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헌법 제3조의 방벽
쿠구구구구구—!
명계 변방 재판소의 거대한 석조 기둥들이 비명을 지르듯 진동했다. 천장에서 떨어진 흙먼지가 은백색으로 빛나는 법정의 신성불가침 결계 표면 위로 하얗게 흩날렸다.
방금 전, 안토니오 사제와 제랄드 기사단장의 무장 폭동을 완벽하게 진압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정 내부의 긴장감은 오히려 수백 배로 증폭되어 있었다. 재판소 외부, 정의의 광장을 겹겹이 포위한 철갑 군대의 고동 소리가 창문을 타고 넘어와 한우진의 가슴을 무겁게 압박했기 때문이다.
“변호사님…….”
검에 미세한 균열이 간 채 우진의 앞을 지키고 서 있던 여기사 발레리아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녀의 벽안에는 전에 없던 깊은 우려가 서려 있었다.
“외부에 포위망을 구축한 군대의 규모가 심상치 않습니다. 단순한 영지 경비대가 아닙니다. 저 묵직하고 조직적인 마력의 파동은…… 제국 서부 총독부의 정규 정예병들입니다.”
우진은 대답 대신 가슴을 움켜쥐며 깊은 기침을 토해냈다.
“쿨럭! 흑……!”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손가락 틈새로 검붉은 피가 울컥 배어 나왔다. 이미 어젯밤 자객 브루노의 독검 기습을 대역 인형으로 막아내고, 연이어 단안경과 고대 법전을 극한으로 가동해 사법 결계를 유지하느라 그의 영혼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경고: 견습 영혼 변호인의 정의의 신성력이 0.5% 미만으로 강제 방전되었습니다.]
[경고: 영체 싱크로율 과부하 및 인과의 반동으로 인해 우측 신체에 경미한 마비 통증이 지속됩니다. 추가적인 대규모 결계 전개 시 자아 붕괴의 위험이 있습니다.]
머릿속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우진은 비틀거리는 몸을 변호인석 탁자에 기대며 이빨을 악물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 위로 창문 너머 붉은 군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에드워드 4세의 완전 무죄 판결을 눈앞에 두고, 저들이 물리적인 힘으로 법정을 짓밟게 놔둘 순 없어.’
우진은 고개를 들어 재판석 위의 오스카 판사를 바라보았다. 요한 재판관의 비리를 탄핵하고 정식 재판권을 대행하게 된 오스카 판사 역시 엄숙한 표정으로 판사봉을 쥔 채 창밖의 소란을 주시하고 있었다.
쾅! 쾅! 쾅!
그때, 재판소의 거대한 정문이 거칠게 두들겨졌다. 신성불가침 결계의 은백색 장벽에 막혀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군대의 사도들이 문밖에서 고함을 질렀다.
“제국 서부 총독, 크로이츠 각하의 명령이다! 법정 내부의 모든 자들은 즉각 무기를 내려놓고 문을 열어라! 총독 각하께서 직접 황실의 특별 진입 명령서를 집행하기 위해 납시었다!”
크로이츠 총독.
우진의 머릿속에 아서의 비밀 일지에서 보았던 이름이 떠올랐다. 황도의 사법 대주교 일라리오의 충직한 사냥개이자, 변방의 모든 역사 왜곡 소요 사태를 힘으로 덮어버리려는 제국의 고위 관료.
“오스카 판사님.”
우진은 피가 묻은 입술을 닦아내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비록 몸은 만신창이였지만, 그의 매서운 눈빛만큼은 여전히 법정을 지배하는 변호사의 그것이었다.
“적들이 황실의 권위를 빙자해 사법의 독립성을 짓밟으려 하고 있습니다. 변호인으로서 피고인의 정당한 재판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도록 법정의 권한을 유지해 주십시오.”
오스카 판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나단 경비대장. 문을 열어라. 단, 사법 결계의 경계선은 단 한 걸음도 넘지 못하도록 무장 대형을 유지하라.”
“명령을 받듭니다!”
조나단 경비대장이 미늘창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철갑을 두른 경비대원들이 재판소 입구를 향해 굳건한 방어 대형을 구축했다.
스으으으—.
