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황청의 그림자와 보이지 않는 추격
헨리의 탐지 나침반이 붉은 비명을 지르는 순간, 그는 굳은 표정으로 고속 전서구의 날개를 펼쳐 올렸다.
사방이 침묵에 잠긴 용골 계곡 외곽의 임시 초소. 성황청 정찰관 헨리는 떨리는 손으로 양피지를 말아 전서구의 다리에 단단히 묶었다. 방금 전 계곡 중심부에서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던 그 푸른 마력의 기둥은 단순한 마수의 폭주가 아니었다. 그것은 천 년 전 멸망한 줄 알았던 고대 청룡의 위압이었고, 성황청이 세상에서 가장 경계하는 ‘용혈(龍血)’의 완전한 각성을 알리는 전조였다.
“이단이다. 세상을 파멸로 이끌 사악한 용의 기운이 북해의 국경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헨리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혼잣말은 광신적인 두려움과 살의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 걸린 은색 펜던트 내부의 ‘성황청의 성수 조각’이 서진이 방출한 용혈의 파동과 공명하여 붉은빛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 밀서가 중앙성황청 천공 신전에 닿는 순간, 수천 명의 성기사단과 이단 심문관들이 이 차가운 북해 변방으로 쏟아져 들어올 터였다. 그리되면 백서진은 물론이고 그를 돕던 설하린과 바투, 그리고 무고한 피난민들까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파닥!
전서구가 날갯짓을 하며 헨리의 손끝을 떠나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초소의 목조 창문 틈새로 불어온 매서운 바람이 촛불을 단숨에 꺼트렸다. 칠흑 같은 어둠이 초소 내부를 집어삼켰고, 영하 80도에 달하는 만년설산의 오한과는 다른, 기이하리만치 고요하고 차가운 그림자의 기척이 방 안을 채웠다.
“누구냐!”
헨리가 본능적으로 허리에 찬 은검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그의 예리한 감각으로도 침입자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침입자는 바람도, 소리도 남기지 않은 채 어둠 그 자체가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초소 외부, 울창하게 우거진 은빛 전나무 숲의 그늘막 아래.
백서진은 나무 밑동에 기대어 서서 푸르게 빛나는 세로 동공을 번뜩이고 있었다. 고대 제단의 가호로 심장의 폭주는 간신히 진정되었으나, 다량의 피를 흘린 탓에 전신에 심한 빈혈과 현기증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창백한 뺨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서진 씨, 무리하지 마세요. 아직 마맥이 완전히 안정되지 않았어요.”
설하린이 서진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창백한 손을 꽉 맞잡았다. 두 사람의 왼손 약지에 새겨진 ‘신룡의 혈맹 반지’가 은은한 푸른빛과 붉은 전격을 교차로 내뿜으며 공명했다. 하린의 손끝에서 흘러드는 극순수 한기 마력이 서진의 혈관을 타고 가슴뼈의 ‘용골 심장 제어기’로 주입되자, 타들어 가던 식도와 내장이 비로소 부드럽게 진정되었다.
하린은 서진의 옷깃을 조심스럽게 여며주며, 그의 목덜미에 새겨진 불타는 용의 낙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낙인을 볼 때마다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소유욕과 맹목적인 보호 본능이 끓어올랐다. 가문의 명령도, 명예도 이제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 남자의 심장이 멈추는 순간 자신의 영혼도 함께 불타 소멸할 것임을, 혈맹 반지의 고동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치게 두지 않을 거예요. 당신의 심장은…… 오직 내 한기 없이는 버틸 수 없으니까.”
하린의 목소리에 담긴 은밀하고도 살벌한 집착을 느끼며, 서진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귀에 걸린 ‘질투 감지 귀걸이’가 하린의 감정 변화에 반응해 미세하게 짤랑거리는 맑은 소리를 냈다. 서진은 시선을 돌려 초소 내부를 투시했다.
‘용안 개안(龍眼 開眼).’
서진의 시야가 순식간에 흑백으로 반전되며, 초소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성광 마력의 궤적들이 실타래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헨리가 전서구를 날려 보내기 위해 손을 치켜올리는 그 짧은 움직임의 궤적까지 0.1초 단위로 그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무영, 지금이다. 전서구의 날개를 꺾어라.”
