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개의 송곳니
철컥, 쾅! 쿠구구구궁!
지하 배수로 통로의 어둠 속에서 거대한 철제 격벽들이 차례대로 떨어져 내리는 둔탁한 파쇄음이 사방의 석벽을 흔들었다. 수천 년 동안 방치되어 녹슬어 있던 비상 차단 시스템이 지그문트의 에테르 나침반 경보에 반응해 강제로 기동한 것이다.
“형님! 완전히 막혔어요! 뒤쪽 격벽도, 앞쪽 수문도 전부 내려앉았습니다!”
로이가 쇠창살 틈새로 손을 뻗어 레버를 당기려다 절망적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좁고 습한 하수도 내부에는 이제 오직 썩어가는 오물 냄새와 차가운 물소리, 그리고 아군의 가쁜 숨소리만이 고여 있을 뿐이었다.
도윤은 자신에게 기대어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에스더를 단단히 부축했다. 방금 전 그녀의 이마에 새겨진 마력 봉인을 해제하는 과정에서 극순도의 에테르 마나가 각성했고, 그 파동이 이단심문소 지하 전체의 탐지 결계를 직격했다. 에스더의 뺨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지만, 그녀의 목 뒤와 도윤의 등 뒤에 새겨진 금기서 문신들은 은빛 마도 흉터와 공명하며 은은한 온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바르간, 에스더를 받아라. 로이, 내 뒤로 물러서.”
도윤의 성대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산성 가스에 영구적으로 손상되어 거칠고 차가운 쇳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거구의 전사 바르간이 묵묵히 다가와 거대한 두 팔로 에스더를 조심스럽게 받아 안았다. 바르간의 바위 같은 근육이 긴장으로 단단하게 부풀어 올랐다.
지이이이익.
그때, 닫힌 하수구 격벽 너머에서 기괴한 붉은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어둠을 찢고 다가오는 것은 사냥개 부대장 카스파르가 쥐고 있는 ‘붉은 추적 수정구’의 안광이었다. 수정구는 도윤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미세한 피 냄새와 에테르의 궤적을 실시간으로 빨아들이며 기괴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크르르르…….”
“컹! 컹! 끄르르!”
어둠 속에서 수십 마리의 마수 사냥개들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좁혀왔다. 교단이 이단 추격용으로 부리는 이 괴수들은 일반 사냥개보다 두 배는 거대했고, 입가에서는 닿는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강산성 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배수로의 검은 오물 위로 사냥개들의 발톱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웅웅거렸다.
“루카스…… 사형수 놈이 결국 성녀의 봉인까지 건드렸구나.”
어둠 너머에서 카스파르의 냉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르나르트 님께서 네놈의 살가죽을 온전히 박제하라고 하셨지만, 사냥개들의 이빨에 몇 군데 찢기는 것까지는 막지 않겠다. 순순히 무릎을 꿇어라.”
“주군, 제가 정면을 막아서겠습니다.”
바르간이 부서진 대검의 자루를 쥔 채 전방으로 나서려 했다. 쇠사슬에서 풀려나 마나 회로가 복구되었지만, 이 좁고 둥근 배수로 배관 내부에서 2.5미터의 거구가 움직이기에는 제약이 너무 컸다.
“기다려, 바르간. 정면 난전은 피해야 한다. 사냥개들의 침은 강산성이다. 스치는 것만으로도 네 살가죽이 녹아내릴 거다.”
도윤이 바르간의 어깨를 붙잡아 제지했다. 도윤의 머릿속은 이미 현대 역사학자이자 화학 복원가로서의 냉철한 연산 상태로 진입해 있었다.
‘카스파르의 마수 사냥개들은 후각과 청각이 일반 야수의 수십 배로 발달해 있다. 그것이 놈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지만, 역으로 그 감각 기관을 화학적으로 파괴한다면 완벽한 자멸을 유도할 수 있다.’
도윤은 수죄복 안쪽 주머니 깊숙한 곳에 손을 밀어 넣었다. 손끝에 닿는 것은 의무관 율리우스가 납품 상자에 몰래 숨겨 보내준 ‘연금술용 염기성 알칼리 촉매’ 분말 주머니였다. 초고농축된 염기성 알칼리 화합물 분말. 본래 베르나르트의 산성 가죽 박리 마법을 중화하기 위해 아껴두려 했던 비장의 카드였다.
‘지금 쓰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
“바르간, 로이! 귀와 코를 막고 바닥에 최대한 밀착해라! 에스더를 온몸으로 감싸!”
도윤이 거친 쇳소리로 명령했다.
동시에 카스파르가 수정구를 치켜들며 외쳤다.
“물어라!”
“컹-!”
선두에 선 세 마리의 마수 사냥개들이 맹독성 송곳니를 드러내며 도윤의 목덜미를 향해 공중으로 도약했다. 사냥개들의 입에서 떨어진 강산성 침이 공중에서 지익 소리를 내며 배수로의 벽면을 부식시켰다.
도윤은 도망치지 않았다. 대신 ‘초인지 집중(Hyper-cognitive Concentration)’을 가동했다.
