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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감옥, 독살의 기억을 건져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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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펠 마을의 얼어붙은 안개를 빠져나와 재판소 지하 기록실로 연결되는 어두운 비밀 통로에 들어선 한우진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왼쪽 눈을 찌르는 듯한 극심한 편두통은 가라앉지 않았고, 전신을 감싸는 영적 피로감은 그가 가진 마력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경고하고 있었다. 현재 남은 정의의 신성력은 단 2%. 얄팍한 마법적 회복 따위로는 성황청의 인과 저주를 풀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후였다.


“레오 형, 정말 이 몸을 이끌고 망각의 감옥으로 바로 가겠다고? 에드워드 4세의 영혼은 성황청이 직접 관리하는 지하 금역에 갇혀 있어. 거기 파수병들이 보통이 아니라고!”


뒤를 따르던 시몬이 사시나무 떨듯 어깨를 움츠리며 소리 죽여 만류했다. 하지만 우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차갑게 가라앉은 안광만이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날 뿐이었다.


“사흘 뒤면 2차 공판이다, 시몬. 펠릭스 검사가 가짜 목격자를 세워 에드워드의 유죄를 확정 짓기 전에, 우리는 그가 폭군이 아니라 독살당한 성군이었다는 ‘진짜 기억’을 확보해야 해. 증거가 없다면 법정은 거짓을 진실로 기록할 뿐이다.”


비밀 통로의 끝, 지하 기록실의 무거운 철문 뒤편 어둠 속에서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라색 베일을 깊게 눌러쓰고, 몽환적이면서도 깊은 눈동자를 지닌 여성. 죽은 자들의 마지막 목소리를 현실에 고정할 수 있는 상급 영매사, 다이애나였다. 그녀의 손에는 영혼을 안정시키는 은빛의 ‘영혼 안착의 향로’가 들려 있었다.


“변호사님, 약속대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망각의 감옥은 영혼의 자아를 서서히 좀먹는 붉은 신성 쇠사슬과 고문 마법진으로 가득 찬 곳이에요. 제 영매 마법으로도 그 안의 간섭을 완전히 막기는 어렵습니다.”


다이애나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진은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가문의 비극 속에서 깨어난 고대 법률가의 반지가 그의 손가락에서 희미한 은빛 서리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대주교의 인장이 없다면 이 반지가 유일한 열쇠다. 다이애나, 가이드해라. 시간이 없다.”


세 사람은 지하 기록실 벽 너머, 어둡고 침침한 망각의 감옥 입구로 향했다. 거대한 석조 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성황청의 붉은 신성 결계였다. 불청객의 영혼을 통째로 불태워버릴 듯한 기괴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우진은 고대 법률가의 반지를 낀 손을 결계 표면에 가져다 댔다. 반지에 새겨진 고대 법관들의 율법 문양이 푸른빛을 발하며 성황청의 결계와 맞물렸다.


키이이잉—!


금속이 맞물리는 불쾌한 마찰음과 함께 붉은 결계에 미세한 틈새가 벌어졌다. 우진은 신성력 2%의 한계 속에서 반지의 마력을 쥐어짜며 결계를 일시적으로 중화시켰다. 뇌를 찌르는 통증에 신음이 새어 나왔지만, 그는 이빨을 악물고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망각의 감옥 내부는 상상 이상으로 참혹했다.


천장 높이 매달린 붉은 신성 쇠사슬들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고, 그 사슬에 묶인 역사 속 위대한 군주들과 영웅들의 영혼이 고통 어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성황청의 역사 왜곡에 저항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후 세계에서조차 자아를 파괴당하는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가장 깊은 독방의 철창 너머, 핏빛 기사단 로브를 걸친 에드워드 4세의 영혼이 보였다. 그의 온몸을 칭칭 감은 붉은 사슬이 그의 영체 마나를 실시간으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의 위엄 있던 안광은 희미하게 흐려져 있었다.


“에드워드 4세.”


우진이 철창 앞으로 다가서며 나지막이 불렀다. 에드워드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또 가짜 조약서에 서명하라고 온 사제 놈인가. 내 목을 벨지언정, 내 영혼의 서명은 단 한 자도 얻지 못할 것이다.”


“당신의 변호인 한우진입니다. 당신을 이 지옥에서 꺼내기 위해 진짜 독살의 기억을 인양하러 왔습니다.”


우진의 단호한 선언에 다이애나가 즉각 움직였다. 그녀는 보라색 베일을 걷어 올리며 향로를 허공에 띄웠다.


“영체 강제 현신술(Spiritual Manifestation)!”


다이애나가 마나를 방출하며 에드워드의 기억을 허공에 고정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감옥 벽면에 새겨진 성황청의 마력 차단 결계가 푸른 불꽃을 뿜어내며 그녀의 마나를 강제로 흐트러뜨렸다.


파아앗!


“앗……!”


다이애나가 뒤로 밀려나며 신음을 흘렸다. 향로에서 피어오르던 연기가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다.


“안 돼요, 변호사님! 감옥 내부의 마력 차단 결계가 너무 강해서 제 영매 마법이 에드워드의 영체에 닿기도 전에 강제로 무효화되고 있어요. 이대로는 기억을 끄집어낼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체되면 파수병들이 들이닥칠 터였다. 우진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에드워드의 영체를 응시했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육체와 영혼이 직접 부딪히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직접 한다.”