육중한 석조 문이 서서히 열리자, 광장을 가득 메운 붉은색 군대의 위용이 드러났다. 수천 명의 제국 정규군이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방패와 장검을 든 채 재판소를 포위하고 있었고, 그 중앙에 화려한 총독 제복을 입고 외안경을 쓴 사내가 오만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가 바로 서부 총독, 크로이츠였다.
“이 무슨 불경한 짓인가!”
크로이츠가 외안경을 치켜쓰며 재판소 내부를 향해 차갑게 일갈했다.
“교단의 신성한 사제인 안토니오를 구금하고, 제국의 기사단을 쇠사슬로 묶다니! 오스카 판사, 그대 또한 이 이단 변호인의 광기에 동조하여 반역을 꾀하는 것인가?”
“각하.”
오스카 판사가 엄숙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곳은 명계의 정식 법정입니다. 안토니오 사제와 제랄드 기사단장은 법정 내부에서 무장 폭동을 일으키고 사법 절차를 방해한 혐의로 합법적으로 구금된 것입니다. 총독이라 할지라도 법정의 판결에 간섭할 권한은 없습니다.”
“하하하! 판결이라니!”
크로이츠가 광소하며 품속에서 황금빛 문양이 새겨진 두꺼운 양피지 서류를 꺼내 들었다.
“나는 제국 황실로부터 직접 위임받은 ‘황실 진입 명령서(Imperial Entry Order)’를 소지하고 있다! 변방의 소요가 황도의 안녕을 위협하는 바, 이 재판을 강제로 정지하고 피고인 에드워드 4세의 영혼과 이단 변호인 레오를 즉각 압송하겠다! 정예 부대, 진격하라!”
“와아아아!”
크로이츠의 명령과 함께, 붉은 갑옷을 입은 정예 기병들과 보병들이 재판소 문턱을 향해 진격을 개시했다. 그들이 뿜어내는 마력의 중압감에 조나단 경비대장과 대원들이 뒤로 미세하게 밀려나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병력의 차이와 황실 명령서라는 명분 앞에 공권력의 방패마저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지금이다.’
우진은 차갑게 식어가는 이성으로 법전의 페이지를 넘겼다. 그의 손가락 끝이 바르도의 고대 법전 깊은 곳, 알버트 교수와의 토론을 통해 완벽하게 고증하고 복원해 둔 한 조항에 멈췄다.
[제국 건국 헌법 제3조: 사법의 독립과 군대 진입 금지 원칙]
[효과: 재판이 진행 중인 신성한 사법 구역에는 황실 직속 군대라 할지라도 재판관의 정식 승인 없이는 무장 진입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할 시 제국의 인과율 시스템에 의해 모든 무력과 마력이 강제로 반동당한다.]
이 조항은 제국 건국 초기, 신권과 황권의 폭정으로부터 인간의 이성과 법치를 지키기 위해 고대 대법관 헨리가 새겨 넣은 초법적인 방벽이었다. 성황청의 역사 왜곡 가이드라인 속에서 철저히 지워지고 은폐되어 왔던, 진짜 제국의 뿌리.
우진은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우며 변호인석 앞으로 당당히 걸어 나갔다. 그의 입가에서 흘러내린 피가 턱을 타고 내려왔지만, 그의 안광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타올랐다.
“크로이츠 총독 각하!”
우진의 목소리가 법정 내부의 공명 결계를 타고 광장 전체에 거대한 천둥처럼 내리쳤다. 진격하던 제국 군대의 선두 기병들이 웅장한 목소리에 흠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 황금빛 명령서가 제국의 법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이 진정 황실의 정식 관료라면, 제국의 근본을 지탱하는 헌법을 위반하는 초법적 행위를 대중 앞에서 감행할 셈입니까!”
크로이츠가 눈살을 찌푸리며 우진을 노려보았다.
“하찮은 기록관 놈이 감히 헌법을 논하는가? 성황청의 교리와 황실의 명령이 곧 법이다!”
“틀렸습니다.”
우진은 바르도의 고대 법전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의 왼쪽 손가락에 끼워진 고대 법률가의 반지가 격렬하게 진동하며 은백색의 사법 오라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제국 건국 조약 제1조에 명시되어 있듯이, 황권과 신권은 건국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그 정당성을 보장받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법정의 이름으로 제국 건국 헌법 제3조를 정식으로 선언합니다!”
“제국 헌법 제3조(Imperial Constitution Article 3) 발동!”
