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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참(鐵斬)의 포위망과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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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럼 붉은 광채가 밤하늘을 찢어발겼다.


헨리가 죽어가며 자신의 온 생명력을 바쳐 쏘아 올린 성황청의 비상 경보 마법진은, 은빛 전나무 숲의 고요한 어둠을 잔혹하게 불태우고 있었다. 폭설이 멎은 혹독한 밤하늘 위로 일렁이는 붉은 문양들은 수십 리 밖에서도 선명히 보일 만큼 거대했다.


“서진 씨……!”


설하린이 창백해진 얼굴로 백서진의 상체를 단단히 안아 올렸다. 서진은 성수 조각의 정화 마력 반동으로 인해 전신에 타들어 가는 듯한 탄화 자상을 입은 상태였다. 가슴뼈 중앙에 이식된 용골 심장 제어기는 성광의 잔재에 과열되어 거칠게 째깍거리며 불규칙한 붉은 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입가에 흐르는 검은 용혈 피를 훔쳐낼 여유조차 없었다.


“하아, 하아…… 괜찮습니다, 하린 씨. 반지로 전해지는 한기 덕분에…… 심장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서진은 이를 악물며 겨우 대답했다. 두 사람의 왼손 약지에 새겨진 신룡의 혈맹 반지가 붉고 푸른 광채를 교차로 내뿜으며 하린의 극순수 한기를 서진의 마맥으로 강제 수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수 조각의 상극 반응이 남긴 내상은 깊었다. 전신의 기동력이 평소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때, 숲의 저편에서 대지를 뒤흔드는 불길한 군마의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순한 순찰대의 규모가 아니었다. 수백 마리의 군마가 눈밭을 짓밟으며 사방에서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스스스.


초소의 어둠 속에서 무영의 신형이 흐려지듯 나타났다. 헨리의 시신을 수습하고 전서구를 격추했던 그의 얼굴에는 전에 없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주군, 설가의 철참 기사단과 용 사냥꾼 연합의 대부대입니다. 이미 은빛 전나무 숲의 모든 공식 탈출로가 차단되었습니다. 붉은 경보를 보고 빙벽성에 주둔하던 정예 병력이 통째로 움직인 듯합니다.”


“바투 형님과 동이는……?”


“초소 뒤편 샛길가에 대기 중입니다. 하지만 바투 님의 사독 중독 상태가 심각하여 도주 속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서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설가와 사냥꾼 연합의 야합. 그리고 성황청의 비상 경보까지. 자신을 향한 세상의 살의가 이 은빛 전나무 숲 한가운데로 집결하고 있었다. 서진은 하린의 부축을 받아 겨우 일어서며 용안을 개안했다.


‘용안 개안(龍眼 開眼).’


그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푸른 세로 동공으로 변하며 주변의 모든 마력 흐름이 시각적으로 투사되었다. 흑백의 시야 너머로, 전나무 숲 사이사이를 촘촘하게 메우며 다가오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기류들이 보였다. 그것은 설가 무사들의 빙결 마력과 사냥꾼들의 도룡(屠龍) 기공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그물망이었다.


“샛길로 우회해야 합니다. 바투 형님의 상태를 생각해서라도 정면 돌파는 불가능합니다.”


서진의 판단에 하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설검을 다잡았다. 그러나 그들이 초소를 벗어나 전나무 숲의 깊은 눈밭으로 발을 디딘 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쿠구구구궁!


그들의 머리 위를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전나무들이 얼음 검기에 잘려 나가며 굉음과 함께 쓰러졌다. 사방에서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흑철 갑옷을 입은 거구의 무인들이 눈더미를 헤치며 나타났다.


설가 가주 설진천의 직속 친위대이자, 용 사냥꾼 연합과 결탁한 ‘철참 기사단’이었다.


그들의 중심에서, 은빛 비단 도포를 걸친 음험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린의 이복오빠이자 가문의 후계 자리를 노리는 적대자, 설무진이었다. 그의 뱀처럼 날카로운 눈매가 서진과 하린의 약지에 끼워진 혈맹 반지를 포착하자 기괴한 미소가 그려졌다.


“기어코 이단 놈과 피를 섞고 반지까지 나눠 가졌구나, 하린아.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대역죄인의 말로가 어떤지 오늘 똑똑히 보여주마.”


“설무진…… 비열한 밀고자 놈이!”


