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 감옥의 역사학자
치익, 치이익.
살가죽이 타들어 가는 소리는 기괴할 정도로 선명했다. 뒤이어 척추를 타고 뇌수까지 직격하는 가혹한 고통이 몰려왔다.
“으아아악!”
비명이 어두운 석조 감옥의 벽면에 부딪혀 고독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바닥을 뒹굴었다. 오물과 차가운 습기가 가득한 바닥이었지만, 등 뒤에서 번지는 지독한 열기에 비하면 얼음판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손을 뒤로 뻗어 등덜미를 짚으려 했으나, 무겁게 채워진 쇳덩이 족쇄가 요란한 마찰음을 내며 그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이게 대체 무슨 고통이지? 내가 왜 여기에…….’
머릿속이 깨질 것처럼 아파왔다. 현대 한국의 천재 역사 복원가이자 고고학자였던 신도윤. 그의 마지막 기억은 해외 유적지에서 발굴된 고대 제국의 석판을 정밀 복원하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눈을 떴을 때 마주한 것은 번듯한 연구실이 아니었다.
사방이 꽉 막힌 거친 석벽,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정체불명의 점액질 액체, 그리고 찌든 비린내와 유독한 산성 약품 냄새가 진동하는 어두운 독방.
이곳은 성전정화교단이 자랑하는 최악의 지하 요새, 이단심문소 지하 3층에 위치한 ‘제3독방’이었다.
그리고 도윤은 자신이 더 이상 ‘신도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뇌리에 강제로 주입된 기억들이 그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있었다.
루카스.
그것이 이 몸의 원래 이름이었다. 대대로 고대 제국의 역사를 비밀리에 연구해 오다 교단의 밀고로 인해 멸문지화를 당한 학자 가문의 마지막 후예. 그리고 지금은 온몸에 고대 제국의 금기서를 문신으로 새겼다는 이유만으로 기소되어 사형을 앞둔 비참한 사형수.
물방울이 다시 천장에서 똑 떨어졌다.
툭.
액체가 닿은 곳은 루카스의 척추 라인을 따라 새겨진 정교한 고대 문자 문신 위였다. 순간, 피부 아래 잠들어 있던 문신들이 붉은 인과 발광을 일으키며 핏빛으로 거칠게 맥박 치기 시작했다.
“끄으윽……!”
단순한 물방울이 아니었다. 그것은 교단이 이단 죄수들의 살가죽을 산 채로 벗겨내 박제하기 위해 제조한 특제 연금술 독극물, ‘정제된 강산성 가죽 박리액’이었다.
피부가 하얗게 끓어오르며 세포가 분자 단위로 찢겨 나가는 감각이 전신을 지배했다. 뇌세포의 연산 회로가 극심한 쇼크로 인해 일시 정지될 위기였다. 이대로 고통에 굴복해 이성을 잃는다면, 그는 자아 붕괴와 함께 쇼크사로 허망하게 목숨을 잃을 것이 분명했다.
‘정신 차려야 해. 나는 역사학자다. 분석해라. 이 고통의 물리적 실체를 분석해!’
도윤은 이빨이 깨질 정도로 악물며 루카스의 기억 속 서고를 샅샅이 뒤졌다. 동시에 현대인으로서 지니고 있던 화학적 지식을 가동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가죽 박리액은 연금술적인 마력이 깃들어 있었지만, 그 본질적인 물리 성질은 수소 이온 농도가 극도로 높은 강산성(pH 1.5 수준) 물질이었다. 마법이라는 초자연적 현상 역시 이 세계의 물리 법칙과 화학적 규칙의 범주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하나뿐이었다.
‘산성-염기성 정밀 중화 연산식.’
산성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염기성 물질을 투입해 물과 무해한 염으로 상쇄시켜야 했다.
도윤은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의 육체는 현재 ‘0단계: 마력 봉인 및 사형수 육체’ 상태였다. 체내의 마나 순환 회로는 교단의 결계 족쇄에 의해 완벽히 차단되어 있었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였다. 마법으로 물을 만들어내거나 방어막을 펼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물…… 물이 필요해.”
독방 구석에 놓인 낡은 나무 컵이 보였다. 간수들이 하루에 한 번 넣어주는 불결한 식수였다. 도윤은 필사적으로 기어가 컵을 낚아채고는 그대로 자신의 등 뒤 상처 부위에 들이부었다.
치이이익!
“아아아악!”
하지만 그것은 치명적인 악수(惡手)였다. 물이 닿자마자 등의 통증은 정화되기는커녕, 살점이 몇 배는 더 맹렬하게 끓어오르며 문개지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도윤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루카스의 기억이 뒤늦게 경고를 보냈다. 독방 내에 배급되는 식수에는 죄수들의 마력 발현을 억제하기 위해 미세한 마력 억제 독약 성분이 섞여 있었다. 이 독약 성분이 박리액의 마법적 부식 작용과 만나 삼투압 현상을 왜곡시켰고, 결과적으로 부식 속도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것이었다.
