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라 불린 이단자
요셉의 차가운 손가락 끝이 도윤의 수죄복 깃에 닿으며 거칠게 옷자락을 젖혔다.
지하 2층 수용동의 습하고 불결한 공기가 도윤의 드러난 쇄골 위로 차갑게 내려앉았다. 요셉 사제의 손에 들린 구리빛 마력 탐지 아티팩트가 웅웅거리며 미세한 진동을 흘려보냈다. 그 은빛 바늘이 도윤의 가슴팍을 향해 서서히 기울어지는 순간, 도윤의 심장은 얼어붙을 듯한 긴장감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연산해라. 늦으면 끝장이다.’
도윤은 이빨을 악물며 등 뒤에 새겨진 고대 제국의 금기서 문양으로 의식을 집중했다. 그의 뇌세포는 이미 실시간으로 감옥 전체를 짓누르고 있는 교단의 ‘마력 억제 결계’가 방출하는 특유의 파동 주파수를 분석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정한 주기로 맥박 치는 불완전한 파형이었다.
도윤은 자신의 체내 에테르 흐름을 강제로 비틀어, 그 결계의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하는 역위상 진동을 등 가죽의 문신을 통해 방출했다. 이른바 ‘억제 결계핵 우회 공식(Bypass Resonance)’의 극비 가동이었다.
지이이잉.
요셉의 아티팩트가 도윤의 피부에 닿는 순간, 기기 내부의 마력 흐름이 일시적으로 상쇄되며 완벽한 무반응 상태로 침묵했다. 은빛 바늘은 갈 길을 잃은 듯 제자리에서 툭 멈춰 섰다.
“……이상하군.”
요셉이 미간을 찌푸리며 도윤의 가슴팍을 거칠게 헤집었다. 그의 두꺼운 손가락이 도윤의 갈비뼈 사이를 짓눌렀지만, 손끝에 걸리는 것은 굳은살과 짓무른 흉터, 그리고 썩어가는 살가죽의 불쾌한 감촉뿐이었다. 도윤은 일부러 쇳소리가 나는 거친 호흡을 뱉으며 몸을 크게 웅크렸다.
“쿨럭! 컥…… 사제 님, 저는…… 그저 광산의 독기 때문에…….”
요셉은 혐오스럽다는 듯 도윤의 가슴팍에서 손을 떼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는 썩은 진흙 빵 부스러기와 피고름이 묻어 있었다.
“더러운 이단자 놈이 정말 죽을 때가 되어 가죽만 남았군. 아티팩트가 이따위 시체 찌꺼기에 반응하다니, 기기 정비가 불량하구나.”
요셉은 가죽 벨트에 아티팩트를 거칠게 쑤셔 넣으며, 전기 채찍을 바닥에 한 번 내리쳤다. 파지직하는 푸른 스파크가 도윤의 발밑을 스치며 돌가루를 태웠다.
“루카스, 네놈의 얄팍한 목숨도 보름 뒤면 끝이다. 베르나르트 님께서 네 등 가죽을 온전히 벗겨내어 교황청의 박제첩에 채워 넣으실 테니까. 그때까지 더러운 목숨이나 잘 보존하고 있거라.”
요셉이 차가운 비웃음을 남기며 무장 간수들을 거느리고 수용동 철문 밖으로 사라졌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철문이 닫히자, 수용동 내부에는 다시 지독한 어둠과 침묵이 내려앉았다.
도윤은 엎드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등 뒤의 문신이 과열되어 화끈거리는 고열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력을 억제 결계와 강제로 공명시킨 대가로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밀려왔다. 그러나 도윤은 안도하기보다, 요셉이 뱉은 ‘보름’이라는 단어를 뼈에 새겼다.
‘보름…… 단 15일이다.’
그 기한이 지나면 베르나르트의 가죽 박리형이 집행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전에 이 지옥 같은 이단심문소를 탈출해야 했다. 그리고 그 탈출 계획의 핵심 열쇠는 바로 지하 2층 깊은 곳, 특별 독방에 감금되어 있는 이단 성녀 에스더였다.
‘에스더의 성스러운 가죽 치유 마력이 없다면, 내 등 가죽을 메스로 째고 고대 마력 잉크를 주입하는 최종 복원 수술 도중 심장 마비로 즉사하게 된다. 그녀를 구하는 것이 내 생존의 유일한 길이다.’
도윤은 몸을 일으켜 수용동 구석의 어두운 석벽 기둥 뒤로 향했다. 바위 같은 거구의 전사 바르간이 묵묵히 도윤의 뒤를 지키며 외부의 시선을 차단해 주었다.
“주군, 몸은 괜찮으십니까?”
바르간이 나직하고 웅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윤은 성대가 산성 가스에 절반쯤 녹아내려 영구적으로 변해버린 거칠고 차가운 쇳소리로 대답했다.
“버틸 만하다, 바르간. 이제…… 시작해야지.”
도윤은 품속에서 바르간에게 전달받았던 핏빛 가죽 조각을 꺼냈다. 그것은 이단심문소 지하의 비밀 배수 수로망이 그려진 지도 파편이었다. 그때, 수용동 천장의 환기구 틈새에서 미세한 쥐 오줌 냄새와 함께 소리 없는 그림자가 바닥으로 가볍게 낙하했다.
꼬마 도둑 로이였다.
로이는 검댕이 묻은 얼굴에 영악한 눈빛을 빛내며, 품속에서 숯과 쥐 오줌으로 정밀하게 그려낸 또 다른 가죽 지도를 바닥에 펼쳤.