우웅웅웅————!
우진의 선언과 함께, 그의 전신에서 남아 있던 미세한 신성 마력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제국의 근본 인과율 시스템이 우진이 낭독한 진짜 헌법 조항에 완벽하게 동조한 것이다.
“끄아악……!”
인과율 시스템과 직접 동조하는 과정에서 가해지는 영혼의 과부하로 인해 우진은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입에서 붉은 선혈이 광장 바닥을 적셨다. 하지만 그가 흘린 피는 헛되지 않았다.
쿠르릉! 쾅!
재판소의 정문 경계선을 따라, 대지 깊은 곳에서부터 은백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법률 문장들의 사슬이 솟구쳐 올랐다. 그 사슬들은 순식간에 서로 얽히고설키며,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거대한 은백색의 결계 장벽을 형성했다.
“무슨 짓이냐! 당장 장벽을 깨부수고 진입하라!”
크로이츠가 당황하여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명령에 따라, 마법 장검을 든 정예 기병 수십 명이 은백색 장벽을 향해 돌격을 감행했다. 그들의 검끝에 서린 강력한 마나 오라가 장벽을 찢어발기기 위해 사납게 휘둘러졌다.
그러나.
콰아아앙————!
그들의 무기가 은백색 장벽에 닿는 순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반동 마력이 폭발했다.
장벽에 새겨진 제국 헌법 제3조의 법률 문장들이 찬란한 빛을 발하며, 진입하려던 정예 기병들과 그들의 군마를 향해 인과의 충격파를 고스란히 되돌려 보냈다.
“히히힝!”
“끄아아악!”
기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말과 함께 사방으로 뒤로 나자빠졌다. 장벽에 닿은 그들의 무기는 순식간에 마력을 잃고 평범한 고철 덩어리로 변했고, 병사들의 전신 마나 회로 역시 강제로 봉인당해 바닥을 뒹굴며 신음했다.
단 한 걸음도, 그 어떤 물리적 무력도 제국 건국 헌법의 엄숙한 장벽을 뚫고 사법적 성역 내부로 진입할 수 없었다.
“이, 이럴 수가……! 제국의 정예병들이 고작 결계 하나에……!”
크로이츠 총독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깨달았다. 저 장벽은 단순한 마법 결계가 아니었다. 제국의 근본을 다스리는 인과율 시스템이 직접 보증하는 ‘헌법적 권위’였다. 만약 여기서 억지로 장벽을 파괴하려 군대를 더 동원한다면, 자신은 제국의 건국 이념 자체를 부정하는 ‘반역자’로 낙인찍혀 황도 사법부조차 자신을 비호해 줄 수 없게 될 터였다.
광장에 모여 있던 수만 명의 영지민 영혼들과 평민들이 이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 속에서 성황청의 신권 통치에 대한 의구심과, 우진을 향한 경외심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크로이츠 총독 각하.”
우진은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섰다. 발레리아가 다급히 그의 부축을 도왔다. 우진은 피가 묻은 입술을 들어 올리며 크로이츠를 향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헌법을 위반한 죄인으로 황도에 압송당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당장 그 무도한 군대를 거두고 회군하십시오. 이 법정의 판결은 오직 법과 정의에 의해서만 확정될 것입니다.”
크로이츠는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황실 명령서를 꽉 쥐었다. 만천하에 당한 완벽한 법적, 정치적 패배였다. 그는 헌법의 엄숙한 권위와 분노 어린 대중의 시선 앞에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군대를 정지시켜라.”
크로이츠가 이빨을 갈며 나지막이 명령했다.
“회군한다. 하지만 레오 변호사, 네놈이 이 변방 재판소 안에서 영원히 숨어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크로이츠는 말머리를 돌리기 전, 우진을 향해 살기 어린 차가운 눈빛을 던졌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여 잔인한 음모를 속삭였다.
‘네놈의 가족들이 있는 안개의 마을 네펠…… 그곳도 이 헌법의 장벽이 지켜줄 수 있을지 두고 보마.’
우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크로이츠와 사제단의 마수가 마침내 그의 유일한 약점이자 소중한 가족이 있는 안개의 마을 네펠을 향해 뻗어 나가려 하고 있었다.
붉은 군대의 행렬이 굴욕 속에 퇴각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진은 새로운 거대한 위기가 시작되었음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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