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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을 짓밟는 메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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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골짜기 경비대의 단단한 방패 너머로, 대지를 흔드는 철갑의 말발굽 소리가 벼락처럼 내리쳤다.


제2차 공판 기일의 아침은 칠흑 같은 유황 안개와 함께 밝아왔다. 명계 변방 재판소의 육중한 석조 건물 주변은 이미 숨 막히는 침묵 대신, 날카로운 금속음과 거친 군홧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뒤로 물러서라! 이곳은 신성한 명계의 사법 구역이다!”


재판소의 정문을 지키던 안개골짜기 경비대장 조나단(Jonathan)이 거대한 미늘창을 치켜세우며 사납게 포효했다. 그의 뒤로 철갑을 두른 경비대원들이 굳건한 방어 대형을 취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들이 가로막고 있는 상대의 기세가 너무도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바르가스 자작가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붉은 마갑을 입은 철갑 기사단.


수백 명에 달하는 정예 기병들이 재판소 광장을 겹겹이 포위한 채, 우진 측의 증인으로 나서려던 영지민들의 진입을 무력으로 차단하고 있었다. 겁에 질린 영지민 원혼들은 비명을 지르며 광장 외곽으로 밀려났고, 기사들은 오만하게 고삐를 당기며 그들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그리고 그 군세의 선두에, 거대한 적토마를 탄 사내가 서 있었다.


육중한 강철 갑옷을 온몸에 두르고, 등 뒤에는 사람 키만 한 메이스를 멘 거구의 사내. 바르가스 자작가의 무력적 상징이자 기사단장인 제랄드(Gerald)였다. 그의 전신에서는 묵직한 강철 마나 오라(Steel Mana Aura)가 뿜어져 나와 주변의 유황 안개를 거칠게 찢어발기고 있었다.


“사법 구역이라니, 하찮은 경비대 놈들이 분수를 모르는군.”


제랄드가 오만한 안광을 빛내며 비웃었다.


“바르가스 영지 내에서의 치안권은 오직 자작 각하의 가문 기사단에 귀속된다. 영지민 원혼들이 이단적 음모에 가담하려 하니, 기사단장으로서 이들을 즉각 격리하고 심문하겠다. 길을 막는 자는 제국 반역죄로 다스릴 것이다!”


“이건 명백한 사법 방해다!”


조나단이 미늘창을 굳게 쥐며 버텼지만, 제랄드의 손이 등 뒤의 메이스 자루를 잡는 순간, 경비대원들의 대형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상급 기사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질량의 마력은 변방의 경비대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 *


같은 시각, 재판소 내부 법정.


높은 천장의 해골 석상 배심원들이 음산한 안광을 뿜어내는 가운데, 법정 안은 폭풍 전야의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피고석에 앉은 바르가스 자작은 여유롭게 턱을 굄 채 우진을 비웃고 있었고, 그의 옆에 선 사벨라 변호사는 손가락의 은빛 혀 반지를 굴리며 승리를 확신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법정 밖의 군사적 압박이 자신들에게 완벽한 승리를 가져다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변호인석에 선 한우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법대의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의 왼쪽 눈에 착용된 ‘정의의 단안경’은 미세하게 회전하며 법정 내부의 마력 흐름을 감지하고 있었다. 어젯밤 아이작, 엘레나와 함께 밤을 새우며 완성한 ‘공인 과학 감정 보고서’가 그의 손끝에 닿았다.


‘보고서는 완벽하다. 하지만 증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면 판결을 확정 지을 수 없어.’


우진의 깡마른 체구는 피로로 무거웠고, 신성력은 여전히 1% 내외의 바닥을 기고 있었다. 뇌를 찌르는 듯한 만성 두통이 밀려왔지만, 그의 이성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정교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쿵—!


법정의 거대한 석조 문이 굉음을 내며 좌우로 거칠게 열렸다. 들이닥친 차가운 바람과 함께, 묵직한 쇳소리가 법정 바닥을 긁으며 다가왔.


질질, 지지직.


강철 갑옷을 입은 제랄드가 거대한 메이스를 바닥에 끈 채, 홀로 법정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이 내딛는 순간마다 석조 바닥에 미세한 균열이 가며 무거운 진동이 울렸다.


“기사단장 제랄드!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무장을 한 채 난입하는가!”


임시대행 재판관 오스카가 격분하여 판사봉을 두드리며 소리쳤. 법정의 벽면에 새겨진 사법 결계가 반응하며 제랄드의 전신을 향해 무장 해제 압박 오라를 방출했다.


