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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침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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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 밸브 틈새로 새어 나오는 붉은 에테르의 광풍이 도윤의 수죄복을 거칠게 찢어발기려 했다. 등 가죽에 새겨진 고대 제국의 금기서 문양들이 그 기괴한 인력(引力)에 반응하여 살을 뚫고 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끄으윽……!”


도윤은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간신히 삼키며 배수관의 차가운 쇠벽에 이마를 기댔다. 오른손 끝의 화상 상처가 재파열되면서 검붉은 피가 녹슨 파이프 표면으로 흘러내렸다. 성대가 산성 가스에 절반쯤 녹아내린 탓에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쉭쉭거리는 거친 쇳소리뿐이었다.


특별 독방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 흡수 파동은 도윤의 등 뒤에 활성화된 미세 마나 회로를 강제로 빨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이대로 기류에 휘쓸린다면 그의 정신은 물론, 한국인 신도윤으로서의 자아마저 통째로 붕괴할 판이었다.


‘냉정해져라. 분석해. 이건 단순한 마력의 폭주가 아니다.’


도윤은 눈을 감고 ‘뇌세포 연산 과부하 방지 규칙’을 가동했다. 머릿속의 사색 영역을 의식적으로 분할하여 한쪽에는 고통을 격리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눈앞의 마도 역학적 파동을 계산했다.


이 지독한 흡수력의 정체는 교단이 이단 마법사들의 힘을 강제로 갈취하기 위해 설치한 ‘마력 흡수석’ 장치의 파동이었다. 특별 독방 안의 에스더가 가진 고대 신성 마법을 억지로 쥐어짜기 위해 장치가 비정상적으로 과부하 가동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도윤은 등 뒤의 문신 흐름을 미세하게 뒤틀었다. 감옥 전체를 억누르는 결계의 파동과 반대되는 역위상의 에테르 진동을 방출하는 ‘억제 결계핵 우회 공식’을 적용했다.


지이이잉-


도윤의 등 가죽이 시뻘겋게 과열되며 하얀 김을 내뿜었지만, 기괴하게 요동치던 에테르 광풍이 그의 신체 주변에서 미세하게 굴절되며 우회하기 시작했다. 인력의 직격을 피하자 심장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서서히 걷혔다.


“형님, 괜찮으세요?”


어둠 속에서 꼬마 도둑 로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도윤의 수죄복 소매를 붙잡았다. 도윤은 거친 쇳소리로 속삭였다.


“……시간이 없다. 감시탑의 탐지 장막이 우회되는 시간은 단 3분. 서둘러야 해.”


로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배수 밸브의 수동 레버를 만졌다. 로이의 얇은 손가락 끝에 쥐어진 만능 열쇠 핀이 몇 번 찰칵거리자, 수십 년간 닫혀 있던 무거운 청동 밸브가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열렸다.


두 사람은 몸을 웅크린 채 배수관 내부의 어두운 통로를 통과해 지하 2층 특별 독방 구역의 하부 통로로 진입했다.


도윤은 즉시 ‘인지 왜곡(Cognitive Distortion)’ 기술을 전개했다. 피부 문신의 혈류를 차단하여 마력 발광을 숨기고, 주변의 빛과 에테르 흐름을 미세하게 굴절시켰다. 아지랑이 같은 투명한 장막이 도윤과 로이의 신체를 감싸 안았다. 통로 모퉁이에 대기하고 있던 경비 사냥개들이 킁킁거리며 코를 씰룩였으나, 인지 왜곡 장막에 가로막힌 그들의 후각은 도윤 일행의 피 냄새와 체온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사냥개들은 그저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통로 깊숙이 진입한 순간, 귓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처절한 비명소리가 벽면을 타고 흘러나왔.


찰싹-! 파지직!


“아아악!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달라고? 이 더러운 이단자 놈들이 신성한 예배 시간에 빵을 훔쳐? 너희들의 살가죽은 주님의 은혜를 담기에도 아깝다!”


가학적인 폭소와 함께 가시 돋친 가죽 채찍이 허공을 갈랐다. 통로 끝 특별 독방 구역의 철문 앞 광장, 그곳에는 죄수들에게 썩은 음식을 던져주며 폭리를 취하던 잔혹한 간수조장 발터가 이끄는 정예 기습대원 세 명이 죄수들을 사정없이 구타하고 있었다.


발터의 손에 든 채찍에는 푸른 신성 전류 마력이 흐르고 있어, 채찍이 닿을 때마다 죄수들의 살점이 타들어 가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발터의 허리춤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마법 각인 열쇠, ‘베르나르트의 마스터 열쇠 꾸러미’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도윤은 차가운 눈빛으로 발터의 움직임을 분석했다.


‘발터, 검사 2성 수준의 무력. 하지만 그의 마력 채찍은 신성력으로 강화되어 있어 정면 대결은 위험하다. 게다가 그가 가진 경보 호각을 불게 놔두면 3분 안에 온 감옥의 군대가 몰려올 것이다.’


도윤은 등 뒤의 바르간에게 신호를 보내려 했으나, 이 좁은 배수관 통로의 구조상 거구의 바르간이 정면으로 돌격하기에는 공간이 너무나 협소했다. 바르간의 돌격 속도가 지체되는 사이 발터가 경보를 울릴 확률이 90% 이상이었다.


‘내가 직접 막아서야 한다. 기하학적 각도로 충격을 흘려보낸다.’


