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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신성함은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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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소의 거대한 석조 철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들이닥친 것은, 구원을 바라는 평민들의 손길이 아니었다.


묵직한 강철 갑옷이 맞물리는 불쾌한 마찰음. 그리고 바닥을 짓누르는 군화 소리. 먼지 안개를 뚫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르가스 자작가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철갑 기사들이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변방 영지에서 가장 악명 높은 무인, 기사단장 제랄드가 서 있었다. 그의 한쪽 어깨에는 사람의 머리통만 한 거대한 강철 메이스가 올려져 있었고, 전신에서는 물리적인 공간을 일그러뜨릴 듯한 묵직한 강철 마나 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사제단! 기사단! 당장 무기를 뽑아라! 저 미치광이 변호인과 배신자 기사, 그리고 법정 안의 모든 영혼을 강제로 소멸시켜라!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안토니오 사제의 광기 어린 비명이 법정의 높은 천장을 때렸다. 자신의 모든 비리 장부와 살인 교사 혐의가 만천하에 폭로된 이상,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이 법정에 있는 모든 목격자와 증거를 물리적인 힘으로 뭉개버리고, 완전 범죄를 재구성하는 것.


“명령을 받듭니다, 사제님.”


제랄드가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에 멨던 메이스를 가볍게 고쳐 잡았다. 그의 눈빛에는 몰락한 가문의 기록관 레오와, 그를 호위하는 여기사 발레리아에 대한 노골적인 멸시가 담겨 있었다. 제랄드가 군화를 내딛는 순간, 그의 발밑에서부터 석조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져 나갔다.


“레오 변호사님, 제 뒤로 물러서십시오!”


발레리아가 은빛 장검을 뽑아 들며 우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검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광 마력이 제랄드의 강철 오라와 부딪히며 공중에서 지직거리는 스파크를 일으켰다. 하지만 발레리아의 안색은 그리 밝지 못했다. 상대는 제국 군부에서도 알아주는 상급 기사. 게다가 숫적으로도 완벽한 열세였다.


쉬이이익—!


제랄드가 가볍게 몸을 날리며 메이스를 휘둘렀다. 단순한 가로베기였지만, 그 끝에 실린 강철 오라의 파괴력은 법정의 공기 자체를 찢어발겼다.


카아앙—!


발레리아가 검을 비스듬히 세워 메이스의 궤적을 받아쳐 내려 했다. 그러나 상급 기사의 압도적인 마력 질량 차이는 정면 대결을 허용하지 않았다. 귀를 찢는 듯한 금속음과 함께 발레리아의 전신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그녀가 딛고 있던 석조 바닥이 처참하게 파여 나갔고, 그녀의 은빛 장검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지직, 지지직.


“검이……!”


발레리아가 이빨을 악물며 검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지만, 제랄드는 여유롭게 메이스를 돌리며 비웃었다.


“성황청의 사냥개 노릇을 하던 기사 계집이 제법이군. 하지만 그 얇은 칼날로 내 강철 메이스를 몇 번이나 버틸 수 있겠느냐? 다음 합에 네년의 목뼈를 가루로 만들어 주마.”


안토니오의 사제들 역시 품속에서 붉은색 쇠사슬 모양의 타락한 신성 마력을 뿜어내며 에드워드 4세의 영혼과 방청객들을 압박해 들어왔다. 법정 내부가 순식간에 피비린내 나는 도살장으로 변하기 직전이었다.


‘무력으로는 10초도 버티지 못한다.’


한우진은 차갑게 식어가는 이성으로 전황을 분석했다. 자신의 신체는 깡마른 기록관 레오의 몸. 물리적인 전투력은 제로에 가까웠다. 게다가 어젯밤 자객 브루노의 기습을 막아내고, 방금 전까지 단안경을 연속으로 가동해 안토니오의 뇌물 장부를 감정하느라 남은 정의의 신성력은 단 1% 내외의 극한 상태였다.


관자놀이가 터질 듯한 두통이 밀려왔고, 눈앞이 일시적으로 흐려졌다. 뇌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여기서 마력을 더 쥐어짜다간 가문의 저주가 폭주해 영혼 자체가 먼저 바스러질 터였다.


하지만 형사 변호사로서 수많은 권력자들의 협박과 칼날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한우진의 강심장은 오히려 이 위기 속에서 가장 날카롭게 벼려졌다.


‘검을 든 자들의 세상이라면 우리는 이곳에서 죽는다. 하지만 이곳은 사후 세계의 가장 엄숙한 공간…… 법정이다. 법정 안에서는 칼을 쥔 자가 아닌, 법을 쥔 자가 지배자가 된다.’


우진은 천천히 품속에서 가죽으로 장정된 낡고 묵직한 마도서, ‘바르도의 고대 법전’을 꺼내 들었다. 책 표지에 새겨진 천칭 문양이 우진의 미세한 신성력에 반응하며 은은한 백색 서리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레오 변호사! 포기하고 무릎을 꿇어라! 네놈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 망각의 강으로 던져버리기 전에!”


안토니오가 지팡이를 치켜들며 광포하게 외쳤다.


우진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왼쪽 손가락에 끼워진 ‘고대 법률가의 반지’를 향해 자신의 마지막 남은 1%의 신성력을 남김없이 쏟아부었다.


쿠구구구구—!


반지에 새겨진 고대 율법의 문양이 눈부신 은백색 광휘를 뿜어내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우진은 바르도의 고대 법전 제1장, 가장 엄숙하고 절대적인 조항을 소리 높여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명계의 근본 시스템을 흔드는 초월적인 힘이 실려 있었다.