서진의 나직한 전음이 허공을 때렸다.
그와 동시에, 초소 내부의 그림자 속에서 회색 음영 가죽 옷을 입은 신비로운 형상이 솟구쳐 올랐다. 독고 상회가 붙여준 일류 암살자, 무영이었다. 무영은 ‘그림자 보행(그림자 보행)’의 극의를 시전하여 헨리의 시야 사각지대를 완전히 파고들었다. 소리 없이 뻗어 나온 무영의 그림자 연검이 전서구의 다리를 겨냥했다.
“이단 사냥개 놈들이 기어코……! 성광 추적 마법!”
하지만 헨리는 만만치 않은 성황청의 정예였다. 그는 침입자의 기척을 느끼자마자 가슴팍의 펜던트를 움켜쥐며 성광 마력을 폭발시켰다. 초소 내부를 가득 채운 백색의 성스러운 빛이 무영의 그림자 은신을 강제로 차단하며 그의 신형을 허공에 노출시켰다. 눈이 멀 것 같은 광채 속에서 무영의 연검 궤적이 미세하게 흐트러졌다.
푸덕! 전서구가 무영의 검날을 간발의 차로 피하며 열린 창문 밖으로 날아올랐다. 하늘로 치솟는 전서구의 다리에는 서진의 목숨을 옭아맬 밀서가 묶여 있었다.
“안 돼!”
하린이 대지를 박차며 한설검을 뽑아 들었다. 그녀는 검날에 극도의 한기를 압축해 날아가던 전서구를 얼려버리려 참격을 날렸다. 푸른 한기의 검기가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헨리가 더 빨랐다. 그는 자신의 은검을 대지에 꽂으며 가슴팍의 ‘성황청의 성수 조각’의 힘을 전개했다.
“성스러운 수호 장막!”
백색의 신성한 방어막이 초소 외부를 감싸 안으며 하린의 빙결 참격을 정면에서 가로막았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하린의 검기가 성광 장막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며 하얀 서리 가루로 변해 흩날렸다. 성황청 고유의 정화 마력이 지닌 상극의 힘 앞에서는 하린의 일류급 한기조차 일시적으로 상쇄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전서구가 국경을 넘으면 끝장이다…….”
서진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용안은 공기 중에 흐르는 성광 장막의 마력 흐름을 실시간으로 읽어내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빈틈없어 보이는 장막이었지만, 헨리가 방금 전 습격을 받아 마맥의 호흡이 불규칙해진 탓에 장막의 우측 하단, 즉 대지와 연결된 기맥의 접합부에 미세한 균열이 발생해 있었다.
‘마력 흐름 간파(마력 흐름 간파).’
서진은 지체하지 않고 소매 속에서 ‘백초의 은침’을 꺼내 들었다. 단전의 청룡 마력을 침끝에 집중시키자, 은침이 미세하게 푸른빛으로 진동했다.
“하린 씨, 장막의 우측 삼 인치 아래를 검기로 타격해 주세요. 제가 그 틈을 타 결계의 맥을 끊겠습니다.”
“알겠어요!”
하린이 서진의 지시에 따라 한설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날카로운 서리 바람이 서진이 가리킨 장막의 균열을 정확히 강타했다. 성광 장막이 파르르 떨리며 일순간 빛이 바래는 찰나, 서진이 손목을 튕겨 은침을 날렸다.
쉬이익!
공기를 가른 은침이 장막의 균열을 뚫고 들어가, 내부에서 결계를 유지하던 헨리의 은검 자루에 정확히 박혔다. 은침에 깃든 용혈 마력이 성광의 순환 회로를 강제로 뒤틀어버렸다.
쩍! 쩍쩍!
거대한 성광 장막이 유리창이 깨지듯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결계가 깨지며 발생한 강력한 마력 반동이 헨리의 단전을 강타했고, 그는 붉은 피를 토하며 뒤로 비틀거렸다.
“끄아악! 결계의 맥을 한눈에 꿰뚫다니…… 네놈, 단순한 약사가 아니로구나!”
결계가 무너지자, 무영의 신형이 다시 한번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무영은 날아오르던 전서구의 머리 위 허공에서 소리 없이 나타나, 소매 속에서 은빛 단검을 투척했다.
핏!
