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구원
철문 표면에 새겨진 신성 결계가 기괴한 핏빛으로 타오르며, 도윤의 손끝을 타고 그의 등 뒤 문신에 깃든 에테르 마나를 강제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으, 윽……!”
지독한 과열 현상이 도윤의 척추를 타고 뇌리로 치솟았다. 전신이 불타는 듯한 격통 속에서 도윤은 이를 악물었다. 오른손가락 끝, 족쇄를 해킹하며 입었던 화상 상처가 다시 파열되면서 붉은 피가 차가운 철문 표면으로 흘러내렸다. 그 피마저도 결계의 핏빛 광포한 인력에 휩쓸려 기괴하게 기화하고 있었다.
‘이 결계의 본질은 흡수다. 침입자의 마나를 강제로 빨아들여 스스로를 강화하는 다이오드(Diode)식 마법진.’
시간이 없었다. 감시탑의 탐지 장막이 우회되는 3분의 사각지대 중 남은 시간은 단 2분. 이대로 마나를 전부 빼앗긴다면 에스더를 구하기는커녕 자신의 자아와 영혼마저 통째로 붕괴하여 쇼크사할 판이었다.
도윤은 떨리는 왼손으로 발터에게서 탈취한 ‘베르나르트의 마스터 열쇠 꾸러미’를 꽉 쥐었다. 그리고 ‘초인지 집중(Hyper-cognitive Concentration)’을 극한으로 전개했다.
주변의 공기 흐름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려졌다. 도윤의 푸른 눈동자 속에 철문 표면을 휘감고 있는 핏빛 마법 서식의 기하학적 구조가 3차원 매트릭스로 분해되어 떠올랐. 마나가 흘러 들어가는 붉은 실선들의 복잡한 흐름 속에서, 유독 비정상적으로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교차점이 보였다.
‘찾았다. 저곳이 결함점(Defect)이다.’
마법진의 대칭 구조가 아주 미세하게 어긋나 있는 비대칭의 중심. 도윤은 오른손 끝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미세한 산성 마나를 그 결함점에 정확히 밀착시켰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고대어의 부식 영창을 나직하게 읊조렸다.
‘마법진 부식(Magic Circle Corrosion).’
지익, 지이이익!
도윤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미세한 녹색 산성 마나가 핏빛 결계의 중심 교차점을 파고들었다. 그러자 마나를 빨아들이며 기세등등하게 타오르던 붉은 서식들이 순간적으로 흐름을 잃고 하얗게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결계 전체가 비명을 지르듯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녹아내렸고, 이내 유리창이 깨지듯 소리 없이 산산조각 나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철컥.
무거운 쇠창살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특별 독방의 철문이 서서히 열렸다.
도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독방 내부의 차가운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바닥에는 이끼와 오물이 뒤섞여 지독한 악취가 풍겼고, 사방의 벽면은 마력을 흡수하는 검은 석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음산한 방의 한가운데, 쇠사슬에 묶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한 여성이 보였다.
찢어진 수녀복 사이로 가혹한 고문의 흔적인 붉은 흉터들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지만, 도윤의 발소리에 고개를 든 그녀의 눈빛만큼은 맑고 성스러운 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단 성녀라 불린 에스더였다.
그녀의 이마 한가운데에는 교단이 새겨놓은 검고 기괴한 마력 봉인 낙인 결계가 핏빛 흉터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신은……?”
에스더가 마력이 봉인된 쇠약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윤은 성대가 산성 가스에 녹아내려 영구적으로 고정되어 버린, 차갑고 거친 거친 쇳소리로 대답했다.
“역사를…… 복원하러 온 자요. 당신의 힘이 필요해서 왔소.”
그 기괴하고 음산한 목소리에 에스더는 경계하는 듯했으나, 이내 그녀의 품속에 숨겨져 있던 은빛 로자리오가 미세하게 공명하며 은은한 은빛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로자리오의 빛이 도윤의 등 뒤에 새겨진 붉은 금기서 문신과 반응하여 따뜻한 온기를 전해온 것이다. 에스더의 은빛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 등 뒤의 빛은…… 교단이 그토록 지우려 했던 진짜 역사의 기록이군요.”
“시간이 없소. 2분 뒤면 순찰대가 들이닥칠 거요. 당신의 이마에 새겨진 마력 봉인을 해제하겠소.”
도윤은 에스더에게 다가가 그녀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마법 결함 투시’ 능력을 가동하자, 그녀의 뇌 신경과 마나 코어를 억누르고 있는 검은 낙인 결계의 기하학적 공식이 입체적으로 가시화되었다.
‘이 봉인은 대칭을 이룬 세 개의 신성 획으로 뇌의 에테르 흐름을 차단하고 있다. 획의 교차점에 마스터 열쇠의 잠금 해제 인장을 대입해 공식을 역배열한다.’
