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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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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이 치켜든 신성 십자가의 붉은 안광이 어두운 보관소의 입구를 일직선으로 비추기 시작했다. 숨이 턱 막히는 신성 제압 오라가 공기를 짓눌렀다. 은신처 내부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바닥의 성에가 하얗게 피어올랐다. 옆에 선 에스더가 창백한 안색으로 내 옷자락을 붙잡았고, 필사 조수 요한과 디터는 제자리에 얼어붙은 채 숨을 죽였다.


하지만 빌헬름은 보관소 내부의 이중 벽 틈새를 완전히 파헤치지 못했다. 이미 진짜 역사서 사본 50장에는 천연 아라비아 고무액이 빈틈없이 도포되어 마력 파동을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력 탐지 나침반의 바늘이 갈 길을 잃고 허공에서 미치도록 회전하자, 빌헬름의 광기 어린 눈동자가 핏발을 세우며 일그러졌다.


“쥐새끼 같은 이단자 놈들……! 어디에 숨겼느냐!”


결국 요한과 디터가 품고 있던 일반 양피지 몇 장이 발각되었고, 빌헬름은 광포한 포효와 함께 수용동의 모든 죄수들을 제1 예배당으로 강제 연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사본을 빼앗기지 않은 죄수들은 안도하면서도, 교단의 심장부인 대성당으로 끌려간다는 공포에 질려 사슬을 절렁였다.


나 역시 에스더의 부축을 받으며 죄수들의 행렬 속에 섞였다. 에테르 필사의 과부하로 인해 머리카락 절반이 하얗게 세어버린 내 모습은 영락없는 반시체였다. 하지만 내 옷자락 안쪽, 살가죽에 새겨진 고대 마도 회로와 연결된 곳에는 성물 봉인실에서 극비리에 탈취해 온 에테르 투사기 ‘진실의 등불’이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


이단심문소 지하 2층의 중심, 제1 예배당.


수천 명의 죄수들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빽빽하게 들어찼다. 사방의 벽면에는 피처럼 붉은 교단의 십자가가 장엄하게 걸려 있었고, 단상 위에는 거대한 성화가 타오르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예배당 전체를 감싸고 있는 대형 신성 결계가 죄수들의 마나와 저항 의지를 보이지 않는 사슬처럼 억누르고 있었다.


단상 위로 걸어 올라간 빌헬름 신관이 붉은 사제 로브를 펄럭이며 광기 어린 안광을 번뜩였다. 그의 손에는 수용동에서 압수한 죄수들의 일기와 종이 조각들이 들려 있었다.


“주님의 어린양들이여! 사탄의 기만과 이단의 독에 오염된 가짜 기록들이 이 거룩한 감옥 내부에서 흘러 다니고 있었다!”


빌헬름이 은빛 십자가를 치켜들자, 제단 위의 성화가 폭발하듯 솟구쳤다. 그는 압수한 종이들을 불길 속으로 사정없이 던져 넣었다.


“모든 불온한 금서 조각들을 예배당의 거룩한 불꽃으로 전부 태워버릴 것이다! 신들의 구원을 의심하는 자, 그 영혼 역시 이 불꽃 속에서 영원히 타들어 가리라!”


화르륵! 종이들이 타들어 가며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죄수들 사이에서 절망적인 신음과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평생을 교단의 세뇌 속에서 가짜 구원을 맹신하며 살아온 그들에게, 빌헬름의 정죄는 영혼의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그 절망의 한가운데서, 나는 가만히 에스더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목에 걸린 성물 펜던트를 쥔 채 내게 미세한 치유 마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펜던트 보석 표면에 새겨진 미세한 균열이 반짝이며 그녀의 안색을 더욱 창백하게 만들었지만, 그녀의 은빛 눈동자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준비가 되었소, 에스더?”


내 목구멍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정화조의 강산성 가스에 녹아내려 영구적으로 굳어버린, 차갑고 거친 금속성 쇳소리였다. 에스더가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진실을 믿어요, 루카스. 제 마력이 다할 때까지 방어막을 지탱하겠어요.”


나는 옷자락 속에서 ‘고대 마력 은사’를 꺼냈다. 머리카락보다 얇고 유연한 은색의 전도 실. 나는 숨을 멈추고, 은사의 한쪽 끝을 내 어깨 가죽에 새겨진 붉은 문신 회로에 직접 찔러 넣었다.


치이이익—!


살점이 타들어 가는 가혹한 열기와 고통이 전신을 강타했다. 1단계 ‘여명의 각성’ 회로가 강제로 활성화되며, 은사를 타고 순수한 고대 에테르 마나가 방출되기 시작했다. 나는 은사의 반대쪽 끝을 에테르 투사기 ‘진실의 등불’의 핵심 코어에 연결했다.


‘초인지 집중(Hyper-cognitive Concentration).’


뇌세포의 연산 속도가 극대화되며 주변의 소음과 움직임이 극도로 느려졌다. 내 등 뒤의 문신 전체가 붉게 과열되며 전신 피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화상 통증이 몰려왔지만, 나는 이성을 유지하며 투사기의 기하학적 밸브를 돌렸다.


웅- 웅- 우웅!


갑자기 예배당 중앙 바닥에서부터 은은한 은빛 진동이 울려 퍼졌다. 단상 위에서 광신적인 설교를 늘어놓던 빌헬름이 멈칫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슨 파동이냐? 경비병! 당장 진원을 찾아라!”


이미 늦었다.


파아아앗—!


