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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범들의 지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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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심문관 헤르만이 명계의 영혼 사슬에 묶여 지하 감옥으로 비참하게 끌려 내려간 직후, 변방 재판소 내부에는 서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변호인석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쉬는 한우진의 전신은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이단심문관의 성화 위압에 맞서 ‘정의의 영역’을 한계까지 전개한 대가는 가혹했다. 그의 정의의 신성력 수치는 사실상 0%에 도달해 있었고, 뇌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함께 입가에는 각혈한 선혈이 붉게 묻어 있었다.


하지만 우진은 비틀거리는 몸을 짚으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의 눈은 이미 다음 전장을 향하고 있었다.


“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우진이 피 묻은 입술을 닦아내며 곁에 서 있던 황도 감사관 셀린을 바라보았다. 셀린은 헤르만을 단죄한 우진의 사법적 지략에 깊은 경외감을 품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헤르만이 몰락했다는 소식이 황도의 사법 대주교 일라리오에게 들어가면, 그들은 즉시 움직일 겁니다. 에드워드 4세의 항복 문서를 마법적으로 조작한 위조의 대가, 흑마법사 라울을 황도로 도피시켜 증거를 인멸하려 하겠지요.”


“그의 위조 공방 위치는 이미 파악해 두었습니다.”


우진의 지시에 따라 음지에서 움직이던 도둑 카일이 그림자 속에서 날렵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카일은 허리춤에 차고 있는 ‘공간 절삭용 단검’을 가볍게 두드리며 눈빛을 반짝였다.


“변방 재판소 지하 하수도 가장 깊은 곳, 버려진 수로 너머에 라울의 비밀 공방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름하여 ‘위조범들의 지하 미로’입니다.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변호사님. 그곳은 라울이 설치한 시공간 왜곡 결계와 기괴한 마법 함정들로 가득 찬 난공불락의 금역입니다.”


“가야 합니다. 라울의 목을 확보하고 그의 위조 도구를 압수해야만, 사흘 뒤 열릴 에드워드 4세의 최종 공판에서 성황청의 역사 왜곡을 완벽하게 탄핵할 수 있습니다.”


우진은 조수 시몬에게 납치에서 겨우 구출된 여동생 한나를 테레사 수녀원의 안전한 결계 속으로 피신시키라 지시한 뒤, 호위 기사 발레리아와 도둑 카일을 대동하고 재판소 지하의 어두운 수로로 향했다.


발레리아의 은빛 장검 표면에는 전날 밤 제랄드 기사단장과의 격돌로 생긴 미세한 균열이 여전히 가 있었지만, 그녀는 우진의 방패를 자처하며 굳건히 그의 곁을 지켰다.


* * *


칠흑 같은 하수도의 악취와 음산한 한기를 뚫고 들어가자, 마침내 거대한 석조 벽으로 이루어진 기괴한 미로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위조범들의 지하 미로(Underground Maze of Forgers)였다.


일행이 미로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순간, 웅장한 진동과 함께 사방의 석벽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키히히힉! 미천한 변방의 변호사 놈이 감히 내 예술의 전당에 발을 들이다니!”


미로의 허공에서 흑마법사 라울의 갈라지고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벽들이 실시간으로 위치를 바꾸며 우진 일행의 시야를 가로막았고, 통로는 순식간에 폐쇄되었다. 단순한 돌벽이 아니었다. 벽 표면에는 검은색 잉크 같은 마력이 일렁이며 주변의 시공간을 미세하게 비틀고 있었다. 라울이 전개한 ‘시간 왜곡 결계’였다.


“제가 길을 뚫겠습니다!”


발레리아가 기합과 함께 은빛 검기를 방출하며 전방의 움직이는 석벽을 향해 돌진했다. 그녀의 장검이 궤적을 그리며 벽의 중심부를 강타했다.


쾅—!