그러나 제랄드는 코방귀를 끼며 허리춤에서 자작가의 붉은 인장이 찍힌 ‘사적 치안권 집행령’을 치켜들었다.


“재판관 오스카여. 제국 영지법 제12조에 의거, 영지 내 소요 사태 발생 시 가문 기사단은 법정 내부를 포함한 모든 구역에서 무장 기동할 권한을 지닌다. 현재 법정 밖에서 원고 측 증인들이 이단 마법을 모의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이에 피고 대리인의 신변 보호와 법정 치안 유지를 위해 기사단이 직접 개입하겠다.”


“궤변이다! 당장 무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법정 모독죄로 처단하겠다!”


오스카 판사가 포효했지만, 제랄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변호인석에 선 우진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손에 쥔 거인의 철퇴 메이스(Mace of Giant's Strike)가 검붉은 강철 마나를 뿜어내며 우진의 머리 위를 무겁게 짓눌렀.


“네놈이 레오 가문의 쥐새끼로군. 감히 자작 각하의 명예를 더럽힌 죄, 이 자리에서 즉각 단죄해 주마.”


제랄드의 살기 어린 안광이 우진의 품속에 있는 감정 보고서 봉투를 향했다. 그의 진짜 목적은 사법적 변론이 시작되기 전, 우진이 쥐고 있는 결정적인 물증을 무력으로 박살 내는 것이었다.


스으으으—.


제랄드가 메이스를 치켜드는 순간, 법정 내부의 공기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상급 기사의 전력 일격이 가해진다면, 법정의 기초 결계가 작동하기도 전에 우진의 깡마른 육체는 뼈째로 으스러질 터였다.


‘법정의 신성불가침권이 가동되고 있지만, 제랄드는 결계가 완전히 활성화되기 전의 0.1초의 틈을 노리고 있다. 무력의 속도가 법의 집행 속도보다 빠른 순간.’


우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매서운 눈동자는 제랄드의 메이스 궤적을 차갑게 읽어내고 있었다.


“이의 제기.”


우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법정에 울려 퍼진 바로 그 찰나.


카아앙—!


눈이 시릴 정도의 은백색 성광(Holy Light)이 법정 중앙을 가르며 타올랐다.


제랄드의 육중한 메이스가 우진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직전, 은빛 갑옷을 입은 날렵한 체구의 여기사 발레리아(Valeria)가 허공에서 번개처럼 나타나 장검으로 메이스의 타격을 정면으로 받아쳐 냈다.


엄청난 충격파가 사방으로 휘몰아치며 변호인석 탁자 위의 서류들이 거칠게 휘날렸다. 발레리아가 딛고 선 석조 바닥이 둥글게 함몰되며 사방으로 돌가루가 튀었다.


“윽……!”


발레리아의 입술 사이로 가느다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가 쥔 장검 표면에는 이미 이전 전투에서 생긴 미세한 균열들이 가 있었기에, 제랄드의 무자비한 강철 마나 충격이 균열의 틈새를 사납게 파고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목에 걸린 ‘진실의 수호 목걸이’가 눈부신 백색 빛을 발산하며 제랄드의 메이스에서 뿜어져 나오던 강철 마나 오라를 일시적으로 감쇠시키고 있었다. 목걸이의 수호 장벽이 제랄드의 파괴력을 억제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검은 이미 첫 합에 산산조각 났을 터였다.


“배신자 계집이 기어코 쥐새끼의 방패를 자처하는구나.”


제랄드가 메이스를 아래로 누르며 이빨을 갈았다. 그의 전신에서 검붉은 강철 마나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와 발레리아의 성광 오라를 잠식해 들어갔.


“제국의 기사 작위를 버리고 몰락 가문의 똥개 노릇을 하는 기분이 어떠냐? 그 균열이 간 검으로 내 무거운 철퇴를 몇 번이나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기사의 명예는 강자의 폭력에 아부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의 정의를 수호하는 데 있다!”


발레리아가 벽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검날을 비틀며 제랄드의 메이스를 측면으로 흘려보냈다.


서걱—!


검과 철퇴가 맞물리며 튀어 오른 불꽃이 어두운 법정 내부를 따갑게 밝혔다. 발레리아는 흘려보낸 탄력을 이용해 제랄드의 손목을 향해 예리한 성광 참격을 날렸다. 빛의 속도로 뻗어 나가는 성광 검술(Holy Light Sword Technique)의 궤적.


“하찮은 초식이다!”


