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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안개의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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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익, 지이이익.


무너진 석벽의 거친 틈새를 타고 흘러나오는 안개는 평범한 지하의 습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닿는 모든 유기물을 분자 단위로 녹여버릴 듯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기괴한 보라색 강산성 독안개였다. 안개가 배수로 바닥에 고여 있던 차가운 물과 닿을 때마다 하얀 김과 함께 톡 쏘는 황산 냄새가 코를 찔렀고, 석벽의 표면은 순식간에 녹아내려 진흙처럼 흘러내렸다.


“쿠헉, 쿨럭……!”


도윤은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짚고 거칠게 각혈했다. 카스파르의 마수 사냥개들을 일격에 격퇴하기 위해 유도했던 화학 가스 폭발의 위력은 대단했으나, 좁은 배수로 내부에서 발생한 초고압의 충격파는 마력이 봉인된 그의 쇠약한 육체에도 가혹한 반동을 남겼다. 약해진 폐포가 미세하게 파열되어 목구멍을 타고 비린 피가 끊임없이 울컥거렸다. 시야가 붉게 흔들렸고, 전신의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고열이 그를 덮쳤.


“루카스 님! 정신 차리세요!”


에스더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도윤의 어깨를 단단히 부축했다. 그녀의 이마에서 검은 낙인 결계가 사라진 자리에는 이제 정순한 은빛 마력이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에스더가 온 힘을 다해 은빛 치유 마력을 도윤의 가슴 깊숙한 곳으로 주입하자, 타들어 가던 기도의 통증이 일시적으로 완화되며 호흡이 간신히 돌아왔다. 도윤은 가슴을 움켜쥐고 거친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고맙소, 에스더. 하지만 숨을 쉬지 마시오. 이 안개는 단순한 독가스가 아니오.”


바르간이 거대한 몸을 앞으로 내밀며 무너진 석벽 틈새를 향해 주먹을 쥐었다.


“주군, 제가 이 무너진 돌벽을 완전히 부수어 바람길을 열겠습니다! 안개를 날려버리면 전진할 수 있습니다!”


“안 돼, 바르간! 멈춰라!”


도윤의 다급한 제지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바르간의 단단한 전완근이 보라색 안개의 경계선에 가볍게 스쳤다.


지이이이익!


찰나의 접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르간의 단단한 가죽 가죽이 순식간에 검붉게 타들어 가며 살점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강철도 부술 수 있는 소드 마스터 수준의 육체를 지닌 거인족 전사조차 그 지독한 산성 부식력 앞에서는 신음하며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바르간이 고통으로 이를 악물었다.


“이것은…… 단순한 자연의 독무가 아니로군.”


“그렇소. 이단심문소의 결계 마법사 디트리히가 가동한 고유 결계…… ‘산성 안개 차단(Acid Mist Blockade)’이오.”


도윤의 충혈된 눈동자가 차갑고 냉철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머릿속의 화학적 연산 장치를 가동했다. 천장에서 떨어지던 가죽 박리액보다 최소 다섯 배는 높은 수소 이온 농도를 지닌 초강산성 기체. 이 안개 속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면 단 세 걸음을 걷기도 전에 호흡기와 피부가 완전히 녹아내려 뼈만 남은 해골이 될 것이 분명했다. 물리적인 힘이나 단순한 바람 마법으로는 이 촘촘한 마력적 산성 결계를 찢을 수 없었다.


“이걸 쓰세요.”


에스더가 자신의 목에 걸려 있던 낡은 은빛 펜던트를 풀어서 도윤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그녀가 성녀로 추대될 당시 온건파 사제들에게 비밀리에 선물 받았던 ‘이단 성녀의 성물 펜던트’였다. 펜던트 중앙에 박힌 은빛 보석이 어둠 속에서 은은한 정화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성물은 주변의 마법적 오염을 정화하는 미세 결계를 전개할 수 있어요. 제 마력과 공명시킨다면 짧은 시간 동안은 안개를 밀어낼 수 있을 거예요.”


도윤은 은빛 펜던트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등 뒤에 안정화된 1단계 ‘여명의 각성’ 마도 회로를 강하게 자극했다. 피부 아래 새겨진 고대 제국의 금기서 문장들이 시뻘겋게 타오르며 맥박 치기 시작했다. 에스더의 정순한 신성 마력과 도윤의 등 뒤 문신이 뿜어내는 에테르 마나가 펜던트를 매개로 하여 완벽하게 공명했다.


동시에 도윤은 자신의 피부 문신에서 방출되는 마나를 염기성 기포 막 형태로 얇게 전개하는 ‘산성 안개 차단’ 기술을 발동했다.


우웅-!


성물 펜던트에서 흘러나온 눈부신 백색의 정화 장막과 도윤의 염기성 마력 막이 결합하여, 일행 네 사람을 완벽하게 감싸 안는 반경 1미터 크기의 투명한 백색 알칼리 이중 결계 돔이 형성되었다.


“전진하겠소. 내 발자국을 그대로 밟고 따라오시오.”


도윤의 거친 쇳소리 명령과 함께 일행은 보라색 독안개의 장벽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치이이이이익!