“명계 사법 기본법 제1조, 그리고 고대 대법관들의 성스러운 약조에 의거하여 선언한다!”


우진의 선언이 법정 내부의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재판이 진행 중인 신성한 법정 내부에서는 그 어떤 물리적 폭력과 마법적 살상 행위도 허용되지 않는다! 법의 권위 앞에 무기를 든 자들의 모든 인과를 압수하노라!”


“법정의 신성불가침권(Sacred Inviolability of the Court) 발동!”


웅웅웅웅————!


우진의 선언이 끝나는 순간, 명계 변방 재판소 전체가 거대한 진동에 휩싸였다.


법정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거대한 해골 배심원 석상들이 일제히 반응했다. 그들의 굳게 다물려 있던 석조 입이 열리며, 땅을 울리는 거대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석상들의 안구에서 뿜어져 나온 순백색의 신성한 불꽃이 법정 천장으로 치솟아 올랐고, 이윽고 우진의 발밑에서부터 시작된 은백색의 거대한 사법 장벽이 해일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이, 이게 무슨 빛이냐……!”


제랄드가 메이스를 내리치려던 자세 그대로 허공에 굳어버렸다.


그를 감싸고 있던 묵직한 강철 마나 오라가 은백색 장벽에 닿는 순간, 마치 뜨거운 달궈진 철판 위에 떨어진 눈송이처럼 소리도 없이 녹아내려 소멸했다. 제랄드는 자신의 전신을 흐르던 마나가 완벽하게 차단당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기괴한 감각에 경악했다.


“내 마나가…… 내 오라가 어디로 간 거지?!”


그뿐이 아니었다. 안토니오의 사제들이 방출하던 타락한 붉은 신성력 역시 은백색 결계의 정화 파동 앞에 snuffed out—촛불이 꺼지듯 순식간에 암전되었다. 그들의 손에 쥐어져 있던 강철 검과 사제 지팡이들이 수백 배는 무거워진 듯, 바닥으로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쿵! 쿵! 콰당탕!


“끄아악! 무기가…… 무기가 너무 무겁다!”


“마력이 역류한다! 영혼이…… 영혼이 숨을 쉴 수가 없어!”


사제들과 자작가의 철갑 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법정의 신성불가침 결계가 전개되는 동안, 결계 내부에서 살의나 폭력적 의도를 품은 자들은 명계 시스템의 직접적인 압박을 받아 전신 마나가 봉인되고 육체적 행동이 완벽하게 제약되는 법적 형벌을 받게 된 것이다.


우진은 제자리에 선 채 차갑게 안토니오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코끝에서 붉은 피가 다시 한 번 울컥 쏟아져 나와 회색 사제복을 적셨다. 1%의 신성력을 한계까지 쥐어짜 결계를 유지하느라 뇌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지만, 우진은 단 한 걸음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적의 심장을 꿰뚫을 듯 차갑고 날카로웠다.


“안토니오 사제.”


우진이 피를 흘리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하지만 결계의 공명을 타고 그의 목소리는 안토니오의 귓전에 거대한 천둥처럼 내리쳤다.


“무력이 통하지 않는 사법적 성역에 들어온 것을 환영합니다. 이제, 당신의 그 비겁한 칼날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을 법대로 처단할 시간입니다.”


“이, 이 괴물 같은 놈……!”


안토니오는 전신이 마비된 채 바닥을 기며 우진을 향해 공포에 질린 비명을 질렀다. 사법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그는 완벽하게 고립되어 외통수에 몰렸다.


그때, 재판석 위의 오스카 판사가 엄숙하게 일어서며 판사봉을 높이 들었다.


“법정의 신성불가침권이 정식으로 발동되었다! 경비대장 조나단, 규율에 따라 사법적 성역을 더럽힌 저 무장 폭동 세력의 무기를 즉각 압수하고 전원 구금하라!”


“명령을 받듭니다!”


대기하고 있던 경비대장 조나단이 미늘창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결계의 보호 아래 마력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던 경비대원들이 신속하게 움직여, 무력화된 자작가의 기사들과 사제들의 무기를 압수하고 그들의 손목에 명계의 구속 쇠사슬을 채우기 시작했다.


제랄드 기사단장 역시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차가운 돌바닥에 눌려 신음할 뿐이었다.


법정 내부의 폭동은 완벽하게 제압되었다. 우진은 안토니오를 궁지로 몰아넣으며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아내기 위한 마지막 변론을 준비하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우우우웅—————!


재판소 외부, 정의의 광장 저편에서부터 대지를 흔드는 거대한 군호 소리와 고동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영지의 순찰대가 아니었다. 재판소 건물의 두꺼운 석조 벽을 뚫고 들어올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의 군대 기동음이었다.


창문 너머로 붉은색 군대의 깃발들이 어렴풋이 보였고, 수천 명의 철갑 병사들이 명계 변방 재판소 건물 전체를 겹겹이 포위하는 거대한 마력 장벽이 외곽에서부터 솟구치기 시작했다.


법정 내부의 폭동은 막아냈으나, 안토니오와 결탁한 바르가스 자작과 서부 총독부의 진짜 군대가 재판소 자체를 외부로부터 완전히 봉쇄하고 아사시키려는 최후의 봉쇄 계획을 가동한 것이었다.


창문 너머로 비쳐오는 붉은 군대의 그림자가 우진의 창백한 얼굴 위로 길게 드리워졌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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