제랄드는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한 신법으로 상체를 뒤로 젖히며 참격을 피했고, 역으로 메이스를 수평으로 크게 휘둘렀다. 웅웅거리는 파괴적인 바람이 법정의 기둥들을 뒤흔들었다.


“법정 밖으로 나가라, 제랄드! 이곳은 네놈의 야만적인 무력이 통하는 도살장이 아니다!”


발레리아는 몸을 날려 메이스의 궤적을 피하며, 제랄드의 가슴팍을 향해 강력한 발차기를 날렸다. 묵직한 강철 갑옷끼리 부딪히는 파열음과 함께 제랄드의 거구가 서너 걸음 뒤로 밀려났다.


발레리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제랄드의 옷자락을 낚아채며 법정 정문 밖의 광장을 향해 몸을 던졌다. 법정 내부의 신성불가침 결계가 완전히 활성화되어 무력이 강제 봉인되기 전, 적의 수장을 넓은 광장으로 끌고 나가 묶어두려는 수사적 전술이었다.


“좋다! 오늘 그 가짜 성광 검술의 아가리를 완전히 찢어주마!”


제랄드가 포효하며 발레리아를 따라 정문 밖 광장으로 뛰어나갔다.


콰과광! 쾅! 쾅!


이내 법정 외곽 광장에서 조나단이 이끄는 안개골짜기 경비대와 자작가의 철갑 기사단, 그리고 발레리아와 제랄드의 격렬한 대규모 무력 격돌 소리가 석조 벽을 타고 법정 내부로 둥둥 울려 퍼졌다. 거대한 진동이 천장의 해골 석상들을 흔들었고, 방청석의 영혼들은 공포에 질려 웅성거렸다.


“재판관님! 원고 대리인이 무장 세력을 끌어들여 법정의 신성함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사벨라 변호사가 기회를 잡았다는 듯 벌떡 일어서며 오스카 판사를 향해 궤변을 쏟아냈다.


“법정 외곽에서 저토록 끔찍한 폭력 사태를 유발한 원고 측의 기소를 즉각 기각하고, 변호인 레오를 치안 문란죄로 체포해 주십시오!”


바르가스 자작 역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거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계산은 완벽해 보였다. 법정 밖의 군사력으로 증인들을 묶어두고, 법정 내부에서는 소란을 빌미로 기각을 받아내는 양동 작전.


그러나 변호인석 탁자 앞에 선 한우진은 옷자락을 가볍게 정리하며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도, 당황함도 없었다. 오직 얼음처럼 차가운 지성만이 그의 매서운 안광 속에 가득 차 있었다.


“기각을 기각해 주십시오, 재판관님.”


우진의 침착하고 묵직한 목소리가 광장의 전투 소음을 뚫고 배심원 석상들의 귀에 도달했다.


“피고 대리인은 무장 기사단의 난입을 ‘치안 유지’라 포장하고 있지만, 이는 명백한 사법 방해이자 증거 인멸을 위한 폭력적 도발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우진은 품속에서 은빛 사법 서명이 선명하게 새겨진 두꺼운 보고서 뭉치와, 가죽 주머니에 담긴 낡은 양피지 문서를 천천히 꺼내 들었다.


“피고가 이토록 필사적으로 무력을 동원해 법정을 짓밟으려 하는 진짜 이유가, 바로 제 손에 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진의 손가락에 끼워진 고대 법률가의 반지가 은은한 은백색 서리를 내뿜으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본 변호인은 어젯밤, 계약 마법의 천재 학도 아이작과 연금술사 엘레나의 공인 분석을 통해 피고 바르가스 자작이 제출한 영지 양도 계약서의 마법적 실체를 완벽하게 규명했습니다.”


우진은 서류 뭉치를 오스카 판사와 배심원 석상들을 향해 높이 치켜들었다. 그의 목소리에 서서히 신성한 율법의 마력이 실리기 시작했다.


“이 계약서는 단순한 영토와 영혼의 양도 문서가 아닙니다. 계약이 유지되는 한, 크리스 가문의 영지와 수천 명 영지민들의 생명 마력 자체를 실시간으로 빨아들이는 거대한 빨대 장치입니다. 그리고 그 마력이 송신되는 종착지는 바르가스 자작가의 금고가 아닙니다.”


우진은 매서운 눈빛으로 자작과 사벨라를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바로 성황청 서부 대성당의 중앙 제단입니다! 피고 바르가스 자작과 안토니오 사제가 공모한 ‘불법 영혼 양도 계약’의 진짜 몸통이, 마침내 이 보고서를 통해 완전히 밝혀졌습니다!”


그 선언과 동시에, 사벨라의 오만한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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