“루카스 형님, 형님이 말씀하신 대로 지하 2층 감시탑 배관을 타고 들어가 특별 독방 구역의 환기망을 전부 조사해 왔어요. 이게 진짜 배수로 지도예요.”
도윤은 두 장의 가죽 지도를 바닥에 나란히 맞추어 겹쳤다. 바르간의 수로 지도와 로이의 환기망 지도가 기하학적으로 완벽하게 맞물리며, 이단심문소 지하 2층의 숨겨진 혈관이 눈앞에 가시화되었다.
“완벽하군.”
도윤의 눈동자가 차가운 이성으로 빛났다. 그는 율리우스가 비밀리에 제공해 준 ‘피부 괴사 방지 특제 가죽 연고’를 꺼내 성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아연(Zinc)과 지하 정화조에서 자라는 특수 이끼 즙의 천연 약재 성분이 황금 비율로 배합된 연고였다.
‘이 연고의 아연 성분은 산성 가스의 전기 화학적 부식을 막아주는 훌륭한 희생양극재 역할을 한다. 수로 내부의 강산성 폐액 가스로부터 내 호흡기와 가죽을 지켜줄 최상의 보호막이지.’
도윤은 연고를 자신의 목덜미와 오른손 끝의 화상 상처에 얇게 도포했다. 환부가 일시적으로 불타는 듯한 통증을 일으켰으나, 이내 은빛 마도 흉터가 단단하게 고정되며 세포의 재생이 촉진되는 것이 느껴졌다.
“로이, 감시탑의 마력 경보 장치 주기는 어떻게 되나?”
도윤이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묻자, 로이가 지도의 특정 지점을 가리켰다.
“감시탑 상부의 에테르 나침반이 3분 주기로 파동을 방출해요. 그 장막에 생명체의 마력 반응이 닿는 즉시 온 감옥에 붉은 경보가 울려 퍼지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통과할 수 없어요.”
도윤은 턱을 괴고 감시탑의 마법 주파수를 머릿속으로 연산했다.
‘에테르 나침반의 감지 주파수는 약 120Hz의 인위적인 왜곡 파형이다. 그렇다면 내 등 뒤에 새겨진 첫 번째 장 ‘여명의 각성’ 마나 회로를 역위상으로 공명시켜, 나침반의 에테르 탐지 장막 자체를 일시적으로 굴절시킬 수 있다. 그 틈새는 정확히 3분.’
완벽한 과학적 해킹 경로가 도출되었다.
“바르간은 환기구 입구에서 대기하며 간수들의 순찰 주기를 감시해라. 로이는 나와 함께 배수관 하부로 진입한다. 결계의 사각지대가 열리는 순간은 단 3분뿐이다.”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주군.”
바르간이 굳건하게 고개를 숙였다.
깊은 밤, 간수들의 야간 순찰 교대 시간이 다가오자 수용동 내부의 마력 밀도가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도윤은 로이와 함께 배수구 철창 앞으로 이동했다. 바르간이 거대한 두 손으로 철창을 쥐고, 터질 듯한 근육을 제어하며 무소음으로 철창을 미세하게 옆으로 벌려 틈을 만들었다.
도윤은 좁은 배수관 틈새로 몸을 밀어 넣었다. 어둡고 축축한 관내에는 이단심문소 상부에서 흘러내려 온 산성 오물의 가스 냄새가 진동했다. 피부가 연고의 보호막 덕분에 화상을 입지 않고 버텨내고 있었지만, 공기 중의 산소 농도가 희박해 호흡이 가빠왔다.
도윤은 등 뒤의 문신에 미세한 마력을 흘려보내며 감시탑 방향으로 역위상 주파수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등 가죽이 붉게 타오르며 맥박 치기 시작했고, 공중을 흐르던 보이지 않는 에테르 나침반의 탐지 장막이 도윤의 신체 주변에서 미세하게 굴절되며 우회 경로를 형성했다.
“지금이다. 뛰어라.”
도윤의 지시에 로이가 소리 없이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도윤 역시 숨을 참으며 배수관 내부의 기하학적 통로를 따라 에스더가 갇힌 특별 독방 구역을 향해 한 걸음씩 전진했다.
그들의 발소리는 좁은 관내에서 완벽하게 차단되었고, 감시탑의 경보 장치는 그들을 단순한 물의 흐름으로 인지해 침묵을 유지했다. 완벽한 지략의 승리였다.
통로의 마지막 꺾임 길, 에스더의 특별 독방으로 이어지는 배수 밸브 입구에 도달하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화아아아악-!
갑자기 도윤의 등 가죽에 새겨진 고대 문신들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거칠게 맥박 치며 핏빛 안광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전신을 찢어발기는 듯한 극심한 마력 역류 고통이 도윤의 척추를 타고 뇌세포로 직격했다.
“으으윽……!”
도윤은 비명을 삼키며 배수관 벽면을 짚었다. 그의 오른손 끝 화상 흉터가 다시 파열되며 피가 흘러내렸다.
단순한 마력 과부하가 아니었다. 에스더가 갇힌 특별 독방 구역의 방향으로부터, 주변의 모든 에테르와 생명력을 강제로 빨아들이는 거대하고 공허한 마력 흡수 파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배수관 내부를 흐르던 산성 폐수마저 그 방향을 향해 역류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도윤의 눈동자가 충혈된 채 붉게 떨렸다. 특별 독방 내부에서 심상치 않은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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