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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구는 발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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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렁, 철러덩!


무거운 쇠사슬이 비정하게 돌바닥을 긁는 소리가 지하 3층의 정적을 깨뜨렸다.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신도윤, 아니 사형수 루카스는 온몸을 짓누르는 감각에 이를 악물었다. 어제 천장에서 떨어진 강산성 가죽 박리액을 석회 가루로 겨우 중화시켰으나, 등 가죽은 여전히 짓무르고 굳은 흉터로 뒤덮여 끔찍한 고통을 뱉어내고 있었다.


“일어나라, 이단자 새끼들아! 노역 시간이다!”


철창 너머로 간수들의 거친 고함과 함께 육중한 철문이 열렸다. 간수들은 죄수들의 목덜미와 발목에 채워진 족쇄 사슬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마력이 완벽히 봉인된 ‘0단계’의 육체는 채찍질 한 번에도 쉽게 허물어질 만큼 무력했다. 도윤은 억지로 상체를 일으켰다. 옷자락이 상처에 쓸릴 때마다 등 뒤에서 불을 붙인 듯한 통증이 치솟았지만, 그는 신음소리 하나 흘리지 않았다. 역사학자로서 단련된 이성이 본능적인 비명을 억누르고 있었다.


죄수들의 행렬이 향한 곳은 이단심문소 아래 더 깊은 심연에 위치한 ‘지하 광산 채굴장’이었다.


수직으로 내려가는 나선형 계단을 밟을수록 공기는 급격히 뜨거워졌고, 숨을 쉴 때마다 칼날을 삼키는 듯한 이물감이 목구멍을 긁었다. 사방에 자욱하게 날리는 백색 가루 때문이었다.


‘결계석 분진(粉塵)인가.’


도윤은 폐부로 스며드는 탁한 공기를 분석했다. 이 광산은 교단이 죄수들의 마력을 영구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결계석을 채굴하는 곳이었다. 사방에서 날리는 분진은 흡입하는 것만으로도 체내의 마나 순환을 마비시키고 호흡기를 부식시키는 치명적인 독소였다. 일반적인 이단 마법사들이라면 이곳에서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폐가 녹아내려 죽을 터였다.


“더 빨리 움직이지 못해!”


촤아악!


간수장 브루노의 가시 돋친 가죽 채찍이 허공을 가르며 한 죄수의 등을 후려쳤다. 비명과 함께 붉은 피가 바닥의 돌가루 위로 튀었다. 민머리에 흉터가 가득한 거구의 사내, 브루노는 죄수들을 인간 이하의 가축으로 보며 가학적인 쾌감을 즐기는 자였다. 그의 살기 어린 눈빛이 도윤의 등 뒤 짓무른 흉터를 잠시 훑었으나, 이내 흥미를 잃은 듯 침을 뱉으며 지나쳤.


도윤은 배정받은 어두운 막장 구석으로 기어가 곡괭이를 쥐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아귀 힘으로는 단단한 광석벽을 제대로 긁어내기조차 버거웠다. 그때, 그의 옆에서 바위처럼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온몸이 석탄 가루와 흉터로 뒤덮인 거구의 광부, 토마스였다.


토마스는 묵묵히 자신의 강철 곡괭이를 내리치며 단단한 암반을 부수어 나갔다. 그의 무시무시한 근력은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토마스는 도윤의 쇠약한 체구와 등 뒤의 처참한 흉터를 힐끗 보더니, 무뚝뚝한 쳇소리를 내며 자신의 몸으로 간수들의 시선을 가로막아 주었다.


“어이, 신참. 쥐새끼처럼 비실대다간 브루노의 채찍에 가죽이 먼저 벗겨질 거다. 내 뒤에서 떨어지는 돌가루나 치워.”


말수는 적었지만 우직한 사내였다. 도윤은 토마스가 자신을 도우려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고맙습니다.”


도윤은 고개를 숙이며 토마스가 부수어 놓은 돌더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고학자 특유의 예리한 시선으로 사방의 암벽 성분을 실시간으로 관측했다. 그의 목적은 단순한 노역이 아니었다. 등 뒤의 고대 금기서를 복원하기 위해선 강산성의 가죽 박리액을 완벽히 정화하고 피부 세포를 재생시킬 고농도 염기성 물질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대리석 지층 아래, 미세하게 흐르는 백색의 결이 보인다.’


도윤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차갑게 빛났다.


석회암 지대 깊숙한 틈새, 은은하게 푸른 광택을 흘리는 특이한 광석 조각들이 보였다. 일반 광부들이라면 쓸모없는 돌멩이로 취급해 버렸을 광물.


