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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의 그물과 사교계의 피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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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궤의 거울 조각이 손안에서 차갑게 요동쳤다. 안토니오가 한 줌의 재로 소멸한 재판소 바닥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지만, 우진은 승리의 여운을 누릴 여유가 없었다. 은빛 법관 인장 반지로 각성한 그의 손가락 끝에 극심한 이명과 함께 찌르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단안경 너머로 붉게 일렁이는 마력 주파수가 가리키는 곳, 그것은 제국의 심장부인 황도 성산이었다.


“변호사님! 지금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닙니다!”


시몬이 다급하게 우진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법정의 깨진 창문 너머로 붉은빛의 마력 오라가 서치라이트처럼 수색망을 펼치며 재판소 건물을 에워싸고 있었다.


“바솔로뮤 추기경의 직속 신성 성기사단입니다! 안토니오의 소멸을 감지하고 영지 전체에 이단 비상 체포령을 내렸습니다. 재판소 정문은 이미 차단당했습니다!”


우진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창밖을 응시했다. 과연 안토니오의 직속 상관이자 변방 영지의 실제적 지배자인 바솔로뮤 추기경다웠다. 안토니오가 법정에서 패배하고 소멸하자마자, 사법적 진실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해 물리적인 입막음을 시도하려는 것이었다.


“발레리아, 검의 상태는 어떤가?”


우진이 곁에 선 호위 기사를 돌아보았다. 발레리아는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장검을 고쳐 잡았지만, 그녀의 은빛 장검 표면에는 이전 전투의 여파로 생긴 미세한 균열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성광 마력이 일시적으로 고갈되어 장벽을 오래 유지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변호사님의 퇴로를 열겠습니다.”


“아니, 정면 돌파는 패배다.”


우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현대 한국의 형사 변호사로서 그는 아군이 물리적으로 불리할 때 공권력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힘의 격차가 압도적일 때는 룰이 미치지 않는 음지로 숨어들어 반격의 기회를 노려야 했다.


“시몬, 지하 기록실 바닥의 배수 통로를 열어라. 아버지가 남긴 비밀 일지에 기록된 재판소 지하 수로망을 통하면 요외 외곽의 하수구로 연결된다.”


“예, 알겠습니다!”


시몬이 다급하게 석조 바닥의 비밀 레버를 당기자, 묵직한 돌판이 소리 없이 미끄러지며 어두운 지하 통로를 드러냈다. 우진은 품속에 ‘성궤의 거울 조각’과 ‘라울의 위조 각인 도구’를 단단히 챙겨 넣고, 발레리아의 부축을 받으며 지하의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등 뒤로 성기사들의 거친 구두 굽 소리와 요새를 수색하는 마법 폭발음이 멀어져 갔다.


* * *


축축하고 어두운 지하 수로를 한참 동안 달린 끝에, 우진 일행은 요새 외곽의 한적한 숲속 하수구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전신이 진흙과 유황 안개로 엉망이 된 채 숨을 몰아쉬는 우진의 입가에서 옅은 핏방울이 떨어졌다. ‘인과적 무효화’를 시전한 대가로 뇌에 가해진 과부하가 아직 가시지 않은 탓이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등불을 켠 고급스러운 마차 한 대가 소리 없이 다가와 멈춰 섰다. 마차의 문이 열리며 붉은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부채로 입가를 가린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교계의 여왕이자 정보의 지배자인 마담 클레어였다.


“어머, 우리 수석 변호사님이 쥐새끼처럼 하수구를 기어 나오실 줄은 몰랐네요. 어서 타세요. 추기경의 사냥개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사방을 뒤지고 있으니까요.”


클레어의 매혹적인 미소 뒤에는 상황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는 노련한 정보원의 안광이 빛나고 있었다. 우진은 군말 없이 마차에 올랐다. 마차는 명계의 왜곡된 공간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가 황도 외곽과 맞닿은 사교계의 중심지, 마담 클레어의 살롱 지하로 향했다.


살롱 지하에 위치한 비밀 피난처는 지상의 화려함과는 달리 엄숙하고 단단한 석조 밀실이었다. 사방의 벽에는 외부의 마법적 탐지를 완벽히 차단하는 차단 결계가 흐르고 있었다. 우진은 자리에 앉아 아이린 여사제가 건넸던 ‘아스트레아의 성수’를 한 모금 마시며 타는 듯한 뇌의 통증을 진정시켰다.