내 품속에 있던 에테르 투사기 ‘진실의 등불’이 눈이 시릴 정도의 눈부신 백색 광선을 예배당 천장을 향해 쏘아 올렸다. 광선은 천장의 대형 신성 결계와 충돌하는 듯하더니, 이내 결계의 주파수를 완전히 역우회하며 예배당 전체의 공중을 거대한 은빛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뒤덮어버렸다.


“이, 이게 무슨……!”


죄수들과 경비병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허공에 펼쳐진 것은 찬란하고 평화로운 고대 ‘여명 제국’의 건국사 광경이었다. 교단이 가르쳐온 ‘악마를 숭배해 멸망한 타락한 제국’의 모습이 아니었다. 인간과 이종족들이 신분과 종족의 벽을 허물고 대지의 풍요로움을 함께 나누며, 스스로의 역사와 기록을 찬란하게 써 내려가던 인류의 진정한 황금기.


그리고 이어진 것은 추악한 진실이었다.


우주 너머에서 찾아온 가짜 신들이 인간의 신앙심을 담보로 영혼과 수명을 세금처럼 착취하기 시작하는 장면. 교단의 시조들이 신들과 밀약을 맺고 진짜 역사를 불태우며 인류를 영구적인 정신적 노예로 만들기 위해 ‘성전정화교단’을 창립하는 피비린내 나는 역사적 조작의 현장이 적나라한 홀로그램 환영으로 예배당 전체를 가득 메웠다.


“말도 안 돼…… 저게 진짜 우리의 역사라고?”


“교단이…… 신들이 우리를 구원한 게 아니라 우리를 착취하고 있었다는 건가?”


수천 명의 죄수들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품속에 역사서 사본을 은밀히 숨기고 있던 죄수들이 사본의 문장과 허공의 홀로그램을 대조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세뇌의 사슬이 완벽하게 금 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사탄의 환영이다! 당장 저 불온한 마술을 멈추지 못할까!”


단상 위의 빌헬름이 미친 듯이 발악했다. 그의 은빛 십자가가 기괴한 핏빛으로 타오르며, 자신의 생명력을 강제로 연소시키기 시작했다. 광신 신관 3성의 파괴적인 마력이 예배당 내부의 에테르를 폭발적으로 끌어당겼.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단자들과 함께 저 기만적인 장치를 흔적도 없이 소멸시키리라! 광역 에테르 폭발(Ether Explosion)!”


빌헬름의 머리 위로 지름 5미터가 넘는 거대한 붉은색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폭발적인 열기가 예배당 내부의 공기를 산산조각 내며 죄수들을 향해 쏟아지려 했다.


“루카스……!”


에스더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남은 신성 마력을 쥐어짜 내 전방에 은빛 치유 장막을 전개했다. 하지만 예배당 자체의 신성 제압 결계 때문에 그녀의 치유 장막은 순식간에 하얗게 끓어오르며 찢겨 나갔다. 에스더가 입술을 깨물며 신음했다.


적의 화력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마법의 ‘결함’이 선명하게 투시되고 있었다.


‘빌헬름의 마법진…… 교단의 왜곡된 교리를 바탕으로 정제된 현대 마법은 고대 기하학적 완결성이 결여된 조잡한 열화판에 불과하다. 마력 공급 경로의 중심 꼭짓점, 우측 하단의 연결 고리가 비정상적으로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어.’


나는 오른손 끝에 아주 미세하지만 극도로 날카로운 산성 마력을 집중시켰다.


‘마법진 부식(Magic Circle Corrosion).’


나는 손가락 끝을 튕겨, 보이지 않는 녹색 산성 마력 실선을 빌헬름의 마법진 중심 결함점을 향해 정확히 쏘아 보냈다.


지이이이익—!


붉게 타오르던 거대한 마법진의 우측 하단 연결 고리에 녹색 산성 마력이 닿는 순간, 기괴한 마찰음과 함께 마법진 전체의 기하학적 균형이 단숨에 무너져 내렸다. 폭발을 일으키려던 마력이 공급 경로를 잃고 역방향으로 굴절되기 시작했다.


“어, 어째서 내 마법진이 부식되는…… 끄아아악!”


홍련의 폭발 마력이 빌헬름의 신체 내부로 고스란히 역류했다.


쿠과과광!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단상 전체가 하얗게 폭발했다. 빌헬름은 자신의 마법 역폭발에 휩쓸려 전신에 검은 그을음을 남긴 채, 비명을 지르며 단상 아래 대리석 바닥으로 처참하게 추락했다. 그가 들고 있던 은빛 십자가는 산산조각 나 바닥을 굴렀다.


예배당 내부를 억누르고 있던 거대한 신성 결계가 시전자의 몰락과 함께 유리창이 깨지듯 소리 없이 산산조각 나 허공으로 흩어졌다.


침묵이 내려앉은 예배당.


하지만 그것은 폭풍전야의 고요였다. 홀로그램을 통해 진짜 역사를 목격하고, 자신들을 억압하던 신관이 무력하게 쓰러지는 것을 본 수백 명의 죄수들과 하급 간수들의 눈빛이 일제히 변하기 시작했다.


“교단의 기적은 가짜다……!”


“우리의 역사를 돌려받자!”


한 죄수가 예배당 벽면에 걸린 거대한 붉은 십자가를 향해 달려가 사슬을 걸어 당기기 시작했다. 수백 명의 죄수들이 광적으로 가세하며 십자가를 바닥으로 끌어내렸고, 이단심문소는 걷잡을 수 없는 통제 불능의 혁명 상태로 치닫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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