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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속의 밀서, 뒤바뀐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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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월천뢰 제7호 독방의 공기는 얼어붙은 것처럼 무겁고 축축했다. 사방의 돌벽 틈새로 스며드는 지하 암반수의 미세한 물방울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어둠을 두드리고 있었다. 소귀안은 목제 휠체어에 앉아 무릎 위에 가죽 장책 하나를 올려놓고 있었다. 낮에 임소승과 마칠이 목숨을 걸고 황사관 협곡에서 탈취해 온 교도관장 뇌극진의 비밀 비자금 장부 복사본이었다.


그의 창백한 손가락이 낡은 양피지 장책의 책장을 천천히 넘겼다. 장부에는 뇌극진이 만금상단의 부패 상인 뇌태극과 결탁하여 천뢰의 식자재 보급을 착취하고, 마교 장로들의 눈을 속여 축재한 황금 수만 냥의 흐름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록되어 있었다.


"형님, 상처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보다 천뢰 전체에 빗장이 걸렸습니다. 뇌태극이 장부 유실을 보고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소귀안의 휠체어 옆에 무릎을 꿇고 서 있던 임소승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의 양쪽 손바닥은 거친 삼베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고, 그 틈새로 붉은 피가 조금씩 배어 나오고 있었다. 황사관 협곡에서 뇌극진이 숨겨둔 일류 고수의 도풍(刀風)을 정면으로 받아낸 대가였다. 부러질 뻔했던 녹슨 단창은 경비 대기실에 숨겨두었으나, 찢어진 손바닥의 자상은 주만태나 뇌극진의 눈을 피하기 어려운 물리적 흔적이었다.


소귀안은 장부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차갑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승아, 고통을 견뎌라. 네 손바닥의 상처는 뇌극진의 목을 벨 완벽한 칼날이 될 것이다. 지금 뇌극진은 장부를 가져간 자들이 자신을 시기하는 마교 사대장로들의 정예 첩자단이라고 오판하고 있다. 자신의 탐욕이 스스로를 가두는 가장 어두운 감옥이 된 셈이지."


소귀안은 장부 복사본을 덮어 짚더미 매트리스 밑 깊숙이 파놓은 비밀 벽 틈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또 다른 낡은 헝겊 조각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소귀안이 밤새 자신의 손가락 끝을 찔러 흘린 피와 먹을 섞어 가풍백의 필체를 완벽하게 모사한 위조 밀서였다. 밀서에는 환영장로 가풍백이 교도관장 뇌극진과 내통하여 우호법 야율사를 제거하고 천뢰의 실권을 독점하려 한다는 추악한 음모가 적혀 있었다. 물론 가풍백의 비밀 인장 역시 소귀안이 기억 속의 문양을 되살려 완벽하게 조각해 찍은 가짜였다.


"뇌극진은 결코 직접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사리사욕이 장로들에게 들통날까 두려워, 가장 잔혹하고 멍청한 사냥개인 동생 뇌무극을 보낼 터."


소귀안의 눈동자가 횃불빛을 받아 푸르게 번뜩였다.


"뇌무극은 천뢰의 무력 대장이다. 머리는 나쁘나 외강공의 파괴력은 일류 상급에 달하지. 그놈이 군사들을 이끌고 제7호 독방을 부수며 샅샅이 뒤질 것이다. 소승아, 네 손의 붕대를 보고 그놈이 의심을 품을 터이니, 내가 신호를 주면 너는 몸을 던져 그놈의 매질을 받아내라. 그리고 어깨뼈를 내주어라."


임소승은 순간 침을 삼켰으나, 소귀안의 깊고 고요한 눈빛을 마주하자 이내 우직하게 고개를 숙였다.


"형님의 지략에 제 목숨을 맡겼습니다. 어깨뼈 따위는 몇 번이고 내어주겠습니다."


바로 그 순간, 천뢰 지하 복도 끝에서부터 가공할 굉음이 울려 퍼졌다.


쿵! 쿵! 쿵!


무거운 가죽 장화 소리와 함께 거친 쇠사슬이 돌바닥을 긁는 음산한 마찰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횃불의 불꽃이 사납게 흔들렸고, 사방의 철창 속에 갇힌 죄수들이 공포에 질려 숨을 죽이는 소리가 이청득심(以聽得心)의 감각을 통해 소귀안의 뇌리에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뇌무극이었다.


그는 거대한 무쇠 철퇴인 벽력추(霹靂鎚)를 어깨에 멘 채, 흉터 가득한 얼굴에 살기를 가득 담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중갑을 착용한 철혈위(鐵血衛) 대원 수십 명이 대도를 치켜세운 채 삼엄하게 따르고 있었다.