도윤은 결단을 내리고 인지 왜곡 장막을 풀며 발터의 시야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어? 어떤 쥐새끼가…… 사형수 루카스?! 네놈이 어떻게 독방에서 탈출했지?!”


발터가 경악하며 즉시 허리의 마력 채찍을 치켜들었다. 그의 손목이 회전하며 가시 돋친 채찍이 도윤의 목덜미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쇄도했다. 채찍 끝에 깃든 푸른 전류 마력이 공기를 찢는 굉음을 냈다.


그 찰나의 순간, 도윤은 ‘초인지 집중(Hyper-cognitive Concentration)’을 가동했다.


주변의 모든 움직임이 슬로우 모션으로 정지했다. 날아오는 채찍의 회전 궤적, 마력의 밀도, 그리고 타격점이 도윤의 푸른 눈동자 속에 기하학적 수식으로 실시간 분해되어 떠올랐.


‘채찍의 타격 에너지는 중심 꼭짓점에 집중되어 있다. 수직으로 막으면 장벽이 깨진다. 45도 사각지대로 충격을 흘려보내야 해.’


도윤은 오른손 끝의 화상 상처를 쥐어짜며 허공에 완벽한 정삼각형의 마도 가이드라인을 그렸다. 성대에서 거친 고대어 방어 영창이 쇳소리로 흘러나왔.


“……타르, 세스, 기르!”


웅-!


도윤의 전방에 투명한 붉은색 정삼각형 장막, ‘기하학적 보호 장벽’이 전개되었다. 장벽의 표면은 채찍의 공격 궤적과 정확히 45도의 비스듬한 각도(빗각)를 이루고 있었다.


콰아아앙-!


발터의 채찍이 장벽에 충돌하는 순간, 무시무시한 타격 에너지가 정면으로 부딪치지 못하고 장벽의 사선 표면을 타고 미끄러지듯 옆벽으로 흘러내렸다. 찌르르한 진동과 함께 옆 대리석 벽면이 통째로 폭발하며 돌가루가 사방으로 튀었다.


동시에 장벽에 닿은 채찍의 푸른 신성 마력이 장벽 표면의 산성 부식 특성과 접촉했다.


지이이익-!


“아니, 내 채찍이…… 녹아내린다고?!”


발터가 비명을 질렀다. 신성력으로 강화되어 있던 가죽 채찍이 장벽의 산성 부식 마력에 닿자마자 하얀 김을 내뿜으며 썩은 동아줄처럼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려 먼지로 흩어졌다. 교단이 가르치는 현대 마법의 구조적 결함을 정확히 찌른 결과였다.


“으윽……!”


하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장벽이 채찍의 충격을 흘려보낼 때 발생한 미세한 물리적 반동이 도윤의 척추를 타고 등 뒤의 고대 문신으로 역류했다. 뜨거운 인장으로 등 가죽을 지지는 듯한 극통과 함께, 도윤의 등 근육 전체가 일시적으로 딱딱하게 마비되며 호흡이 막혔다.


발터는 무기를 잃자 당황하여 품속의 은빛 경보 호각을 입에 대려 했다.


“이단자 놈들이 폭동을……!”


그 순간, 그림자 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도둑 소년 로이가 바람처럼 날아올랐다. 로이의 민첩한 손가락 끝이 발터의 입가에 닿기 직전, 호각을 묶고 있던 가죽 끈을 소리 없이 끊어내며 호각 자체를 감쪽같이 낚아챘다.


“이 쥐새끼가……!”


발터가 소리치려 했으나,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도윤의 뒤편 좁은 통로를 억지로 비집고 나온 거인족 전사 바르간이 바위 같은 거구를 드러냈다. 바르간의 핏줄 선 거대한 주먹이 대기를 가르며 발터의 턱뼈를 그대로 직격했다.


쿠웅-!


무거운 둔탁음과 함께 발터의 신체가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하더니, 그대로 대리석 바닥에 처박히며 단 일격에 소리 없이 기절했다. 나머지 기습대원 두 명 역시 바르간이 휘두른 무시무시한 쇠사슬 참격에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꿇어앉아 의식을 잃었다. 완벽하고 고요한 제압이었다.


도윤은 마비된 등 근육의 통증을 억누르며 쓰러진 발터에게 다가갔. 그의 허리춤을 뒤져 마법 각인이 새겨진 ‘베르나르트의 마스터 열쇠 꾸러미’를 거칠게 뜯어냈다. 차가운 금속 열쇠들이 손아귀 안에서 짤랑거렸다.


“해냈습니다, 주군.”


바르간이 나직하게 읊조리며 도윤의 신변을 경호했다. 하지만 도윤은 기뻐할 틈이 없었다. 발터의 터진 입술에서 흘러내린 붉은 피가 바닥의 배수 그릴을 타고 하부 수로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피 냄새다. 이 냄새가 배수관을 타고 흐르면 지하 2층 전체에 상주하는 마수 사냥개들이 자극받아 순식간에 몰려올 것이다.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3분 미만.’


도윤은 열쇠 꾸러미를 꽉 쥔 채, 특별 독방 구역의 가장 깊은 안쪽에 위치한 거대한 철문 앞으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에스더가 갇힌 최후의 장벽이었다.


철문 앞에 도달해 마스터 열쇠를 꽂으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악-!


철문 표면에 음각되어 있던 교단의 신성 기하학 마법진이 기괴한 핏빛으로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장막 전체가 불길한 진동을 일으키며, 문고리에 손을 대려던 도윤의 손끝을 타고 그의 등 뒤 문신에 깃든 에테르 마나를 강제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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