하린이 분노로 이성을 잃고 검기를 뿜어내려 하자, 설무진의 뒤편에서 거대한 흑철 전신 갑옷을 입은 2미터의 거구가 걸어 나왔다. 가시 돋친 거대한 철철퇴를 한 손으로 가볍게 휘두르는 사내, 철참 기사단장 브론이었다.


“말은 필요 없다. 가주의 명령은 이단 용혈의 생포, 그리고 방해자의 사살이다.”


브론의 무시무시한 흑철강기 기압이 은빛 전나무 숲 전체를 정면에서 짓눌렀다. 그 기압만으로도 서진의 숨통이 막혀왔다. 기사단의 정예병들이 일제히 무기를 겨누며 포위망을 완성하는 순간이었다.


피융ㅡ!


그때, 보이지 않는 전나무 숲의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용 사냥꾼 연합의 일류 저격수, 카일이 쏜 마력 관통 화살이었다.


“서진 씨, 조심해요!”


하린이 본능적으로 한설검을 휘둘러 만년한설 장벽을 전방에 세웠다. 투명하고 단단한 얼음 장벽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콰아아앙!


그러나 카일의 화살은 단순한 투척물이 아니었다. 용의 비늘을 뚫기 위해 특수 제련된 마력 관통 화살은 극대화된 관통력을 품고 있었고, 하린의 빙설 장벽을 맥없이 관통해 버렸다. 산산조각이 난 얼음 파편 너머로 푸른 빛을 발하는 화살촉이 서진의 가슴을 향해 쇄도했다.


“윽……!”


서진은 마비된 다리를 강제로 움직여 신형을 틀었으나, 화살은 그의 오른쪽 어깨를 깊숙이 관통했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과 함께 화살에 실린 강력한 충격파가 서진의 가슴뼈 중앙을 직격했다.


쩍! 째깍, 째깍, 째깍ㅡ!


가슴에 이식된 용골 심장 제어기의 외골격이 화살의 충격으로 인해 처참하게 반파되었다. 톱니바퀴들이 비명을 지르며 어긋났고, 제어 장치 내부에서 붉은 용혈 증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아악!”


서진은 가슴을 부여잡고 눈밭 위로 쓰러졌다. 심장 과부하 1단계 경고 상태가 강제로 가동되며, 전신의 혈관이 뜨거운 용암에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각혈 통증이 엄습했다. 입술 사이로 검붉은 용혈 피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하얀 눈을 붉게 물들였다.


“서진 씨! 서진 씨!”


하린이 비명을 지르며 서진을 붙잡으려 했으나, 설무진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신호를 보냈다.


“용혈 무력화 사슬을 투척해라! 저놈의 단전을 묶어라!”


사방에서 철참 기사단의 사수들이 검붉은 마법 각인이 새겨진 흑철 쇠사슬들을 투척했다. 뱀처럼 날아온 사슬들이 서진의 사지와 파손된 가슴 제어기를 칭칭 감아쥐었다. 사슬에 각인된 용혈 약화 룬이 가동되자, 서진의 단전에 흐르던 청룡의 마력이 순식간에 차단되며 전신 근육이 마비되었다.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구속이었다.


“이 더러운 사냥개 놈들이……! 내 주군에게서 손 치워라!”


그때, 초소 뒤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바투가 참마도를 치켜들며 전장으로 난입했다. 그의 어깨는 조걸의 사독으로 검푸르게 얼어붙어 있었으나, 의형제 서진이 사슬에 묶여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자 그의 야성적인 분노가 한계를 돌파했다.


“야수 광화(野性 狂化)!”


바투의 온몸에 은빛 설표 무늬의 털이 돋아나며 근육이 터질 듯이 팽창했다. 그는 고통을 잊은 채 포효하며 철참 기사단의 정면 장벽을 향해 돌진했다. 참마도가 호선을 그리며 기사들의 방패를 부수고 길을 열었다.


“서진아! 내가 간다!”


바투는 단숨에 서진을 결박하고 있던 사슬 무리 앞까지 도달하여 브론을 향해 참마도를 내리쳤다.


“하찮은 야수 수인 놈이.”


기사단장 브론은 냉혹하게 미소 지으며 가슴팍의 흑철강기를 끌어올렸다. 그가 한 손으로 쥔 거대 흑철 가시 철퇴가 광화 기류를 두르며 바투의 참마도를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콰아아앙!