‘탄산칼슘 중화 광석(CaCO3)이다.’


지구의 현대 화학 이론과 루카스의 고고학적 지식이 뇌 속에서 완벽하게 결합했다. 이 광석은 자연적인 석회암보다 탄산나트륨 성분이 수십 배는 더 정밀하게 농축된 결정체였다. 정제만 거친다면 강산성 가죽 박리액의 부식 작용을 완벽히 상쇄하고, 피부의 세포 붕괴를 원천적으로 막아줄 궁극의 천연 중화제가 될 터였다.


도윤은 토마스가 거대한 바위를 깨부수며 소음을 내는 틈을 타, 깨진 광석 틈새로 손을 뻗었다. 손톱이 깨지고 피가 흘렀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고순도의 탄산칼슘 광석 조각 세 개를 신속하게 뜯어내어 수죄복 안쪽 주머니 깊숙한 곳에 밀어 넣었다.


토마스는 도윤의 이 기이한 행동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는 밀고하는 대신, 오히려 더 거칠게 곡괭이를 휘두르며 간수들의 접근을 물리적으로 차단해 주었다. 토마스의 눈빛에 미세한 경외감과 호기심이 스쳤다. 이 마르고 뼈만 남은 사형수의 눈빛이 결코 죽음을 앞둔 자의 것이 아님을 알아챈 것이리라.


이윽고 짧은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죄수들에게 지급된 것은 거무스름하고 딱딱한 ‘진흙 빵’ 한 조각이었다.


도윤은 배급받은 빵을 손에 쥐었다. 시큼하고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루카스의 기억과 어제 독방에서의 경험이 뇌리에서 경고음을 울렸다. 이 식수와 진흙 빵에는 죄수들의 마력 발현을 억제하고 장기 복용 시 사지를 마비시키는 연금술적 독약 성분이 교묘히 섞여 있었다. 그냥 먹었다간 등 뒤의 금기서 해독은커녕, 영구적인 신체 마비로 탈출 계획 자체가 무산될 터였다.


도윤은 주변을 살폈다. 마침 그가 서 있는 막장 벽면은 고대의 암염(巖鹽) 지층과 맞닿아 있었다.


‘광산용 정제 소금 결정.’


도윤은 손끝으로 벽면에 노출된 투명한 소금 결정 조각을 은밀히 긁어모았다. 염화나트륨(NaCl)의 삼투압 원리와 소금 속에 포함된 미세한 광물 성분을 이용하면, 진흙 빵 속 독약의 화학적 결합을 강제로 분해할 수 있었다.


그는 침을 한 방울 떨어뜨려 소금 결정을 녹인 뒤, 진흙 빵의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적셔 나갔다. 미세하게 부글거리는 화학 반응이 일어나며 빵 내부의 독성 약초 성분이 소금의 나트륨 이온과 결합해 무해한 염류로 변환되었다. 특유의 시큼한 독약 냄새가 사라지고 평범한 밀가루의 둔탁한 향이 올라왔다.


도윤은 중화된 빵 조각을 씹어 삼켰. 독성이 완전히 정화된 열량이 체내로 유입되자, 영양실조로 꺼져가던 장기들이 미세하게 요동치며 체력을 보존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토마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소금 결정으로 교단의 독약을 중화하는 기이한 연금술적 지혜를 눈앞에서 목격한 충격 때문이었다.


그러나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전원 동작 그만! 광구를 비우고 일렬로 정렬해라!”


노역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간수장 브루노의 포효가 채굴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무장한 간수들이 죄수들의 어깨를 밀치며 한 줄로 세웠다.


도윤의 심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의 주머니 속에는 방금 채굴한 탄산칼슘 중화 광석 조각들이 묵직하게 들어차 있었다. 만약 수색에 걸린다면 고대 유물 무단 소지 및 탈옥 모의죄로 즉시 사형 집행일이 오늘 밤으로 당겨질 터였다.


“간수장님의 명령이다. 불시 소지품 검문(檢問)을 실시한다! 쥐새끼처럼 무기나 유물을 숨긴 놈들은 그 자리에서 대가리를 깨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브루노가 가죽 채찍을 바닥에 내리치며 죄수들의 행렬 앞으로 다가왔. 간수들이 죄수들의 몸을 거칠게 더듬으며 소지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도윤의 차례가 실시간으로 좁혀져 오고 있었다. 앞의 세 번째 죄수가 숨겨둔 녹슨 못 조각이 발각되자마자, 브루노의 철퇴가 그의 무릎 관절을 사정없이 으스러뜨렸다. 처절한 비명소리가 광산 내부의 습한 공기를 찢었다.


