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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4세, 폭군 재판의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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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 변방 재판소의 거대한 석조 문이 열리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불길했다. 쿠구구궁, 무거운 돌문이 바닥을 긁으며 열리자마자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안개가 법정 내부로 들이쳤다. 그 안개 속에서 한우진은 가볍게 마른기침을 뱉어내며 변호인석으로 걸어 들어갔다.


깡마른 레오의 육체는 아직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전날 이세계의 법률을 직접 인용하려다 겪었던 인과의 반동 탓에, 마나 회로의 우측 줄기가 미세하게 찌르는 듯 아팠다. 하지만 우진의 눈빛만큼은 서초동 법정을 호령하던 시절보다 훨씬 더 차갑고 매섭게 가라앉아 있었다.


“레오, 정말 괜찮은 거야? 얼굴색이 너무 창백해.”


옆에서 두꺼운 가죽 장부를 가슴에 안고 따르던 하급 서기 시몬이 안절부절못하며 속삭였다. 그의 둥근 안경 뒤로 비치는 눈동자는 공포와 걱정으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걱정 마라, 시몬. 내 몸 상태는 내가 잘 안다.”


우진은 나직하게 대꾸하며 변호인석의 낡은 나무 탁자에 바르도의 고대 법전을 내려놓았다. 묵직한 가죽 표지가 탁자에 닿는 순간, 법전에 새겨진 천칭 문양이 은은한 은빛을 내뿜으며 우진의 마나 회로를 미세하게 진정시켰다. 현재 그의 정의의 신성력 수치는 단 5%. 극도로 제한된 힘이었지만, 지적 투지만큼은 한계치를 뚫고 있었다.


우진이 고개를 들어 법정 전경을 눈에 담았다.


어둡고 침침한 법정 내부의 벽면을 따라 거대한 해골 석상들이 배심원석을 둘러싼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석상들의 빈 안광에서는 푸르스름한 명계의 안개가 흘러나와 법정 바닥을 무겁게 채웠다. 사후 세계의 사법적 위압감이 공간 전체를 짓누르는 듯한 웅장하고도 기괴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저 높은 재판석 위.


비대하고 기름진 체구를 지닌 사내가 거만한 태도로 법관 로브를 걸친 채 앉아 있었다. 안토니오 사제에게 막대한 뇌물을 받고 이번 재판을 조작하기로 약속한 타락한 재판관, 요한이었다. 요한은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크게 하더니, 손가락으로 턱을 괴고 우진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몰락한 가문의 기록관 따위가 감히 변호인으로 나선 것에 대한 노골적인 멸시가 담겨 있었다.


“피고인을 입정시켜라.”


요한의 귀찮은 듯한 목소리가 법정에 울려 퍼지자, 반대편 쇠창살 문이 열리며 덜컹거리는 쇳소리가 들려왔다.


절렁! 절렁!


무거운 쇠사슬을 질질 끌며 법정 중앙으로 걸어 나오는 영혼이 있었다. 핏빛 기사단 로브를 걸치고, 생전에 사용했을 부러진 대검을 쥔 채 분노에 찬 안광을 뿜어내는 군주. 그가 바로 성황청에 의해 희대의 폭군으로 기록되어 영혼 소멸 위기에 처한 피고인, 에드워드 4세였다.


그의 목과 사지에는 명계의 구속구인 영혼 구속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다. 사슬이 그의 영체를 갉아먹을 때마다 에드워드 4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지만, 자존심만은 꺾이지 않은 듯 배심원 석상들을 향해 패기 어린 살기를 뿜어냈다.


“이 더러운 위선자 놈들! 감히 내게 이딴 쇠사슬을 채우고 심판하려 드느냐!”


에드워드 4세가 포효하자, 재판석 옆 검사석에서 한 사내가 차갑게 웃으며 일어섰다.


금발을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단 한 점의 구김도 없는 성황청 검사복을 입은 청년. 성황청 사법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 신참 검사, 펠릭스였다. 그의 전신에서는 성황청의 기계적 교리가 깃든 차가운 청색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피고인은 명계의 엄숙한 법정 앞에서도 광기를 버리지 못하는군. 재판관님, 피고인의 죄업이 너무도 비대하여 법정의 치안을 어지럽히고 있으니, 즉각적인 구속 수사를 유지한 채 심리를 시작해 주십시오.”


펠릭스의 정중하면서도 날카로운 목소리가 법정을 파고들었다. 요한 재판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판사봉을 가볍게 두드렸다.


탁!


“검사의 청구를 받아들인다. 피고인의 구속을 유지한다. 그럼, 기소장 낭독을 시작하라.”