도윤은 왼손에 쥔 마스터 열쇠 꾸러미의 마법 각인을 그녀의 이마에 가져다 대고, 고대어 자모음 대입법을 통해 뇌 속에서 공식을 초고속으로 치환했다.
“……아르, 테스, 누아!”
도윤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은빛 인장 마력이 에스더의 이마에 닿는 순간, 검은 낙인 결계가 하얗게 끓어오르며 지익 소리를 냈다. 에스더의 전신이 고통으로 가볍게 떨렸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아냈다. 검은 흉터 같던 낙인이 순식간에 기화하여 백색의 증기로 변해 허공으로 증발했다.
쿠우우웅!
봉인이 해제되자마자, 에스더의 체내 깊숙이 갇혀 있던 성스러운 은빛 에테르 마나가 폭발적으로 각성하며 사방으로 은은한 은빛 고리를 펼쳤다. 독방 내부의 퀴퀴한 어둠이 순식간에 은빛 성광으로 가득 찼다.
에스더는 숨을 헐떡이며 도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은빛 눈동자에는 경외감과 함께 깊은 참회의 빛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도윤의 수죄복 너머로 시뻘겋게 과열되어 피고름을 흘리고 있는 그의 등 가죽을 보았다.
“당신의 가죽이…… 역사 복원의 대가로 무너지고 있군요. 제가 치유하겠어요.”
에스더가 떨리는 손을 도윤의 등에 얹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순수한 은빛 치유 마력이 도윤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화아아아악!
그 성스러운 치유 마력이 도윤의 살가죽에 새겨진 고대 제국의 생체 에너지 공식인 ‘가죽 자가 복구(Skin Self-recovery)’ 능력과 격렬하게 공명하기 시작했다. 치유 속도가 평소의 10배 이상으로 비약적으로 촉진되었다.
찢어지고 괴사하여 피고름이 흐르던 등 가죽의 세포들이 하얀 김을 내뿜으며 무서운 속도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벌어져 있던 상처들이 은빛 마도 흉터를 남기며 단단하게 봉합되었고, 그 위로 멸망한 고대 제국의 첫 번째 역사 장인 ‘여명 제국의 건국사’ 붉은 문장들이 왜곡 없이 완벽한 기하학적 완결성을 띠며 등 전체에서 찬란한 핏빛 광채를 내뿜었다.
“끄으으윽……!”
상처가 강제로 재생되는 지독한 가려움과 고열의 통증이 도윤의 전신을 흔들었지만, 이내 그의 체내에 개방된 고대 에테르 마나 회로가 완벽하게 안정되며 푸른 마력이 혈류를 타고 힘차게 순환하기 시작했다. 1단계 마력 회로의 완벽한 안착이었다.
도윤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들어 에스더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얽혔다.
“역사를 바로잡고, 교단의 가짜 구원을 무너뜨리겠소. 나와 함께 가겠소?”
도윤의 거친 쇳소리에 에스더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제 온 영혼을 바쳐, 진짜 역사의 증인이 되겠어요. 이것이 저의 서약입니다.”
두 사람이 역사 복원의 서약을 맺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위이이이이이이이잉-!
이단심문소 지하 전체를 찢어발길 듯한 날카롭고 거대한 마도 경보음이 사방의 석벽을 타고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독방 천장에 설치된 비상 마법진들이 일제히 핏빛으로 붉게 타오르며 광포한 마력을 내뿜었다.
‘지그문트의 에테르 영사 나침반이 오버플로우를 일으켰군.’
에스더의 봉인이 해제될 때 방출된 극도로 정순한 은빛 에테르 마나가 이단심문소 전체의 마력 탐지망을 강제로 자극해 과부하 폭발을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쿠쿵! 쾅! 쾅!
배수로 통로 곳곳에서 무거운 철제 격벽들이 차례로 떨어져 내리며 탈출로를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둔탁한 파쇄음이 들려왔다. 이단심문소 제3지하 감옥 관리단의 모든 경비병들이 무장을 갖추고 지하 2층으로 집결하는 발소리가 배관을 타고 웅웅거렸다.
“형님! 큰일 났어요! 수로 문들이 전부 닫히고 있어요!”
독방 입구에서 망을 보던 로이가 사색이 된 얼굴로 소리쳤. 통로 저편 어둠 속에서 기괴하고 음산한 야수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좁은 석벽 틈새를 타고 메아리쳐 오기 시작했다.
사냥개 부대장 카스파르가 이끄는 마수 사냥개 정예 부대였다.
지이이이익.
배수로의 깊은 어둠 속에서, 도망자의 피 냄새를 기억하는 카스파르의 붉은 추적 수정구가 기괴한 안광을 번뜩이며 수십 마리의 마수 사냥개들과 함께 일행의 퇴로를 완벽히 포위한 채 좁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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