귀를 찢는 듯한 금속 충격음과 함께 바투의 거대한 참마도가 허공으로 부러져 날아갔다. 엄청난 무력의 경지 차이였다. 브론은 멈추지 않고 철퇴를 회전시켜 바투의 무방비한 가슴을 그대로 강타했다.


‘쇄골 철퇴격(碎骨 鐵槌擊)!’


쿵! 하는 둔탁한 파쇄음과 함께 바투의 흉부가 처참하게 함몰되었다.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바투의 거구가 수십 미터를 날아가 거대한 전나무 밑동에 처박혔다.


“바투 형님……!”


서진이 사슬에 묶인 채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바투는 입으로 선혈을 한 바가지 토해내며 손가락만을 바르르 떨 뿐,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치명적인 흉부 골절 내상이었다. 바투의 생명력이 급격하게 꺼져가는 것이 서진의 용안에 선명하게 비쳤다.


설무진이 검을 뽑아 들고 서진의 목덜미를 겨누며 천천히 다가왔다.


“끝났다, 이단의 괴수여. 네놈의 심장을 도려내 가문에 바치고, 하린이 놈은 지하 감옥에 평생 가두어 마력을 추출해 주마.”


하린은 부러진 검을 쥐고 서진의 앞을 막아서려 했으나, 이미 그녀의 단전 마력 역시 바닥나 전신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바투는 치료 시기를 놓쳐 사망할 것이고, 하린 역시 비참하게 생포당해 파멸할 터였다.


서진은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냉철하게 상황을 계산했다.


‘여기서 모두 죽을 수는 없다. 내가 미끼가 되어 사로잡히는 대신, 바투 형님과 하린 씨를 탈출시켜야만 한다. 내가 살아있는 한, 설무진은 내 심장을 함부로 파괴하지 못할 테니까.’


서진은 붉은 용혈 피가 가득 고인 목구멍을 열어, 사슬에 묶인 채 설무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설무진…… 거래를 제안하지.”


“거래? 사슬에 묶인 개새끼가 무슨 거래를 한단 말이냐?”


“내 심장은 용골 제어기와 완벽히 융합되어 있다. 네놈이 나를 억지로 죽여 심장을 적출하려 드는 순간, 제어 장치가 자폭하여 청룡의 심장 역시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가문에 온전한 심장을 바치고 싶다면…… 나를 생포해라.”


설무진의 눈동자가 탐욕으로 미세하게 흔들렸다. 서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대신, 저 쓰러진 수인족과 설하린을 이 자리에서 보내줘라. 그들을 추격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다가 내 심장이 과열로 자폭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서진 씨! 안 돼요!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같이 가요!”


하린이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지만, 서진은 그녀를 향해 단호하면서도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왼손 약지에 끼워진 신룡의 혈맹 반지를 통해, 오직 하린의 심상으로만 닿을 수 있는 은밀한 전음을 보냈다.


‘하린 씨, 제 말을 들으세요. 저는 살아남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은 무영과 함께 바투 형님을 데리고 탈출하세요. 그리고…… 반드시 저를 구하러 와 주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반지를 타고 흐르는 서진의 따뜻하고도 굳건한 영혼의 목소리가 하린의 뇌리를 강하게 때렸다.


설무진은 쓰러진 바투와 마력이 바닥난 하린을 번갈아 본 뒤, 비열하게 미소 지었다.


“좋다. 어차피 저 나약한 야수 놈과 버려진 계집은 내 후계 자리에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으니. 저놈들을 보내주마. 기사단, 이단의 괴수를 철저히 결박해 압송해라!”


“예!”


철참 기사들이 서진의 사지에 흑철 족쇄를 채우며 그를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어둠 속에서 무영이 그림자 보행으로 소리 없이 나타나, 기절해 가는 바투와 울부짖는 동이를 양어깨에 짊어졌다.


“안 돼…… 서진 씨……! 내 주군을 데려가지 마라!”


하린은 무영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퇴로로 끌려가면서도, 사슬에 묶여 어둠 속으로 끌려가는 서진의 뒷모습을 향해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그녀의 은백색 머리칼이 밤바람에 흩날렸고, 청청색 눈동자는 피눈물 같은 절망과 함께 극치에 달한 집착의 광기로 번뜩이기 시작했다.


서진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그녀를 향해 안심하라는 듯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쇠사슬이 눈밭 위를 끄는 차가운 마찰음과 함께, 백서진은 철참 기사단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빙벽성의 가장 깊고 차가운 지하 감옥을 향해 압송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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