 안개가 거칠게 찢겨 나갔다. 배검의 살수검법은 무자비하고 빨랐으나, 서진과의 공생 의식을 통해 한 단계 진화한 하린의 빙화검결은 그 궤적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하린의 한설검 끝에서 피어나는 서리꽃들이 배검의 살기를 부드럽게 흘려보내며 역습의 틈을 노렸다.


“이 기집애가, 기어코 가문을 배신하더니 검술마저 기괴해졌구나!”


배검이 이를 악물며 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붉은 마력이 섞인 빙결 참격이 사방으로 폭사했다. 이때 하린의 뒤를 지키며 경비병들을 저지하던 호위 시녀 설영이 하린의 사각지대를 방어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


챙! 서걱!


“으윽!”


설영이 짧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밀려났다. 배검의 서리이빨 끝에 서린 예리한 검기가 설영의 오른쪽 어깨를 깊숙이 관통한 것이다. 상처 부위가 순식간에 푸르게 얼어붙으며 괴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일류 무인의 극성에 달한 배검의 검술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설영!”


하린의 눈동자가 분노로 뒤틀렸다. 아군이 다치는 모습을 본 순간, 공생 반지가 격렬하게 진동하며 서진의 심장 박동과 동기화되었다. 하린은 단전의 모든 빙결 마력을 쥐어짜 한설검을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빙화검결 극의, 무상빙룡참!’


한설검의 끝에서 투명하고 장엄한 빙룡의 형상이 뿜어져 나와 배검의 서리이빨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쿠구구구궁! 콰아아앙!


“끄아아악!”


배검의 장검 서리이빨이 한기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전신이 얼어붙은 배검은 피를 토하며 감옥 구석의 얼음 벽에 처참하게 처박혔다. 그의 사지 관절이 하얗게 얼어붙어 부서지는 소리가 기괴하게 울려 퍼졌다.


그 혼란한 틈을 타, 서진이 매달려 있는 얼음 벽 뒤편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스스스스ㅡ.


독고성이 붙여준 그림자 호위 무영이 그림자 보행을 전개해 소리 소문 없이 서진의 등 뒤로 나타난 것이다. 무영은 소리 없이 연검을 휘둘러 서진의 사지를 결박하고 있던 용혈 무력화 쇠사슬을 단숨에 끊어냈다.


털썩.


결박이 풀린 서진이 차가운 감옥 바닥으로 쓰러졌다. 전신이 마비되어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 상태였으나, 서진은 이를 악물고 낡은 가죽 약사복 품속을 더듬었다. 그의 손끝에 단단하고 차가운 은침 통이 만져졌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다.’


서진은 백초의 은침을 꺼내 들어, 자신의 명치 아래 거궐혈(巨闕穴)과 단전의 맥로들을 향해 주저 없이 깊숙이 찔러 넣었다. 스스로의 혈맥을 찔러 한계를 돌파하는 자학적인 침술.


“우욱……!”


서진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침끝을 타고 흐르는 미세한 용혈 마력이 막혀 있던 단전의 마맥을 일시적으로 강제 개방했다. 째깍거리며 멈추어 가던 심장 제어기가 황금빛 광채를 내뿜으며 다시금 폭발적으로 고동치기 시작했다. 마비되었던 사지의 신경이 기적적으로 살아나며, 그의 검은 눈동자가 완전히 푸른 청룡의 세로 동공으로 변해 빛났다.


‘용안 개안(龍眼 開眼).’


서진의 시야가 순식간에 흑백으로 반전되며 주변의 모든 미세한 마력 흐름이 투사되었다.


그때, 쇠창살 뒤편의 어두운 구석에서 쥐새끼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던 사내가 보였다. 하린의 전속 집사였으나 돈에 눈이 멀어 자신들을 밀고한 배신자, 마평이었다. 마평은 품속에서 빙백독침을 꺼내 들어 무방비 상태인 서진의 심장을 향해 저격하려 손끝을 겨누고 있었다.


용안에 의해 독침의 붉은 살기 궤적이 서진의 뇌리에 0.1초 만에 그려졌다.


“무영! 오른쪽 쇠창살 뒤 삼 장 거리, 배신자다!”


서진의 날카로운 외침과 동시에, 무영의 신형이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졌다.


스윽! 팍!


“끄아악!”


마평이 독침을 쏘기도 전에,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무영의 단검이 마평의 손목 관절을 정확히 관통해 바닥에 박아버렸다. 독침을 떨어뜨린 마평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한편, 배검의 검에 어깨를 관통당한 설영은 바닥에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상처를 타고 흐르는 음한 사독이 그녀의 심장을 향해 옥죄어 가고 있어,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태였다.


하린은 설영을 품에 안고 안절부절못하며 자신의 빙결 마력으로 독기를 억제하려 했으나, 오히려 한기가 상처를 더 얼려 괴사를 가속할 뿐이었다. 하린의 눈가에 절망적인 눈물이 고였다.


“설영…… 안 돼, 정신 차려……!”


“비켜봐, 하린아.”


서진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와 설영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얼굴은 은침술의 반동으로 인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으나, 눈빛만큼은 흔들림 없이 냉철했다.


“서진 씨…… 하지만 당신의 몸도…….”


“동료를 버려두고 갈 수는 없어.”


서진은 단호하게 말하며 자신의 오른쪽 검지 손가락 끝을 깨물었다. 이빨이 살을 찢자, 황금빛 푸른 광채를 내뿜는 신선하고 뜨거운 용혈 피가 솟구쳤.


서진은 주저 없이 자신의 피를 설영의 푸르게 죽어가는 어깨 상처 위로 흘려 넣고, 그녀의 입술 사이로 몇 방울을 떨어뜨렸다.


‘용혈 치유(龍血 治癒).’