단검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던 전서구의 날개를 정확히 관통했다. 비틀거리던 전서구는 밀서와 함께 울창한 은빛 전나무 숲의 눈더미 속으로 추락했다. 성황청 본국으로 향하려던 밀서 전송을 완벽하게 저지한 순간이었다.
“해냈군요, 서진 씨!”
하린이 안도하며 서진의 품에 기대려 했다.
그러나 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헨리가 광기 어린 눈빛으로 서진을 노려보며, 자신의 가슴팍에 걸려 있던 은색 펜던트를 손으로 쥐어짜 박살 냈다. 펜던트 내부에서 완전히 노출된 ‘성황청의 성수 조각’이 격렬한 백색 정화 광채를 내뿜기 시작했다.
“사악한 용의 핏줄이여…… 성스러운 빛의 심판을 받아라!”
헨리가 뿜어낸 성수 조각의 정화 마력이 폭풍처럼 서진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일반 무인에게는 그저 따뜻한 빛에 불과했으나, 멸망한 고대 청룡의 피를 이어받은 서진에게는 그것은 전신의 피부를 칼로 포를 뜨고 소금을 뿌리는 듯한 극단적인 거부 반응 통증을 유발했다.
“으윽……! 컥!”
서진의 전신 피부가 성광에 닿자마자 붉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목덜미의 용의 낙인이 비명을 지르듯 검붉은 빛으로 요동쳤고, 가슴뼈에 이식된 용골 심장 제어기가 과열되어 거칠게 째깍거리며 뜨거운 용혈 증기를 폭발적으로 뿜어냈다.
“서진 씨!”
하린이 경악하며 서진을 껴안았지만, 그녀의 한기 마력마저 성수 조각의 정화 광채에 가로막혀 서진의 심장에 닿지 못했다. 서진은 심장이 반파되는 듯한 고통 속에서 입술을 깨물며 검은 피를 눈밭 위로 울컥 토해냈다.
“하하하! 소용없다! 그 더러운 피를 품고 있는 한, 성황청의 빛 아래서 네놈의 심장은 스스로 타들어 가 멸망할 것이다!”
헨리가 피를 흘리며 광소를 터트렸다.
서진은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도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쥐어짜며, 단전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청룡의 위압을 강제로 끌어올렸다. 비록 성수 조각의 정화 마력이 그의 혈맥을 억제하고 있었지만, 서진은 아스카르에게 전수받은 용언의 기초 구결을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사라져라, 위선자들의 빛이여.’
웅웅웅!
서진의 목덜미 낙인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용의 기운이 성수 조각의 백색 광채를 정면으로 짓눌렀다. 상극의 두 마력이 충돌하며 발생한 거대한 마력 폭발이 초소 내부를 휩쓸었고, 이내 헨리의 손에 들려 있던 성수 조각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미세한 가루가 되어 산산조각 났다.
빛이 사라지자 서진은 무릎을 꿇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의 제어기가 서서히 열기를 식히며 안정을 찾아갔으나, 그의 전신은 이미 성광에 탄화되어 심각한 자상으로 뒤덮여 있었다.
“무영…… 헨리를 제압해라.”
서진의 명령에 무영이 단검을 헨리의 목덜미에 겨누며 그를 완벽하게 무력화시켰다. 밀서 발송을 막았고, 적의 정보관을 사로잡았으니 완벽한 승리여야 했다.
하지만 쓰러진 헨리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올라갔다.
“바보 같은 이단 놈들…… 내가 죽더라도, 성황청의 감시망은 결코 피할 수 없다.”
헨리는 자신의 혀를 깨물어 흘러나온 피를 초소 바닥에 그려져 있던 작은 성광 마법진에 들이부었다. 그의 생명력을 제물로 삼은 최후의 비상 주문이었다.
웅웅웅!
초소 바닥의 마법진이 붉은색 파동으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서진이 용안으로 그것을 멈추려 은침을 던지려 했으나, 이미 그의 손가락은 성수 조각의 반동으로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지하에서부터 솟구친 거대한 붉은 마법 광선이 초소의 지붕을 뚫고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하늘을 피처럼 붉게 물들이며 솟구친 성황청의 비상 경보는, 국경 지대의 고요한 밤을 잔혹하게 깨부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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