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율의 각성, 그리고 황도로
바닥에서 치솟은 붉은 불꽃이 우진의 은백색 결계 장벽을 사납게 삼키기 시작했다.
지하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던 ‘영혼의 불꽃 제단’이 폭주하며 뿜어내는 열기는 명계의 차가운 안개마저 순식간에 증발시켰다. 법정의 거대한 석조 기둥들이 쩍쩍 갈라졌고, 천장에서는 집채만 한 바위 파편들이 굉음과 함께 떨어져 내렸다. 관람석에 모여 있던 수천 명의 영혼들이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키하하하하! 결국 이렇게 끝나는구나! 몰락한 가문의 기록관 놈아, 그리고 오만한 폭군 에드워드여! 진실을 밝혔다고 기뻐하기엔 일렀다! 이 재판소와 함께, 너희의 그 하찮은 증거물들도 모두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단상 옆에서 폭주하는 검붉은 오라를 두른 채 안토니오 사제가 광기 어린 폭소를 터뜨렸다. 그의 손에 쥔 사제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타락한 신성력이 지하 제단과 공명하며 대폭발의 에너지를 실시간으로 증폭시키고 있었다. 안토니오는 사법적 파멸이 확정되자, 재판소 전체를 폭파해 모든 증거를 인멸하고 동귀어진하려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 것이었다.
“전원, 방어 대형을 구축하라! 배심원들과 감사관님을 보호해야 한다!”
조나단 경비대장이 미늘창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철갑을 두른 경비대원들이 방패를 겹쳐 굳건한 방어 장벽을 만들어냈지만, 제단 폭탄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농도 영혼 마력의 화염 폭풍 앞에서는 무력했다. 붉은 불꽃이 방패에 닿는 순간, 명계의 단단한 강철 방벽들이 양초처럼 허무하게 녹아내렸다.
“끄아아악!”
경비대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물리적인 방어막으로는 이 파멸적인 힘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레오 변호사! 이대로 가다간 법정 안의 모든 영혼이 소멸당할 걸세! 어서 피하게!”
오스카 판사가 다급하게 외쳤고, 제국 감사관 셀린 역시 은빛 세이버를 뽑아 들며 우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도 짙은 절망감이 서려 있었다. 상급 기사인 그녀의 마력으로도 요새 전체를 날려버릴 대폭발의 충격파를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진은 비틀거리는 몸을 변호인석 탁자에 기대어 지탱했다. 방금 전 ‘반론의 역전’을 시전하느라 온몸의 마나 회로가 찢어질 듯한 극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입가에서 흘러내린 선혈이 턱을 타고 떨어졌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명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물리적인 힘으로 저 폭발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우진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반론의 역전으로 정화되어 유입된 순수한 정의의 신성력이 그의 심장 고동을 타고 급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그는 허공에 떠 있는 바르도의 고대 법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법전이 우진의 신성력에 반응하며 황금빛 천칭 문양을 극상으로 밝히기 시작했다. 법전의 마지막 비장 페이지가 거칠게 넘어갔다.
[견습 영혼 변호인의 초월적 사법 마법, ‘인과적 무효화(Causal Nullification)’의 봉인이 해제됩니다.]
[정보: 대상 마법이 발동한 법적 정당성 및 원인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그 결과물인 물리적 현상을 완전히 무효화합니다.]
우진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현대 한국의 형사 변호사로서, 그는 법률의 허점과 절차적 무결성을 공략해 판을 뒤집는 데 도가 튼 인물이었다. 이세계의 마법적 폭발 역시 일종의 ‘계약’과 ‘원인’에 의해 작동하는 법적 인과율의 산물에 불과했다.
“이의 제기! 피고인 안토니오의 마법적 집행 권한을 전면 부정합니다!”
우진의 목소리가 붕괴하는 법정의 진동을 뚫고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고대 법률가의 반지가 찬란한 은백색 광휘를 발산하며 요동쳤다.
“안토니오는 뇌물 수수, 위증 교사, 그리고 사법 암살을 교사한 혐의가 법정에 정식으로 등재되어 사제 자격과 사법적 권한이 완전히 박탈된 상태입니다! 제국 종교법 제94조에 의거, 자격이 박탈된 성직자가 가동하는 ‘성궤의 신벌’ 제단 가동은 원천적으로 불법이며, 어떠한 법적 정당성도 지니지 못합니다!”
우진의 선언과 함께, 그의 등 뒤로 은백색의 거대한 빛의 양피지 장막이 전개되었다. ‘사법적 보호 장벽(Apostolic Protective Barrier)’이었다. 장벽의 표면에는 금빛 법률 문자 사슬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회전하며 법정 내부의 공간을 격리하기 시작했다.
“원인이 불법이기에, 그 결과물 또한 존재할 수 없다! 인과적 무효화(Causal Nullification) 선포!”
콰아아아앙—!