그러나 벽은 파괴되지 않았다. 오히려 벽 표면에 흐르던 검은 잉크 마력이 발레리아의 검기를 흡수하더니, 역으로 그녀의 검날을 타고 올라와 은빛 장검을 일시적으로 굳어버리게 만들었다.


“앗……! 검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파괴는 통하지 않습니다, 발레리아! 저 결계는 타격을 가할수록 그 충격을 시간 속으로 흘려보내 무효화합니다!”


우진이 소리쳤다. 그의 신성력은 고갈되어 단안경의 정밀 스캔을 가동할 수 없었지만, 현대 법률가로서 단련된 그의 뇌세포는 적의 마법적 메커니즘을 이성적으로 해독해 내고 있었다. 라울의 마법은 시간의 흐름을 비틀어 결과를 원인보다 먼저 지워버리는 왜곡에 기반해 있었다.


“카일, 벽의 연결 매듭을 찾아라!”


“맡겨두십시오!”


도둑 카일이 날쌔게 허공을 도약했다. 그의 손에 쥔 공간 절삭용 단검이 푸른빛을 발했다. 카일은 벽들이 맞물리며 발생하는 미세한 마력의 주파수 균열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포착해 냈다.


서걱!


카일이 단검으로 움직이는 석벽의 하단 모서리, 마력 흐름의 핵심 연결 매듭을 정확히 그어 내렸다. 공간을 일시적으로 절삭하는 단검의 권능이 라울의 결계 주파수를 강제로 단절시켰다.


쿠웅!


광포하게 회전하던 석벽들이 일시적으로 작동을 멈추며 좁은 틈새가 열렸다.


“이쪽입니다! 달리십시오!”


카일의 외침에 우진과 발레리아가 굳어버린 검을 간신히 수거해 틈새를 돌파했다. 하지만 미로의 중심부에 도달하기도 전에, 사방의 어둠 속에서 기괴한 덜컹거림이 들려왔다.


덜컹, 덜컹덜컹.


벽면의 틈새에서 검은 잉크와 피로 물든 수십 개의 기괴한 인형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라울이 자신의 위조 마법을 호위하기 위해 부리는 흑마법 인형들이었다. 인형들의 손가락 끝은 날카로운 바늘과 칼날로 되어 있었고, 눈동자 자리에는 성황청의 역사 왜곡 저주 마력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발레리아의 검에 균열이 가 있고 마력도 부족합니다. 저 수많은 인형들을 물리적으로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카일이 긴장한 목소리로 단검을 고쳐 쥐었다. 인형들이 살기 어린 소리를 내며 우진 일행을 향해 파상 기습을 감행해 왔다. 칼날과 바늘이 허공을 찢으며 밀려드는 절체절명의 위기.


우진은 차갑게 식은땀을 흘리며 바르도의 고대 법전을 움켜쥐었다.


‘내 신성력은 바닥이다. 하지만 이 법정 밖의 전장에서도 나를 지킬 규칙이 존재한다. 변호에 성공해 구원한 영혼의 힘을 내 육체에 완전히 동조시킨다.’


우진은 마음속으로 에드워드 4세의 붉은 수호령을 호출했다. 헤르만을 사법적으로 탄핵하는 과정에서 배심원 석상들의 인정을 받으며 뇌리에 각인되었던 정의의 신성력 잔재가 그의 심장 속에서 미세하게 반응했다.


“영혼 강림 조율법(Soul Descent Tuning Method)……!”


우진이 나지막이 선언하며 자신의 심장에 손을 얹었다.


[수호령 에드워드 4세와의 영체 싱크로율이 급상승합니다. 현재 동조율 45%…… 50% 돌파!]

[특수 전투 기술 ‘영혼 강림’이 활성화됩니다!]


두둥—!


우진의 깡마른 가슴 속에서 거대한 군주의 심장 박동 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우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선명한 핏빛으로 물들었고, 그의 전신에서 검붉은색 기사단의 오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컥……!”