‘버릴 수 없다. 이 광석을 잃으면 내 등 가죽을 복원할 기회는 영원히 사라진다.’


도윤은 주머니 속 광석의 단단한 감각을 느끼며 필사적으로 두뇌를 회전시켰다. 버릴 수도 없었다. 주변을 상시 순찰하는 마수 사냥개들이 광석 특유의 미세한 마력 냄새를 즉각 맡아낼 것이 분명했다. 몸에 은닉한 채 간수들의 감각을 속여야만 했다.


간수가 도윤의 바로 앞 죄수까지 도달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단 10초.


도윤은 결단을 내렸다. 그는 바닥에 엎드려 돌가루를 치우는 척하며, 손바닥 가득 검은 석탄 가루와 황 분진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아무도 보지 못하는 찰나의 순간, 손을 등 뒤로 뻗어 어제 석회 가루로 굳혀놓았던 짓무른 등 가죽 상처 부위를 사정없이 내리눌렀.


“으윽……!”


상상을 초월하는 극심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뇌를 강타했다. 억지로 굳혀둔 흉터가 다시 찢어지며 검붉은 피와 누런 피고름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도윤은 쏟아지는 진물과 피를 손바닥의 석탄 가루와 거칠게 섞어, 자신의 주머니 주변과 수죄복 전체에 더럽게 문질렀다.


검은 석탄 가루와 부패한 피고름이 뒤섞여 기괴하고 불결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가죽이 괴사하는 듯한 악취였다.


“다음! 너, 이리 나와!”


간수가 마침내 도윤의 덜미를 잡아채며 앞으로 끌어당겼다. 간수의 두꺼운 가죽 장갑이 도윤의 어깨를 움켜쥐고 몸을 거칠게 더듬기 시작했다.


스윽, 스으윽.


간수의 손길이 도윤의 허리춤과 주머니 근처로 향하려던 바로 그 순간.


철퍽.


간수의 손바닥이 도윤의 찢어진 등 가죽 흉터와 닿았다. 손가락 끝으로 도윤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검붉은 진물과 썩은 석탄 가루 찌꺼기들이 끈적하게 묻어났다. 지독한 악취가 간수의 코를 직격했다.


“으욱! 더러운 이단자 새끼가!”


간수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뗐다. 그의 가죽 장갑은 이미 누런 고름과 썩은 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간수는 극도의 혐오감을 표출하며 도윤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상처가 썩어 문드러지고 있군! 더러운 병에 걸린 게 분명해!”


간수는 자신의 장갑에 묻은 피고름을 도윤의 옷자락에 닦아내며, 주머니 깊숙한 곳을 더듬는 수색을 황급히 생략했다. 짓무른 상처와 악취 나는 진물을 직접 만지기 꺼려하는 인간의 생리적 혐오감을 도윤이 정밀하게 계산해 역이용한 결과였다.


브루노가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무슨 일이지?”


“아, 별것 아닙니다, 간수장님. 이 이단자 놈의 등 가죽이 어제 박리액에 완전히 부패해서 썩어 문드러지고 있습니다. 전염병이라도 옮을 것 같아 대충 처리했습니다.”


브루노는 도윤의 짓무른 상처에서 흐르는 피고름을 보더니, 불쾌하다는 듯 코를 쥐고 채찍을 거두었다.


“쳇, 쓸모없는 고기덩어리 같으니.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겠군. 당장 감방으로 처넣어라.”


간수들이 도윤을 거칠게 밀치며 통과시켰다.


도윤은 바닥을 기어가듯 걸으며, 수죄복 안쪽 주머니에 온전히 보존된 탄산칼슘 중화 광석 조각들의 단단한 감각을 확인했다. 등 뒤의 찢어진 상처에서 가혹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의 입꼬리는 어둠 속에서 미세하게 호선을 그렸다.


일차적인 소지품 검문은 완벽하게 돌파했다.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였다. 독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죄수 행렬이 어두운 수로 복도에 진입한 순간, 간수장 브루노가 도윤의 뒷덜미를 쇠사슬째 잡아채며 벽면으로 거칠게 밀쳐붙였다.


쿵!


등 뒤의 찢어진 상처가 석벽에 부딪히며 도윤의 시야가 순간적으로 하얗게 점멸했다. 브루노의 차가운 눈빛이 도윤의 얼굴 바로 앞까지 접근해 있었다. 그의 손에는 마력을 감지하면 붉게 타오르는 교단 특제의 마력 나침반이 들려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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