제단에서 폭주하며 밀려오던 거대한 붉은 화염 폭풍이 우진의 은백색 사법적 보호 장벽에 닿는 순간이었다. 대폭발을 일으키며 법정을 집어삼켜야 할 화염이, 거짓말처럼 단 한 줌의 폭발음도 내지 못한 채 회색 먼지와 무해한 온기로 분해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폭발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원인’의 정당성을 우진이 법적으로 부정해 버렸기에, 우주의 시스템이 폭발 현상 자체를 무로 돌려버린 것이다.
“이, 이럴 수가……! 내 마법이…… 인과율이 지워졌다고?! 말도 안 돼!”
안토니오가 자신의 지팡이를 내려다보며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마법의 원인이 법적으로 강제 부정당하자, 제단을 폭주시키기 위해 자신의 영혼과 생명 마력을 제물로 바쳤던 안토니오에게 가혹한 ‘인과의 반동(Backlash)’이 들이닥쳤다.
“끄아아아아악!”
안토니오의 몸속에 흐르던 타락한 신성 마력이 급격하게 역류하기 시작했다. 그의 전신 마나 회로가 시커멓게 불타오르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의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고통 속에서 안토니오는 우진을 향해 저주 섞인 비명을 질렀다.
“레오……! 일라리오 대주교님께서…… 너를 결코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황도에서 네놈의 목을 베어 장대에 걸 것이다!”
그 단말마를 마지막으로, 안토니오의 육체는 검붉은 불꽃에 휩싸여 단 한 줌의 재가 되어 법정 바닥으로 흩어졌다. 명계를 지배하며 수많은 무고한 영혼들을 착취하던 부패한 사제의 허무하고도 비참한 최후였다.
법정 내부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타오르던 불길은 완전히 꺼졌고, 무너지던 천장의 돌가루들만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우진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자신의 왼쪽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목을 칭칭 감고 있던 붉은색 영혼 구속 쇠사슬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나 먼지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파편들이 우진의 왼쪽 손가락으로 모여들더니, 찬란한 은빛의 ‘법관 인장 반지’로 모습을 바꾸어 각인되었다.
[알림: 1단계 최종 재판에서 승리하여 역사적 진실을 규명했습니다.]
[경지 돌파: 영혼 변호인 등급이 ‘수석 영혼 변호인(Senior Soul Advocate)’으로 상승합니다.]
[특권: 소환 및 계약할 수 있는 영혼의 마법적 무력 한계치가 대폭 확장됩니다.]
“우리는…… 살아남았군.”
조수 시몬이 주저앉으며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오스카 판사는 엄숙하게 판사봉을 들어 세 번 두드렸다.
“피고인 에드워드 4세의 무죄를 최종 확정한다! 그의 영혼에 걸린 모든 구속을 즉각 해제하라!”
에드워드 4세의 영혼을 묶고 있던 붉은 사슬이 완전히 사라졌다. 고결한 군주의 영혼은 우진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엄숙하게 선언했다.
“레오 변호사여. 그대의 지혜와 용기가 나를 어둠의 감옥에서 구원했다. 내 생전의 명예를 되찾아준 그대에게, 내 영혼의 서약을 바치노라. 이제부터 나는 그대의 첫 번째 수호령이 되어, 그대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물리적 위협을 베어버리는 검이 되겠다.”
에드워드 4세의 영혼이 붉은 오라가 되어 우진의 은빛 인장 반지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로써 우진은 백작급 군주의 강력한 무력을 소환할 수 있는 든든한 사법적 아군을 얻게 되었다.
감찰관 셀린이 우진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경외심과 감탄이 서려 있었다.
“대단한 변론이었습니다, 레오 변호사. 아니, 이제는 수석 변호사라고 불러야겠군요. 변방의 작은 재판소에서 성황청의 역사 위조 음모를 이토록 완벽하게 깨부순 자는 제국 역사상 당신이 처음입니다.”
셀린은 품속에서 붉은 황실 직인이 찍힌 고급 가죽 봉투를 꺼내 우진에게 건넸다.
“이것은 황도 성황청 고등재판소로 진출할 수 있는 정식 추천서와 수석 변호인 임명장입니다. 당신의 지략이라면, 황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더 거대한 역사 왜곡의 실체를 파헤치고 가문의 억울한 누명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황도에서 당신의 법적 행보를 비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셀린 감사관님.”
우진은 추천서를 소중히 품에 넣었다. 마침내 황도의 심장부로 진입해 사법 대주교 일라리오의 목을 겨눌 합법적인 칼날을 쥔 것이었다.
그때였다.
안토니오가 소멸하고 남은 재 더미 속에서, 기괴한 마력 반응이 감지되었다. 우진이 다가가 재를 헤치자, 손바닥만 한 거울 파편 하나가 차가운 푸른빛을 내뿜으며 누워 있었다.
그것은 성황청이 역사를 왜곡하는 데 사용하던 거대한 마법 장치, ‘성궤의 거울 조각(Chamber of the Ark's Mirror)’이었다.
우진이 조각을 손에 쥐는 순간, 그의 왼쪽 눈에 낀 정의의 단안경이 격렬하게 태엽을 돌리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조각 내부에서 방출되는 특수한 마력 주파수가, 저 멀리 제국의 심장부인 황도 성산에서 가동 중인 거대한 역사 왜곡 시스템의 주파수를 강렬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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