영혼이 강제로 동조되는 순간, 우진의 뇌에 극심한 과부하가 걸리며 코에서 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머리가 깨질 듯한 극통이 전신을 지배했지만, 그의 육체는 이미 에드워드 4세의 전성기 왕실 무인의 기세로 가득 차 있었다.


우진은 발레리아의 허리춤에 차려져 있던 백업 장검을 단숨에 뽑아 들었다. 지적인 변호사의 손에 들린 장검 끝에서, 전장을 지배하던 백작급 군주의 진홍빛 검강(Sword Qi)이 사납게 요동쳤다.


“길을 비켜라, 위선자들의 하수인들아.”


우진의 목에서 묵직하고 위엄 넘치는 군주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스아아앗—!


우진의 신형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그의 검끝이 진홍빛 궤적을 그리며 쇄도하는 흑마법 인형들의 목을 정밀하게 그어 내렸다. 에드워드 4세의 전성기 검술이 레오의 깡마른 몸을 통해 완벽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서걱! 서거걱!


진홍빛 검강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라울의 시간 왜곡 결계가 깃든 인형들이 단 한 번의 저항도 하지 못하고 사지가 잘려 나가며 검은 잉크더미로 분해되었다. 우진은 밀려드는 두통 속에서도 검을 휘두르는 궤적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검식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라울의 마법 인형들의 관절 마디마디를 정확히 도려내고 있었다.


“이, 이 말도 안 되는 괴력은 뭐냐! 기록관 놈이 어찌 왕실 기사단의 검술을 구사하는 거지?”


미로 깊은 곳에서 라울의 비명이 들려왔다.


우진은 마지막 인형의 심장을 꿰뚫어 소멸시킨 뒤, 검강의 기세로 라울의 밀실 문을 정면으로 부수고 진입했다.


콰아앙—!


부서진 문 잔해 너머, 곱추 체구에 검은 후드를 깊게 눌러쓴 노인 라울이 공포에 질린 채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 끝은 검은 잉크와 마법 약액으로 절어 있었고, 그의 앞 탁자 위에는 성황청의 역사 위조에 쓰이던 정밀한 연금술 도구들이 가득했다.


우진은 피 묻은 검날을 라울의 목덜미에 차갑게 겨누었다. 핏빛으로 물든 그의 눈동자가 라울의 영혼을 꿰뚫어 볼 듯 타올랐다.


“성황청의 역사 위조 의뢰서, 그리고 네놈이 평생 조작에 사용해 온 모든 도구를 압수하겠다.”


“히, 힉……! 살려다오! 나는 그저 사제들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라울이 비명을 지르며 탁자 밑의 비밀 서랍을 열어 ‘라울의 위조 각인 도구’ 세트와 성황청 사법 대주교 일라리오의 수인이 찍힌 역사 조작 의뢰 문서 원본을 바들바들 떨며 건넸다.


우진은 차가운 손으로 위조 도구를 압수하여 자신의 합금 증거 보관함에 상시 보관하도록 카일에게 넘겼다. 마침내 성황청의 역사 왜곡을 완전히 박살 낼 사법적 스모킹 건을 손에 넣은 것이다.


[미션 성공! 에드워드 4세의 서명 위조 증거인 ‘라울의 위조 각인 도구’를 완벽하게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성공의 기쁨을 누릴 틈도 없었다.


쿠구구구구궁—!


지하 미로 전체가, 아니 명계 변방 영지 전체가 찢어질 듯한 거대한 진동과 함께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이 진동은 뭐지? 미로의 결계가 무너지는 건가?”


카일이 당황하여 소리쳤다. 우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머릿속으로 변방 재판소 수석 서기 시몬의 다급한 영적 전령이 비명처럼 꽂혔다.


[변호사님! 큰일 났습니다! 안토니오 사제 녀석이…… 최종 공판을 무산시키기 위해 재판소 지하 깊은 곳의 ‘영혼의 불꽃 제단’을 폭주시키고 있습니다! 재판소 전체가 증거와 함께 통째로 폭파당할 위기입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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