"문 열어라!"


뇌무극의 폭포수 같은 고함이 복도를 뒤흔들었다.


쾅!


거대한 무쇠 철퇴가 제7호 독방의 무쇠 문을 가차 없이 내리쳤다. 자물쇠 장치가 비명을 지르며 뜯겨 나갔고, 두꺼운 철문이 돌벽에 부딪치며 자욱한 돌가루와 먼지를 폭발시켰다.


"콜록, 콜록……."


먼지 속에서 소귀안은 쇠사슬을 가볍게 흔들며 휠체어 위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들을 맞이했다. 그의 손목과 발목에 채워진 녹슨 만철 사슬은 그의 신체적 불능(폐인 상태)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고 있었다.


뇌무극은 독방 안으로 성큼 들어서며 소귀안의 머리통 바로 위로 거대한 벽력추를 겨누었다. 무거운 쇳덩이에서 풍기는 피비린내와 가공할 내공의 압박감이 소귀안의 정수리를 짓눌렀다.


"정파의 천재 대제자였던 기생오라비 놈이 여기 얌전히 앉아 있었군."


뇌무극이 이죽거리며 침을 뱉었다.


"내 형님 뇌극진의 비밀 장부가 사라졌다. 황사관 협곡에서 마차를 기습한 쥐새끼들이 이 천뢰 내부의 첩자들과 내통한 흔적이 있어. 이 방 안의 벽돌 하나, 바닥 한 칸까지 전부 부수어라! 쥐새끼의 흔적이 나오면 그 자리에서 사지를 찢어버리겠다!"


"예!"


철혈위 대원들이 사납게 대답하며 쇠망치와 도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소귀안이 누워 자던 낡은 짚더미 침상이 단숨에 찢겨 나가 짚풀이 사방으로 날렸고, 바닥의 돌벽들이 망치질에 처참하게 깨져 나갔다.


소귀안은 머릿속의 삼라만상국(森羅萬象局)을 가동했다. 뇌무극의 거친 호흡 주기, 그의 발걸음 각도, 그리고 철혈위 대원들의 수색 동선이 가상의 장기판 위에 빛나는 실선으로 배치되었다.


뇌무극은 화가 나거나 초조해지면 오른발을 구르고 왼쪽으로 시선을 크게 돌리는 고유의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육중한 가죽 장화는 뒷굽 틈새가 미세하게 벌어져 있어, 가죽의 유연한 복원력 덕분에 작은 헝겊 조각 하나 정도는 감쪽같이 숨길 수 있는 완벽한 빈틈을 노출하고 있었다.


수색이 절정에 달했을 때, 한 철혈위 대원이 휠체어 뒤에 서 있던 임소승의 손을 거칠게 낚아챘다.


"대장님! 이 옥졸 놈의 손을 보십시오! 삼베 붕대에 피가 가득 묻어 있습니다! 어제 황사관 기습 때 일류 고수의 도검에 다친 자상과 일치합니다!"


뇌무극의 매서운 눈빛이 즉각 임소승을 향했다. 그가 철퇴를 고쳐 잡으며 임소승에게 다가섰다.


"하급 옥졸 놈이 감히 장부를 훔쳤단 말이냐? 말해라, 배후가 누구냐!"


임소승은 소귀안의 무언의 신호를 받았다. 그는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무릎을 꿇으려 했으나, 뇌무극은 가차 없이 그의 어깨를 향해 무거운 가죽 장화를 날렸다.


팍!


"으아악!"


임소승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굴러떨어졌다. 뇌무극이 그의 멱살을 잡아채며 굵은 주먹으로 그의 어깨 관절을 사납게 내리쳤다. 드드득 하는 뼈가 어긋나는 참혹한 소리와 함께 임소승의 왼쪽 어깨뼈가 완벽하게 탈골되었다. 붕대가 찢어지며 찢어진 손바닥에서 붉은 피가 복도 바닥으로 분수처럼 뿜어졌다.


"말해라! 장부를 어디에 숨겼느냐!"


임소승은 고통으로 온몸을 비틀면서도, 소귀안의 계획대로 품속에서 위조된 옥졸 통행패를 꺼내 바닥에 떨어뜨렸다.