쿵, 쿵, 쿵.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가 느려지며, 사방의 소음이 멀어졌다. 도윤의 눈동자가 차가운 푸른빛으로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사냥개들의 움직임, 턱관절의 미세한 떨림, 침방울이 떨어지는 궤적이 슬로우 모션처럼 눈앞에 그려졌다.
그와 동시에 도윤의 시야에 배수로 내부를 흐르는 기체의 성분이 실시간으로 가시화되었다. 썩어가는 오물과 강산성 폐액이 만나 발생한 고농도의 황화수소(H₂S) 가스와 메탄가스가 배수로 천장에 무겁게 고여 있었다.
‘완벽한 폭발 조건이다.’
도윤은 주머니에서 알칼리 촉매 분말 주머니를 꺼내 허공을 향해 거칠게 뿌렸다. 하얀 미세 분말이 수로의 습한 유독가스 공기 중으로 사방으로 흩어졌다.
“바르간, 지금이다!”
바르간이 도윤의 외침과 동시에 에스더를 품에 안고 웅크렸고, 로이 역시 머리를 감싸며 바닥의 차가운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도윤은 등 뒤의 안정화된 1단계 마력 회로를 자극했다. 피부 아래 새겨진 여명 제국의 금기서 문장들이 은은한 핏빛으로 타오르며 혈관을 타고 푸른 마력이 손가락 끝으로 몰려들었다. 도윤은 공중에 도약한 사냥개의 코앞을 향해 오른손 끝을 튕겼다.
딱!
미세한 마력 스파크가 튕겨 나갔다.
그 작은 불꽃이 허공에 흩어진 고농축 알칼리 촉매 분말과 천장의 황화수소 가스 경계선에 닿는 순간.
콰아아아아앙-!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화학 가스 폭발이 배수로 통로 전체를 집어삼켰다.
단순한 마법 불꽃이 아니었다. 염기성 촉매가 산성 가스와 만나 격렬하게 반응하며 일으킨 초고압의 화학적 중화 폭발이었다. 좁은 배수로의 압력이 순식간에 한계치까지 상승하며 눈을 씻어내는 듯한 찬란한 백색의 중화 가스와 자욱한 연막이 폭풍처럼 사방으로 휘몰아쳤.
“끄아아악-!”
격벽 너머에서 추격을 지휘하던 카스파르의 비명이 들려왔다.
공중에서 습격하던 마수 사냥개들은 폭발의 충격파와 함께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단순한 충격 수치를 넘어, 고농축 알칼리 성분이 섞인 자욱한 중화 연기가 사냥개들의 발달한 후각 수용체와 고막을 완벽하게 관통했다.
“깽! 깨갱! 컹!”
초예민한 야수들의 코와 귀가 화학적 중화 반응의 급격한 산도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분자 단위로 타들어 갔다. 후각과 청각을 완전히 상실한 사냥개들은 완벽한 패닉에 빠져 서로를 물어뜯거나 배수로 벽면에 대가리를 처박으며 자멸하기 시작했다. 카스파르의 붉은 추적 수정구 역시 폭발의 충격파로 인해 표면에 균열이 가며 붉은 안광이 어둡게 사려졌다.
“쿠헉……!”
폭발의 후폭풍은 도윤 일행에게도 불어닥쳤다. 바르간이 거대한 몸으로 도윤의 전방을 막아섰지만, 좁은 통로 내부에서 발생한 급격한 기압 변화와 뜨거운 잔류 가스가 도윤의 호흡기로 유입되었다.
도윤은 가슴을 움켜쥐며 붉은 피를 한 움큼 바닥으로 토해냈다. 산성 가스에 노출되었던 그의 약해진 폐포가 화학 폭발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미세하게 파열된 것이다. 목구멍에서 비린 피 맛이 울컥 솟구쳤고, 전신에 힘이 빠지며 무릎이 꺾이려 했다.
“루카스 님!”
에스더가 급히 손을 뻗어 도윤의 어깨를 부축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은빛 치유 마력이 도윤의 가슴으로 스며들며 파열된 폐포의 통증을 일시적으로 완화해 주었다. 도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소. 놈들의 후각은 완전히 마비되었소. 지금 움직여야 하오.”
도윤의 목소리는 더욱 거칠고 쓸쓸한 쇳소리가 되어 배관 내부에 울렸다.
폭발의 충격은 수로 내부의 환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수십 년 동안 노후화되어 균열이 가 있던 배수로 측면의 거대한 석조 벽면이 폭발의 진동을 견디지 못하고 쿠구구궁 소리를 내며 완전히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너져 내린 석벽 너머로 어둡고 기괴한 새로운 지하 공동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였다. 무너진 벽면의 틈새 너머, 깊은 심연의 어둠 속에서 닿는 모든 살점을 녹여버릴 듯한 차갑고 기괴한 보라색 독안개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일행의 발밑으로 서서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공기 중에 유입된 보라색 안개가 배수로 바닥의 오물과 닿자마자 지익 소리를 내며 하얀 김을 뿜어냈다. 일행의 호흡기가 다시 한번 따끔거리며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재앙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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