결계의 표면에 보라색 안개가 닿을 때마다, 귀를 찢는 듯한 가혹한 마찰음과 함께 엄청난 양의 하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초강산성의 기체가 주인공의 정밀한 염기성 마도 결계와 만나 급격한 화학적 중화 반응을 일으키며 무해한 염류와 물로 상쇄되어 증발하는 과정이었다. 사방이 하얀 김으로 가득 차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도윤은 뇌세포의 연산 영역을 가동해 오직 감각과 수로의 경사각만을 계산하며 앞으로 나아갔.


하지만 위기는 곧바로 찾아왔다.


킨-! 지익, 지이익.


에스더가 쥐고 있던 성물 펜던트 중앙의 은빛 보석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보라색 독안개의 산성 농도가 너무 가혹한 탓에, 성물의 정화 한계치를 초과하여 내부의 마력 코어가 실시간으로 부식당하고 있었다.


“루카스 님, 펜던트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마력이 급격히 빠져나가고 있어요!”


에스더가 이마에 땀방울을 흘리며 신음했다. 결계가 작동하는 동안 그녀의 생명력과 에테르가 미세하게 흡수되어 그녀의 입술이 점차 파랗게 질려갔다. 결계가 깨지는 순간, 이 좁은 통로에 갇힌 네 사람은 그 자리에서 녹아내려 질식사할 터였다.


‘시간이 없다. 디트리히가 설계한 이 결계의 근원적인 기하학적 연결 고리를 찾아내 파괴해야만 한다.’


도윤은 숨을 멈추고 눈에 마력을 집중했다.


‘마법 결함 투시(Magic Defect Clairvoyance).’


안구의 미세 혈관들이 급격한 마력 자극으로 인해 팽창하며 극심한 두통과 함께 눈가로 뜨거운 피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가혹한 대가를 치른 순간, 도윤의 시야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전환되었다.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보라색 안개 장막의 이면이 낱낱이 해체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안개 속을 흐르는 수천 개의 붉은색 마력 실선들, 그리고 그 실선들이 서로 교차하며 형성하고 있는 거대한 기하학적 공식 장막. 디트리히의 결계는 완벽한 정삼각형의 대칭 구조를 띠고 마력을 순환시키며 안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이 완벽한 대칭성 앞에 절망했겠지만, 현대의 역사 복원가이자 고고학자인 도윤의 눈은 그 완벽함 이면에 숨겨진 단 하나의 ‘미세한 왜곡’을 포착해 냈다.


‘배수로 내부의 급격한 수압(水壓) 변화.’


카스파르의 사냥개들을 퇴치할 때 발생한 화학 폭발의 여파로 수로 하부의 수문이 무너지며 지하수의 흐름이 급격히 바뀌었다. 그로 인해 석벽 하부에 가해지는 물리적인 하중이 미세하게 뒤틀렸고, 대지의 물리적 변화는 그 대지 위에 전개된 디트리히의 마법 공식에도 아주 미세한 균열을 일으켰다.


정삼각형 결계 서식의 오른쪽 꼭짓점 중 하나가 수압의 불균일한 압박으로 인해 원래 좌표에서 단 3밀리미터 어긋나 있었다. 결계 마법사 디트리히는 기계적인 교단 표준 공식만을 맹신하여 전개했을 뿐, 현장의 물리적 환경 변화가 공식에 미치는 하중 변화를 전혀 계산하지 못한 것이다.


“결함점을 찾았소.”


도윤은 품속에서 드워프 이반이 산성 부식 방지 합금으로 제련해 준 ‘특제 가죽 복원 메스’를 꺼내 들었다. 차갑고 가느다란 메스 날에 그의 미세한 에테르 마나를 흘려보내자, 날 끝이 예리한 붉은빛을 발하며 활성화되었다.


도윤은 결계의 압박으로 인해 등 가죽 문신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을 참아내며, 어긋나 있는 붉은 마력 선의 꼭짓점을 향해 메스를 정확히 뻗었다.


“파쇄(Corrode).”


도윤의 거친 쇳소리 영창과 함께, 메스 끝이 허공의 빈 공간인 결함점을 정밀하게 찔렀다.


콰지직-!


메스 날이 닿는 순간, 단단해 보이던 보라색 안개 장막 위에 수십 개의 백색 균열 선이 사방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마력의 순환 고리가 끊어진 결계는 급격히 불안정해지며 하얗게 얼어붙는 듯하더니, 이내 유리창이 깨지듯 수만 개의 은빛 파편으로 산산조조각 나며 소리 없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하아, 하아…….”


결계가 붕괴하자마자 사방을 메우고 있던 보라색 독안개가 순식간에 기화하여 사라졌고, 맑은 공기가 배수로 통로 내부로 밀려왔다. 에스더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고, 도윤 역시 메스를 쥔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난공불락이라 불리던 교단 결계 마법사의 장벽을 오직 기하학적 분석과 화학적 우회만으로 완벽히 붕괴시킨 순간이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은 길지 않았다.


결계가 깨져나간 무너진 석벽 너머로 어둡고 축축한 계단 통로가 드러났다. 그 통로는 이단심문소 지하 2층의 가장 불결하고 잔혹한 구역, ‘제2죄수 수용동’의 하부 바닥 격자 틈새와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찰싹-! 파지직!


“아아악!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 더러운 이단자 놈들이 신성한 정화 시간에 빵을 숨겨? 너희들의 살가죽은 주님의 은혜를 담기에도 아깝다!”


무너진 천장의 격자 틈새를 타고, 살이 찢어지는 참혹한 채찍 소리와 죄수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배수로 내부로 무겁게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도윤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차갑게 빛났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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