등 가죽이 짓물러 터지며 피고름이 바닥을 적셨다. 상처 부위가 덧나 붉은 문신 주변의 살가죽이 영구적인 흉터로 뒤덮이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1분, 아니 수십 초 내로 완벽한 중화제를 찾지 못하면 척추 뼈가 녹아내릴 터였다.
도윤은 다시 한번 냉철한 이성을 쥐어짜 냈다.
‘진정해라. 이 방은 석조 감옥이다. 벽면을 이루고 있는 거친 돌들의 성분은 무엇이지?’
그는 벽면을 응시했다. 축축하게 젖은 석벽 표면에 미세한 백색 가루들이 피어올라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산성 약품 냄새에 노출되면서 대리석과mortar(석회 흙)가 부식되어 뿜어낸 앙금들이었다.
탄산칼슘(CaCO3).
고대 유적을 복원할 때 지겹도록 다루었던 석회 성분이자, 천연의 약염기성 물질 물질이었다. 비록 약한 염기성이지만 정밀하게 농도를 조절해 상처에 도포한다면, 강산성의 수소 이온을 붙잡아 중화 반응을 일으킬 수 있었다.
도윤은 채워진 족쇄를 쇠창살에 긁어대며, 쇠 손톱으로 석벽의 틈새를 미친 듯이 긁어내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손끝이 깨지고 피가 솟구쳤지만 멈추지 않았다. 마른 먼지와 흙 속의 미세한 석회 성분, 그리고 떨어져 나간 석고 가루들을 손바닥 가득 긁어모았다.
그는 이 흙가루들을 등 뒤의 불타는 상처 부위에 그대로 문질렀다.
치이이이익—!
가루가 진물과 박리액에 닿는 순간, 상처 표면에서 미세한 백색 중화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격렬한 화학 반응과 함께 엄청난 열기가 방출되었지만, 세포를 직접 파괴하던 부식성 통증은 급격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강산성이 석회의 탄산염 성분과 결합해 중화되며 무해한 염과 이산화탄소 가스로 변환된 것이었다.
“하아…… 하아……”
도윤은 오물투성이 바닥에 뺨을 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등 뒤의 타들어 가던 고통이 둔탁한 통증으로 변해 가라앉았다. 비록 상처 부위가 덧나 전신에 흉측한 흉터가 남게 되었지만, 세포의 추가적인 부식을 완전히 억제하는 데 성공한 순간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마법적인 화학 독극물을 완벽히 정화해 낸 기적. 도윤은 숨을 고르며 등 뒤의 문신을 미세하게 느껴보았다.
놀랍게도 문신은 파괴되지 않았다. 오히려 상처 입은 살가죽 틈새에서 붉은빛을 은은하게 발하며 숨을 쉬고 있었다.
‘루카스의 살가죽이 가진 생체 양피지 특성…….’
도윤은 직감했다. 이 몸의 피부는 단순한 살점이 아니었다. 고대 제국의 모든 지식과 금기 마법식을 왜곡 없이 무한히 빨아들이고 보존할 수 있도록 특수하게 개조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영구 불멸의 생체 양피지였다. 그렇기에 이 가혹한 산성 부식 속에서도 마법식의 뼈대가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었다.
이 세계의 마법은 완벽한 기하학적 수식과 물리 화학적 법칙 위에 서 있었다. 그렇다면 고고학자이자 역사 복원가인 자신에게는, 이 지독한 이단심문소가 오히려 최고의 실험실이 될 수도 있었다.
살아남을 수 있다. 이 몸에 새겨진 고대의 진실을 복원해 낸다면, 이 위선적인 교단의 지배를 뿌리째 뒤흔들고 탈출할 방법을 반드시 찾을 수 있으리라.
도윤이 스스로의 생존을 확신하며 주먹을 움켜쥔 바로 그 순간.
터벅, 터벅, 터벅.
독방 너머 어두운 복도 저편에서 무겁고 규칙적인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쇠가죽 장화가 바닥을 딛는 소리, 그리고 허리춤에 찬 열쇠 꾸러미가 절렁거리는 마찰음.
‘이단심문소 제3지하 감옥 관리단’의 간수들이었다.
철컥, 스으으윽—.
제3독방의 굳게 닫혀 있던 육중한 철문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열리기 시작했다. 문틈 사이로 횃불의 붉은 그림자가 독방 바닥의 피고름을 기괴하게 비추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거구의 하급 간수가 채찍을 손가락에 감으며 도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말려 올라갔다.
“어이, 사형수 루카스. 아직 숨은 붙어 있군.”
간수가 가죽 채찍 끝으로 도윤의 짓무른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뱉어냈다.
“질긴 놈 같으니라고. 내일 아침 종소리가 울리는 즉시, 너는 지하 광산 채굴장으로 끌려간다. 마력을 빼앗긴 이단자들이 그 가혹한 막장에서 며칠이나 버티는지 한번 두고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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