“형? 무슨 소리야! 형의 신성력은 지금 바닥이라고! 이 상태에서 직접 동조를 시도했다간 형의 자아가 먼저 깨질 수 있어!”


시몬이 경악하며 우진의 소매를 붙잡았으나, 우진은 거칠게 그 손을 뿌리쳤다. 그는 철창 틈새로 손을 뻗어, 붉은 사슬에 묶인 에드워드 4세의 차가운 영혼의 손을 잡았다.


“기억 동조(Memory Synch).”


[영체 싱크로율 10%…… 20%…… 30% 돌파.]

[피고인 에드워드 4세의 영혼과 정신적 주파수를 강제 일치시킵니다.]

[경고: 극심한 영적 역류가 발생합니다. 자아 붕괴 위험 수치가 상승합니다.]


우진의 시야가 순식간에 암전되었다.


차가운 감옥의 풍경이 사라지고, 사방에서 화려한 금빛 안개가 피어올랐다. 귀를 찢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선율과 사람들의 웃음소리, 은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과거 제국력 442년, 에드워드 왕조의 찬란했던 황궁 연회장이었다.


우진은 에드워드 4세의 제3자 시점으로 연단 위 왕좌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붉은 로브를 입은 귀족들과 성황청의 사제들이 가득한 연회. 왕좌에 앉은 에드워드는 백성들을 위한 세금 개혁안을 통과시킨 기쁨에 잔을 높이 들고 있었다.


그때, 왕좌 뒤편의 그림자 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손길이 있었다.


성황청 서부 대성당의 문양이 새겨진 하얀 사제복을 입은 자. 그는 바솔로뮤 추기경의 직속 심복이자 안토니오의 사촌인 사제였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무색무취의 액체가 에드워드의 황금 잔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저것이다.’


우진은 왼쪽 눈의 정의의 단안경을 무의식적으로 가동했다. 뇌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독약 병을 쥐고 있던 사제의 소맷자락을 똑바로 응시했다.


단안경의 렌즈 너머로, 독약 병 표면에 미세하게 각인된 성황청 사법부의 극비 인장 문양이 붉은색 잔상으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바솔로뮤 추기경이 직접 하달한 황실 독살용 특제 독약, ‘레테의 눈물’의 병이었다.


“국왕 폐하를 위하여!”


과거의 에드워드가 황금 잔을 들이켜는 순간, 우진의 전신에 상상을 초월하는 극심한 작열감이 덮쳐왔다. 목구멍이 칼로 찢기는 듯한 통증, 영혼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독약의 고통이 동조된 주파수를 타고 우진의 물리적 육체로 고스란히 역류한 것이었다.


“끄아아악!”


우진은 비명을 지르며 에드워드의 손을 놓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코와 입에서 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와 회색 사제복을 검붉게 적셨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에 자아가 흐려지려 했다.


“레오 형! 정신 차려!”


시몬이 우진을 부축하며 울부짖었다. 우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셔츠 주머니에 손을 얹었다. 비록 몸은 망가졌지만, 독약 병에 새겨진 성황청의 문양과 진짜 독살의 정황을 담은 기억의 잔상이 그의 뇌리에 완벽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배후는 바솔로뮤 추기경과 안토니오 사제다. 그리고 그 독약 병의 잔재는 현세에 버려진 에드워드의 진짜 무덤 속에 부장품으로 함께 묻혀 있어.’


완벽한 물증의 위치를 확보한 순간이었다.


바로 그 순간, 감옥 천장에 새겨진 성황청의 경보 마법진이 핏빛으로 붉게 타오르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삐이이이이—!


“침입자 발생! 망각의 감옥에 불법 영적 동조 주파수가 감지되었다!”


차가운 기계음 같은 경보령이 감옥 전체에 울려 퍼졌고, 저 멀리 복도 끝에서 수십 마리의 지옥견들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파수병들의 거친 발소리가 지하 벽을 타고 전해졌다.


“도망쳐야 해요! 경보가 울렸어요!”


다이애나가 다급히 소리치며 자신의 은빛 향로를 바닥에 내던졌다.


스으으으—!


향로가 깨지며 자욱하고 두꺼운 보라색 안개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영혼 안착의 향유가 타오르며 만들어낸 특수 영적 안개였다. 이 안개는 파수병들과 지옥견들의 영적 탐지 오라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시야를 가리는 효과가 있었다.


“시몬, 변호사님을 부축해! 어서!”


시몬은 피를 흘리는 우진을 어깨에 들쳐멨고, 세 사람은 보라색 안개 속을 뚫고 감옥의 좁은 계단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뒤편에서 지옥견들의 광포한 짖음 소리와 파수병들의 쇠사슬 채찍이 바닥을 치는 소리가 바짝 추격해 왔다.


계단을 단숨에 뛰어올라 마침내 감옥 1층의 출구 문턱에 도달한 순간이었다.


눈앞의 두꺼운 철문이 굉음과 함께 닫히며, 자욱한 안개 너머로 거대하고 음산한 실루엣이 나타났다.


온몸이 시커먼 판갑으로 뒤덮여 있고, 한 손에는 영혼을 찢어발기는 거대한 가시 채찍을 쥔 자. 망각의 감옥 전체를 지배하는 파수대장과 붉은 안광을 뿜어내는 정예 영혼 파수병들이 그들의 앞길을 완전히 가로막아 서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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