용의 황실 피가 지닌 초자연적인 재생 마력이 설영의 상처 속으로 스며들자, 기적이 일어났다. 검푸르게 썩어가던 살점이 순식간에 정화되며 새살이 돋아났고, 뒤틀렸던 뼈 관절이 원래 자리를 찾아 맞춰졌다. 설영의 거칠던 호흡이 이내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으음.”


설영이 천천히 눈을 뜨며 서진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피를 나누어준 주군. 설영의 눈동자 깊은 곳에 평생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맹목적인 충성심과 연모의 감정이 깊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치유의 대가는 가혹했다. 자신의 생명력을 직접 깎아 피를 나누어준 서진은 전신이 창백하게 식어가며 심장 제어기가 거칠게 째깍거렸다. 하린은 서진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녀는 서진의 손을 꼭 잡으며, 반지를 통해 자신의 빙결 마력을 주입해 그의 과열된 심장을 식혀주었다.


“바보같이…… 왜 스스로를 해쳐가며 타인을 구하는 건가요. 당신의 피는 오직 나만의 것인데…….”


하린의 목소리에는 서진을 향한 깊은 애정과 함께, 타인에게 피를 나누어준 것에 대한 미묘한 질투와 집착이 섞여 있었다. 서진은 가볍게 웃으며 하린의 손길에 기댔다.


“자, 이제 배신자를 단죄할 시간이다.”


무영이 손목이 꿰뚫린 채 바닥에서 울부짖고 있던 마평을 질질 끌고 와 하린의 앞에 무릎을 꿇렸다.


마평은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하린의 가죽 장화 끝바닥을 붙잡고 처절하게 빌기 시작했다.


“아기씨! 살려주십시오! 제가 눈이 멀었습니다! 설무진 도련님이 거액의 금화와 가문 내부의 고위 집사 자리를 약속하며 저를 협박하고 매수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하린은 한설검을 천천히 들어 올려 마평의 목덜미에 차가운 검날을 갖다 대었다. 검날에서 흘러나오는 서리 안개가 마평의 목덜미 피부를 즉시 얼려버렸다.


“마평, 너는 어릴 때부터 나를 보좌해 온 집사였다. 가문의 냉혹함 속에서 유일하게 내 편이라 믿었던 네가, 어떻게 내 도주 경로와 무고한 약초꾼들, 그리고 동이의 위치까지 사냥꾼들에게 팔아넘길 수 있지?”


“아윽! 아기씨! 잘못했습니다! 무진 도련님이…… 무진 도련님이 가문의 지하 비고에서 금지된 고대 봉인을 풀어 서리거인(서리거인)을 깨우려 하십니다! 그 괴수를 깨워 아기씨와 이단 놈을 한꺼번에 쓸어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진짜입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마평이 파멸을 직면하고 마지막 비밀을 실토했다.


서리거인의 봉인 해제 음모.


하린의 눈동자가 차가운 은빛 서리로 완벽하게 물들었다. 더 이상의 자비는 사치였다. 가문의 추악함과 배신자들의 비열함에 하린은 완전히 환멸을 느꼈다. 배신자는 가문의 엄격한 규칙에 따라 처단해야 마땅했다.


“배신자의 말로는 오직 죽음뿐이다.”


서걱ㅡ!


망설임 없는 하린의 단호한 참격이 허공을 갈랐다. 마평의 목이 베여 나가며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잘려 나간 목 단면에서는 피조차 흐르지 못하고 푸른 얼음 결정으로 굳어버렸다. 배신자를 제 손으로 단죄한 하린은 검날에 묻은 얼어붙은 핏방울을 가볍게 털어내며 서진을 바라보았다.


“서진 씨, 이제 탈출해야 해요. 설무진이 괴수를 깨우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그래, 서두르자.”


서진은 무영의 부축을 받으며 설영을 챙겨 감옥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마평의 죄를 묻고 내부의 적들을 완벽히 단죄했으니, 이제 독고 상회가 준비한 선착장 퇴로를 향해 미끄러져 나가기만 하면 될 터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구궁ㅡ!


갑자기 지하 감옥 천장 전체가 거대한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요동치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얼음 기둥들과 바위 덩어리들이 굉음과 함께 쏟아져 내리며, 그들이 들어왔던 유일한 출구이자 퇴로인 지하 환기구 입구를 완벽하게 덮쳐 가로막아 버렸다.


“콜록! 콜록! 퇴로가 막혔습니다!”


설영이 먼지와 서리 가루 속에서 기침을 하며 소리쳤다.


자욱한 서리 먼지가 서서히 갈라지는 무너진 입구 너머로, 묵직한 갑옷 마찰음과 함께 수십 명의 무인들이 대형을 갖추며 모습을 드러냈다.


단단한 흑철 전신 갑옷을 두르고, 거대한 방패와 철퇴를 쥔 채 살기를 뿜어내는 정예병들. 설가 가주 설진천의 직속 친위대이자 국경 지대 최고의 무력 집단인 철참 기사단(鐵斬 騎士團)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서, 차가운 은빛 머리칼을 단정하게 빗어 넘긴 채 위엄 넘치는 기세를 뿜어내는 중년 남성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설하린의 친부이자 북해 설가의 가주, 설진천(설진천)이었다.


그가 내뿜는 화경(化境) 고수의 압도적인 한기 위압이 지하 감옥 전체를 순식간에 절대 영도의 공간으로 얼려버리며, 서진 일행의 숨통을 강하게 옭아매기 시작했다.


“내 허락 없이 이 감옥을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배은망덕한 딸년과 이단의 괴수 놈아.”


설진천의 차가운 목소리가 감옥 벽을 타고 무겁게 메아리치며, 일행의 앞길을 완벽하게 가로막았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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