“이곳은 제 개인적인 이권이 얽힌 영주들의 비망록이 보관된 곳이자, 교단의 눈이 닿지 않는 유일한 안전지대랍니다.”


마담 클레어가 차를 내오며 우진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변방 재판소에서 안토니오를 단죄하고 에드워드 4세의 무죄를 밝혀내다니, 정말 제 예상을 뛰어넘는 지적 유희였어요. 덕분에 추기경의 자금줄에 아주 큰 균열이 갔죠.”


“단순한 유희가 아닙니다, 마담.”


우진이 차갑게 대꾸했다.


“교단이 숨겨온 역사 왜곡의 실체를 밝히고 가문의 누명을 벗기기 위한 사법적 전쟁의 첫 단계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바솔로뮤 추기경이 이토록 무리하게 체포령을 내린 것은, 안토니오의 배후에 있는 자신들의 이권 계약이 드러날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밀실의 무거운 철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초조한 걸음으로 들어섰다. 통통한 체구에 화려한 비단 옷을 걸친 거상, 지방 상인 연합의 루카스였다. 그는 우진을 보자마자 구원의 동아줄을 잡은 듯 무릎을 꿇었다.


“레오 변호사님! 제발 저희 상인 연합을 구해 주십시오! 추기경과 바르가스 자작이 결탁하여 저희에게 강제로 ‘면죄의 증서’를 구매하게 만들고, 거부하는 상인들의 사후 영혼을 노예로 압수하겠다는 계약서를 위조해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저희 재산뿐만 아니라 사후의 영혼까지 교단의 가축으로 팔려 갈 처지입니다!”


루카스의 울부짖음에 우진의 눈동자가 매섭게 빛났다.


‘면죄의 증서와 사후 영혼 계약.’


이것이 바로 변방 영지에서 교단과 귀족 세력이 결탁해 부를 축적하고 영혼을 수확하던 추악한 카르텔의 실체였다. 안토니오의 몰락은 그 꼬리에 불과했고, 진짜 몸통은 바솔로뮤 추기경과 바르가스 자작이었다.


“루카스 씨, 진정하고 가지고 있는 상업 장부와 교단의 면죄부 강매 내역을 모두 제 앞에 꺼내 놓으십시오.”


우진은 왼쪽 눈에 ‘정의의 단안경’을 착용했다. 렌즈가 회전하며 루카스가 제출한 이중 장부와 조작된 면죄의 증서 원본들을 정밀 스캔하기 시작했다. 장부 기저에 흐르는 미세한 마력 파동을 추적하던 우진의 손끝이 일순간 멈췄다.


“마담 클레어.”


우진이 고개를 들어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바르가스 자작가의 내부 회계 흐름을 증명할 결정적인 기밀 자료가 필요합니다. 사교계의 여왕이신 당신이라면, 자작의 밀실에 보관된 진짜 장부의 내용을 확보하고 있을 텐데요.”


마담 클레어는 우진의 예리한 통찰력에 감탄한 듯 나지막이 탄성을 지르며, 자신의 화려한 드레스 품속에서 붉은 가죽으로 제본된 낡은 비망록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역시 숨길 수가 없군요. 자작이 제 살롱에서 술에 취해 흘린 정보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자작가의 내부 회계 기밀이랍니다. 수석 변호사님이라면 이 안에서 쓸 만한 칼날을 찾아내실 수 있겠죠?”


우진은 망설임 없이 비망록을 펼쳤다. 단안경의 렌즈 너머로 자작가의 은밀한 자금 세탁 경로와 영혼 계약의 인과적 흐름이 도식화되어 나타났다. 그리고 장부의 가장 깊은 바닥, 위조된 영혼 계약의 승인 결재 칸을 정밀 스캔하는 순간, 우진의 호흡이 멎었다.


은빛 단안경의 렌즈 너머로, 자작가 깊숙한 비밀 장부 밑바닥에 숨겨진 붉은 수인 마법의 주파수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바르가스 자작의 것도, 바솔로뮤 추기경의 것도 아니었다. 바로 내 아버지를 단죄하고 우리 가문을 멸문으로 몰고 간 흑막, 황도 사법 대주교 일라리오의 친필 서명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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