펠릭스가 품에서 푸른빛으로 타오르는 기소장을 펼쳐 들었다. 그의 시선이 변호인석에 앉아 있는 우진에게 잠시 머물렀다. 그 눈빛에는 ‘네가 감히 내 상대가 되겠느냐’는 오만한 조롱이 서려 있었다.


“피고인 에드워드 4세는 생전에 제국 서부 영지를 통치하며, 성황청의 신성한 지침을 거부하고 반역을 도모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고한 민간인 수천 명을 무참히 학살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명계 법률 제45조, ‘대규모 영혼 학살 및 반역죄’에 해당하며, 이에 검찰은 피고인의 영혼을 망각의 강에 던져 영구히 소멸시킬 것을 청구합니다.”


펠릭스의 기소가 끝나자마자, 법정을 둘러싼 배심원 석상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붉은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피고인에 대한 법정의 적대적 기류가 실시간으로 형성되는 증거였다. 에드워드 4세의 영체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비명을 질렀다.


“거짓이다! 나는 내 백성들을 학살한 적이 없다! 성황청의 사악한 사제들이 나를 독살하고 내 영지를 빼앗기 위해 조작한 것이다!”


“조용히 하라, 피고인!”


요한 재판관이 신경질적으로 판사봉을 두드렸다.


탁! 탁!


“이 법정은 오직 신성한 기록과 증거만을 다스린다. 피고인의 억지 주장 따위는 들을 가치가 없다. 이미 성황청 사법부의 예비 심사에서 피고인의 죄업이 명백히 입증되었으니, 구태여 길게 심리를 진행할 필요도 없겠군. 변호인의 변론을 건너뛰고 바로 판결을…….”


요한이 음흉하게 미소 지으며 판사봉을 높이 치켜들었다. 안토니오 사제에게 받은 뇌물의 대가로, 변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재판을 속전속결로 끝내버리려는 수작이었다.


‘역시, 썩을 대로 썩은 법정이군.’


우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현대 한국에서도 권력의 개가 되어 재판을 조작하려던 판사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사후 세계의 법정이라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우진은 주저 없이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두꺼운 나무 판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쾅!


맑고 무거운 파동이 법정 전체를 강타했다. 판사봉의 타격음보다 훨씬 더 정갈하고 묵직한 울림이었다. 요한 재판관의 판사봉이 허공에서 딱 멈췄다. 법정 내부의 차가운 안개가 일시적으로 걷히며, 우진의 몸에서 은은한 은백색의 사법 오라가 피어올랐다.


“이의 있습니다!”


우진이 당당하게 일어서며 요한 재판관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재판관 요한. 바르도의 고대 법전 제1장 제3조, ‘피고인 변론의 원칙’을 선언합니다! 명계의 근본 율법에 의거,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정식 변호인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온전히 개진할 권리가 보장됩니다. 재판관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변론 단계를 건너뛰고 판결을 내리려는 행위는 명계 사법 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명백한 절차적 위법입니다!”


우진의 선언과 동시에, 바르도의 고대 법전이 스스로 허공으로 떠오르며 찬란한 은백색 광휘를 방출했다.


웅웅웅!


법정 바닥에 새겨진 고대 법관의 천칭 문양이 빛나기 시작했다. 재판관 요한의 자의적인 판결권 행사를 명계의 시스템 자체가 강제로 거부하고 나선 것이었다. 요한의 판사봉에 서려 있던 타락한 신성 마력이 장벽에 막힌 듯 깡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요한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이, 이 기록관 놈이 감히 재판관의 권위에 도전하는가!”


요한이 이빨을 갈며 우진을 억누르려 할 때, 법정 가장 높은 곳, 배심원석 뒤편의 어둠 속에서 장중하고도 엄숙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재판관 요한. 변호인의 이의 제기는 정당하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오스카 판사였다. 교단의 압력 속에서도 사법적 양심을 지키기 위해 이번 재판의 수석 감사관으로 배석한 노법관이었다. 오스카의 형형한 안광이 요한을 꿰뚫었다.


“명계의 법은 절차를 건너뛰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변호인에게 공식적인 변론권을 부여하라. 만약 이를 거부한다면, 내 권한으로 이 법정의 재판권을 즉각 박탈하겠다.”


수석재판관 오스카의 서릿발 같은 경고에 요한은 침을 꿀꺽 삼키며 치켜들었던 판사봉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그의 비대한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좋다. 변호인에게 변론의 기회를 주지. 하지만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걸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요한이 씩씩거리며 변호인석을 노려보았다. 우진은 오스카 판사를 향해 가볍게 묵례한 뒤, 피고인석의 에드워드 4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최악이었다.