"억, 억울합니다…… 대장님! 어제 주만태 부관장님의 지시로 지하 보관실의 묵철 상자를 옮기다 쇠사슬에 긁혀 다친 것뿐입니다! 여기 통행패와 작업 기록이 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뇌무극이 바닥에 떨어진 통행패와 작업 기록 장책을 거칠게 낚아채 확인했다. 주만태의 서명이 찍힌 완벽한 위조품이었다. 뇌무극의 의심이 순간적으로 주만태 쪽으로 흔들리는 찰나였다.


그 일촉질발의 순간, 뇌무극은 다시 소귀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폐인 놈의 휠체어도 샅샅이 부수어라! 이놈의 사슬 틈새에 숨겨두었을지도 모른다!"


철혈위 대원들이 소귀안의 목제 휠체어를 향해 쇠망치를 치켜세웠다. 휠체어가 파괴되면 소귀안의 생존과 이동 수단이 완전히 사라지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소귀안은 침착하게 휠체어 아래 숨겨둔 침술용 금침 한 알을 오른손가락 끝에 쥐었다. 무공은 폐했으나, 평생 갈고닦은 도가 정종의 미세한 손가락 튕기기 기술은 그의 손끝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소귀안은 기색 판별을 통해 뇌무극이 오른발을 고쳐 디디며 왼쪽의 부서진 돌벽을 흘겨보는 그 0.1초의 사각지대를 포착했다.


팅!


소귀안이 손가락 끝을 미세하게 튕겨 금침을 독방 반대편 구석의 쇠사슬 고리를 향해 날렸다. 어둠 속에서 날카롭고 미세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음? 무슨 소리냐! 저쪽 벽을 파헤쳐라!"


뇌무극이 반사적으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철혈위 대원들의 시선 역시 일제히 반대편 벽 구석으로 쏠렸다.


그 반 초의 찰나.


소귀안의 왼손이 사슬의 구속 한계 내에서 그림자처럼 번개같이 움직였다. 그의 손가락 끝에 쥐여 있던, 가풍백의 위조 인장이 찍힌 붉은 비단 밀서 조각이 뇌무극의 오른쪽 가죽 장화 뒷굽의 벌어진 가죽 틈새 속으로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만철 사슬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소리는 철혈위 대원들의 망치질 소리에 완벽하게 묻혔다.


"대장님! 이쪽 벽 구석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낡은 쥐구멍에서 돌가루가 떨어진 것뿐입니다!"


한 대원이 보고하자, 뇌무극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적였다. 휠체어와 독방 바닥을 샅샅이 파헤쳤으나 뇌태극의 장부나 첩자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독방 안은 그저 깨진 돌가루와 찢어진 짚풀만이 가득한 폐허가 되어 있었다.


뇌무극은 휠체어에 앉아 창백한 안색으로 숨을 몰아쉬는 소귀안을 향해 침을 뱉었다.


"쳇,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했군. 이 잘난 정파의 천재 놈은 그저 사슬에 묶여 굶어 죽어가는 폐인일 뿐이다. 철수해라!"


뇌무극이 거칠게 발을 구르며 독방을 나섰다. 그의 오른쪽 가죽 장화 뒷굽 틈새에 숨겨진 가풍백의 위조 밀서는,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죽의 압박을 받아 더욱 깊숙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 고정되었다.


철혈위 대원들이 부서진 철문 너머로 사라지고, 무거운 자갈 밟는 발소리가 복도 멀리 사라질 때까지 독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으윽……."


어깨뼈가 탈골된 임소승이 바닥에 쓰러져 신음했다. 소귀안은 휠체어를 천천히 굴려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창백한 손가락이 임소승의 어긋난 어깨뼈를 정확히 짚은 뒤, 단숨에 힘을 주어 밀어 넣었다.


드득!


"흡!"


임소승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어깨를 감싸 쥐었다. 뼈는 제자리를 찾았으나 손바닥의 상처와 전신의 타박상으로 인해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형님…… 성공하셨습니까?"


임소승이 고통 속에서도 붉게 충혈된 눈으로 소귀안을 바라보았다.


소귀안은 부서진 짚더미 매트리스 너머, 뇌무극이 사라진 복도의 어둠을 응시했다. 그의 입꼬리가 어둠 속에서 아주 나지막하게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것은 차갑고 서늘한 복수귀의 미소였다.


"오만한 사냥개 놈이 제 발로 가짜 밀서를 장로들에게 배달하게 되었구나. 이제 독무연과 가풍백의 귀에 이 소식이 들어가는 순간, 천뢰는 장로들의 탐욕과 의심으로 불타오르게 될 것이다."


소귀안은 만철 사슬을 가볍게 흔들며, 다시 찾아온 어둠 속에서 조용히 미소 지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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