에드워드 4세는 목에 채워진 영혼 구속 쇠사슬의 강한 영적 압박으로 인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사슬에 깃든 타락한 신성력이 그의 영혼을 끊임없이 흔들며 극심한 공포와 불안을 주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 그에게 직접적인 진술을 요구했다가는, 불안정한 영체 상태에서 횡설수설하며 스스로 무덤을 파게 될 것이 분명했다.


펠릭스 검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에드워드 4세의 앞으로 성큼 걸어 나갔다.


“피고인 에드워드 4세. 당신은 생전의 제국력 442년 8월 12일, 서부 영지의 론 요새에서 백성 수천 명을 성벽 아래로 밀어뜨려 학살하라는 명령을 직접 내렸습니까? 똑바로 대답하십시오. 당신의 영혼이 떨리는 것은 생전의 죄업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닙니까?”


펠릭스의 목소리에 깃든 청색 마력이 에드워드 4세의 뇌파를 직접 자극하며 강제 자백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4세의 안광이 흐려지며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나는 단지…… 백성들이 아니라 반역자들을…….”


유도 심문이었다. 피고인이 당황하여 단 한 마디라도 실책을 범하는 순간, 펠릭스는 이를 자백으로 규정해 재판을 끝내버릴 심산이었다. 시몬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우진의 소매를 붙잡았다.


“레오, 이대로 피고인이 자백하면 끝장이야……!”


우진은 냉정하게 펠릭스의 공격 경로를 계산했다. 현대 한국의 형사소송법에서 검사가 피고인의 심리적 불안정을 이용해 자백을 강요할 때 쓰는 전형적인 덫이었다. 사후 세계의 마법적인 정신 공격이라 할지라도, 그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우진은 바르도의 법전을 들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법정 전체가 울리도록 엄숙하게 선언했다.


“바르도의 고대 법전 제2장 제5조, ‘묵비권의 마법적 보장’을 선언합니다!”


우진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은백색의 신성력이 피고인석의 에드워드 4세를 감싸 안았다.


스으으으.


찬란한 은백색의 침묵 장벽 마법 서클이 에드워드 4세의 입술 주변에 형성되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펠릭스 검사가 뿜어내던 청색 자백 유도 마력이 은백색 장벽에 부딪혀 흔적도 없이 공중 분해되었다. 에드워드 4세의 흐려졌던 안광이 즉각 맑은 정신으로 돌아왔고,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우진을 경탄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견습 영혼 변호인의 권능 ‘묵비권의 마법적 보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피고인의 영체 주파수가 안정화됩니다. 외부 정신 간섭이 100% 차단됩니다.]


“변호인! 이게 무슨 짓인가!”


펠릭스 검사의 차가운 얼굴에 처음으로 균열이 가며 분노가 서렸다.


“피고인의 직접 진술을 마법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법정의 진실 규명을 방해하는 행위다!”


“방해가 아니라 합법적인 방어권 행사입니다, 펠릭스 검사.”


우진은 단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차갑게 대꾸했다.


“명계 법률에 의거, 피고인은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에 대해 답변을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 변호인은 피고인의 영체가 불안정할 때 진술을 거부하도록 권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검사 측의 교묘한 정신 자백 유도 질문은 이 법정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펠릭스는 이빨을 지그시 갈았다. 하지만 이내 그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가며 기괴한 미소로 변했다. 그는 자신의 오만함을 다시 한번 단단히 다잡으며 품속으로 손을 뻗었다.


“좋다, 변호인. 묵비권 뒤에 숨어 보겠다는 거군. 하지만 아무리 그 가증스러운 입을 다물지라도, 역사에 새겨진 명백한 ‘물적 증거’ 앞에서는 무력할 것이다.”


펠릭스가 품속에서 황금빛 봉인이 찍힌 낡은 양피지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두루마리가 펼쳐지는 순간, 성황청의 찬란하고도 압도적인 황금빛 신성 오라가 법정 전체를 가득 채웠다. 배심원 석상들이 그 빛에 반응하여 일제히 웅장한 진동을 울렸다.


“이것은 성황청 본청 역사 검열소에서 직접 공인한 ‘성황청 공인 사료 사본’입니다. 여기에는 피고인 에드워드 4세가 직접 서명하고 날인한 론 요새의 민간인 학살 명령서 원본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펠릭스가 황금빛 사료를 우진의 눈앞에 들이밀며, 소름 끼칠 정도로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자, 변호인. 성황청의 무결한 직인이 찍힌 이 역사적 기록 앞에서도,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펠릭스의 오만한 웃음소리가 법정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우진은 펠릭스가 제시한 황금빛 사료를 응시하며, 조용히 왼쪽 눈의 정의의 단안경을 작동시켰다. 이세계의 역사 왜곡이 만들어낸 거대한 장벽이, 마침내 그의 눈앞에 그 위선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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